오동꽃을 보며
이승의 더딘 봄을 초록에 멱감으며
오마지 않은 이를 기다려 본 이는 알지
나 예서 오동꽃까지는 나절가웃 길임을
윗녘 윗절 파일등은 하마 다 내렸는데
햇전구 갈아 끼워 불 켜든 저 오동꽃
빗장도 아니 지른 채 재넘잇길 열어놨네
하현의 낮달로나 나 여기 떠 있거니
오동꽃 이운 날은 먼데 산 뻐꾸기도
해식은 숭늉 그릇에 피를 쏟듯 울던 것을
(박기섭, ‘오동꽃을 보며’ 전문)
이 시를 읽다보니 ‘모든 연애는 죽음을 예정한 것이다’라는 바타유의 말이 생각이 나네요. ‘완성된 사랑’의 표상인 오동나무, 그 꽃을 보며 화자는 ‘사랑의 미완’을 이야기 하는 걸 보면. 이 시의 시적 화자와 시적화자의 그녀인 오동꽃까지의 길은 나절가웃. 오마지도 않은 그녀를 그토록 기다릴 때는 코빼기조차도 볼 수 없었던 그녀가 어느 순간, 빗장도 아니 지른 채 재넘잇길을 열어 놓고 시적 화자를 기다리는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오동꽃에게 시적 화자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는데 하현, 그것도 낮달로 와 떠 서는. 그러고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그 어떤 실체이기보다는 그 어떤 실체 이면의 또 다른 실체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동꽃 이운 날, 먼데 산 저 뻐꾸기도 해식은 숭늉그릇에 저렇듯 피를 쏟으며 우는 걸 보면. (시인 송인영)
저작권자 © 제주경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