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어른들은
얼어버린 냇물 위에서 돼지를 잡았다.
우리 동네에는
바다까지 이어지는 도마가 있었다.
얼음 도마는 피를 마시지 않았다.
얼어붙은 피 거품이 썰매에 으깨어졌다.
버들강아지는 자꾸 뭐라고 쓰고 싶어서
흔들흔들 핏물을 찍어 올렸다.
얼음 도마 밑에는 물고기들이 겨울을 나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노을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핏물은 녹아내려 서녘 하늘이 되었는데
비명은 다들 어디로 갔나?)
얼음 도마 위에 누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돼지가 있었다.
일생 비명만 단련시켜 온 목숨이 있었다.
세상에,
산꼭대기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도마가 있었다.
(이정록, ‘얼음 도마’, 전문)
문득, 올려다보았더니 어느 새 한라산이 새하얘져 있습니다. 이제 정말 겨울인가 봅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제주, 이 땅을 얼지 않는 최남단 축복의 땅이라고 한편, 또 정말 만만치가 않게 추운 곳이 또한 이 곳, 제주이지요. 그런데 사람 사는 동네는 거의가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이 시를 쓴 시인의 마을도 예외가 아닌 걸 보면. 하루가 다르게 얼어붙는 이 겨울, 저렇듯 서로 모여 추렴을 하는 걸 보면
꽥, 꽥, 꽤애애애액…… 바쳐지는 번제물처럼. 저렇게 다 주고 가면 며칠은 온 동네가 배 터지도록 따뜻했던. 그러고 보면 산꼭대기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저 도마는 말로만 ‘얼음도마’지 알고 보면 이 세상 가장 뜨거운 도마인 듯합니다. 가장 차갑지만 또한 가장 뜨거운. 그러니 부디 바라옵건대 올 겨울만큼은 저 도마처럼 서로서로가 따뜻하시기를! (시인 송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