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풋잠과 풋잠 사이 핀을 뽑듯, 달이 졌다
치마꼬리 펄럭, 엄마도 지워졌다
지워져, 아무 일 없는 천치 같은 초저녁
(박명숙, ‘초저녁’, 전문)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북적거리던 전국의 해맞이 명소들이 너나없이 올해는 잠잠하기만 합니다. 매일 뜨는 ‘해’라고는 하지만 또 ‘해’를 달리 하여 떠오르는 ‘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숫자가 주는 그 의미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지워져, 아무 일 없는 천지 같은 저 초저녁’ 이 어쩌면 신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의 선물은 아닐는지요. 새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저녁, 그 중에서도 초저녁. 일순, 풋잠과 풋잠 사이 핀을 뽑듯 휘몰아치는 어둠. 저 어둠 속에서,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당면한 이 어둠 앞에서 희망을 노래하여야 하고 또 노래하여야만 하는. 2021! 새해가 다시 밝았습니다. 하루하루의 우리네 삶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천지불명일지라도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외롭지 말라고 시인이 저렇듯 적막하게 띄운 저 ‘초저녁’이 우리를 다시 다잡게 합니다. 어둠, 그 속에서라야 별들이 더 빛나듯이.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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