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37)해남에서 온 편지(이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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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37)해남에서 온 편지(이지엽)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1.1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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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온 편지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

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

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

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

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

니...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 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이지엽, ‘해남에서 온 편지’, 전문)

 

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그런 시간들이 뜻하지 않게 꽤나 길어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엠 에프 때가 차라리 낫다 싶다가도 그에 비 할 바는 아니기에… 우리네 삶은 이렇듯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데 그래도 모진 것이 목숨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꼭 이 시 속의 저 엄마의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는’. 알고 보니 ‘종신서원’, 즉 하나님과 결혼을 한 수녀가 된 딸은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와 같은 처지인 것이니. 하여, 저 가늠할 수 없는 저 어미의 마음에 저 역시도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해남, 저 땅을 흔히들 ‘땅끝 마을’이라고도 하지요. 그렇다면 ‘해남에서 온 편지’도 바꾸어 말하면 ‘땅끝 마을에서 온 편지’일 터, ‘끝’이라는 말은 그 다음은 ‘처음’이라는 말일 터, 이 시를 위안 삼아 우리도 그 끝인 이 겨울을 잘 참고 넘어가 보자구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 시 속의 저 풍경처럼 복사꽃 환하게 피는 세상이 반드시 열리고야 말테니까요.

기다려집니다. 벌써, 그 날이 그런 세상이!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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