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카파스 티모르 레스테 (9)흉기 들고 날뛰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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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카파스 티모르 레스테 (9)흉기 들고 날뛰는 학생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2.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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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코이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류광하 건축전문가가 학교 방문을 했다. 내가 지난번에 조사한 13곳의 주요 하자보수 내용을 실제 점검하고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류 전문가, 교감선생님과 함께 현장을 일일이 점검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 의하면 건축업자가 모두 보수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 사이에 학생이나 교사들의 사용에 의한 오작동이나 파손, 시간에 의한 감가상각 등은 지원이 안 된다고 한다. 타당한 설명이다.

오후 1시경에 갑자기 밖이 아주 소란스러웠다. 밖을 보니 한 젊은이가 손에 낫 같은 흉기를 들고 큰 소리로 외치며 뛰어 다니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그 뒤를 쫒고 있다. 이어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또 학생들 함성이 요란히 들린다. 내 사무실 바로 옆 학생부장의 근무하는 곳 유리창이 박살나 있었다. 급히 밖으로 나가니 그는 운동장 쪽으로 뛰어나가고 있다. 나도 두려움을 느꼈다. 선생님들은 한 분도 안 보인다. 내용을 모르니 어찌할 바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가 사라졌다.

두 화분 사이로 난 문이 이영운 선생님의 사무실 입구다.
두 화분 사이로 난 문이 이영운 선생님의 사무실 입구다.

나중에 교감과 영어교사 Felix의 설명에 의하면 교칙을 세 번이나 어긴 그 학생이 어제 열린 교무회의에서 제적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불만을 가진 학생이 학교를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 담당자인 학생부장 사무실의 유리창을 파손한 것이다. 학교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날뛰는 학생이 흉기를 소지하고 있어서 함부로 아무도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을 불렀고, 총기를 휴대한 경찰관들이 도착하자, 그 학생은 빠져나간 것이었다. 나는 Felix에게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 물었다.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가 잘 생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이 학생은 시골에서 수도 딜리로 유학 온 학생이었다. 나중에 학부모에게 연락하여 파손된 기물을 변상하라고 했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고, 결국 6개월 동안 파손된 유리창은 그대로 방치되었었다.

우리 아파트에 함께 거주하는 자문관들에게 우환이 많이 생기고 있다. 최규환 자문관은 처제가 세상을 떠나 내일 한국에서 발인한다고 한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오늘 밤 힘든 시간을 보낼 것 같다. 그의 방에는 부처님 그림이 모셔져 있고 매일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또 박자문관은 요즘 근심에 가득 쌓여 있다. 나는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치면 그의 방으로 건너간다. 차를 함께 마시거나, 빙땅 맥주를 한 캔씩 나누면서 그날의 업무나 한국의 가정 얘기를 나눈다. 이 주 전부터 사모님 얘기를 많이 한다. 사모님에게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가끔 사모님이 울면서 전화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곳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난감할 뿐이다. 모레 수술을 받는다. 오늘은 아들과 통화하면서 잘 살피라고 부탁하고 있다.

두 분 모두가 위로 받고 또 좋은 결과를 기원해 본다. 내일은 코이카 신임 소장님이 학교 방문을 한다. 처음 만남이어서 벌써 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

◇ 정전, 단수된 학교

오늘은 걸어서 등교하기로 했다. 걸으면 한 40분 정도 소요된다. 7시경에 집을 나섰다. 20분쯤 걸으니 왼편에 베코라 성당이 보인다. 성당에 잠깐 들려서 조배와 화살기도를 하고 나왔다. 먼지, 매연이 없으면 좋으련만 너무 심하고 목 안도 매캐하다.

잦은 정전으로 수시로 급수 모터가 고장난다.
잦은 정전으로 수시로 급수 모터가 고장난다.

학교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현관이 닫혀 있다. 선생님들은 한 분도 안 보인다. 학생 두세 명이 벤치에 앉아 있다. 테툼어로 ‘디악 깔라에!’ 하고 인사하자 ‘디악, 디악!’하고 받는다, 영어로 풀어쓰면 ‘How are you?', 'So fine!'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내 사무실은 본관 뒤 별동에 있기 때문에 현관을 돌아서 사무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이무현 선생님이 오셨다. 이 선생님은 아직 OJT(현장실습) 중인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온 것이다.

수돗물을 틀어 보니 물이 안 나온다. 사실 어제부터 물이 안 나오고 있었다. 학생 수만 천명이 넘는데 단수되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화장실을 모두 수세식으로 바꿨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본관 화장실에는 양동이에 물을 받아 놓았었는데, 이미 한 방울도 없다. 악취가 진동한다. 이 모든 시설들을 코이카에서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마나 나는 죄의식을 느낀다.

교감선생님께 문의해 보니 전기가 나가서 수도 공급이 안 되고 있으며, 오전에 전기회사에서 와서 봐주기로 했단다. 한국인 현장소장이 와서 급수시설 배전판을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작동이 되지 않는다. 코이카 사무소 류광하 전문가에게 전화했다. 2시경에 전기 기술자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교장, 교감에게 이 내용을 전달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는데도 교감이 부른 기술자도 안 나타나고, 코이카에서 보내겠다는 기술자도 감감 무소식이다. 류 전문가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알아보니 차량이 없어서 못 오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내가 두 번 거짓말한 격이 되어 버렸다.

저녁 때 유튜브에서 음악을 다운받았다. 성가, 찬송가, ABBA, 7080 노래 등이다. 이 곳에서 잘 버티려면 좋은 음악이 많은 위로가 된다. 저녁 식사 후에 건너 방 박찬홍 자문관 방을 노크했다. 어제 사모님이 한국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했는데 걱정이 되었다. 얼굴빛이 밝다. 수술은 잘 되었고 벌써 회복중이라고 한다.

이야기 중에 한국에서 박자문관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들은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잘 돌보고 있어 보였다. 어머니가 수술을 잘 받고 회복 중이며,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아주 차분하고 착실한 아들 같아 보인다. 한 고비를 잘 넘겼으니 이제는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

병 없는 세상은 없을까? 몸이 건강하면 또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생노병사라는 말이 자주 절실하게 다가옴을 느끼게 하는 시기다. 고통 고민이 없는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일까?

◇ 아쿠아 그리고 타이스

어제 퇴근할 때까지 전기 수리 기사가 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수돗물 공급이 걱정이 되었다. 교감을 만나 상활을 여쭤보았다. 그도 어제 퇴근할 때까지 기사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베코라 기술고 학생들의 수업시간.
베코라 기술고 학생들의 수업시간.

조금 있으니 공사 현장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지인 ‘마디’가 왔다. 그는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3년 정도 근무했기 때문에 한국어도 조금 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어제 저녁 8시까지 고쳤다고 한다. 이제 물을 옥상 수조에 끌어 올리면 된다고 설명한다. 함께 가서 물탱크 개폐 장치를 풀고 전기를 켜서 물을 올려 본다. 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20분 정도 물을 받은 후에 보내면 될 것 같다.

현장 사무소 정소장이 도착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어디에 이상이 있었느냐고 물어 봐도 그도 잘 모르는지 설명이 명료하지 않다. 교감에게 네 개의 연결선이 있는데 고장 나면 다른 쪽으로 연결하면 된다고 할 뿐이다. 교감에게도 아주 불친절하게 설명한다. 어쨌든 물이 나오니 다행이다.

잠시 후에 코이카 류 전문가가 왔다. 그는 공사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한국 현지 회사에 공사 지체 보상금으로 18만 달러가 부과되었다고 한다. 거의 2억 원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현장소장이 이 일로 교체되지나 않을까 자신도 걱정하고 있다. 지난번에 내가 작성해준 하자보수 내용은 내일 공문으로 회사에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현장 소장의 고민이 클 것이라 생각되었다.

10시에 강형철 코이카 소장과 전경무 신임 소장이 함께 방문할 예정이다.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는 신구 두 코이카 소장님이 방문한다는 얘기를 미리 했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거의 20분 전부터 기다렸다. 미리 나와 맞을 준비도 해야 하는데 안 보인다. 10시가 되자 교감, 교장, 류 전문가, 김현진 선생님, 이무현 선생님이 현관 앞에서 함께 기다렸다. 10시가 조금 지나 두 분이 도착했다.

강소장님이 근무 기간 중 가장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사업이 베코라기술고등학교 관련 프로젝트다. 이 멋진 완성품을 자랑스럽게 새 소장에게 인계하는 시간이다. 전경무 새 소장님은 180센티 이상의 훤칠한 키에 외국인 같은 미남형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들은 교장실로 갔다. 그런데 테툼어 통역이 없다. 마침 우리학교 한국어교사 김현진 선생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교장, 교감이 그 사이에 또 없어졌다. 7, 8분 지나자 들어왔다. 교장은 두 분에게 긴 수건을 목에 걸어 준다. 이것은 타이즈라고 해서 동티모르나 인도네시아에서 귀한 손님을 처음 만날 때나, 소중한 사람과 헤어질 때 목에 걸어주는 기념품이다. 화려한 색실로 짜고 환영, 기쁨, 아쉬움 등을 새기고, 때에 따라 상대방의 이름 등을 수놓아서 선물한다. 교장은 새 소장에게 한국인 기술교사 파견을 건의하고 지속적인 지원도 부탁한다.

함께 학교를 둘러보았다. 전임 강소장이 자세히 건축 내용을 설명한다. 천정이 깨지고 내려앉은 부분이 많은데 앞으로 더 내려 앉거나 비가 새지 않을까 걱정한다. 천정 일부는 석고 보드로 교체했지만 대부분은 합판형 보드를 붙인 상태다. 그런데 합판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깨지면서 내려앉고 있다. 부실 공사 부분이 많았는데, 그나마 재설계 시공으로 일부를 보완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어린 파파야 몇 그루 보이는 베코라 기술고 교사 전경.
어린 파파야 몇 그루 보이는 베코라 기술고 교사 전경.

일행이 떠나고 구내식당에서 1달러 30센트짜리 식사를 시켰다. 플라스틱 접시에 밥과 치킨 두 조각, 그 위에 짭조름한 소스를 조금 부어준다. 마실 물이 없어서 사무실로 와서 생수를 마셨다. 며칠 전에 두 종류의 생수를 구입했었다. 마시는 아쿠아 생수와 설거지나 차 끓일 때 쓰는 1 갤런 들이 대용량 생수다. 아쿠아 생수는 학교 앞 가게에서 20개들이 한 상자를 부탁했었고, 대용량 생수는 구내식당에서 구입했다. 이 갤런 생수는 한국의 사무실에서 흔히 보는 뒤집어 사용하는 큰 생수통이다. 이 곳에서는 갤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단수가 되고 정전이 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전기가 오지 않는다. 퇴근 시간이 되자 할 수 없이 책상 위에 올라가 높은 곳에 꽂힌 에어컨 코드를 뽑고 퇴근했다. 리모콘으로 켜고 끄는데, 켜있는 상태에서 정전이 되었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전기가 들어와서 밤새 에어컨이 작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유튜브를 다운로드해서 그런지 인터넷 모뎀이 바닥났다. 3주가 안되었는데 4만원 충전이 다 소모된 것이다. 급히 버스로 티모르 플라자로 갔다. 30달러 모뎀을 충전했다.

바로 이어진 리더스 슈퍼로 가서 사무실에서 사용할 물품들을 구입했다. 찻잔, 컵, 커피, 토마토, 통조림 등을 샀다. 조금 무거워서 낑낑대며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이미 만원이다. 허리를 굽히고 들어섰다. 뒤편에 겨우 틈을 내서 엉덩이를 붙여 본다. 후텁지근한 열기와 야릇한 냄새들에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나 내일 모레가 휴일이서 마음은 가볍다.

(2017년 8월 22일, 24일, 25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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