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가로등 불빛이
골다공증 걸린 뼛속 앙상한 초가집을 비춘다
구멍 숭숭 뚫린 나무 문짝 거슬린 지붕
비뚤어진 문패에 희미하게 남겨진
정생 (丁生 )이란 이름으로 못 박혀 살아온 세월
제주의 비바람 온몸으로 버틴 초가에 새겨진
못 하나 녹슬어 헐거워진 이름으로 삐걱거린다
못처럼 꼬장꼬장하게 살았을 정생
그 자리에 박힌 채 녹슬어왔다
적막이 안개처럼 흐르는 새벽
유모차에 달그락거리는 공병 (空甁 )을 다독이면서
앙상한 다리 휘청이는 그림자 질질 끌며 걷는다
이 새벽 무엇을 찾아가는 겐지
시간을 잊은 채 새벽을 건너는 초가집
녹슨 못 하나 삐걱거린다
고향집에서 저렇게 녹슬고 있을 어머니
(고순심, ‘녹슬어간다’, 전문)
천리, 만리 있다가도 언제라도 달려가기만 하면 반가이 맞아주는. 그런 곳을 우리는 ‘고향’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런 ‘고향’도 부모님이 계실 때의 이야기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똑 같은 고향인데도 전과는 뭔가가 다른 그렇게 다가오곤 하지요. ‘삐걱 삐걱’ 손만 닿아도 아픈 소리를 내는. 그래도 그 소리가 있어 너무나 좋은. 그래서 사람은 서른이 되도 칠십이 되도 부모 앞에서는 모두 어린 아이가 아닌가 합니다. 빙 빙 말아 빙떡이라 했던가요. 기름 냄새 코시롱ᄒᆞ게 번지는 섣달그믐,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그 밤, 그 소란스러움에 취해 맑은 무채 같은 웃음들을 웃으며 새해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이렇듯 아름다운 시간들은 또 어김도 없이 새벽을 건넜고. 지금은 모두 다 제 각기 흩어져 떠돌이 별 같은 우리들이지만 그러나 저 녹슨 못, 저 못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빛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 (시인 송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