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영의 속닥속닥 문학이야기(39)녹슬어간다(고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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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영의 속닥속닥 문학이야기(39)녹슬어간다(고순심)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2.0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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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어간다

이른 새벽 가로등 불빛이

골다공증 걸린 뼛속 앙상한 초가집을 비춘다

구멍 숭숭 뚫린 나무 문짝 거슬린 지붕

비뚤어진 문패에 희미하게 남겨진

정생 (丁生 )이란 이름으로 못 박혀 살아온 세월

제주의 비바람 온몸으로 버틴 초가에 새겨진

못 하나 녹슬어 헐거워진 이름으로 삐걱거린다

못처럼 꼬장꼬장하게 살았을 정생

그 자리에 박힌 채 녹슬어왔다

적막이 안개처럼 흐르는 새벽

유모차에 달그락거리는 공병 (空甁 )을 다독이면서

앙상한 다리 휘청이는 그림자 질질 끌며 걷는다

이 새벽 무엇을 찾아가는 겐지

시간을 잊은 채 새벽을 건너는 초가집

녹슨 못 하나 삐걱거린다

고향집에서 저렇게 녹슬고 있을 어머니

(고순심, ‘녹슬어간다’, 전문)

 

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천리, 만리 있다가도 언제라도 달려가기만 하면 반가이 맞아주는. 그런 곳을 우리는 ‘고향’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런 ‘고향’도 부모님이 계실 때의 이야기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똑 같은 고향인데도 전과는 뭔가가 다른 그렇게 다가오곤 하지요. ‘삐걱 삐걱’ 손만 닿아도 아픈 소리를 내는. 그래도 그 소리가 있어 너무나 좋은. 그래서 사람은 서른이 되도 칠십이 되도 부모 앞에서는 모두 어린 아이가 아닌가 합니다. 빙 빙 말아 빙떡이라 했던가요. 기름 냄새 코시롱ᄒᆞ게 번지는 섣달그믐,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그 밤, 그 소란스러움에 취해 맑은 무채 같은 웃음들을 웃으며 새해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이렇듯 아름다운 시간들은 또 어김도 없이 새벽을 건넜고. 지금은 모두 다 제 각기 흩어져 떠돌이 별 같은 우리들이지만 그러나 저 녹슨 못, 저 못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빛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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