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장 파는 골목
노인의 손끝에서 이름들이 피어난다
이름 밖 나뭇결이 깎여나는 목도장
움푹 팬 골목길 안도
제 몸 깎고 피어난다
캄캄한 음각 안에 웅크려 있는 고독
나 아닌 것들이 밀칼에 밀려날 때
촘촘한 먼지 속에서
울고 있는 내 이름
노인의 이마에서 전깃줄이 흔들리고
골목에 훅, 입김 불자 길들도 흩어진다
도장에 인주를 묻혀
붉은 해 찍는 저녁
(박성민, ‘목도장 파는 골목’, 전문)
꽃을 피우듯, 저 이름 하나하나를 피워내기 까지.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길들이 스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을까요. 깎여 나가는 고통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처, 나 아닌 것들에 나를 내맡기며 수도 없이 밀리고 또 밀려온. 옛 선인들은 저 이름 하나를 지키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까지도 했다는 데, 지금은 이런 흉내를 내는 사람조차도 볼 수가 없으니… 하여, 시인은 노래하고자 했나 봅니다. 작지만 강하고 소박하지만 분명한 제 목소리를 내보자고. 목도장 파는 저 노인처럼 아니다 싶은 모든 것들에 대해 사정없이 밀칼을 들이대자고.
이제 정말 새해, 새 봄입니다. 제 몸 깎고 피고 지는 저 골목 저 귀퉁이, 저 떠오르는 해가 오늘따라 인주처럼 붉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저만의 감정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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