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11)고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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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11)고기국수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3.0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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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고기국수

어제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두 자문관을 내 방으로 초대했다. 딱히 대접할 것은 없었으나 ‘고기국수’를 대접하면 어떨까 해서 준비했다. 고기국수는 원래 제주도의 향토 음식인데, 요즘은 일반화되어서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명품 식단이 되었다. 진한 돼지고기 육수에 삶은 국수를 넣고 돼지고기 수육을 몇 점 고명으로 올려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 가루를 뿌리면 맛이 더 깊어진다.

티모르 플라자에 있는 한국 슈퍼에서 사온 소면을 삶았다. 물론 이제는 면 삶는 법은 잘 안다. 일인분은 엄지와 검지로 5백원짜리 동전 크기 양을 잡으면 된다. 물이 끓으면 찬물을 부으면서 세 번 정도 반복하여 끓여주면 맛있고 쫄깃한 면이 된다. 냉동 돼지고기를 전자렌지에 10분 정도 돌려서, 해동하고 적당히 썰었다. 마늘, 양파, 감자를 썰어 넣고 진간장으로 간했다.

준비를 다 해 놓고 두 분을 불렀다. 박 선생님은 바로 왔지만, 최 선생님은 한참 후에 들어온다. 그런데 두 손에 무엇을 들고 온다. 비빔면과 계란 3개다. 내가 다 준비했다고 했는데 잘 못 들으셨나 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한 쪽 귀가 조금 멀다. 평소 보청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잘 듣지 못한 것이다. 앞으로는 가까이서 천천히 말해야겠다. 오랜만에 내방에서 셋이서 국수를 나누며 떠드니 몸도 마음도 많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구석방 경은지 선생님도 불러 보았으나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옆방 박 선생님이 말하길 아마 어제 친구 집에 가더니 아직 안 돌아온 것 같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국립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친구가 있다.

동티모르 교육부장관이 코이카 기술고등학교 도서관을 방문했다.
동티모르 교육부장관이 코이카 기술고등학교 도서관을 방문했다.

어제는 그제 남은 밥이 조금 많이 있어서 다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살아오면서 항상 느끼지만 과식으로 고생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어 보인다. 우리 인류도 아주 옛날에는 하루 한 끼, 나중에는 하루 두 끼, 지금은 세 끼를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일일 일식하는 사람, 일일 이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활 형편이 여의치 않은 이 곳에서는 하루에 두 끼만 먹는 사람과 학생들이 아주 많다. 식사도 알고 보면 습관이다. 앞으로는 가능한 소식하려고 애써야겠다. 시간도 비교적 여유로운데 관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틈나는 대로 인도네시아어, 테툼어도 공부하면서 시간 관리를 잘해야 하겠다.

노트 한 권, 볼펜 한 자루

어제는 오른쪽 위 잇몸이 너무 아파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왼쪽 위 어금니는 옛날부터 시원치 않았는데 지금도 계속 말썽을 부리고 있다. 알고 보면 내가 관리를 부실하게 해서 그러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는데 여기 와서는 치료 받을 곳도 없고 난감하다. 2주 전부터 조금씩 부어서 잇몸 치료에 좋다는 치약을 일부러 사다가 써 보아도 별 효과가 없다. 아침엔 물만 마시고 점심 때는 파파야의 부드러운 부분만 잘라서 먹었다.

전에 세네갈에 있을 때도 온도가 내려가면 잇몸이 아프곤 했다. 한 번은 보철했던 부분이 떨어져서 치과를 찾았었다. 한번 소제하고 한번 다시 붙였는데 20만원 정도 지불했다. 어쨌든 잘 다스리며 관리해 봐야겠다.

이 곳은 파파야가 아주 흔하고 유명하다. 그 크기가 아이 머리만하고 길이는 4, 50센티는 충분해 보인다. 퍼런 것을 벽에 일주일 정도 세워두면 노랗게 익는다. 너무 커서 1/3 정도씩 잘라서 먹는다. 나머지는 냉장고에 두면 된다. 지난 일요일 바닷가 과일시장에서 3달러 주고 샀다. 제일 큰 것을 구입했다. 파파야 열매는 쌉쌀한 단맛과 독특한 향기가 있다. 잘 익은 파파야를 먹어보면 산미는 전혀 없고 단감처럼 매끄러운 단맛이 난다. 반으로 자른 다음 껍질을 벗겨서 먹으면 좋다. 식감이 부드럽고 다양한 음식과 조화를 잘 이뤄 아침식사로 흔히 이용하며 샐러드, 주스, 파이 등을 만드는 데도 쓴다.

열매는 공 모양,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 긴 달걀 모양 등이고 녹색을 띤 노란색에서 붉은색을 띤 노란색으로 변한다. 자르면 과육이 노란색, 주황색, 오렌지색, 붉은색 등으로 다양하며 까만 씨가 많이 보인다. 파파야 뿌리는 부드럽고 전분을 함유한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때 남방의 섬에 고립된 일본 군인들이 파파야 열매를 먹은 뒤 뿌리까지 파내어 연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곳에는 집집마다 파파야 나무가 있고 엄청나게 많이 열린다. 우리 아파트에도 몇 그루 있는데, 열리는 족족 일꾼들이 따먹어서 우리는 참여가 안 된다.

아침에 조금 일찍 출발해서 성당에 들려 잠깐 기도를 드리고 학교로 갔다. 학교에는 교감선생님이 나와 있었다. 수돗물이 안 나온다고 한다. 두 개의 모터 펌프가 있는데 하나는 파손됐고, 하나는 힘이 너무 세서 물을 끌어 올리는 수도관이 감당하지 못해서 고장 났다고 한다. 설명이 이랬다저랬다 하니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겠다.

요즘 학교생활과 교육에 꼭 필요한 것이 수도와 전기 그리고 인터넷인데 어느 것도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지 못 하다. 오늘은 수업을 세심히 참관해 보기로 했다. IT 수업 두 곳, 포르투갈 수업 한 곳, 영어수업 한 곳을 참관했다. 포르투갈 수업을 제외하곤 제대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학생들은 교과서가 없다. 보통은 노트 한 권 볼펜 한 자루 갖고 등교한다. 이 곳에서는 학교에 교과서가 있고 학생은 교과서가 없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교과서를 임대해서 공부할 수 있지만, 빌려 가면 잊어버리고 또 변상해야 하니 대부분 그대로 학교 와서 듣고 쓰고 할 뿐이다. 아이들은 얌전하고 모두 교복을 착실히 입고 있으며 열심히 듣고 있다. 그러나 여러 교실들은 선생님이 없거나, 있어도 아이 교사 따로 활동하고 있다.

오후에는 우리학교에 새로 한국어 교사로 부임하는 조희영 선생님이 도착한다고 해서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 아주 얌전하고 참해 보인다. 이 곳에 봉사단원들이 도착하면 임시로 며칠간 라멜라우 호텔에 머문다. 그리고 두 달 가량 현지어 학원에서 테툼어를 익힌다. 그러면서 자신이 거주할 숙소를 물색하게 된다. 코이카 사무실이 호텔 구내에 있기 때문에 편리한 점이 많다. 나는 사무실에 가서 옥스퍼드 영어 사전, 소설 Me Before You를 빌렸다. 그리고 감기약, 위장약, 외상약 등을 조금 가져왔다. 읽을거리와 구급약품을 사무실에서 빌릴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저녁 먹고는 박자문관 방으로 갔다. 한 건물 안에 거주하니 적적할 때 문만 열고 나가면 만날 수 있어 너무 좋다. 반갑게 맞아준다. 오늘은 살아온 얘기를 많이 한다.

동티모르 코이카 현지사무실 건물.
동티모르 코이카 현지사무실 건물.

그는 소위 한국결핵연구원의 전설이다. 자신이 몸소 3번이나 결핵에 감염되면서 결핵 임상 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우리는 대개 결핵 예방 주사(TB)를 어려서 맞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예방주사를 맞아도 결핵균에 과도하게 노출되거나 면역력이 약해지면 감염된다고 한다.

이 곳에 올 때도 자신은 이 곳 근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정년퇴직 후 국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선택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곳에 결핵연구소를 설치 감리한 친구인 PM(Program Manager)이 꼭 지원해서 동티모르 결핵 연구와 검사의 기반을 쌓아 주도록 부탁해서 지원하게 되었다. 코이카 사무실도에서 면접과 신체검사도 꼭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영어시험이나 영어면접에서도 나는 영어 한 마디도 못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코이카에서는 3명이 필요한데, 한 사람만 지원했으니 전공 외의 소양들은 문제가 안 되었던 모양이다. 단기 복무인 6개월 계약으로 이곳에 파견되었다. 6개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려는데, 현지 소장이 계속 연장 근무를 간청하여 할 수 없이 다시 6개월 연장하여 근무 중이다.

결핵연구소에서는 주로 결핵 검진을 하는데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예산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한다. 그런데 코이카도 동티모르 정부도 돈을 주지 않고 업무를 지속하라고 하니 문제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공조 시설을 24시간 가동해야 하는데, 계속 가동하려면 3개월 마다 공조 벨트를 교환해야 한다. 공조 벨트 지원을 자주 요청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관심도 지원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검사를 하는 아주 짧은 시간만 가동하고 있다. 언제 체인벨트가 끊어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 년에 2천 달러만 있어도 가능한데 참으로 답답하다. 24시간 가동하지 않으면 시료가 변질되어 제대로 된 검사도 불가능한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국립 결핵검사소를 코이카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지어 주었지만, 그 운영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 운영 책임자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코이카는 건축과 시설을 마련해서 해당 국가에 기증하는 것이고, 그 이후의 관리 운영은 해당 국가에서 해야 하는 것이 바른 설정이다. 그러나 후진국에서는 그 운영 예산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박자문관은 사무실의 현지 직원들도 교육하고 업무를 부여하고 감독 관리를 해야 하는데, 또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여러 가지고 고통에 직면해 있다.

파파야 나무.
파파야 나무.

그는 일요일부터 오에쿠시 출장을 가야하는데 사무실 직원에게 VISA 발급을 위해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으나, 내일 가자고 하면서 퇴근해 버렸다. 직원들도 아주 비협조적이다. 오에쿠시는 인도네시아 영토인 서티모르 안에 있는 동티모르이기 때문에 육로로 갈 경우 인도네시아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VISA가 필요하다. 어려움이 있으면 내가 함께 가서 VISA 발급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아리던 잇몸이 조금씩 나아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본디아(안녕하세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나이 들면 잠이 없다고 하는데 요즘 그 것이 진실임을 체감하고 있다. 일어나면 30분 가까이 아침 기도하고, 간단한 체조와 팔굽혀 펴기를 백번 정도 한다. 세네갈에 살 때부터 해오던 오래된 습관이다. 일찍 일어났으니 아침 미사를 보고 등교하기로 마음먹었다.

등굣길에 있는 성당은 걸어서 25분 정도 걸린다. 미사 시작 직전에 도착했다. 테툼어 미사 전레 기도문이 파워 포인트로 성당 앞면 전체에 비친다. 이 곳에서는 누구도 손에 무엇을 들고 미사 참례를 하지 않는다. 아니 매일미사책이나 성경, 성가책이 없다. 성직자용은 아마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매달 매일미사책이 발간되는데 그날그날의 독서, 성경, 미사 통상문이 실려 있어 이 책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달마다 한권씩 구입한다. 값도 아주 싸서 천원이다. 이 곳에는 제대로 된 인쇄소도 두 곳에 불과하니 어떤 욕심을 낼 여건은 아닌 듯하다.

참석한 신자 수는 백 명은 넘어 보인다. 특히 학생들이 많이 참석했다. 미사 후 학교로 가는데 앞서가던 아이 달린 어머니가 인사를 한다. 이어서 아이가 “안녕하세요?”하고 우리말로 인사한다. 이 곳 사람들은 한국어 인사는 많이 아는 것 같다. 아마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조금 더 가니 한 할머니가 “본디아(안녕하세요)”하면서 인사한다. 나도 “본디아!”하고 답한다. 아마 이 성당 신자인가 보다. 내가 요즘 이 성당에 자주 들리니 아마 친근감이 들었을 것이다.

학교에는 7시 40분경에 도착했다. 교정엔 학생 네댓 명이 보인다. 조금 있으니 교장선생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온다. 나는 사무실에서 테툼어 공부를 하면서 카푸치노 커피를 마신다. 커피향이 가득 방안에 퍼진다. 아침을 건너뛰고 등교했는데 그래도 커피 한 잔으로 속이 따뜻해졌다.

오늘은 3주 동안이나 부탁하고 벼르던 수도 관련 전기 기술자가 오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류광하 전문가도 기술자도 연락이 없다. 전화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다. 9시 경에 전화가 왔다. 언제 기술자가 올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11시가 되어 다시 전화하니 오후에 온다고 한다. 시간은 모른다고 한다. 이곳에 살다보면 한국 사람도 티모르사람처럼 살게 되나 보다. 구내식당에서 1달러 50센트 점심을 시켜 먹었다. 교감 드와르테를 찾아 봐도 보이지 않는다. 겨우 찾아서 오후에 전기 기술자가 온다는 얘기를 전하고, 나는 코이카 사무실로 갔다. 집에 우선 들렸다 사무실로 가야겠다.

파파야 과일.

오는 길에 중국 상점 XI HONG에 들렸다. 며칠 전에 구입한 멀티탭이 고장나서 교환하려고 들렸다. 교환을 요청하자 젊은 남자 주인이 오래 써서 교환이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중국어로 2, 3번 밖에 쓰지 않았다고 했으나 막무가내다. 기분이 상했지만 한푼도 손해 보려하지 않는 중국인의 습성을 잘 알기에 교환을 포기했다. 고장난 멀티탭은 가게에 그냥 선물로 기증했다. 다음부터는 좀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곳, 교환이 가능한 곳에서 구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집까지 걸어서 왔더니 땀이 온몸에 흥건했다. 파파야를 조금 먹고 물을 마셨다. 10번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신승우 대리로부터 생활비와 생활용품 상자를 받았다.

생활용품 상자는 한국 본부에서 모든 신입 단원에게 현지 도착 후에 보내준다. 상자에는 모기장, 전기담요, 경보기, 전등, 라면, 과자,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등 안전 도구와 생필품이 가득 담겨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받은 것은 한국에서 내게 보낸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 컴퓨터 교사로 지원했던 신입단원이 이 곳에 와 보고는 도저히 근무하지 못하겠다며 중도 귀국을 하게 되서 내가 대신 가져다 쓰게 되었다. 내 것은 나중에 도착하면 사무실에서 교환 처리하면 될 것이다.

저녁은 어제 먹던 소고기 통조림 찌개와 식은 밥으로 해결했다. 샤워하고 약간 매운 맛이 감도는 파파야를 먹으니 행복감을 느꼈다. 저녁 때 교감선생님께 전화해서 수돗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문의했다. 배전판에 자동으로 되어 있는 것을 수동으로 바꿨더니 작동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수동으로 하면 물을 끌어 올릴 때 마다 사람이 작동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다. 교감이 더욱 바빠질 것 같다. 어쨌든 수도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행이다. 잠이 잘 올 것 같다.

(2017년 9월 2일, 9월 5일, 9월 8일 금요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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