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내가 사는 곳은 오사카 이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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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내가 사는 곳은 오사카 이쿠노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4.0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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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5인이상 자제 요청에도 일본인 발길 이어져 식당밖 테이블도 꽉차
수학여행 학생도 이문화 체험 위해 찾고, 한국 식료품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
꽉막힌 항공·선편때문 한국 방문욕구 충족 위해 일본속의 한국, 이쿠노를 찾아
재일제주인 김길호씨.
재일제주인 김길호씨.

◆코로나바이러스 확대되면서 코리아타운만은 별천지, 한일간 교류 악화에도 민간인 교류는 상승일로

이쿠노(生野) 코리아타운에 요즘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이쿠노 코리아타운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작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확대되면서 더욱 불어났다. 다른 상점가들은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서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했는데 코리아타운만은 별천지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거리두기나 5인 이상의 식사는 자제해 달라는 행정당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그들의 식사 풍경은 식당 밖의 노점 테이블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극도로 악화된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일 양국의 국가 간의 정치적 국제(國際)교류는 수준 이하로 추락하고 있지만, 한일의 민간인으로서의 민제(民際)교류는 그와는 정반대로 상승일로에 있다. 정치보다 문화가 앞서 있다.

1993년 일본속의 제주, 죠센이치바에 단청아치와 태극마크 가로등이 조성되며 일본인들이 많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1993년 일본속의 제주, 죠센이치바에 단청아치와 태극마크 가로등이 조성되며 일본인들이 많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코리아타운은 '셔터의 길'이라고 불리웠다.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들어서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나니까 셔터를 내려야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 당시에는 코리아타운이라는 명칭조차 없었다. 재일동포나 지역 주민들이 속칭으로 사용하는 '죠센이치바'(朝鮮市場)'로 불리웠고, 재일동포의 성지라는 명목만 겨우 유지할 뿐이었다.

지금은 고인이지만 이곳에서 도쿠야마(德山)상점을 경영하던 제주 신촌 출신, 홍여표씨는 상점가의 위기감을 느끼고 동북지방에 있는 야마가다현(山形縣) 모가미마치(最上町)를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필자가 11년 전에 취재 갔을 때에 말했었다. 죠센이치바는 행정상의 정식 명칭으로는 미유키도오리(御幸通)상점가이다. 이 상점가는 히가시(東), 쥬오우(中央), 니시(西)로 나눠졌는데 홍여표 씨는 쥬우오상점가 회장이었다.

모가미마치에는 충청도여성들이 이곳 일본 남성들과 결혼하여 살면서 '무라오코시(村おこし:일본판 새마을운동)를 위해 김치를 만들어 판매했는데 그것이 크게 성공하여 화제를 모아서 그 비결을 알기 위해 방문했었다고 했다. 오사카시에 자리 잡은 이쿠노 죠센이치바 상점 주인들이 상점가의 활성화를 위해 시골까지 방문했다는 사실에 필자는 놀랐었다.

죠센이치바는 그후, 1993년 한국식 단청아취와 태극마크 가로등이 생기고 손님들 중에 일본인들도 오기 시작했다. 일본 수학여행 학생들도 이문화 체험을 위해 많이 찾았는데, 한류붐으로 인한 한국식료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였다고 했다. 또 상점가의 활성화를 위해서 상점 주인들과 청년부, 부인부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우선 상점가 명칭부터 <죠센이치바> <코리아로드> <코리아타운>을 놓고 고심할 때였다. 일본 미디어들이 쓰루하시(鶴橋)역 주변까지 포함해서 <코리아타운>으로 보도하면서 명칭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었다는 홍 회장의 미소를 지금도 필자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코리아타운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서 각광을 받게 되었지만 필자만이 아니고 상점 주인들도 죠센이치바라는 명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우리의 오랜 얼이 그 속에는 진하게 묻어 있기 때문이다.

◆ 미유키도오리 130여 가게중 70여개가 재일제주인의 가게

미유키도오리 상점가는 현재 약 130여개의 가게가 있는데 거의가 재일동포 가게여서 조센이치바로 불리웠다. 그 중에서 약 70여 가게가 재일제주인의 가게이다. 지금은 1세들보다 그 뒤를 이은 2세로부터 3,4세까지 대물림하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상점가만이 아니고 오사카 특히 이쿠노는 압도적으로 제일제주인이 많다.

2021년 2월 1일 현재 이쿠노구 총 인구는 12만9252명인데, 2018년 12월 말 현재 이쿠노구에사는 외국인은 한국·조선이 2만2161명, 중국이 2408명, 베트남이 1906명 순이다. 한국·조선 2만2161명 중에 60%에서 70%가 재일제주인이다.

몇 년 전까지는 한국·조선인 경우 한반도의 지역별 통계도 발표했었지만 지금은 공식 발표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당시 자료를 참고할 수 밖에 없다.

일본 전국적으로는 2018년 12월 말 현재, 한국·조선이 47만9193명, 오사카부는 15만890명(총인구 881만1845명), 오사카시는 13만5865명(총인구 275만1862명)이다. 전국적으로 인구 비율에 비해 가장 많은 외국인 비율이 높은 곳이 재일제주인이 가장 많이 사는 이쿠노구이다.

이쿠노 죠센이치바 상점가.
이쿠노 죠센이치바 상점가.

◆ 재일제주인, 외국인 거주 비율이 가장 높은 이쿠노에서 터주노릇하며 생활의 터전을 가꿔

한반도의 여러 통계학상 1%에 지나지 않은 제주도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외국인 거주 지역의 터주노릇은 물론, 이곳이 재일동포의 성지로 불리워지고 있다. 일제시대에 제주와 오사카의 연락선 기미가요마루호(군대환:君代丸)와 4·3사건으로 제주인으로 밀집된 생활의 터전의 역사성을 새삼 일깨워주기도 한다.

여기에서 필자가 '제주 출신'이라는 단어보다 '재일제주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주 출신이라면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으로 착각하기 쉽다. 아니, 사실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2세 3세 자녀들도 이 표현이라면 모두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이 되고 만다.

이것을 우리는 명백히 구분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부모, 특히 부친 본적이 제주도이면 무조건 그 자녀들도 태어난 지역 관계없이 출신지를 제주도로 명기해버린다. 이럴 때에는 분명하게 본적지는 제주도이지만 태어난 출생지 아니면 출신지는 그 지역을 말해야 한다. 이것은 고향의 개념과도 연관성이 있다. 고향은 부모, 특히 부친의 본적지가 아니다.

고향이란 유년시절 몇 년간 지냈던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가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첫 기억이 새겨진 곳이다. 즉, 유년시절의 지울 수 없는 첫 화석이다. 그리고 '재일제주인'이라는 관용어는 시민권을 얻은 단어이지만 지금까지 '재일경상인'이나 '재일전라인' '재일충청인'이라는 관용어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만큼 제주도와 일본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러한 흐름 속에 지난해에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사랑의 불시착>이나 <이태원클라쓰>는 코리아타운의 재도약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 이곳을 찾는 한류 물결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도 코로나바이러스로 꽉 막힌 항공편과 선편에 일본인들은 일본 속의 한국을 찾아 코리아타운으로 몰려들었다.

한국·조선인 학생수가 6할이던 시립초등하교 미유키모리 소학교가 생도수 미달로 폐교되어 인근의 나카가와소학교와 통합하고 교명을 오이케소학교로 개명했다. 사진은 3월 28일자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미유키모리소학교 폐교 기사.
한국·조선인 학생수가 6할이던 시립초등하교 미유키모리 소학교가 생도수 미달로 폐교되어 인근의 나카가와소학교와 통합하고 교명을 오이케소학교로 개명했다. 사진은 3월 28일자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미유키모리소학교 폐교 기사.

◆학생수 감소로 한국·조선학생이 가장 많은 미유키모리소학교 지난 3월 폐교 나카가와 소학교와 통합, 오이케소학교로 교명도 바꿔

그러나 저출산의 영향으로 이쿠노 인구 분포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 초등학교는 생도수 감소로 초등학교의 통폐합의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이쿠노에 있는 시립초등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미유키모리(御幸森)소학교는 일본 귀화 생도 수까지 합하면 약 6할이 한국·조선 생도로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교였다.

현재는 전교생이 75명밖에 안돼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미유키모리소학교가, 지난 3월 말로 폐교를 하고 인근에 있는 나카가와(中川)소학교와 통합을 하고, 오이케(小池)소학교로 학교명을 바꾸고 4월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요미우리신문 3월 28일자에 이 기사를 쓰면서 미유키모리소학교 민족학급의 그 동안의 활동과 마지막 공연을 소개했다. <사진 참고>

코로나바이러스는 3월31일 현재 오사카부 확진자가 616명(오사카시 263명)으로 지금까지 가장 많았던 토쿄도(475명)를 넘어섰다. 정부가 발표했던 <긴급사태선언>을 해제했었지만 확진자의 급증으로 이에 준하는 <만연방지등중점조치>를 4월 5일부터 5월 5일까지 실시한다.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멀어지고 요원하지만, 그 대신 이쿠노 코리아타운을 찾는 일본인들은 더욱 불어날 것이다. 이쿠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로서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착잡한 심정이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많을수록 제주도민의 걱정이 늘어나는 것처럼, 이율배반속의 동상동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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