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13)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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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13) 추석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4.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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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추석이다. 한국에선 10월 2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서 유래 없는 열흘간의 황금연휴를 보내고 있다. 나는 추석 전날까지 휴가여서 어제 귀국했다. 그리고 오늘은 동티모르에서 보내는 첫 추석이다. 그러나 이곳은 휴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당에 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우선 세면을 했다. 미사에 참례하려면 20분 정도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여행 여독 때문인지 조금 늦잠을 잤다. 조금 늦더라도 성당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걸어가는데 족히 20분은 걸리기 때문이다. 육중한 철문을 밀고 나서니 마침 미크롤렛이 지나간다. 25센트 동전을 찾으며 급히 차에 올랐다. 차안은 한가하다. 이른 아침이기 때문이다. 마침 1달러짜리 지폐가 있어서 성당 앞에서 내렸다. 이 곳에서 하차하는 방법은 동전으로 철제 기둥이나 벽 등 아무데나 툭툭 두들기면 된다. 미사는 시작 전이었다. 지금까지 추석 추모 미사에 빠진 기억이 없는데 다행히 이번 추석 때도 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평일인데도 성당이 가득하다. 교복 입은 어린이와 학생들이 아주 많다. 참으로 신앙심이 깊고 부지런한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과 학생들과 함께.
동티모르 베코라 기술고 건축과 학생들과 함께.

미사가 끝나고 학교까지 걸어가는데 몹시 덥다. 벌써 땀이 등줄기를 따라 흐른다. 학교에 도착해 보니 역시 교무실은 잠겨 있다. 몇몇 학생들이 다가와 “디악 깔라에!” 하면서 인사한다. 나도 “디악, 디악!” 답한다. 3주가 지났으니 벌써 조금 어색한 느낌이다.

사무실 문을 따고 들어가니 역시 3주전 나갔을 때 그대로이다. 컴퓨터는 작동이 되지만 프린터는 출력이 안 된다. 다시 인쇄 명령을 내라고 한참 기다리니 프린터도 작동된다. 오래 쓰지 않아서 잉크가 굳었었나 보다. 프린터는 쓰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정도는 출력을 해야 잉크가 굳지 않는다.

교장, 교감에게 인사하고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학교 사정을 물어보니 별일은 없었다고 한다. 수도 전기가 정상적으로 공급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새로 설치한 비상 발전기 가동에 대하여 물어 보니, 한 번도 작동해 보지 않아서 전혀 모르겠고 또 발전실 문이 잠겨있어서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한다. 시공했던 전기 기술자의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오후에는 사무용품, 컴퓨터 부품, 서적 등을 구입하려고 나섰다. 또 사무실에 인터넷이 안 되니, 사무실용 모뎀을 다시 구입해야 한다. 물론 집에서 쓰는 모뎀 충전도 해야 한다. 현지 휴대폰도 고장 났으니 재 구입을 하던지 알아봐야겠다.

우선 전자 상가로 갔다. 컴퓨터용 스피커, 모뎀, 테툼어와 인도네시아어 사전 등을 구입했다. 다시 티모르 플라자로 가서 사무실 모뎀도 개통하고 휴대폰 교환을 부탁했으나, 교환은 안 되고 배터리는 교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배터리를 바꾸자 정상적으로 통화가 되었다. 오늘 300달러를 썼다. 집에 오니 6시가 다 되었다.

오늘은 추석이 아닌가. 급히 최자문관, 박자문관을 불러 함께 15분 거리의 중국집으로 갔다. 성당에서 돌아오면서 보아두었던 식당이다. 오늘은 내가 주최하기고 하고 각자 원하는 음식들을 주문하도록 말씀드렸다. 볶음밥, 야채조림, 치킨 등을 주문했다. 최선생님도 추가로 새우 탕 등 두 가지 요리를 시켜서 멋있는 저녁을 먹었다. 처음으로 셋이서 한 외식이었다.

최선생님은 눈 수술을 위해서 출국한다고 한다. 백내장인 것 같다. 처음에 발리를 경유하는 비행기표를 구입했었다. 그런데 최근 발리 화산이 계속 폭발하고 있어서 사무실에서 발리 경유 모든 비행편 탑승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싱가포르 경유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추가 비용이 200만원 정도 더 소요되다면서 몹시 걱정한다. 눈 수술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곳도 병원이 몇 군데 있으나, 우리나라 시골 병원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해외 봉사자들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참으로 난감하다. 싱가포르로 가거나 귀국해서 치료받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 늙은이는 모두 많은 사연을 담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있다. 서로 고충을 나누면서 지혜롭게 살아가자고 다짐해 본다. 세네갈에 있을 때는 추석에 인근 자문관이나 단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직접 요리하여 대접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바로 귀국하다 보니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또 오늘은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비를 맞아본 날이다. 우기에는 이곳에도 비가 많이 내리지만 나는 건기에 왔기 때문에 그 사이에 비 구경을 못했었다. 장보러 나가면서 처음으로 우산을 폈다. 큰 빗줄기를 맞으면서 20분 정도 걸었다. 정말 반가웠다. 비는 서늘한 날씨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첫 눈이 내렸다고 보도하는데 이 곳에는 첫 비가 내렸다. 반가움에 좀 걷다보니 바지는 여기저기 흙탕물이 튕겨서 지저분해 졌다. 상의도 얼룩이 심하다. 살펴보니 오랜만에 비가 내리면서 공기 중의 먼지를 가득 품은 빗방울이 우산에 떨어지고, 우산의 오염된 낙수가 옷으로 흘러내려 많은 검은 얼룩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먼지가 심하더라도 빗물이 흙물이 되어 내리지는 않는다. 다음에는 우산 속에 꽁꽁 숨어 다녀야겠다. 오늘은 바빴지만 그래도 기쁜 날이었다.

건축과 학생들이 교내에 건축물을 짓고 있다.
건축과 학생들이 교내에 건축물을 짓고 있다.

◆ WIFI와 카카오톡

일찍 학교에 갔다. 7시 20분이다. 모뎀을 컴퓨터에 끼워서 작동해 보았다. 실행이 안 된다. 여기저기 다른 컴퓨터 파일을 실행해 보니 드디어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아무래도 나는 프로그램 시스템 운영에 서툰 것 같다. 앞으로 잘 구동되었으면 좋겠다. 카톡 PC 버전을 실행해 보니 핸드폰으로 인증 번호를 보냈다고 하고 30분 이내로 인증번호를 입력하라고 한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와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그냥 집으로 갔다.

마침 코이카의 새 코디네이터 강동혁 선생님이 바로 만디리 은행으로 오라고 해서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여권, 통장 등을 갖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우리나라의 서울대학에 해당되는 UNTL 대학 근처에서 내렸다. 알려준 대로 10여분 걸으니 눈에 보인다. 동티모르는 자체 은행이 없기 때문에 다국적 은행들이 들어서 있고, 그 중에서 가장 큰 은행이 인도네시아 만디리 은행이다. 이미 박찬홍 자문관이 와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현지인들은 창구에서 많이 기다려야 하지만 우리는 VIP방으로 안내되어 편히 신속히 일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국으로 4천 달러를 송금하려고 한다. 은행원은 천 달러는 바로 송금이 되지만, 그 이상은 계좌이체만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통장에 입금시키고 다시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해서 절차를 밟다보니 시간이 조금 많이 걸렸다. 전에 세네갈에 근무할 때는 배윤정 코디가 생활비중 송금 금액을 얘기하면 내가 은행에 가지 않더라도 필요한 절차를 다 밟아주었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은행일도 내가 직접 찾아와서 처리해야 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갔다. 1시경이다. 그런데 이번엔 WIFI가 터지지 않는다. WIFI가 터지지 않으니 핸드폰으로 인증번호를 읽을 수 없다. 이무현 선생님이 방에 들렸는데, 도서관에는 WIFI가 터진다고 한다. 급히 도서관으로 갔다. 인증번호를 받아 입력했다. 이제 PC로도 카카오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방에도 WIFI가 제공되면 좋겠다. 교장, 교감에게 부탁했으나 증폭기 설치 등 예산이 드는 문제여서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컴퓨터로 7080 가요를 들으면서 몸을 뉘어본다. 김연숙의 ‘갈대숲에 우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다. 나는 서정적이며 슬픔이 베인 노래를 좋아한다. 김연숙 가수와는 약간의 인연이 있다. 지난해 청주에서 주민자치위원회 교류행사가 있었다. 나는 청주 행사 중에 그녀의 노래를 몇 곡 들었고 공연 후에는 함께 사진도 찍었었다. 그녀는 자기는 좋은 곡들을 많이 불렀는데 사람들은 ‘갈대숲에 우는 소리’만 기억한다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카톡을 켜보니 건너 건너 방 경은지 선생님이 내게 카톡 통화를 보낸 부재중에 찍혀 있었다. 카톡으로 통화해 보았으나 통화가 안 된다. 저녁을 먹고 선생님 숙소로 가보았다. 미소가 특히 예쁜 경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그녀의 방에서 차를 마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값이 비싸다고 한다. TV, 소파, 침실, 거실 등이 있는데 내가 거주하는 곳보다 훨씬 넓고 좋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이곳 봉사단원들은 일반단원은 월 700달러, 시니어 단원은 1,000달러 정도를 주거비로 지원받는다. 이 비용에는 청소, 세탁, 설거지, 다림질 등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지만 많은 단원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처리한다. 반면에 자문단은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절약이 몸에 베인 나이든 자문관들은 수수하게 생활하고 있다.

경선생님이 전화한 이유는 외할아버지가 위독한 상태인데 어떻게 대비하고 있으면 되는지 나의 경험을 전해 듣고 싶어서였다. 여권, 현금 등 꼭 필요한 것들은 가방에 미리 챙겨둬야 실수하지 않고 떠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 경우의 비행기표 구입 등은 본인이 해야 되고, 정산은 추후에 하게 되는데 그 정산 방법과 제출 서류 등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친구 여섯 명과 함께 휴가를 얻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여행을 포기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의 요즘 생활,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고 조언을 곁들였다.

이 곳의 방 배치 구조를 보면 현관에서 들어서는 왼쪽 첫 째가 내방이다. 바로 뒤에 최자문관이 살고, 그 뒤에 빈방이 있다. 가운데 복도가 있고 내 방 건너편도 빈방이다. 가운데는 박자문관이 살고 맨 끝이 경은지 선생님 방이다. 나는 방을 나서다가 바로 옆에 있는 박자문관 방으로 갔다. 또 마침 최선생님도 나오고 있어서 함께 박자문관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박선생님 방에서 셋이 모였다. 가정 이야기, 사무실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니 새벽 1시가 되었다. 나는 방에서 오징어포를, 박선생님은 맥주를, 최선생님은 찹쌀 전병을 꺼내서 함께 들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고민이 많고, 세상사에 대한 요구도 많다. 오늘은 일도 많고 말도 많았던 조금은 피곤한 하루였다.

기계과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기계과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 주말 모임

아침에 미사를 다녀오다 거리에서 쇠고기 간을 샀다. 1.2kg 정도인데 6달러다. 씻어서 세 토막으로 나누어 냉동시켜 두었다. 점심은 시니어 단원들과 함께 영양보충을 하기로 했다. 김대섭, 최충호, 박형규, 양주윤과 사모님, 이동현 대사관 인턴, 여행사 사장, 이무현 등 9명이 참여했다.

김대섭 선생님댁으로 갔다. 김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시니어 단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친다. 최자문관 차를 이용했다. 김선생님은 어제부터 식재료 작업을 하고 새벽부터 장을 보고, 식기를 가져오고, 집 정원에서 끓이고 하는 등 수고가 많아 보였다. 우리는 가서 먹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보니 미안함이 컸다. 대문을 들어서니 밖에서 박형규선생님이 큰 솥을 앉히고 땡볕 밑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김선생님 댁은 큰 철문이 있는 대저택이다. 집 앞에는 넓은 정원이 있고 경계 담장에는 파파야 등 열대 수목이 무성하다. 집은 2층집인데 혼자 쓰고 있다. 이미 들은 적이 있지만 이 곳에서는 호화주택에 속해 보였다. 이 집은 동티모를 고위 관료가 살다가 갑자기 해외 근무를 하게 되어 김선생님이 이사 오게 되었다.

월세가 1,000달러다. 주인은 뉴질랜드에서 근무하게 되어 임차하게 되었다고 한다. 방이 4개, 에어컨이 5개, 화장실 3 개다. 큰 대문에 마치 성벽 같은 울타리가 있고, 망고, 파파야 등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양주윤 사모님은 제주도에서 잠시 왔는데 제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제주도 땅값, 올레 길, 신 공항, 한라산 환경 보호 등이다. 보신에 좋은 음식과 파파야를 마음껏 즐겼다. 우리를 태워온 최자문관은 술을 많이 들었는지 잠이 들어 버렸다. 우리는 걸어서 대성당 앞까지 가서 4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에 네 분이 라렐라우 산으로 등반한다고 한다. 몹시 가고 싶지만, 나는 주일 미사 참례가 있어서 갈 수 없다. 오랜만에 많은 분들을 만나서 얘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술도 함께 들이켰더니 기쁨이 충만한 느낌이다.

                                                                     (2017년 10월 4일, 10월 6일,10월 7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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