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48)아버지의 등을 밀며(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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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48)아버지의 등을 밀며(손택수)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4.1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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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을 밀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 속에 준비해 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 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 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 ‘아버지의 등을 밀며’, 전문)

 

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소원’의 사전적 의미는 ‘바라고 원함’이지요. 남들처럼 부자간에 다정히 목욕탕에 가 서로의 등을 자연스레 밀어보고 싶었던 아들. 그러나 그 소원은 별나라 같은 이야기일 뿐. 불평하다 원망하다 심지어는 비난까지.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한 날 쓰러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아버지의 기막힌 진실.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그 길 끝’ 수증기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를 훔치며 마침내 이루어 낸 아들의 저 소원이 이 세상 어떤 위대한 소원보다 더 크게 느껴지네요. 꽃 진 자리에 녹음이 하루하루 푸르른 요즈음입니다. 저 녹음처럼 우리들 곁에서 언제나 푸르른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시여! 감히 말씀드리오니, ‘부끄럽다니요 부끄러움은 결코 아버지의 몫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부끄러움은 온전히 저희들의 몫입니다.’

여느 해보다 더 짧게 온 봄이 가고 있네요. 이 짧은 봄을 그나마 오래도록 붙들어 매게 하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아버지의 저 등.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저 등을 다정스레 밀어드릴 시간이 정말 우리에게 많이 남지 않았네요.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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