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 이야기](54)오조리의 노래(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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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 이야기](54)오조리의 노래(강중훈)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5.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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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리의 노래

내 고향 오조리 봄은

바당애기 혼자

집을 지킨다

얼마나 외로우면

소리껍질에 뿔이 돋는가

그 뿔에

송송

젖부른 어미의 숨비질이 뜨는가

왜 바당애기는

“아버지”란 소리 한 번 못 해봤는지

말하지 말라

말하지 말라

반평생 호-이 호-이

숨비질 소리만 질긴 뜻을

말하지 말라

제주도의 사월바람은

거슬러 날라오는 소리개의

발톱

돌담 너머

수평선 푯대 끝

그 이름은 아직도 숨을 죽인다

내 고향 오조리는

소라 껍질 같은

가슴이 빈 사람들만

답답한 봄을 맞는다

         (강중훈, ‘오조리의 노래’, 전문)

 

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보내기 싫은 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이와는 반대로 다가오는 봄을 한 번도 가슴 따뜻이 맞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지 말라 말하지 말라 돌담 너머 수평선 푯대 끝 아직도 산채로 목숨을 부지하고 서 있는 것만 같은. 하여 둥 둥 둥 둥 둥 둥 한평생 젖부른 어미의 숨비소리로나 밖에 뜰 수가 없는.

슬픔을 슬픔으로만 이야기 한다면 그게 어찌 詩랴. 다 썩어 문드러진다 해도 지켜내야만 하고 또한 지킬 수밖에 없는, 처절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슬하기도 한, 이 도타운 한 소절 저 시인의 노래가 5월 이 오도 가도 못하는 우리 모두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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