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8) '제주문학' 2021(86집),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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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8) '제주문학' 2021(86집), 봄호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6.07 10: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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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김길호 작가.
재일 김길호 작가.

'제주문인협회'(회장 박재형) 발행 '제주문학' 봄호가 지난주에 제주에서 발송한지 한달만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제주에서 보내오는 보통 우편물은 약 한 달, 전자우편은 약 일주일로 정착되었다. 걸어서 와도 한 달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인데 제주가 아득히 멀어져 버렸다.

'제주문학' 봄호에는 시 50명의 100편, 시조 11명의 11편, 소설 2명의 2편, 동시 3명의 6편, 동화 3명의 3편, 평론 3명의 3편이 수록되었었다. 수필과 소설, 평론은 분량이 많아서 게재할 수 없으니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읽은 시 8편을 소개한다.

강방영 시인의 '싸락눈 내리던 날'이다.

싸락눈내리던 날

몰려온 회색 구름에 가려

아련히 산자락으로 갈앉는 마을

싸락눈 쏟으며 부는 바람이

검은 아스팔트 표면에 흰 붓질을 하고

구름인 듯 안개인 듯 길 위에

또는 파도인 듯 달리며 미끄러지며

무엇인가 그려지는데

연달아 일어서서

날아가 버리는 하얀 싸락눈들

빠르게 지워지고 마는 상형문자들

해독하기 전에 흩어져

따라갈 수 없는 속도

사라지고 마는 문장들

수수께끼만 남은

눈 내리는 회색 풍경

빙빙 돌며 가던 길

다시 돌아서 오다

싸락눈은 언제나 갈피 못 잡는 바람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를 대동하고 흩뿌린다.

황량한 겨울 날씨에 더욱 황량함을 가한다. 식사 후, 설거지 않고 식기를 싱크대에 잔뜩 쌓아놓고 TV 보는 마음처럼 심산하다. 상형문자는커녕 싸락눈 존재마저 어느 사이엔가

자취를 감추고 만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해서 꽃샘추위가 엄습한다. 그처럼 아늑하고 포근히 내리는 함박눈의 겨울 풍취를 시샘해서, 싸락눈은 을씨년스럽게 불청객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다.

다음은 강정애 시인의 화판이다.

화판

살아 감이란

흐르는

물에

수를

놓는 것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편지 서두에 반드시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서...'라는 말을 수학적인 공식처럼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흐르는 인생의 시간 속에 여러 갈래의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화판에는 펼쳐진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퀼트가 있는가 하면 손쉽게 수 놓을 수 있는 꽃병 받침대도 있을 것이다. 제각기 걸어온 삶의 궤적이 화판에 모자이크처럼 인연을 맺고 있다. 짧은 시 속에 인생이 한 폭의 그림처럼 응축되어 담겨져 있다.

다음은 곽은진 시인의 '바람'이다.

바람

그냥 왔다가

그냥 가더라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무심하게

그리 머물다

흔적없이 가더라

우리도

그리 왔다가

그리 가겠지

바람은 누구도 본 사람이 없다. 바람이 분다는 것과 바람 소리는, 바람이 지나는 곳에 사물체가 있어서 부딪혀서 그 사물체가 흔들리는 것이고 그때 나는 마찰음이다. 그로 인해 바람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이다. 태풍이 몰아칠 때의 태풍의 눈도 스스로의 모습이 아니고 구름이 빚어낸 형태이다. 그 후유증들이 바람의 존재를 일깨운다. 인생은 어떠한가. 인생 역시 흘러가는 과정에서 만남과 이별의 되풀이 속에 그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김정자 시인의 '선명해지는 외로움'이다.

선명해지는 외로움

-큰 올케 떠나시고-

천리만리

하늘 길로

바람 가고

구름도 흘러가고

섣달 그믐 깊은 밤

병고에 시달리던 큰 올케 따라갔지

바람 오고 다시 구름 날고

큰 올케는 하늘 길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저무는 창가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기다리는

아흔 두 살의 우리 오라버니

간간이 어깨가 들썩이는 듯

나이 90대이면 일반적으로 할아버지, 아버지로 불리우는 대명사 속에서 쓰여지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라버니 시여서 신선했다. 또 '선명해지는 외로움'이라는 시, 제목 밑에 바로 -큰 올케 떠나시고-라는 부제까지 덧붙였다. 오라버니에 대한 연민만이 아니고 큰 올케까지 그리워하는 사모곡이 아닌 사자곡(思姉曲)이기도 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 90대에 들어선 오누이의 정과 먼저 가버린 올케와의 끈끈함이 정겹다.

다음은 김정수 시인의 '오누이'이다.

오누이

집에 가는 길이다

오누이인 듯

서로 손 잡고 갓길을 간다

가는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서로 손을 놓지 않고

아마 오빠겠지

신발 가방 다 들어준다

참, 좋겠다

저 아이들 집에 가면

엄마, 아빠가 있을 테지

아마, 강아지도 반겨 줄거야

꽃길을 돌고,

보리밭을 지나,

키 큰 감나무 집을 돌면

집이 보인다

아마

그때부터는 무지 달려가겠지.

초등학교 유년 시절의 오누이의 정겨운 모습이다. 앞에 소개한 '선명해지는 외로움'은 인생 90을 넘은 오누이 모습인데. 김정수 시인의 '오누이'는 그와는 정반대로 아주 어렸을 적의 모습이다. 이 두 편의 시는 나란히 게재되어서 대조적이었다. 우연이지만 '선명해지는 외로움'의 김정자 시인 이름과 '오누이' 시인의 이름은 김정수로서 한 글자만 다르다.

마치 형제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필자의 억지 우연 붙임 속에 읽은 두 편의 오누이 내용에 대한 시는 유년기의 따뜻함과 노년기의 안쓰러움과 서글픔을 동시에 안겨 준다.

다음은 안상근 시인의 '떨림 2'이다.

떨림 2

지난해 봄에 갔던 곳

올봄에 들렀더니

그사이 무척이나 변했다, 여기저기

10년 전 여름에 갔던 곳

찾아갔더니

강산이 변한 것처럼 달라졌다, 몇 곳만 남겨두고

20년 전 가을에 갔던 곳

콕 찍어 갔더니

이제는 아예 그 자취도 사라졌다, 새로운 곳처럼

30년 후 겨울에

별생각 없이 지니치다

마주친 곳, '아' 그대로네

그 때는 돌아올 수 없지만

그대로인 그런 곳에서

서성이는 나, 생각만으로도 황홀한 흔들거럼이 덜컹거린다

1년 전, 10년 전, 20년 전의 변화는 삶의 에너지가 빚은 결과이다. 그 빠름 속에 길들여진 일상 속에 화석처럼 남은 30년 전 그대로의 모습은 경이적이다. 가치의 보존성이 낳은

유산이 아니라 멈출 것 같으면서도 유유히 흐르는 삶의 느림이 주는 여유로움이다.

시공을 초월한 문화재의 무변화와는 차원이 다른 또 하나의 존재성은 감동이다.

다음은 양금희 시인의 '겨울 연못 스켓치'이다.

겨울 연못 스켓치

가을 하늘빛에 취해

물끄러미 허공에 머물던 눈빛

가을이 떠난 줄 모른채 얼어붙었다

뿌연 얼음선글라스를 쓴 채

싸늘한 정적이 흐르는 연못에

저리도 많은 돌을 누가 던졌을까

돌이 날아와 떨어질 때마다

살갗을 에는 균열의 아픔을 견디며

돌의 중력을 마른 울음으로 받아냈겠다

얼음과 체온을 나누는 사이

돌들은 더욱 단단해져

한 낮 햇살의 온기에 물렁해진 사이

얼음의 맨살을 파고드는 돌은

극점의 얼음바다에 박힌 무인도

얼음장 밑, 돌섬 그늘이 먹먹할 것이다

차가워져도 잊혀지지 않는 가슴 속에

돌 하나 안고 사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짧은 가을에 취하는 사이 겨울은 얼음까지 동반하고 스며들어서 연못까지 꽁꽁 얼어붙었다. 누군가가 그 얼음에 던지기 시작한 돌은 하얀 빙판의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다. 얼음이 녹고 다시 어는 사이 그 수 많은 돌들은 얼음 속 깊이 파고들어 단단한 옹이, 아니 조그마한 무인도를 형성했다고 했다. 시인은 '차거워져도 잊혀지지 않는 가슴 속에/ 돌 하나 안고 사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라고 했다. 어디 돌 하나뿐이랴. 차고 채이는 일상 속의 돌들은 인내의 용광로 속에서 스스로 녹여 내며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양창식 시인의 '바당꽃'이다.

바당꽃

꽃이라고 다 같은 꽃일손가

밤에만 피는 청승맞은 박꽃

너 또한 나처럼

험한 세상 보기 싫은 것이더냐

예쁜 꽃이 되고 싶었다

무명 물소꼿 입고

우리 어멍 따라 시작한 물질

억센 바당꽃이 될 줄은

내 명을 지켜주는 태왁박새기야

넌 지붕을 의지해 피었지만

나는 바당 위에 피는 꽃

난 너를 의지해 핀다

오늘도 바당 한가운데

믿을 것이라곤 너 하나뿐

꽃으로 핀 이 한 몸 꽃답게 지어야지

늙어서도 시들지 않는 극한의 꽃

어둠 속에 소박스럽게 피고 열매 맺었던 박꽃. 환한 양지가 아니드라도 꿋꿋이 자라났다. 그래서 태어난 태왁박새기는 당당한 도전을 감행하는 해녀의 생명줄이 되어서 바다에 같이 뛰어든다. 어둠 속에 핀 박꽃이 바당꽃과 함께 드넓은 해원(海原)을 유영하고 있다.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바당꽃이며 바로 인어이다.

지금까지 제주 해녀에 대해 자학에 가까운 비하 작품이 제주 출신 문인들 사이에서도 넘치고 있었다. 필자는 이것이 언제나 못마땅했다. 오래전부터 여성이 옷을 훌훌 벗고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도전과 진취성, 특히 경제성까지 모두 수반한 빛나는 제주 여성사이다. 이 여성사를 폄하시키지 말고 승화시키는 작품이 앞으로 계속 나와야 할 것이다. 과장된 대비일는지 모르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우주에서 인간의 유영이 시작되었지만 오래전부터 제주 여성들은 바다속에서 그 유영을 지속해 왔다.

다음은 강윤심 시인의 '제주별곡'이다.

제주별곡

아침 정기 붉은 해를 품고

또 하나의 우주 성산 일출봉

봉우리 깊은 골 묵언으로

침묵이 자라고 있다

뿌리가 깊었는가

주먹쥐고 울음으로 태어난

작은 키 나에게도 혈맥으로 일어나게 하는

제주해녀의 숨비소리

보라빛 순부기 꽃이여

파도는 갯바위 맴돌다 구르다

어느 산기슭 푸르다 못하여

까마귀도 목 놓아 울음 우는가

거문오름 골골이 물줄기로 뻗는

한라산 당신은 어머니의 품

오 나의 어머니 어머니

그립습니다

먼 곳 하늘나라 새벽별 정기 내리시고

제주의 땅 어느 곳 어디에서나 부르면

살갗에 스치우는 바람의 꽃

곶자왈 자분자분 밟고 가는

어머니 숨결따라 제주에 살어리랐다

초가삼간 문풍지로 우는 살림살이

그러나 제주 땅 흙의 소리

귀 기울여라

새 생명 물의 소리를

화산의 불꽃으로 피어오르듯

장엄한 용두암의 파도로

일어나라 깨어라 제주의 얼

조랑말의 다부진 말발급 소리로

다시금 더 높이 세계로

제주도를 노래한 서사시로서 우주선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은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한라산, 곶자왈, 용두암이 거론되었다. 모두 자연이었다. 자연 속의 제주 서사에 유일 제주해녀가 등장했다. 제주인의 상징으로서 걸맞게 들어섰다. 서사시일 경우 감정 억제가 제대로 잘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 '제주별곡'은 절제성이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런데 마지막 행의 '다시금 더 높이 세계로'가 필자에게는 마음에 걸린다.

일본에서 일기예보 지도를 보면 제주도는 잘 여문 콩알처럼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있다. 제주도 바로 위에는 한반도, 왼쪽에는 중국 대륙, 오른쪽에는 일본열도, 밑에는 오키나와가 있다. 조감도처럼 제주도를 바라볼 수 있다.

십여 년 전에 제주에서는 '제주는 세계로, 세계는 제주로'라는 슬로건이 나부꼈었다. 그 슬로건이 퇴색해버리면 이번에는 '제주는 우주로, 우주는 제주로'라는 슬로건이 나와야 한다고 필자는 말한 적이 있다.

제주도가 '세계로!'라고 너무 비화하고 비상하면 안 된다. 너무 발돋움하면 제주도라는 빛나는 보석에 금이 갈까 걱정이다. 아니, 금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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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kim 2021-06-17 15:16:09
해설과 함께 읽는시가 이해를 더하며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