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3) 재일 2세 이방세 시인 시집 '그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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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3) 재일 2세 이방세 시인 시집 '그들이 좋다'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7.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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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2세 이방세 시인 시집 '그들이 좋다'
김길호 재일작가.
김길호 재일작가.

일본에서 우리 말 시집이 나온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조총련계 계간 동인지 '종소리'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서 한글 교육을 받고 일본에 정착하면서 우리 말로 시를 쓰는 문인은 80대인 왕수영 여류시인 혼자뿐이다. 미국, 카나다 등과 달라서 일본에는 해방 후, 고국에서 한글 교육을 받은 한글 세대 문인이 없기 때문이다.

금년 6월 오사카 이쿠노에 있는 '한마음출판사'에서 이방세 시인의 시집 '그들이 좋다'가 출판되었다. 그는 1949년생으로 고베시에서 출생한 조총련계 동포 2세이다. 도쿄 조선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우리 말과 일본어로 시를 쓰고 있으며 시집 '종소리'의 회원이기도 하다. 이방세 시인은 1992년 시집 <하얀 저고리>, 2001년 일본어로 <어린이가 된 할메:고도모니낫따한메:こどもになったハンメ>를 발간했다.

시집 '그들이 좋다'에는 우리 말 시가 60편, 일본어 시가 20편 게재되었다. 그 중에서 우리 말로 쓴 시, 10편을 발췌해서 소개한다. 조총련에서는 우리 말을 한국어, 한국 말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 말, 조선어라고 하는데 필자는 조선어라 하지 않고 여기에서는 우리 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맞춤법과 단어는 조총련에서 사용하는 것을 그대로 게재했다.

기발

기발은 펄럭이기를 바란다

춤추며 노래부르고

울고 웃고

행복에 잠겼을 때

기발은 펄럭이자고 한다

기발은 원한다

언제나 자유로이 날고

그리움에 설레고

사랑으로 함께 물결쳤으면

기발은 생각했다

쉽사리 몸을 내맡기지 말자고

사람이 욕심과 미움을 버리고

발가벗은 알몸이 되었을 때

그때야 비로서 믿자고 마음먹었다

하늘을 향하여 펄펄 나붓기자고 다짐했다

당신이 높이 흔든 그손에 입 맞추며

온몸으로 휘날리자고 굳게 결심했다

깃발은 상징적이고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한 많은 속세의 일상을 탁탁 털어버리고 스스로 정화하면서 하늘 높이 나붓기기를 원한다. 고고함이 극치이다. 고고함에는 부조리의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기원의 대상인 깃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펄럭이기를 바라고 경의를 표한다.

접두사

접두사가 좋구나

어근 앞에 붙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니

마침 두 오누이가 서로 도우며

어깨 걷는 것처럼 흥겹구나

손을 내미는 친구와도 같고

따뜻이 품어주는 어머니 심정과도 같네

나는 가끔 엉뚱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남북 4키로 분계선에

"접두사" 씨를 뿌리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면 모두가 손잡고

오붓하게 살아가지 않을가

"새파란" 하늘 아래

"새희망"에 넘치면서

하나된 "새조국"이 생긴다

접두사 '새'를 사용한 신선한 발상이다. 한국에서라면 '새파란' '새희망'이라는 말은 사용하겠지만 '새조국'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을 것이다. 통일에 대한 많은 문제점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조총련 사회에서는 그것이 무지개 같은 꿈으로 그려보는 경향이 강한데 시인의 의식에도 그러한 바람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어머니시초

<홑 청>

토닥 토닥 방망이로

두드리는 흰 홑청

-얘야 이걸 잡아라

어머니와 나는 힘껏 당긴다

주름이 잡히지 않게

말끔히 구김새 없이

몇십년이 지난 오늘도

어머니가 나를 당긴다

마음이 이그러지면 안된다고

삶이 늘 곧바르라고

홑청은 나의 탯줄인가 보다

몇 십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고유 풍습이 일본에서 되풀이되어 2세 동포가 따뜻한 한편의 시로 승화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느 화창한 날 홑청을 서로 맞잡고 구김새 없게 당겼던 그 모습이 모자를 잇는 탯줄로서 오늘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애잔한 그리움을 안겨 준다.

구호

잠든 아이를 안고

엄마는 시위행진에 나섰다

아이의 체온은 봄처럼 따뜻하다

꼬옥 껴안은 아이의 무게는

우리 소원처럼 무겁다

찬바람 부는 이역땅 번화가 거리

발다리에 힘주어

한걸음 한걸음 억척스레 나간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 얼굴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불끈 주먹 쥐고

구호를 웨친다

<고등학교무상화>를 즉시 적용하라!

우리 학교를 지키자!

엄마의 앞 가슴에서 맥박치는 고동소리는

아이도 함께 부르는 구호

일본에 있는 고등학교에 적용되는 '고등학교무상화'가 조선학교에도 지급되다가 북한과의 관계를 이유로 중단되었다. 이에 대한 항의 운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헌법 위반이라고 학교 당국은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합헌이라는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오사카에서는 조선학교 학부형만이 아니고 일본인들도 부당한 처사라고 합세해서 오사카부청 앞에서 매주 화요일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이 항의운동에 관한 작품은 시만이 아니고 산문도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있다.

봄비

비가 내립니다

고개를 드니

내 입술에 비방울이 뚝 멎었습니다

나를 만나러

나를 향하여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내려온겁니다

봄비란 그런것이지요

사랑의 방울로

서러움을 가시고

슬픔을 씻어주고

희망을 싹트게 하지요

어서 눈을 뜨라고

잠든 땅에 입을 맞춥니다

비가 내립니다

봄비가 내립니다

봄비를 그야말로 봄비처럼 부드럽게 형상화 했다. 작품의 해설은 독자의 감상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주먹을 가슴에 품어라

주먹을 가슴에 품어라

찬바람이 불어도

칼바람이 몰아쳐도

주먹을 가슴에 품어라

우뢰가 울려도

눈서리가 내려도

굽실거리며 살지 말자

양보하지 말자

물러서지 말자

주먹을 가슴에 품어라 

굳게 쥐여진 손아귀에

무엇이 담겨졌는가를 너무도 잘 알기에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놓쳐서도 버려서도 아니 될 주먹은

또하나의 고동치는 심장이거니

이 시는 일반적인 작품성을 별도로 두고 일부러 필자가 골라서 게재했다. 해방이 되어도 식민지 종주국에서 여러 차별 속에 살아야 하는 비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시가 투쟁가처럼 고무 시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용돈

손에 쥐여진 용돈

무슨 과자 살가

기쁨에 넘쳐

우닥닥 달려간다

손자가 있는 이 나이에도

가끔 떠오르는 옛시절

슬며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지더니

<찰랑>소리납니다

아, 정다운 소리가 들립니다

용돈으로 구한

자그만 그리움

어른이 읽는 동시이다. 찰랑거리는 호주머니 속의 동전 소리에 아련한 유년시절의 그리움이 한 순간에 떠오른다.

푸른 하늘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아버지와 딸이

아빠 첫사랑 했어요?

돌연히 묻는 말

응 했지

그것은 언제쯤

먼 엣날이지

그 사람 얼굴 지금도 기억해요?

아니 모르지

성장한 딸이 눈부시여

다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부푼 가슴 달래면서

아버지는 내심 속삭인다

니 엄마가 바로 그렇단다

사랑하는 딸에게 사실대로 고백해도 좋으련만 아버지는 시침을 뗀다. 첫사랑이 엄마이면 한없는 사랑의 범위가 너무 작아져버리고 아버지로서 아니, 남자로서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첫사랑인 엄마와 맺어졌으니 아버지에게는 엄마가 아주 대단한 사랑의 대상이다.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 부끄럽게 감추지만 '니 엄마가 바로 그렇단다' 독백처럼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솔직한 반전이 통쾌하다.

발자국

방과후

다 돌아간 운동장에서

혼자 거닐더니

무수한 발자국을 찾았다

나는 본다

너희들의 해맑은 얼굴을

활기에 넘친 모습을

그리고 수백수천의

씩씩하게 자란 흔적을

운동장은 듣는다

오늘도 굽히지 얺는

발걸음 소리를

발자국이 까르르 웃는다

발자국이 왁작 떠든다

발자국이 척척 나간다

앞으로 앞으로

방과 후의 텅빈 교정에서의 혼자는 무척 고독하다. 왁작지껄하던 학생들의 여운이 메아리처럼 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서 더욱 그 고독이 눈물겹다. 그러나 시인은 그 고독 속에서 새로운 함성을 듣고 있다. 저물어가는 방과 후의 어둠이 내려앉는 여운이 아니고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씩씩한 미래의 생의 모습이다. 텅빈 운동장에 혼자 거니는 고독의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비친 물리적 현상에 불과하다.

귀띔

학교 가는 전차칸

경호는 철수에게 롱삼아

<우리 말>로 귀띔한다

앞에 앉은 할아버지

빼빼 마른 낙지같구나

서로 싱긋 웃더니

전차문 열리여

할아버지가 내릴 직전

경호 보고 귀띔한다

우리 공부 잘하시오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

자기들만의 은어 세계라고 즐기던 것이 갑자기 알려지거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을 때처럼 민망한 것은 없을 것이다. 여기는 외국 땅, 모두 일본인으로 믿어버리고 여유롭게 학교 가는 전차 속에서 우리 말이 은어 구실을 하는데 설마 상대방이 우리 할아버지일줄이야! 할아버지 역시 '귀띔'으로 속삭인다. '우리 공부 잘하시오' 저절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좋은 시를 쓰자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가끔 젊은 동무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사람을 그리워하라고 많이 울어라고. 또한 동포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박아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라고. 생각보다 자기 시를 아는 사람은 적으나 그래도 보는 사람은 있다. 그걸 믿어라고. 한편의 시는 한통의 마음의 편지이다. 시는 고됨을 덜어주고 어려움을 이기게 해주고우리의 소망을 대신하는 것이다.

시집 후기에 쓴 이방세 시인의 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조총련 민족학교에서 우리 말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동포 2세에게는 외국어나 다름없다. 생활용어인 일본어로도 시를 쓰기 어려운데 우리 말로 시를 쓰고 시집을 낸다는 것은 작품성 운운 이전에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이방세 시인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집 출판과 작품성을 당당하게 독자들에게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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