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나무들도
저간엔 서열이 있어
쥐똥나무는 한사코 중심에 서지 못한다
낙향한 술벗 현씨처럼
오일장에나
들앉는 것
밀감꽃향 마구 토하는 섬의 오월햇살
좁쌀만한 꽃들을
좌판에 풀고 보면
쥐똥꽃
쥐똥나무꽃
아이들이 깔깔댄다
몇 년째
세금고지서를 받은 적이 없다
늦가을 끝물쯤에
동박새가 거두어갈
쭉정이
쥐똥 열매들
노숙자의 동전 몇 닢
<홍성운, ‘나무야, 쥐똥나무야’, 전문>
문학이란 무엇이며 詩는 또 무엇일까. 일찍이 ‘이지엽’ 교수는 그의 시론에서 ‘역사가 화려한 것들의 기록이라면 문학은 버려진, 즉 소외된 것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였듯이, 이렇듯 한 세상이 한 세상에게 이르는 길이 이렇게 곡진한데서야.
변두리 다시 말해 이 작은 제주 섬에 살면서도 암암리 저간에는 서열들이 있어. 이래저래 하는 일마다 고배를 마셔 선택이라 할 것도 없이 쫓기듯 내려온 고향. 무슨 여력이 있어 제대로 된 난전을 기대하랴. 난전은 고사하고 좌판이라고 하기에도 송구한. 섬의 오월은 어딜 가도 그야말로 밀감꽃 향기가 사방으로 지천.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그 흔한 밀감 꽃 한 뙤기조차 없이 그야말로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현 처지와 똑같은 쥐똥나무 그 꽃을 그래도 꽃이라고 좌판에 펼쳐놓아.
예단할 수 있다는 건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은 노숙의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그렇지 않아도 오랜 기간 감염병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하루가 다르게 폐업을 알리는 소식이 들려 올 때마다 흔들리는 이웃한 또 한 그루의 나무와 마주 서는 게 솔직히 두렵기까지 하는 요즘. 예견이라도 하듯 닥쳐올 그 파고에 앞서 먼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자 하는 시인의 이 한 편의 시가, 이 계절 저 햇살만큼이나 치열하다는 생각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니리라 확신해 본다. (시인 송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