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14) 이쿠노 제주향토요리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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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14) 이쿠노 제주향토요리 자리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8.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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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쿠노 제주향토요리 "자리"
김길호 재일작가.
김길호 재일작가.

4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오사카 이쿠노(生野) 한국 식당이나 이자카야(居酒屋:선술집) 여기저기에는 새로운 메뉴판 하나가 늘어난다. 메뉴판만이 아니고 가게의 출입문에도 큼직하게 써 붙인다. "자리 있습니다"라는 안내와 메뉴판이다. 필자도 단골집의 자리 메뉴를 써 준적이 있다. 이러한 안내 글을 읽은 어떤 한글 초보자는 식당이 언제나 만원이어서 손님이 앉을 자리가 있다는 뜻이냐고 놀란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오늘 비행기로 제주에서 자리 와시난 꼭 먹으러 옵서예!"

아는 가게에서 종종 걸려 오는 전화는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해준다. 물론 장사를 위한 전화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싱싱한 고향 자리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배려가 진하게 배어있다. 이럴 때에는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고 자리팬들에게도 가끔 연락해서 모이게 된다. 제주 향토요리 자리가 이쿠노에서도 당당하게 시민권을 얻고 헤엄을 치고 있다.

자리팬들은 재일 제주인 선후배와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육지사람, 일본 사람도 끼어들어 어떤 때는 작은 연회를 방불케 한다. 요리도 자리강회, 물회, 그냥 마늘에 찍어 먹기 등 메뉴도 다양하지만 화제도 다양하고 풍성하다. 언젠가 필자는 초장에 찍어 먹게 자리를 요리하지 않고 그냥 절라서 달라고 했을 때 꼬리도 자르지 않고 그냥 갖고 오는 가게가 있었다. 필자는 그게 싫어서 꼬리털을 잘라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같이 식사하던 일행들은 물론 가게 주인까지 바다고기 특히 자리 꼬리를 보고 '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집중 포화를 받았다.

검은 모래 해수욕장이 있는 삼양 출신이라고 어디 가서도 자랑했던 필자에게 정말 삼양에 살았었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꼬리는 털이 아니고 지느러미로서 가장 영양가 있는 곳이어서 일부러 안 잘랐다는 데는 할 말이 없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털이라고 말했던 것이 부끄럽지만 영양가 많다는 데는 회의적이다.

이러한 제주 자리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작년부터 뚝 끊기고 말았다. 제주행 비행기만이 아니고 한국행 비행기도 인천 가는 비행기가 겨우 명목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제주 자리가 오사카로 온다는 것은 꿈같은 소리로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제주 자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래도 이쿠노에는 와카야마에서 낚아 온 자라들이 있어서 그런대로 명목을 유지하고 있지만 위광이 없다. 때로는 와카야마산 자리를 제주산이라고 둔갑 시켜서 파는 가게도 있었지만 그것도 지금은 지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자리의 일본 표준 이름은 '스즈메다이'라고 한다. '스즈메'는 '참새'라는 뜻이며 '다이(타이)'는 '옥돔'이라는 뜻으로 합성어이다. 그 이름의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바다에 미끼를 뿌리면 자리가 참새처럼 우르르 몰러오고 생김새가 옥돔과 비슷하니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하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와카야마 지방에서는 자리를 '오센'이라고도 하고 덧붙여서 '오센고로시(おせんごろし:お仙殺し)'라고도 한다. 옛날 '오센'이라는 아가씨가 살고 있었는데 자리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리를 오센을 죽인 '오센고로시'로 불리웠고 그 후로 사람들은 자리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일본인들이 자리를 먹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와 같이 근무하는 일본인 동료 중에 낚시광이 있는데 자기들은 자리를 낚으면 짜증스럽다고 그때마다 다시 바다에 버린다고 했다. 필자가 자리요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인터넷에 일본어로 지리요리에 대해서 소개된 기사를 보여 주었더니 너무 놀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렇게 경원했던 자라요리가 이쿠노 향토요리로서 시민권을 얻었으니 재일 제주인들의 입맛은 아주 대단한 것이다. 제주 향토요리로서 이쿠노에서 자리 이외로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햇병아리 날개처럼 날듯 말듯 들썩들썩하는 요리로서 몸국과 빙떡이 있는데 몸국이 조금 앞서 있지만 자리요리처럼 자리를 굳히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

재작년 여름 자리요리를 먹기 위해 단골 식당에 갔을 때, 필자가 쓴 시 한편을 졸품(풀장과 바다)이지만 소개한다.

 

풀장과 바다

 

오사카 이쿠노 한국식당에

온수 31도의 실내 풀장에 갔다 오다가

칠,팔십대 할머니 두 분이 들어왔다

생맥주 두 잔 주문하는 할머니에게

오늘도 풀장에서 수영했느냐면서

대단하시다고 주인 아줌마가 인사했다

그게 사실이냐고

곱게 나이 드신 할머니들 그 나이에

그 수영이 부럽고 그 인생을 존경한다고

다른 자리에 손님들이 맞장구 친다

제주에서 비행기로 날라 온 자리 먹던 나는

그들 대화 속에

제주 할망바다에서 물질하는 할머니 해녀가

문득 떠올랐다

살아 있는 바다에서 넘실거리며

깊이 패인 주룸살과 그을린 얼굴이

물안경에 비친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희열의 숨비소리가 물새 노래처럼

현해탄을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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