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 (23) 첫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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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 (23) 첫 이발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8.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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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이발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오늘은 국가 영웅의 날로 공휴일이고, 내일은 성모마리아 잉태 축일로 연휴다. 아침에 미사에 다녀오고 나서 옆방 최규환 자문관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여동생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출국에 대비해서 임시 휴가 파일을 미리 확인해 두어야 하는데 컴퓨터에서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오면 익숙한 일들도 서로 엉키기 마련인데 미리 준비해 두면 편리하게 준비하여 출국할 수 있다.

최자문관은 생활에 대단히 열정적인 분이다. 서울경찰청 고위 간부로 퇴직한 후에 버스 대형 면허증을 취득했다. 경쟁이 치열했던 카

최충호, 이영대 자문관과 함께 이자문관 정원에서
최충호, 이영대 자문관과 함께 이자문관 정원에서

카오 택시 기사로 일도 했었고 또 다른 서비스업에도 종사했었던 것 같다. 또 지금은 자문관으로 동티모르에서 열심히 경험을 펼치고 있으니, 쉬지 않고 인생 2모작을 일구는 모습이 모두의 귀감이다. 이 일을 끝내고서는 강원도 같은 곳에서 자연인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귀농 생활과 자연에서 집짓기 터 일구기 등 심산유곡에서 생활할 수 있는 생존 정보를 열심히 수집하고 있다.

오늘은 연휴여서 모처럼 이발을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하고 지금껏 하지 않고 있으니, 이발한지 석 달이 지났다. 이발소는 몇 군데 눈에 띄었으나 중국인이 경영하는 ‘황제석유’ 주유소 건너편 이발소로 가기로 했다. 등굣길에 이발소를 지나는데 문에 요금이 2달러라고 적혀있었다. 전에 박찬홍자문관에게 소개해 주었더니 몇 번 그 곳에서 이발을 했고, 잘 한다고 했다. 특히 처음 갔을 때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직원이 있어서 편했는데, 지금은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가 있다고 했었다.

밖은 한참 무덥다. 거의 40도다. 모자를 푹 쓰고 긴 팔 셔츠를 입고 나섰다. 그 사이에 혹시 문을 닫은 게 아닌가 조바심하며 가보니 영업을 하고 있었다. 안은 꽤 넓었고 의자가 4개 있었다. 이발사도 4명이다. 구석 책상에는 여직원이 앉아 있어서 이발 요금을 받고 있다. 내 차례가 되어 테툼어로 머리를 가능한 가위로 약간만 자르도록 설명했으나, 잘 이해하지 못 했다. 두 명의 이발사가 교대로 머리를 손보다 보니 머리가 많이 잘려 나갔다. 가만히 있다가는 머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아 이제 그만 됐다고 얘기하고 2달러를 주고 나왔다. 집에 와서 염색을 하고 거울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염색약은 박자문관이 출국하면서 쓰다가 조금 남은 것을 주어서 모두 짜서 사용했다.

외국에서 생활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내게는 이발이다. 그래서 좀처럼 이발소를 찾지 않는다. 세네갈에서도 경험했었지만 괜찮은 이발소에서는 외국인에게는 이발비를 다섯 배 정도 더 받았었다. 그래서 나는 실력이 좀 모자라는 현지 이발소에서 이발하고 항상 팁을 좀 얹어주었다. 이발을 잘 했다고 외모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 어설픈 나의 지론이다. 동네 이발소도 좋다. 다만 어떻게 잘라 달라는 설명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나 이곳 동티모르나 가위로 이발할 능력은 못 된다. 소위 바리깡, 전기 이발기로 계속 밀어서 이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위 이발은 할 능력이 못 된다.

물 정리

오늘은 성모 무염시태 축일이다. 법정 공휴일이어서 모두 쉰다. 아침에 또 수돗물이 안 나와서 받아 놓은 물로 씻느라고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성당에 가보니 바로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제대 바로 옆에 자리했다. 옆에는 신자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모기가 맹렬히 계속 날아든다. 내가 주 타켓인 모양이다. 오는 길에 길에서 바나나 한 손을 1달러에 샀다. 오늘은 말 그대로 푹 쉬었다. 다만 최규환 자문관과 끄마넥 슈퍼에 갔다 온 것이 전부다. 치즈, 땅콩, 락스, 오이, 우유 등 20달러어치 장을 봤다.

집에서 물 정리를 했다. 물 정리라는 말이 이상하지만 물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므로 항상 물을 정리하고 보충해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 곳 물은 그냥 마실 수 없다. 설거지 한 그릇이나 욕실 유리와 거울 등 물이 닿는 곳은 모두가 희개 얼룩져 있다. 바닥도 얼룩이 쌓여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지하수 물이 희미한 우유 희석한 물처럼 뽀얗다. 그러니 이 물이 튄 곳은 그대로 우유 빛 얼룩을 남기는 것이다. 이 석회석 물이 아마 인체에 유해할 것임에 틀림없다.

음료수로는 인도네시아 수입 생수인 Aqua나 Aquase를 마신다. Aquase가 조금 싸다. 봉사단원들의 말에 의하면 Aquase는 모방 생수가 많으나 Aqua가 그래도 믿을 수 있다고 한다. Aqua는 1500ml 15개 들이 한 상자에 5달러다. 나는 10 상자씩 불러서 쓰고 있는데 지금 두 번째 불러서 쓰고 있다. 주로 음용수로 사용한다.

마시는 물외에 취사용으로는 갤런 통에 Cool이란 상표가 붙어있는 물을 사용한다. 이 물을 바로 사용할 수는 없고 브리타 정수기로 한번 정수해서 사용한다. 이 갤런 통 물은 동티모르에서 개발하여 공급하고 있는 물이다. 그런데 최충호 자문관 말에 의하면 그냥 계곡 물을 담아서 팔고 있다고 한다. 갤런 물은 여러 종류이니 질의 차이가 많이 날 것이다. 이 물은 한 통에 1달러이다. 이 물은 워낙 많이 써서 보통 이틀에 한 통씩 소모한다. 이 물은 주고 취사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충호 자문관을 공항에서 환송하며
최충호 자문관을 공항에서 환송하며

세 번째 물은 수돗물을 브리타 정수기로 정화해서 쓰는 물인데 설거지 하고 헹구는데, 샤워하고 눈을 씻는데, 양치하고 입 헹구는데 사용한다. 네 번째 물은 수돗물로 설거지, 청소, 세탁 등을 하는데 사용하는 물인데 이 물은 사용했던 페트병에 50개 정도 받아서 쌓아 둔다. 수돗물이 끊기면 이 받아두었던 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오늘은 시간이 있어서 재활용 Aqua 페트병 20여개에 물을 브리타로 정수해서 비치해 두었다. 물이 충분히 준비되었으니 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 복잡한 물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한국이 얼마나 행복한 나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물을 비치한 공간만 네 곳이 되다 보니 집안이 무척 어지럽다. 오늘도 물이 안 나왔는데 주인과 함께 모터를 살펴보니 물 공급 벌브가 잠겨 있었다. 주인은 여러 사람들이 살다 보니 누군가 잘 모르고 아무 것이나 손을 댄 것 같다고 설명한다.

퇴역한 한국 군함

오늘은 최충호 자문관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다. 그는 코이카 봉사단원이 아니다. NIPA(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 소속이다. NIPA 자문관은 주로 전기, 전자, 통신, 기계 등 자연계 분야의 전문가를 파견하고 있다. 코이카는 인문과 자연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그는 이 곳에서 3년간 근무했었다.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퇴역한 소형 군함 3척을 동티모르 요청으로 기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녹슬고 고장 나고 운항이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진단, 관리, 수리할 능력이 있는 자문관 파견을 요청했었다. 이의 유지 보수를 위해 최자문관이 선발 파견되었다.

최자문관은 그 사이에 여러 차례 유지 보수 계획을 수립하고 동티모르 해양경찰청과 정부에 예산을 요구했다고 한다. 겨우 예산을 확보하면 정부에서 더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다며 예산을 전용해 버리고 해서 한 번도 수리를 하지 못 했다. 노력은 많이 했으나 결국 예산 뒷받침이 되지 않아 실적 없이 허송세월을 보낸 격이 되어 버렸다. 본인에게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또 NIPA에서 파견된 자문관이 혼자여서 외로움이 컸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 코이카 단원들이 있어서 그 공간을 채워주었었다.

최자문관이 근무하는 해양경찰청 옆을 지나가다 보면 지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바다에 떠있는 군함들을 볼 수 있다. 너무 오래 운항을 멈추다 보니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라고 한다. 내막은 모르겠으나 아마 처음 한국으로부터 이 군함을 인수할 때는 추후 유지 보수에 필요한 재원이나 인력이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지원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요청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고철 더미로 변하고 있는 군함들을 보면서 저 군함들은 왜 움직이지도 못하고 저렇게 서있고 어느 나라 배냐고 물어봤을 때, 그 답이 한국 군함이 되고 보니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난감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해 보니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있으니 음악을 전공한 이미경 단원이 왔다. 마침 오늘 이희주 단원도 떠나게 되어 환송하러 왔다고 했다. 음악 얘기를 하다 보니 이희주 단원이 친구들과 함께 도착했다.

나는 음악에 관심이 많다. 내가 처음으로 교장 발령을 받은 곳은 서귀포 위미중학교라는 작은 농어촌 학교였다. 130여명의 학생들은 여유만 있으면 시내의 도심 학교로 전학을 가려고 하니 학생 수가 나날이 감소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초등학교에 가서 학생 유치를 위한 강연을 하기도 하고 시내 중학교로 가려는 학생들 학부모들을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교육력 강화를 위한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시켰다.

예를 들어 외국어 교육 강화로 전도 영어 퀴즈 골든벨 대회에 이 작은 학교가 2년 동안 우승을 하여 학생들이 미국 연수를 떠나기도 했고 전도 중학교 평가에서 최우수, 또 전국 교육과정 평가 최우수 등을 차지했었다. 중학교지만 도내 최초로 16쪽 짜리 영자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국 최초로 전학생이 참여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악 중심의 오케스트라였는데 1억 원 정도 소요되었다. 교육감에게도 사정하고 도지사의 지원도 받았다.

1년 후 서귀포에 있는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창단 공연을 했는데 도지사. 교육장, 모든 학부모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장소 임대에도 많은 애로 사항이 있었다. 중학생 공연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임대료도 최소 수 백만 원이 필요했었다. 결국 사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무상으로 공연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시골의 중학생들이 10여곡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라리넷 등을 전 학생이 연주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한겨레신문 등 중앙지에서 1면 머리기사로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졸업식 축하식에서 춤추는 젊은이들
졸업식 축하식에서 춤추는 젊은이들

양성언 교육감은 이 놀라운 변화에 크게 감동하여 그 후 제주도의 모든 학교에 오케스트라 창단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제주도의 모든 학교 오케스트라 탄생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지금은 제주도의 거의 모든 학교에 오케스트라가 있다. 이런 얘기를 이 선생님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30분 정도 지나자 최충호 선생님이 오셨다. 김대섭, 박형규 시니어 단원과 이무현 선생님도 보였다. 시간이 촉박하여 사진 촬영을 한 후 바로 입국장으로 들어갔다. 석별은 항상 아쉬움이 있다.

나는 또 할 일이 남았다. 엊그제 Jose 전 교장이 딸 졸업 축하식이 우리학교 대강당에서 있으니 와달라는 초청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로 향했다. 6시가 되어 이미 밤기운이 돌고 있었다.

학교 가까이 가니 음악 소리가 온 마을을 덮고 있었다. 현관 앞 뜰에 오토바이가 2백여 대가 주차해 있다. 강당에선 4,50여 쌍의 남녀가 화려한 무도회복을 입고 춤을 추고 있다. 서양 왈츠다.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왈츠가 일상화되어 있다. 신체 접촉이 아주 밀접해 보인다. 연단 위에는 청색 가운을 걸치고 학사 모자를 쓴 예쁜 여대생이 친구 10여 명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그녀 앞에는 케이크와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다.

내가 무대 가까이 가자 Jose 교장이 나와서 가족들을 소개한다. 부인과 형제들과 집안 어른들이다. 나도 무대 위에 올라가 함께 촬영했다. 3,4백여 명의 하객들이 강당을 가득 메우고 끊이지 않고 춤을 추고 있다. 설명에 의하면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남녀가 서로 알고 사귀게 된다고 한다. 조금은 음주 상태에서 신체 접촉도 많고 뜨겁게 껴안기도 한다. 이무현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졸업생이 있는 집들은 크든 작든 비슷한 축제를 한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샤워하고 주스를 한 잔 마시니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성사

어제는 일요일이서 도미니꼬 성당에서 한인 미사에 참례했다. 성탄 판공성사를 미리 준다기에 일찍 서둘러 갔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한가하게 경내를 둘러보았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니 오목조목 예쁜 꽃들이 여기저기 많이 심어져 있고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성당 안도 정돈이 잘 되고 깔끔하다. 10시가 지나자 한두 분씩 나타난다. 신부님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스페인 신부님도 동티모르 사람으로 변해서 시간관념이 흐려지는 것 같다. 20분쯤 지나자 신부님이 오셨다. 신자들은 성당에 앉고 고백 성사 볼 사람들은 의자를 들고 가서 밖 나무 그늘 아래서 성사를 봤다.

야곱 신부와 성당에서
야곱 신부와 성당에서

외국에서 우리말로 고백성사 보기는 처음이다. 세네갈에 있을 때는 일 년에 세 번 정도 고백 성사를 봤는데 영어로 봤다. 신부님들이 모두 영어에 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날 미사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최 사장님이 참석했다. 그 분은 동티모르에서도 활발히 건축, 물류 사업을 하고 있는데 주유소도 갖고 계시다고 한다. 미사 끝에 최 사장은 신자들을 위해서 라멜라우 호텔에서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금교건 사장님 차로 갔는데 신부님이 동승했다.

신부님은 이 곳 신자들에 대한 얘기를 한다. 20년 전 독립할 시기에 인구 조사를 했는데 반드시 종교를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거의 대부분 가톨릭으로 적었고, 모든 관혼상제 전례가 성당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전 국민이 가톨릭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알고 보면 신앙심이 깊지 않은 신자들도 꽤 있다고 설명한다.

식당에 들어서니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다. 메뉴는 한국 음식이 많이 가미되어서 밥, 김밥, 닭꼬치, 육개장, 쇠고기 볶음 등이었다. 모두 입맛 당기는 음식들이다. 사실 이 호텔의 주인은 인도네시아인이고 상무는 한국인이어서 한국인들이 단골로 이용하고 있다. 코이카도 이 호텔 별관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음식들을 언제나 시켜 먹을 수 있는 호텔이기도 하다. 나는 두 차례나 갖다 먹고 디저트도 먹었다. 사장님은 동티모르에 오면 항상 이 호텔에 머문다고 한다.

집에 와서 잠간 낮잠을 자다 깨니 머리가 몹시 아프다. 아무리 고개 운동을 해보고 해도 여전히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계속 버티다 6시 30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술이 워낙 약해서 낮에 마신 한 잔의 술이 두통을 유발한 것 같다.

(2017년 12월 7일, 12월 8일, 12월 9일, 12월 11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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