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8) 재일 2세 허옥녀 시인 시집 '날개가 돋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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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8) 재일 2세 허옥녀 시인 시집 '날개가 돋친듯'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9.0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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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2세 허옥녀 시인 시집 '날개가 돋친듯' 발간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허옥녀 시집 "날개가 돋친듯"
허옥녀 시집 "날개가 돋친듯"

조총련 산하단체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오사카지부' 맹원이고 조총련을 대표하는 시인 두 사람이 3개월 사이에 우리말 시집을 발간한 것은 이례 중의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7월 20일 제주경제일보의 '김길호의 일본아리랑'에 소개한 이방세 시인은 6월에 발간했고, 이번에 허옥녀(72) 시인은 9월에 발간했다.

상기 단체 오사카지부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두 번 모임을 갖고 작품 합평회를 열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중지 상태에 있으나 조총련 문학 활동 중에 가장 활발한 합평회를 열고 있다. 여기에서 다듬어진 작품들은 도쿄에서 발행하는 조총련계 계간시집 동인지'종소리'에 게재하고 있다.

시집 '날개가 돋친듯'에는 우리말 시 57편과 일본어 시 26편, 그리고 16세(1996년) 때 타계한 막내 아들에 대한 '진혼가' 28편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28편이 수록되었다. 여기서는 우리말로 쓴 시만을 소개하겠다. 발음표기는 북한 문법을 따르기 때문에 원문대로 게재했다.

 

<나의 고향집>

 

비행기에 몸을 맡기면

두시간이면 가닿을 고향땅을

예순해를 넘겨서야

간신히 밟았구나

 

여기서 태어나신 할아버지와 아버지

큰오빠와 조카들이 나서 자란 곳

대대로 지켜온 서귀포의

꿈결에도 찾던 나의 고향집

 

밀감밭에 둘러싸인 내 고향집엔

대문이 없었어라 쇠도 없었어라

그 언제건 돌아오라고

량팔 벌려 기다려준 정다운 집

 

앞마당에 들어서니

무르익은 밀감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콤세큼한 향기 날리며

어서 오라 반기며 맞아주는 듯

 

등뼈가 휘도록 일하여 번돈으로

수십번을 보내신 모나무며 농기구들

부모님의 정성과 큰오빠의 피땀이

밀감풍년 이루어 우릴 맞아주었구나

 

한쪼각 입에 넣어 씹어보았더니

삽시에 입안에 퍼지는 달달한 맛

난생 처음 먹어본 고향집의 감귤맛에

코허리가 찡하여 목이 메였네

 

이 집에서 식구가 오손도손 모여 살

그날만을 꿈꾸다 운명하신 우리 아버지

반백년이 지나도록 풀수 없던 그 소원

어이하여 우린 갈라져 살아야만 했던가

 

터질듯한 아픔과 상봉의 기쁨으로

눈물 젖은 큰오빠의 손 덥석 잡으니

파아란 고향하늘은 푸근한 빛 뿌리며

내 가슴 후련히 녹여주는구나

 

10년전, 2011년 허옥녀 시인은 처음으로 부모의 고향 제주도 서귀포시를 찾아갔다. 조총련학교에도 지급되던 일본정부의 무상교육비가 북한과의 관계성을 들어 일본정부가 일방적으로 중지해 버렸다. 이에 항의하고 지원하는 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에 갔다가 고향 서귀포에 처음으로 갔었다. 이때 처음으로 큰오빠를 만났다. 부모로부터 듣기만 했던 이미지 속의 고향과 오빠와의 만남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본대로 느낀대로 그대로 써도 감동의 시가 되었다. 이것은 다음에 소개하는 4편의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아버지, 옥녀가 왔어요 서른해만에

어머니, 저예요 알아보시겠나요?

못난 이 딸의 큰절을 받아주세요

 

불효자식이라 욕해 주세요

못된 딸이라고 꾸짖어주세요

 

그래도 이 딸은

부모님의 부끄럽지 않은 딸이고 싶어

이를 악물고 오늘에야 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서귀포 앞바다가 보이네요

수평선 저멀리 고기배가 서서히 가네요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어달라 당부하신

부모님의 소원대로 여기에 모셨대요

바다가 보이는 풍치좋은 공동묘지에

 

생전에 그토록 큰오빠를 찾으시더니

돌아간 후에야 큰오빠를 독점하셨네요

꼭꼭 벌초도 하고 술도 올린다지요

 

저는요 어느새 손자가 다섯이예요

정년의 그날까지 열심히 일했어요

부모님 앞에 가슴펴고 살고 싶어

 

남들이 부모님 묘지 찾을 때면

내 신세 왜 이꼴이냐고

한탄도 하고 남들 부러워만 했어요

 

하지만 이젠 마음이 놓입니다

이야기로만 듣던 그리운 고장에서

고향바다 바라보니 속이 시원하네요

 

아버지, 어머니 저희 걱정은 마세요

이제는 하나로 이어진 우리 식구

만시름 놓으시고 편히 잠드십시오

 

일본에서는 장례의식이 모두 화장장이어서 추석 전의 벌초문화가 없다. 그 대신 신정과 '오봉'(명치 이전에는 음력 8월 15일이었지만 명치 이후 양력으로 전환)이라고 해서 8월 15일, 그리고 춘분과 추분에 성묘를 가는데 미디어들은 연중행사로서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이때에 성묘 대상의 선조 묘들이 없는 자손의 비애는 귀향할 고향이 없어서 갖는 쓸쓸한 심정과 같다.

<개민들레꽃>

어머님 산소에서 벌초하더니

봉분우에 애기꽃 피어있었네

새노랗고 어여쁜 서너치 잡초

 

꽃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마을 사람 다정하게 말해주었지

외국에서 들어온 개민들레꽃이래요

 

바람타고 날아왔나

구름타고 날아왔나

너무너무 이뻐서 뚫어지게 봤지요

 

내 고향 제주도 어딜 보나 절경인데

엄마의 봉분이 그리 좋아 여기 왔나

개민들레 개민들레 고마운 꽃이여

 

동백이며 코스모스 피는 꽃도 많지만

울 엄마 섭섭찮게 함께 해준 개민들레

조심조심 따고서 책갈피에 끼웠네

 

내 비록 또다시 이 땅을 떠나지만

개민들레 너와 함께 고향땅 안고 가리

그리울 땐 널 보며 엄마 모습 떠올리라

 

봉분에 피어 있는 개민들레꽃의 노랗고 노란 샛노람에는 짙은 녹색 속의 풀속에서 무척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봉분에 피어준 개민들레꽃은 일부러 꽃도 준비하고 가서 올리는데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개민들레는 1980년대에 제주에 들어온 '서양금혼초'로서 토종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생태계 교란종이라고 한다. 이제는 이 혐오의 꽃이 무덤에까지라는 눈흘기는 시선과 고인을 위해서 피웠구나 하는 양면성 속에 처음 찾아간 딸은 감동한다. 허옥녀 시인역시 이국의 일본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헐어진 남비 하나>

고향집 여기저기 들여다보다

널찍한 부엌에도 들어갔더니

가스콘로우에 남비 하나 놓여있었네

 

몇십년을 쓰고 쓴 남비 하나

뚜껑을 살짝 열어보았더니

먹다 남은 된장국이 들어있었지

 

이 남비로 할머니가 국을 끓이셨고

식구 위해 큰올캐는 거친 손으로

몇십년을 반찬 장만했겠지

 

큰딸은 미국에서 교수가 되고

아들은 서울에서 교편 잡고

기자 된 막내는 부산으로 갔으니

하나 가고 둘 가고 올캐마저 영영 떠나

 

홀로된 큰 오빠는 이 부엌에서

아침 저녁 어떤 심정으로 밥을 짓고

이 남비와 가스콘로우에

쓸쓸하게 놓인 헐어진 남비 하나

먹다 남은 된장국이 들어있었네

 

모두가 떠나버린 텅빈 집에서 홀로 남은 오빠 삶의 궁금해서, 우연히 들여다 본 삶의 잔상 속에서, 먹다 남은 된장국은 헐어진 남비 속에 그 모습을 들어냈다. 연민의 정이 솟구쳐오른다. 가족사가 응축된 그 남비는 오늘도 오빠와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겨울을 이겨내면>

고향집 옥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다보니

오붓한 마을이 한눈에 안겨오네

 

천천히 흐르는 고요한 고향시간

어린애마냥 큰오빠의 팔에 매달려

그저 앉아있기만해도 기쁘기만 하네

 

술 좋아하는 것도 큰소리치는 것도

머리숱 적은 것마저 아버지를 하도 닮아

은근히 생각했네 피줄은 속일 수 없다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 꽃이 피니

몇십년의 공백이 삽시에 메워지는데

큰 항아리 가리키며 돌연히 하는 말

 

오빠가 일곱살 적 할머니와 둘이 살 때

내 태어난 바로 그 해의 <4.3사건>

토벌대놈들 우리 집에도 쳐들어왔다는데

 

위기일발의 순간 큰 항아리로 푹 덮어

오빠를 숨겨 살리신 기지에 찬 할머니

그 이야기 처음 들어보니 가슴이 섬찍했네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이 세상에 없다고

호탕하게 웃는 오빠가 더 가엾어서

그만 눈물 떨구고만 이 못난 동생

 

얼마나 겁이 났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일곱살 어린 나이에 피바다를 보았다니

오빠가 걸어온 파란만장한 인생의 1페지

 

이제 떠나면 또 언제 만나게 될지

밥은 어떻게 하고 빨래는 언제하려나

점점 추워질텐데 온돌은 누가 피우나

 

이 걱정 저 걱정에 가슴 쓰린데

태연한 큰오빠는 오히려 날 웃기려

우스개소리 찾으며 하고 또 하네

 

칼바람 부는 이 겨울을 이겨내면

우리 다시 꼭 만나게 될거죠?

화창한 새봄을 함께 맞아야지요 오빠!

 

이제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실타래처럼 풀어가던 삶의 여운은 기약 없는 미래의 시간에 맡기고, 그래, 화창한 새봄처럼 함께 맞이해야 한다. 그게 새로운 생존의 의미가 될테니까.

 

<초대장>

뜻밖에 초대장이 날아왔구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

 

15년전 중급학교에서

아직은 담임을 하던 시기

두해동안 맡았던 학생

 

공부를 썩 잘하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고

무용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학생

 

자그마한 오해로 상처받은 너는

나에게 멀리 떠나갔었지

끝까지 눈도 안맞추었었지

 

다가갈수록 고개 돌리는 널 보고

교원의 본분 다하지 못한 가책으로

가슴 아팠던 나날 어찌 잊으랴

 

그런 너한테서 초대장이 보내왔구나

경사로운 이 날을 꼭 보아달라고

꿈과 같이 꿈과 같이 보내왔구나

 

가야지요 가구말구요

늘 마음에 걸렸었어 떠나간 네가

 

고등학교 시절 너의 무용발표무대를

먼 팔찌에서 살짝 보았었어

대학시절 신보에 실린 너의 사진

곱게 오려서 소중히 간직했었어

 

꽃무대에서 춤추는 네가 자랑스러워서

어릴 적 꿈을 이루어낸 너를

언제나 그 언제나 응원했었어

 

잘 살아야 해요 복 많이 받아요

옥이야 금이야 소중히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정을 잊지 말고서

 

오늘은 하도 기뻐 못잘거야

15년 맺혔던 근심이

삽시에 날아갔구나

 

일반적인 초대장도 받으면 호기심 속에서 반갑다. 가슴에 멍이 되어 남아 있는 앙금의 응어리가 한장의 초대장으로 15년간의 회한을 녹여 주었다. 설령 그것이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라고는 하나 15년의 연륜은 너무 무거운 세월이었다. 서로 용서할 수 있는 용기,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의 극치이다.

<작업복>

작업복을 개더니

눈에 든 바지자락의 흐트러짐

어느새 여기저기 터진 작업복

 

한바늘 한바늘 깁는다

이제 몇해가 되었을가

새하얀 백묵밖에 못가져본 그이가

기름투성이 작업복을 입은지도

 

작업중 뜻밖에 일어난 사고로

이마를 몇바늘이나 꿰맨적도 있었지

용접 불꽃으로 수없이 구멍난 작업복

 

세탁기가 더뤄워진다고 한 날이

너무나 부끄럽다

 

그래도 언제나 가족 위해 땀 흘리고

푸념 한번 해본적이 없었던 당신

그저 묵묵히 일하던 당신

 

아무말 안하지만 가족들은 안다

큰 불편없이 마음껏 배우고

희망의 길 걸어올수 있었던건

이 작업복 덕분인줄은

 

기름 배인 작업복 구멍 뚫린 작업복

하지만 가족사랑 깊이 스민 작업복이

오늘도 베란다에서 바람에 나붓거리네

 

진부한 표현으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베란다에서 당당하게 바람에 나붓기는 작업복은 어느 무엇보다도 바꿀수 없는 가족 사랑의 깃발이었다.

<목도리>

털목도리를 짜달라는

막내손녀의 응석에 못이겨

몇해만에 코바늘 손에 쥐었네

 

눈짐작으로 코수를 줄였다 늘였다

악전고투하면서도 재미가 나서

어느새 뜨개질에 홀딱 빠졌었네

 

손자들의 몫 다 챙겼는데도

저도 모르게 내손이 코바늘을 찾는다

끝이 없이 떠오르는 보고 싶은 사람들

 

병석에 누워계시는 사돈할머님 생각

휠체어생활로 고생 많은 어르신 생각

하얀 눈 쌓인 아오모리(靑森) 고향 사람들 생각

 

어려운 날 엽서 한장 못보낸 선배님

언제나 말없이 등을 밀어주던 친구들

50년을 보지 못한채 지내온 동창생...

 

보고싶어서 그리워서 미안해서

날이 가는줄 모르게 짜고 또 짠다

달이 가는줄 모르게 짜고 또 짠다

 

한땀한땀에 그리움을 달아

한장한장에 고마움을 담아

짜면 짤수록 흐뭇해지는 내 가슴

 

솜씨 없어 보잘 것 없는 목도리

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목도리

마음과 마음을 이어줄 목도리

 

목을 녹이면 덜 추울거야 하시던

어머님 말씀 되살리며 오늘도 짠다

꼭 겨울을 이겨내시라 바라며 짠다

 

한코 한코 늘어나는 정성의 마음은 순간의 감정 표현이 아니고 스스로가 살아온 오랜 삶의 궤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은혜를 갚는다는 말을 사용하지만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고 은혜를 새롭게 보내 드린다는 의미가 적절할 것이다.

<날개가 돋친듯>

어느 날 갑자기

왼쪽 무뤂이 쑤시듯 아파서

계단 오르내리기도

자전거 몰기도 힘들어졌네

 

40여년 다니던 길이 두려워지고

장보는 것마저 부담이 되였건만

글쎄, 꿈과 같이 날아왔네

전동자전거가, 포도색 자전거가

 

아들이며 딸들, 며느리며 사위가

정성으로 마련해준 전동자전거

스위치를 눌러 조심조심 몰고가니

날개가 돋친듯 다리가 가벼워졌네

 

바람을 헤치며 잘도 달린다

비탈길도 문제없어 씽씽 달린다

아이들의 지성어린 새 자전거

 

어린 것들 자전거 앞뒤에 태워

비오는 날에도 바람부는 날에도

달리고 달린 나날 어제 같은데

 

오늘은야 새 인생길 걸어갈 마음으로

자전거에 몸을 맡기네 기쁨을 실어서

 

씽씽 달려라 나의 자전거

칼바람이 불어도 계속 달려라

자식들이 달아준 날개를 활짝 펼쳐

우리 모두 바라는 저어기 지평선까지!

 

일본은 자전거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녀노소 차별이 없다. 각 역마다 즐비하게 세워진 자전거나 슈퍼를 돌아봐도 그렇다. 보육원이나 유치원에 마중 가는 젊은 엄마들은 앞뒤에 아이들을 태우고 달리기도 한다. 가냘프면서도 억센 그 모습에는 머리가 숙여진다. 그 뒤안길에서 나이를 든 어머니를 위해서 자식들의 전동자전거 선물은 가슴 찡하기 보다 통쾌하다.

<끝>

허옥녀 시인은 1948년아오모리현 출생.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졸업. 허가시오사카시(동대판)조선중학교 교사 역임,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오사카지부위원장' 역임 후 현재 고문. 시집으로는 『산진달래(1988)』, 『출발의 날에(2006년)』, 『날개가 돋친듯(2021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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