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24) 노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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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24) 노동요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9.1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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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요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7시 30분, 출근해 보니 학생도 교사도 아직 아무도 안 보인다. 교문도 꽉 닫혀 있어 우리만이 알고 있는 잠금 장치를 해제하고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 학교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치 여러 산등성이로 품에 안긴 듯 편한 느낌을 주는 교정이다. 오늘은 산을 뒤로 이고 있는 교사 동들이, 유독 황색으로 도색된 건물들이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요즘은 우기다. 이 곳의 우기는 11월에서 4월까지다. 우기에는 거의 매일 오후 4, 5시경에 비가 30분에서 1시간 반 정도 내린다. 내리기 보다는 퍼 붓는다. 신록이 더욱 무성해지고 푸른빛이 돋보이는 계절이다. 교정이 무척 싱싱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습도 높은 더운 공기가 몸을 휩싼다. 전등도 켜고 에어컨도 켠다. 15분 정도 지나니 괜찮다. 출근하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은 컴퓨터 켜고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메일과 카톡을 확인하는 일이다. 지구촌의 많은 지인들과 인사와 소통을 한다. 그리고 믹스 커피를 마신다. 이만하면 호강한다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한다. 좀 한가히 일을 시작할 때는 7080 가요, 성가, 찬송가, 베토벤, 팝송 등을 들으면서 일하면 짜증도, 더위도 어느새 잊고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일종의 노동요 효과다.

9시쯤에 교감이 왔다. 전에 내가 작성한 베코라기술고등학교 발전 추진 계획의 서론 부분을 테툼어로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연구물과 논문들은 우선 한국어로 작성하고 이를 영어로 번역한다. 영어로 번역한 것을 구글을 이용하여 테툼어로 번역한다. 그런데 구글로 번역한 테툼어 과제물은 초벌 번역이기 때문에 잘 살펴 다듬어야 한다. 테툼어 초벌 번역까지 해서 내가 영어 번역본과 테툼어 번역본을 출력해서 원고와 파일을 주고 수정 보완 번역을 의뢰했었다.

한국 사람이면 몇 시간이면 족했을 업무인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살펴보니 20여 군데가 제대로 번역되지 않아 모셔다가 다시 함께 손질했다. 번역료는 바로 현금 지급했다. 이 곳에서는 꽤 많은 금액이다. 의뢰한 업무 양에 비해서는 후하게 쳐주었다. 아마 거의 한 달 월급은 될 것이다. 많은 아이들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활에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 조금 많이 책정했었다. 기침을 많이 한다. 독감에 걸린 모양이다. 급히 사무실로 가서 한국의 종합 감기약을 갖다 주었다. 식후 한 알씩 복용하도록 안내했다.

퇴근 시간 사무실을 나서는데 더위를 감당하기 어렵다. 학교에서 미크롤렛 정거장까지는 20여분 걸린다. 거의 집집마다 심어놓은 파파야 나무를 보면서 20여분 걷다보니 정류장이 바로 보인다. 무더위 때문인지 모두가 걷기가 어려워선지 버스 안은 평소 두 배 정도의 사람들이 가득 타있다. 좁은 버스 안은 더위와 냄새가 심하다.

집에 도착하니 반찬과 찌개를 할 재료들이 거의 바닥나 있었다. 채소, 감자, 양파는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밖은 너무 덥다. 어제 먹던 닭다리 된장찌개가 조금 남아 있다. 데워서 저녁을 때웠다. 밖은 다시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고 있다. 소나기에 불타는 더위와 대지 그리고 마음도 가라앉는 것 같다.

제주도(평화협력과)와 동티모르의 삼림 세미나
제주도(평화협력과)와 동티모르의 삼림 세미나

제주특별자치도청과의 협의회

오늘은 제주도에서 대외협력 대표단이 이 곳에서 워크숍을 하는 날이다. 제주도와 UNDP(유엔개발계획), 동티모르 산림청이 함께 주관하는 ‘제주-동티모르 우정의 숲’ 워크숍으로 삼림 가꾸기와 나무심기 행사의 첫 번째 날이다. 제주도와 동티모르는 아름다운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므로, 아름다운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 과제를 추진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결실을 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미나 장소는 UN HOUSE인데 가본 적이 없어서 최규환 자문관에게 약도를 그려 달라고 부탁해서 찾아 나섰다. 10번 버스를 타고 경찰청 반대쪽에서 내려 도보로 찾아갔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갔는데 세 번이나 엉뚱한 곳으로 안내받았다. 이 곳 사람들이 그런 기관이 어디 있는지 알기는 어려울 수도 있었다.

역시 내가 맨 처음 도착했다. 회의장을 준비하고 있는 이성길 UNDP 전문위원을 만나 인사도 하고 등록도 했다. 그도 제주도에 여러 번 다녀 본적이 있다고 했고 지금은 이 기관에서 계약 봉사직으로 일하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끔씩 우리 아파트에 와서 몇몇 여자 봉사 단원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분이었다.

제주도에서 준비한 티셔츠와 제주 황칠나무 마스크 팩, 제주 동백 동산이 그려져 있는 손수건 등을 기념품으로 배부했다. 마침 한국에서 손수건을 한 개 밖에 가져오지 않아서 필요했었는데, 내가 가장 필요한 것을 얻게 되었다. 이곳에서 여러 상점을 다녔으나 손수건을 구할 수 없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김남진 평화협력과장, 글로벌 이너피스 고은경 대표, 생태관광협회 고제량 대표와 김유진 국장 등 9명이 참석했다. 제주도 사람들을 이 곳 동티모르에서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

제주대 송창길 교수를 만나다
제주대 송창길 교수를 만나다

그 중에서 제주 황칠나무 사업단장이며 제주대학교수인 송창길 선생님도 있었다. 송 교수는 내가 전에 함께 근무했고 존경하는 송창윤 선생님 동생이다. 아버님 상이 났을 때 안덕에 있는 고향집까지 문상 갔던 기억이 새롭다. 송창윤 선생님은 나와 같이 영어교사로 얼마 전까지 제주외국어고등학교 교무부장으로 일하다고 퇴직하셨는데 아주 성실하고 신앙심이 깊은 좋은 선생님이셨다. 동티모르에서는 산림청장과 산림 관련 전문가와 기관장 30여분이 참석했다.

세미나는 동티모르의 삼림 현황과 식목 및 육림 계획 등에 대한 산림청장의 발표가 있었다. 이어서 제주대표단이 설명하는 세계 모범국인 한국의 식목 사업의 역사, 현황과 육림 계획, 제주 황칠나무 소개와 상업화, 제주 동백 동산 생태학습 내용 발표와 질의응답이 있었다.

질의 시간에 나는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 가장 큰 원인은 백단목(Sandal Wood)을 유럽에 가져다 팔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현재 동티모르의 백단목 현황과 분포 지역, 또 이를 자원화 하는 방안 등을 질의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참석했지만 제대로 알고 답변해줄 사람은 없었다. 한참 기다리다 결국 산림청장이 답변했다. 백단목은 워낙 고가여서 포르투갈 등이 모두 베어가 버려서 큰 성목은 거의 없고, 이제 키우기 시작한 작은 나무들이 있으면 따라서 분포 지역 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백단목을 잘 키우고 이를 사업화 한다면 앞으로 동티모르의 큰 소득 사업이 될 것 같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백단목 1kg에 80달러 정도 한다고 한다.

12시까지 예정되었었으나 열띤 토론이 계속되어 결국 13시가 되어 끝났다. 배급한 도시락을 먹고 귀가하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해마다 5000만 원 정도 지원하고 있다. 주로 산림 관련 사업에 지원한다. 이런 큰 행사에 대사님이 안 보인다.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사실 어제 대사관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사님은 이런 큰 행사를 하려면 사전에 대사관과 협의하여 추진해야 하는데, 제주도가 독자적으로 일을 하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아니면 다른 일정 때문인지 대사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동티모르 산림청장과 이곳 특산 수종인 배단목 식목
동티모르 산림청장과 이곳 특산 수종인 배단목 식목

백단목(Sandal Wood) 식목

오늘은 ‘제주도-동티모르 우정의 숲’ 조성 식목행사가 있는 날이다. 가까운 도밍고 성당에서 아침 미사를 하고 집에 오니 7시 10분이다. 행사 준비를 하고 7시 20분경에 경은지 선생 방에 노크를 하니 금방 나오겠다고 한다. 잠시 후에 우리 집 반대 방향에서 1번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이쪽 방향은 처음이라 경선생님께 주변을 잘 살피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전에 UNDP에 갔다 온 적이 있지만 그녀 자신이 길치여서 잘 모르겠다고 한다. 어제의 기억을 되살려 농림부 부근에서 내려 찾으니 쉽게 갈 수 있었다.

우리는 East Gate에서 만나서 함께 식목지로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보인다. 여기서 일본인 인턴 Siege 등을 만나기로 했었다. 경비에게 이 곳이 East Gate가 맞느냐고 물어 보았으나 대답을 못 한다.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lan)에 근무하면서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니 황당한 일이기도 하다.

조금 기다리니 길 건너 쪽에서 인턴 시게가 보인다. 우리말 시계와 발음이 같아 암기가 쉬웠다. 얼마 후에 일본인 봉사단, 인도네시아 봉사단, UNDP 요원 등이 도착했다.

행사 장소인 Liquisa까지는 1시간 정도의 거리다. 수도 딜리에서 시경계선을 넘을 때까지 도로는 너무나 많이 패여서 웅덩이가 많고 또 중간 중간에 산사태로 암석이 도로를 덮치고 있는 곳들도 많았다. 방치되어 있고 공사 흔적과 노력이 안 보였다. 좁은 1개 차선을 서로 교대하며 지나가야 했다. 야간에는 가로등도 없고 해서 운행에 위험이 많을 것 같았다.

시 경계를 지나자 잘 포장된 도로가 나왔다. 이 곳은 인도네시아가 지배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로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했었다. 현재 동티모르의 기반 시설은 거의 인도네시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발이 늦었기 때문인지 차는 계속 과속한다. 운전 실력은 좋아 보였다. 가는 길의 1/3은 해안도로다. 이 곳은 주변에 하수가 흘러가는 취락이 없기 때문인지 바닷물이 아주 맑다. 가는 곳까지 주변은 나무가 무성하다. 이런 곳에 굳이 식목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일조량이 풍부하니 나무가 자라기에 적절한 곳 같다. 나무도 상품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는 수종을 선택해서 잘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장은 포장도로에서 조금 벗어난 언덕 위에 있었다. 많은 차량들이 이미 비포장 도로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관공서 직원, 주민, 제주도민과 국제 봉사단 등 300여명이 모였다. 7, 8명의 여학생들이 화려한 타이즈 모양의 전통 의상을 입고 노래와 춤으로 환영한다. 족장이 외빈에게 타이즈를 목에 걸어준다. 여분이 많은지 나도 한 장 얻었다.

식목행사 개회식
식목행사 개회식

식목 행사장인 언덕 위 평지에는 이미 넒은 천막을 쳐져 있었다. 평탄 작업이 되어 있었고 방송 시설도 되어 있었다. 또 외빈이 식목할 장소는 미리 구덩이를 파 놓았다. 식은 길고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동티모르 산림청장, 주산림국장의 인사와 제주도 대표단의 답사 등이 있었다. 산림청장이 오늘 식목 수종은 백단목(Sandal Wood)라고 하며 함께 식목을 하자고 한다. 백단목은 유카리투스 잎과 비슷하다. 그는 흰 Sandal Wood도 있고 빨간 Sandal Wood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도 함께 찍고 식목도 했다. 너무도 보고 싶었던 백단목을 직접 심게 되어 가슴이 벅찼다. 기념으로 백단목 잎 3개를 따서 지갑 갈피에 넣었다.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았다.

행사장 옆에서는 원주민 어른들이 작은 돼지와 염소를 잡고 있었다. 돼지의 지라를 꺼내 원로 노인에게 보인다. 제물이 오염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노인이 ‘디악 디악(좋아 좋아)’하면서, 정결하다고 선언하자 다음 해체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식목 행사가 끝나고 산 밑으로 내려오니 뷔페식으로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밥, 양고기, 돼지고기, 치킨, 야채, 파파야 등 푸짐하다. 맛도 있고 우리 입맛에도 잘 어울린다. 제주도청에 근무하는 고정형 대외협력과 직원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제주제일고 32회 졸업생이었다. 내가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내가 32회에서 34회까지 그 학교에 근무했으니, 소위 앨범 제자에 속한다. 나와 친근한 고창근 전 교육국장이 3학년 담임이었다고 한다. 이 행사를 위해서 제주도에서 많은 예산을 지원했을 것이다.

또 오늘은 오후 2시부터 티모르 플라자에서 코이카 안전 교육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회의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티모르 플라자 1층에 있는 Kmanek Super에서 장을 보았다. 양파, 감자, 마늘, 사과 등을 샀다. 오늘은 가격이 모두 조금씩 싸다. 10달러 지불했다.

교육 장소는 5층 식당이다. 현지 코이카 직원 Rui의 안전과 치안 현황 설명이 있었다. 이어 이영대 자문관의 Global Leadership 강의가 이어졌다.

오늘은 연말연시를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해서 유흥과 퀴즈 풀기 등이 있었다. 역시 젊은 단원들은 재치가 있고 머리 회전이 빠르다. 나중에 상품 못 받은 사람들 나오라고 해서 최자문관과 함께 나갔다. 노래방 기기에서 첫 소절을 듣고 노래하는 것인데 내가 좀 알고 꽤 부르는 ‘상하이 트위스트’ 였다. 최 선생님과 함께 부르고 상품을 받았다. 냄비 세트다. 최 선생님은 지금 쓰는 냄비가 너무 낡아서 버리려고 했는데 잘 됐다면 아주 좋아한다. 나도 냄비를 쓰지 않고 코펠을 쓰는데 아주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 제품인데 집에 와서 조립해 보니 나사가 없었다. 어디서 구해봐야겠다. 오늘은 소위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밍고 수도원에서

어제 밤에는 거의 잠을 자지 못 했다. 침실의 냉방기가 고장 났었다. 찬 공기가 나와야 하는데 더운 공기만 나온다. 그럭저럭 뒤척이나 보니 날이 샜다. 팔뚝이 몹시 가렵다. 무엇이 물었나 보다. 조금 있으니 점점 부풀어 오른다. 어떤 벌레가 문 모양이다. 물파스로 진정시켜 본다. 처음에는 침을 발랐다. 사실 침에는 살균 효과가 있는 화학 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일요일 아침엔 항상 나름 대청소를 한다. 잘 쓸고 소독제와 라벤더 향 세정제를 혼합해서 바닥을 닦아 낸다. 변기와 세면대는 염소 희석제로 닦고 물로 씻어낸다. 처음에 입주했을 때는 누렇게 변색된 변기와 화장실 세면대, 또 싱크대 등이 오랫동안 잘 닦지 않아 아주 지저분했었다. 그러나 슈퍼에서 구입한 프랑스 세정제가 아주 효과적이어서 지금은 변기 등이 깨끗하다 못해 광채를 내고 있다. 아마도 아주 강한 염소계 세정제 같다. 그러니 항상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를 해야 한다. 워낙 게으른 성격이라 청소와 정돈을 잘 하지 않지만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엔 대청소하는 날로 정해서 몇 년째 해오고 있다.

8시 30분경에 남자주인 란도에게 가서 물도 안 나오고 에어컨도 고장이라는 얘기를 전했다. 그는 공기 순환 거름망 청소를 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아마 냉매 가스가 다 날아간 것이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내일 오후 2시에 에어컨 전문가를 보내겠다고 한다. 내일은 정상적으로 에어컨 가동이 됐으면 좋겠다.

예쁜 동티모르 소녀들과
예쁜 동티모르 소녀들과

수경 재배중인 고구마 줄기가 1.5미터 가량 뻗었다. 토란 같은 카사바도 4, 50센터 정도 줄기가 하늘로 뻗고 잎이 크게 자라서 옆으로 펼쳐진다. 집 안에 생물이 자라고 있으니 마음도 생각도 여유롭다.

오늘은 한인미사가 있는 날이다. 10시부터 판공성사가 있었고 이어서 10시 30분부터 야곱 신부님 집전으로 미사가 거행되었다.

미사 끝에 지난 미사에서 예고했듯이 신부님의 초대로 신부님 댁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주 좁은 골목길을 한참 지나야 신부님이 사시는 도밍고 수도회가 보였다. 골목길 너비가 40센티 정도인데 그 밑에는 하수도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방심했다간 바로 하수구에 빠지는 구조다. 신부님은 저녁 때 지나가다가 빠진 적도 있다고 했다.

관목들이 듬성듬성 심어진 그리 크지 않은 낡은 건물인데, 이층엔 수도회 입회자들인 동티모르 청년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7, 8개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소고기, 대형 완자. 스페니쉬 오믈렛, 소고기 라면, 치즈 고기 범벅, 또 우리 식구들이 준비한 샌드위치, 김밥 등 아주 푸짐했다. 포도주는 이 참사관님이 준비했다. 포도, 파파야, 바나나 등 과일도 나왔다. 신부님과 함께 생활하는 예비 수도사들이 준비했다.

신부님은 아랍 에머레이트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계셨다. 아주 수수하다. 모퉁이에는 모링가 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잎을 따서 음식에 자주 넣어서 조리한다고 한다. 세네갈에 있을 때는 모링가 잎 구하기가 쉬워서, 나도 말려서 차로 마셔 보기도 하고 했었다. 그러나 소문처럼 효험이 있는지는 체험하지 못 했다. 아프리카에선 친구가 모링가 잎을 한 포대 가져다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살펴보니 먼지 반 나뭇잎 반이어서 대여섯 번은 씻어야 차로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 나뭇잎은 깨끗해 보였다.

야곱 신부님은 포근한 인상에 항상 미소를 띠고 있다. 한국에서 8년 일본에서 12년을 사셨고 하니 한국말 보다 일본말을 더 잘 한다고 했다. 꼭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인상과 분위기가 비슷해 보인다. 내가 다음 교황님은 야곱신부님이 되어야 한다고 농담하니 아주 기뻐하신다.

차양이 처진 그늘 밑에서 점심을 들다 보니 더위에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10여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먼지와 땀을 씻고 소파에 앉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무현 선생님께 어제 전화로 성당에 다녀보지 않겠냐고 의중을 떠 보았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단다. 항상 느끼지만 누구나 처음 성당에 다녀볼까 하면 항상 마귀가 방해를 놓는다. 괜히 사람을 진중 심각하게 만들어서 주저하게 한다. 이 선생님은 한국에 있는 부인, 자녀들 모두가 가톨릭인데 외국으로만 떠돌다 보니 가장은 세례를 받지 못 했다. 가톨릭 신자가 돼서 귀국한다면 가족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것 같다. 다음 달 미사엔 성당에 함께 나왔으면 좋겠다.

(2017년 12월 13일, 12월 14일, 12월 15일, 12월 17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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