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70)종가의 불빛(하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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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70)종가의 불빛(하순희)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9.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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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의 불빛

압정 같은 시간의 켜 연꽃으로 피워내며

막새기와 징검다리 품어 안고 건넜다

돌아서 되새겨 보면 탱자꽃빛 은은한데

누군가는 가야만 할 피할 수 없는 길 위에서

지고 피는 패랭이처럼 하늘을 이고 서서

추녀 끝 울리던 풍경 그 소리에도 마음 기댔다.

아흔일곱 질긴 명줄 놓으시던 시할머니

담 넘는 칼바람에도 꼿꼿하던 관절 새로

한 생애 붉디붉은 손금 배롱꽃잎 흩날리고

어느 새 종가가 되어져 있는 나를 보며

대를 이어 밝혀주는 화롯불씨 환히 지펴

마음을 따뜻이 데우는 등불을 내다 건다.

                                            (하순희, '종가의 불빛', 전문)

 

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비근한 예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제례’라 함은 죽은 이들을 위해 갖추는 ‘예’ 쯤으로 알고 있는데 이와는 반대로 딱 한 사람, 산자를 위해 갖추는 ‘예’가 있다. 그것도 조상들과 종가의 모든 어른들을 모시고. 이름하여 ‘종부식’ 그것이 이것이다. 이는 한 집안을 대표함은 물론이거니와 한 문중을 대표하는 ‘종부’라는 그 이름이 갖는 위상이 얼마나 크고 엄중한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라 하겠다. 피할 수 없는 길, 그러나 반드시 누군가는 가야만하는.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그늘은 없는지 때론 연꽃으로 때론 탱자울로. 천근만근 그 무게감으로 인해 한 번도 하늘이 제대로인 하늘인적이 없어 때로는 추녀 끝 그 작은 풍경에 마음을 기댈 수밖에 없었던.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 말이 쉽지, 한 집안을 넘어 한 문중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는 일이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저 스스로가 불쏘시개가 되지 않고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라는 것을.

풀물이 들 듯 드는 게 ‘종가’에 있어서의 ‘종부’의 자리이듯 이왕지사 이렇게 받아 든 불씨라면 베롱꽃잎, 한 생 저 붉디붉은 손금처럼 이 세상 가장 따뜻한 불씨로 타오르고자 하는 시인의 저 마음을 누구라 감히 흉내라도 낼 수 있겠는가.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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