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관을 지나며
문경에 와서 문득 길이 새였음을 안다
긴 침묵의 부리로 석양을 쪼고 있는
거대한 저 바위들도 원래 새였음을 안다
죽지뼈 한 대씩을 부러뜨려 길 밝히고
부신 뒷모습으로 재를 넘는 가을 산
봉암사 극락전 한 채 봇짐처럼 떠메고
내게는 또 몇 개의 영과 재가 남았을까
그리움의 시위를 당겨 날개를 꿈꾼 이들
저렇게 새재를 넘어 먼 길 갔을 것이다
(박권숙, ‘주흘관을 지나며, 전문)
예견이라도 하셨던 것일까요. 봉암사 극락전을 봇짐처럼 떠메고 저렇듯 새재를 넘어 먼 길 가실 것이라는 걸. 새가 아니면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하여, 일찍이 저 길을 ‘새’라고 하신. 석양을 쪼는 긴 침묵의 부리, 부신 뒷모습의 저 가을 산 결국, 마지막 가시는 그 길조차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시고 스스로 그리움의 시위를 당겨 또 다른 세상의 하늘이 되어. ‘문경에 와서 문득 길이 새였음을 안다……’ 평소 염원처럼 저 재를 넘는 사람 모두가 다 새이길 소원하셨던 시인의 그 영전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조의를 표합니다. (시인 송인영)
저작권자 © 제주경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