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23)한글의 '만남'과 '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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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23)한글의 '만남'과 '남남'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10.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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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만남'과 '남남'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저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습니까?"

약 40여년 전에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4시부터 4시 반까지 방송되는는 일본 라디오 TBS의 '전국 어린이 전화상담실'에서 초등학생이 질문이었다. 어린이 질문에 회답을 하는 담당 선생은 날마다 달라서, 그날은 당시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고(故) 오기 마사히로 씨와 승려이며, 교육자로 유명한 무쟈크 세이교 씨였다. 어린이를 위한 방송이지만 질문을 받은 선생의 즉석 회답이 인기 있는 방송으로서 필자도 일을 하면서 언제나 이 방송을 듣고 있었다.

어린이 질문의 회답에 곤란한 두 사람은 웃으면서 서로 미루다가 무쟈크 씨가 말하게 되었다. (질문한 어린이 이름이 기억 나지 않아서 여기서는 '다나카'로 한다) "다나카 어린이는 간단히 말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셔서 태어났지만, 그 위로 다시 올라가면 부모님의 부모가 즉,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태어났어요. 다시 더 올라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부모가 게셨기 때문에 태어났어요. 이렇게 곧장 끝없이 올라가면 다나카 어린이는 지구가 태어날 때부터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분들 중에 누군가가 없었으면 다나카 어린이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예요. 그러니 다나카 어린이는 아주 소중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답변인지 몰라도 '저는 어떻게 태어났습니까'의 물음에 '지구가 태어났을 때부터 태어난 존재(생명)'이므로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아끼고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한다는 즉흥적인 감동의 답변에 필자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인간만이 아니라 지금 현존하는 모든 생명은 지구와 함께 탄생한 것이다.

불교에서 유래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타생지연(他生之緣)이라는 말이 있다. 순간적인 인연도 '지구가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한다'는 인연과 그 흐름은 동일하다. 이러한 순간적인 인연이라 할지라도 모든 인연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만남의 의미는 이처럼 무게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필자는 '만남'이라는 단어를 좋아 한다. 특히 한글로서 "만남'의 단어을 좋아 하는 것은 그 의미도 그렇지만 글자의 구조에 있어서도 완벽하기 때문이다. '만남'은 동사 '만나다'의 명사형이다. 이 만남은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성립되고 살아 있는 모든 만물의 생을 톱니바퀴처럼 얽혀져서 이끌어간다.

'만남'은 서로 상대적이어서 균형이 잡혀야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균형 속에는 서로의 이해와 배려 등이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더욱 빛난다.

만남의 글자를 분해하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돤다.

ㅁ+ㅏ+ㄴ= ㄴ+ㅏ+ㅁ

마치 방정식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만'과 '남'의 글자를 분해할 수 있다.

저울 양편에다 '만'과 '남'의 글자를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것을 상상해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똑 같아서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한글 구조 자체가 '만남'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딱 들어맞는 균형 감각을 갖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런지 몰라도 한글의 독창성에 대한 놀라움이다.

한글의 이 구조적 나열은 영어의 알파벳 기호로 대입해도 변함이 없다. 알파벳으로 '만남'은 'MAN NAM'이다. 이것을 한글의 만남처럼 분해하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한다.

M+A+N=N+A+M

알파벳 기호로서도 완벽하게 방정식처럼 분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남'의 반대어 의미를 갖고 있는 '남남'은 어떠한가. 남남의 글자도 해체하면 다음과 같은 등식으로 표기할 수 있다.

ㄴ+ㅏ+ㅁ = ㄴ+ㅏ+ㅁ

만남 때보다 글의 균형이 똑 같은 것만이 아니고 글 자체가 같은 글이다. 알파벳으로도 마찬가지이다.

N+A+M=N+A+M

'만남' 때와 똑 같이 헤어져 전혀 다른 '남남'이 되었을 때도 마치 대나무나 무우를 자르는 것처럼 반듯하게 자를 수 있다. 헤어진다는 단어의 의미와 다를 것 없다. 이와 같이 '만남'과 '남남'의 글자가 균형의 감각 속에 표기된 한글의 배열 구조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인식이 때로는 들기도 한다.

금년으로 한글날 575돌을 맞이 했다. 18개국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고, 이중에 8개국이 대학입시 과목이라고 한다. 초,중,고 한국어반을 개설한 나라는 39개국이며, 16개국은 정규 교과목으로 선정하고 있다.

'만남'과 '남남'은 가요곡도 있어서, '만남'의 첫 구절은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였고, '남남'은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가 오늘 밤 내 곁을 떠나갔네"였다.

6월 25일 제주경제일보에 '재일 2세 김예곤 씨 '한국어강좌'를 필자가 썼는데(사진 참고, 기사는 아래 주소 클릭하면 볼수 있음), 그 출판기념회를 내일(15일) 효고현에 있는 '봉래(蓬萊)산장'에서 열린다. 한일 양국인들이 모여 화기애애한 새로운 만남의 교류가 있을 것이다. 

http://www.jejukyeongj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46

제일2세 김예곤씨 '한국어강좌' 출판기념회 안내
제일2세 김예곤씨 '한국어강좌' 출판기념회 안내

일본어로 '만남'은 '데아이'(であい:出会い. 出合い. 出逢い)라고 하는데, 일본어 발음을 한글로 정확히 쓸 수 있고, 발음 리듬도 매끈해서 우리말 '만남'처럼 좋아 한다. 데아이 한자가 서로 다른 것은 문장의 내용에 따라 적합한 한자의 단어를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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