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헌의 비행기 이야기](30)블랙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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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헌의 비행기 이야기](30)블랙박스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11.0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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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문영헌 제주항공정책연구소 사무국장
문영헌 제주항공정책연구소 사무국장

항공기 사고가 날 때마다 가장 먼저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받는 대상이 있다. 바로 블랙박스다. 사고 당시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박스는 땅에 부딪히는 순간인 0.0065초 동안 자기 무게의 3400배를 견디고 섭씨 1100도의 고온에서 30분간 버틸 수 있는 특수재질로 만들어졌다. 자체적으로 전원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있어 6000m의 바닷 속에서 30일을 보내도 끄떡없다.

이렇게 튼튼한 블랙박스지만 미국 연방항공국(FAA)이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는 블랙박스를 둘로 나눠 비행기 앞뒤로 분산해 설치하라는 규정이 있다. 사고로 블랙박스의 자료를 전부 잃어버리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2021년 추석명절 연휴 기간 동안 코로나19 영향으로 외출하는 빈도수가 줄어 대부분 집안에서 TV시청을 하면서 영화감상을 많이 즐겼으리라 생각 된다. 인터넷에서는 감동의 댓글들이 많이 달린 것 들 중 하나가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더더욱 감동의 온도가 뜨거운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체슬리 설렌버거(일명 설리) 기장이 라과디아공항으로 회항하던 중 뉴욕 도심 한가운데에 추락하는 악몽을 꾸면서 시작된다.

2009년 1월 15일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 후 설리는 왜 공항으로 가지 않고 허드슨강에 비상착수 했는가에 대한 조사를 받는 공청회 내용이 영화의 줄거리가 된다.

NTSB(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미국연방 교통안전 위원회)가 공청회를 시작하면서 조사관의 특이한 언급이 “기장과 부기장이 살아남아서 CVR을 들으며 공청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아직까지는 없었다”라고 하면서 조종사들에게 축하의 분위기를 상기시키기도 했는데 여기서 언급된 CVR이 곧 블랙박스의 일부인 것이다.

[그림위 ]비행기 앞쪽 조종실 블랙박스, 조종실 음성녹음 장치. [그림 아래] 꼬리부분 디지털 비행자료 기록 장치.
[그림위 ]비행기 앞쪽 조종실 블랙박스, 조종실 음성녹음 장치. [그림 아래] 꼬리부분 디지털 비행자료 기록 장치.

비행기 앞쪽 조종석에는 블랙박스 가운데 조종실 음성녹음장치(CVR:Cockpit Voice Recorder)가 실린다. 조종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를 각각 4개의 채널로 나눠 저장한다.

채널1: 기장의 마이크로폰, 헤드셋 또는 스피커로부터의 음원

채널2: 부기장의 마이크로폰, 헤드셋 또는 스피커로부터의 음원

채널3: 조종실 내의 소음, 대화소리, 조작음

채널4: 제3 및 제4 승무원석의 헤드셋의 음원

CVR은 비행을 목적으로 엔진이 시동된 때부터 비행을 종료한 뒤 엔진을 정지시킬 때까지 항상 작동시켜 놓는 것을 의무화 하고 있는데 2008년부터 FAA에서 최소한 2시간 이상의 음성기록이 가능한 CVR을 장착토록 의무화 하고 있다.

비행기의 꼬리 부분에는 블랙박스의 다른 한 부분인 디지털 비행자료 기록장치(Digital Flight Data Recorder:DFDR)가 보관된다. 이곳엔 엔진이 과열된 정도와 시간, 조종사가 랜딩기어를 내린 시간, 뒷날개 꼬리 각도, 자동 장치 운항 여부 등 사고와 관련된 비행자료가 저장된다.

블랙박스는 비행기가 바다나 호수에 빠지거나 사고 당시 충격으로 현장에서 멀리 날아가도 찾을 수 있다. 자동으로 구조요청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호수나 바다에 떨어진 블랙박스는 저주파를 발산한다. 주파수 발신 장치에 물이 접촉하면 내부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 주파수 탐지기로 찾을 수 있는 진동수 37.5kHz의 전파를 내보낸다.

육지에 떨어져도 걱정 없다. 블랙박스의 색깔은 검정색(블랙)이 아니라 형광을 입힌 주황색이나 노란색이기 때문에 눈에 쉽게 띤다. 실제로 블랙박스를 찾지 못한 항공 사고는 2001년 911 테러의 사고를 제외하면 3건에 불과하다.

사고의 상황을 가장 객관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블랙박스이기에 배나 우주선, 자동차에도 설치된다. 1986년 발사한지 73초 만에 하늘에서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도 블랙박스가 있었다. 사고 뒤 수습한 블랙박스에는 발사 전 챌린저호에 탄 우주인과 관제소 사이의 대화와 농담을 비롯해 발사 뒤의 환호성이 기록됐다. 자동차용 블랙박스엔 사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차의 속도와 브레이크 압력, 앞바퀴 각도, 전조등 작동 여부를 주로 기록한다.

비행기 사고, 우주선 사고, 자동차 사고 등 어떤 사고든 당시 상황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블랙박스.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NTSB 측에서는 라과디아 공항과 테데보로 공항으로 회항을 하지 않고 인명피해를 가중시킬 수 있는 비상착수를 한 것은 조종사의 인적오류에서 기인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주장에 주인공인 설렌버거 기장은 '인적 오류를 밝히고 싶으면 인적(人的) 요소(要素)를 반영하십시오.'라는 중요한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비행기가 운항 중에 새와의 충돌(Bird Strike)을 당한 후 기장은 40년 비행 경험을 살려 엄격한 판단을 내리는 순간인 35초 동안이 인적 요소가 해당된다. 만약에 조종사들이 사망하여 CVR 내용만 청취하고 판단했다면 관제사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조종사 실수로 결론지을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무리 정밀한 장비인 블랙박스도 ‘불편한 진실’(?)이 떠오르는 이유가 왜일까!

                                                               <제주항공정책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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