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 (28)지워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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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 (28)지워진 벽화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11.09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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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벽화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오늘은 다행히 미크롤렛을 바로 탈 수 있었다. 베코라 성당에서 미사를 하고 학교로 가보니 학생과 학부모들이 30여 명 모여 있다. 오늘과 내일은 신입생 등록이 있는 날이다. 그 사이 활동 내용 정리와 우리학교 발전 계획 전반부 업무를 처리하다가 9시경에 강당 쪽으로 가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접수를 하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PAS 학생들이 나왔나 보니 아직 안 보인다.

2차 활동보고서를 오늘 마무리할 예정이다. 100쪽 가까이 된다. 보통 짧으면 10쪽 안팎으로 제출해도 되지만 여러 가지 업무를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 활동 추진 내용이 아주 많아졌다.

한국 대학생들이 그린 벽화.
한국 대학생들이 그린 벽화.

9시 30분경에 이무현, 경은지 선생님이 보이고, 이수옥 PAS 사무총장님도 오셨다. 내 사무실로 안내하여 차를 마시며 지금까지 한 활동 내용과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어제 오후에 학생들이 벽화를 그렸는데 비가 왔다. 폭우로 그렸던 그림들이 많이 지워져 버렸다. 내가 처음 시작할 때 유성을 써야 한다고 했으나 이 총장은 수성을 써도 벽이 완전히 건조된 후에는 지워지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했었다. 결과가 이렇게 돼서 다시 그리기 작업을 해야 한다. 나는 일부 학생들을 오전에는 햇빛이 나기 때문에 다른 활동에서 떼 내어 벽화작업을 하면 좋지 않을까 의견을 제시했으나, 토요일, 일요일에 하면 된다고 계속 작업 지시를 한다. 학생들에게도 자유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혹시 혹사시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 맞는 말이니 주최 측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총장님이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조금 전한다. 어려서부터 수영을 좋아했었다. 대학 전공은 집안의 뜻에 따라 가정학이었다. 대학원에서는 체육을 공부했다. 88 서울 올림픽 때 싱크로나이즈를 지도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갑자기 지도자가 되었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단기간 미국에 다녀왔고, 이를 계기로 20년간 수중 발레 업무를 보고 있다고 한다. 그 후 대한체육회장(한국 최초 레슬링 금메달리스트)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현재의 업무를 10여년 종사해 오고 있다. 나이는 들었으나 아주 열정적인 분 같아 보인다.

그제 한 여학생이 발작 증세가 있어서 오늘 대학 교수인 부단장과 함께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부단장은 발리까지 함께 가고 발리에서 여학생을 한국행 비행기로 탑승시킨 다음에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발작 증세는 시간이 지나면 안정되기 마련인데 여기까지 와서 준비했던 활동도 못하고 떠나게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인솔 책임자가 여러 가지로 판단해서 결정했겠지만 자신도 많이 괴로워할 것 같다.

오늘은 PAS 측에서 학교장과 교감, 또 한국 선생님들을 초대하여 함께 점심을 하기로 했다. 장성식당(Great Wall Chinese Restaurant)으로 갔다. 시설과 서비스가 좋지만 무척 비싼 식당이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분위기에서 중국요리를 즐겼다. 특히 Lobster도 한두 조각 맛봤다. 헤어져 나오면서 경은지 선생님이 바닷가에서 야자열매를 하나씩 사줘서 달콤한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내일은 봉사단 학생들의 마지막 날인데 한국대학생과 그 사이에 배운 우리 학생들의 태권도, 부채춤 등의 합동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PAS봉사단 임원진 환영식
PAS봉사단 임원진 환영식

땡칠이와 복구

오늘은 PAS 대학생들이 마지막 활동일이다. 9시 30분부터 대강당에서 3일간 배운 우리 학생들의 공연이 있었다. 태권도, 부채춤, K-Pop 공연을 우리 학생들이 했는데 훌륭한 공연이었다. 교장은 연신 싱글대면서 이러한 인연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공연 후에는 교장 교감에 대한 감사장, 또 80여명의 참여 학생에 대한 수료증과 에코백 선물 증정이 있었다. 단장은 올해 가능하면 우리학교의 교사 1명, 학생 1명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단기 연수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비행편은 참가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니 실현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학교 예산으로 감당할 여건도 안 된다. 코이카 정혜진 과장이 늦게 도착하여 공연을 조금 관람하다가 갔다.

오늘은 신입생 등록일이어서 학교에서 도시락을 제공했다. 치킨이 들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먹다 버린 닭 뼈와 밥 등을 모아서 귀가했다. 우리집 강아지 땡칠이와 복구에게 주니 아주 신나하면서 잘 먹는다. 요즘 땡칠이는 임신을 해서 무엇이나 잘 먹는다. 어제는 주스와 코코아를 주기도 했고 식빵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성이 차지 않는지 계속 달라고 한다. 오늘은 가져온 음식을 그릇에 한 가득 쏟아 주었다. 오랜만에 폭식하나 보다.

집주인은 요즘은 베트남 여행 중이다. 그러나 개는 누구에게 부탁하지도 않고 스스로 자립하라며 방치하고 떠났다. 참으로 한심하다. 하물며 이 개들은 집도 없다. 집안 여기저기서 적당히 노숙한다.

3시경에 귀가했다. 한 끼 먹으면 다음 한 끼를 걱정하는 게 인지상정 같다. 저녁이 걱정된다. 가스가 떨어진지도 2주가 다 되어간다. 개인이 관리하면 내가 상점에 가서 교체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임대료에 다 포함되어 있어서 내가 처리하기도 그렇다. 주인도 관리인도 모두 해외여행 중이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

건물 청소 아줌마도 덩달아 나타나지 않으니 건물 여기저기가 쓰레기 집하장이다. 일층 가게 집사에게 얘기했으나 묵묵부답이다. 다시 전화를 거니 이번에는 와서 가스통을 교체해 주었다. 알고 보니 밑에 가게에는 여러 개의 가스통이 있었다. 물론 빈 것인지 가스가 채워져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가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에 가스 없이 살아도 별 불편함은 없었다. 밥은 전기밥솥이 있으니까 할 수 있었고, 밑반찬도 한두 개 있었다. 찌개도 렌지를 이용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그릇에 재료를 넣어서 20분 정도 돌리면 먹을 만 했다. 그 사이에 빵을 먹거나 외식을 하기도 했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고 걱정도 사라진다는 것을 배웠다. 더 열악한 환경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대로 잘 지낼 수 있었다.

신입생 등록 업무를 지원하는 재학생들
신입생 등록 업무를 지원하는 재학생들

내 생일 그리고 벌 쏘인 봉사단원

오늘은 내 생일이다. 아침에 도미니꼬 성당에 가서 미사를 봤다. 중국인 신부를 포함해서 네 명의 신부가 집전한다. 그분들도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성대하게 미사를 드리다니!

집에 와서 카톡을 검색해 보았다. 몇몇 친구들의 생일이 떠올라 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정작 내게 온 메시지는 없다. 가족 카톡방에 ‘오늘 내 생일인데 모두가 바쁜가 보구나!’ 하고 인사를 보냈다.

전에 어떤 선생님이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자기 딸이 다섯 살 때 혼자 초코파이 한 개를 사다가 촛불을 꽂아 켜고, 혼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축하 의식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으니 자축한 것이다. 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아침 겸 점심으로 국수를 삶아서 간장, 식초, 참기름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비빔국수로 먹었다. 담백하고 입에 잘 맞는다.

오후에 PAS 학생 두 명이 생일을 맞는다고 해서 이무현 선생, 박형규 선생과 함께 미크롤렛을 타고 대학생 숙소로 갔다. 크리스토 레이 근처의 호텔인데 이름은 Paradise Hotel에 부속된 Cover Hotel 이다. 학생들은 빨래도 하고 음식도 만들고 청소도 하고 모두가 분주하다. 그중에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만들고 있는 이수옥 단장님도 보인다.

호텔이 해변에 접해 있어서 바람이 불어 올 때는 시원하다. 조금 있으니 조희영 선생님도 왔다. 버스기사가 더 타고 가라고 하면서 내려주지 않아 고생했다고 한다. 예쁜 한국 여선생님이 혼자 타고 있으니, 오래 있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난번엔 학교에 가는데 한국어를 배워달라며 기사가 계속 때를 써서 십여 분 늦게 출근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피부를 지닌 한국의 여선생님이어서 말을 걸고 싶었나 보다. 콜라를 마시며 석양을 본다. 바다 너머로 붉게 타오르다 지평선으로 져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건축과 학생들의 실기수업 모습
건축과 학생들의 실기수업 모습

옆에 있는 다른 호텔 정원에서는 임시로 대형 천막을 치고 밴드가 음악을 크게 연주한다. 잇따라 많은 차들이 모여든다.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고 있다. 결혼식 날 이들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밤에는 호텔 광장 등을 빌려서 밤새 춤추며 먹고 마시며 보낸다. 그 스피커 소리가 워낙 커서 주변 사람들의 취침에 많은 지장을 준다. PAS 학생들도 오늘 밤은 제대로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이무현 선생님이 낮에 티모르 플라자에 가서 케이크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 곳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베이커리가 별로 없어서 구하기가 힘들다. 오늘 21살, 24살 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덕분에 나도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얘기하고 곁다리로 성대한 생일 축하를 받게 되었다.

차려진 음식은 돼지 목살 바비큐, 야채 전, 브로콜리 디저트 등이었다. 돼지 숯불구이가 일품이었다. 남학생들이 고기 굽기 등 거의 모든 일들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학생이 몹시 고통스러워한다. 벌에 쏘였다.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점점 아프다고 한다. 이에 적합한 비상약이 없었다. 단장은 보험사인 SOS에 전화를 건다. SOS에서는 그냥 한 서너 시간 견디라고 한다. 그 사이의 고통과 몸이 부어오르는 것이 문제다.

나는 조심스럽지만 내 경험을 얘기했다. 전에 산소에서 벌초를 하다가 벌에 쏘인 적이 있었다. 산에서 별 방법이 없었는데 어른들이 했던 얘기가 기억났다. 벌의 독을 중화시키는 데는 암모니아가 필요한데 암모니아는 소변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내 몸의 암모니아를 발랐더니 신기하게 바로 나았었다. 조금은 쑥스러운 처방이다. 그래선지 그냥 견디는 모양이다.

학생들 숙소를 가봤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난민 수용소였다. 3, 4평 정도의 좁은 방에 10여개의 매트리스가 놓여있다. 문도 합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것으로 문고리로 걸고 출입하고 있었다. 문밖에는 모기향이 두어 개 피워져 있었다. 화장실은 가관이었다. 대부분 변기 뚜껑이 없거나 있는 것도 다 떨어져 나가 분리되어 있었다. 샤워 시설은 비닐 천으로 구분되어 있다. 세면대는 수도꼭지와 배수구 구멍 밖에 없다. 엄청난 모기떼가 왔다 갔다 힘차게 날아다니고 있다. 봉사, 체험 활동도 좋지만 기본 시설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이 모자라면 다른 분야의 예산을 감축하든지 참가 학생 수를 줄이든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식사 후에 오늘 생일을 맞은 우리 세 사람이 가운데 앉고, 케이크에 불을 켜고 축하 노래와 커팅을 했다.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 벌써 택시도 버스도 끊겼다. 결국 미크롤렛을 대절하기로 했다. 5달러다. 그런데 우리 집이 있는 Culuhun에는 안 간다고 한다. 의례 탑승한 후에는 기사가 돈을 더 요구하기 때문에 이무현 선생과 나는 비다우 성당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주변에 채소 상점들에는 그래도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도 오가니 걱정이 덜 되었다. 밤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 호텔에서 주어온 돼지 뼈를 강아지에게 주려고 땡칠이를 불렀으나 보이지 않는다. 냉장고에 담아 두었다. 내일 주어야 하겠다. 오늘 여러 사람 덕택에 뜻 있는 생일과 축하를 받게 되었다. 다시 한 해 성실히 착하게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살아야 하겠다.

미사에서 성가를 부르고 있는 도미니끄
미사에서 성가를 부르고 있는 도미니꼬 보호시설의 여학생들

휘청거리는 직원들

한인 미사가 있는 날이다. 미사 때 어제 내 생일이어서 신부님이 제대 앞으로 나오도록 해서 특별 강복과 안수를 해주셨다. 회장님이 신자들 신상을 일일이 잘 파악하고 세심히 배려하고 있음을 느꼈다. 고맙고 자상한 회장님이다.

오늘은 신부님과 수녀님을 위해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미사 끝에 성당 문 밖에서 수녀님을 기다렸다. 학생들이 비다우 성당 9시 영어미사를 마치고 돌아가고 있었다. 수녀님이 보인다. 수녀님께 여름용 티셔츠 네 장을 드렸다. 지난 토요일 함께 식사한 수녀님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95사이즈가 한 개, 90 사이즈가 세 개다. 모두 신상이다.

아이들은 나에게 ‘본디아! 디악 깔라에?’ 인사를 하면서 악수도 청하고 어떤 아이는 내 손 등에 친구(교회에서 존경의 의미로 입술을 갖다 대는 의식)하면서 반가움을 표시한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미사 후에는 신부님께 남성용 티셔츠 두 장을 드렸다. 중국인 신부님과 야곱 신부님을 위한 것이다.

미사 후 신년 하례회를 겸해서 온 가족이 중국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좀 푸짐한 식단이었다. 중국산 백주도 두 잔을 마셨다. 워낙 술에 약해서 벌써 취기가 돈다.

대화 중 금교건 회장님 얘기를 듣게 되었다. 금회장님은 혼자 이 곳에 와서 오랫동안 아마 대단한 규모의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규직원만 60명이 된다고 한다. 아마 이곳에선 가장 큰 건축회사 중의 하나 같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 6개월간 일이 거의 없어서 모두 쉬고 있다는 것이다. 급료는 꼬박꼬박 지불해야 한다. 이제 파산 직전이라고 했다.

동티모르는 최근에 독립했기 때문에 선진국의 노동법을 그대로 가져다 만들었다. 그래서 선진국 노동법을 적용하다 보니 회사 경영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고하려면 3 개월 치 월급을 줘야 한다. 월차, 휴가 등은 꼭 지켜야 하고 휴가를 반납하면 일급으로 계산해서 지불해야 한다.

의회가 오랫동안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아 요즘 공직 사회도 불안하고, 공무원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회장님의 말로는 노동부의 경우 40%의 직원들이 사표를 냈다고 한다. 월급이 안 나오니 생계를 위해서 퇴직하고 다른 일들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에는 선생님도 몇 달씩 봉급을 못 받았었다. 나중에 쌀을 받거나, 학생들의 월사금(학비)을 받아서 쓰라고 지시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가장 인기 없는 직업이 공무원, 특히 교직이었다. 많은 공무원과 교사들이 그만두었다. 제주도의 경우는 황금작물이며 대학 나무라고 하는 감귤 재배에 몰입했고, 또 많은 수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꾸준히 공직을 지킨 분들은 나중에 좋은 보상도 받고, 안정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곳도 정정 불안으로 공무원들의 어려움이 크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가사업을 잘 돕고 지원해야지, 모두 그만두고 나가겠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는지 걱정이 많이 된다.

오늘은 한인 성당 예산 결산을 했는데 적립금이 많아서 그 중에 2000달러를 도미니꼬 고아원의 초, 중, 고, 대학생 40명의 학비로 지원하기로 의결했다. 모든 고아원 원아들의 1년간 학비다. 참으로 뜻 깊은 생각과 결정이었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성당을 빌려서 미사를 드리니 성당 임대료나 신부님 수고비 등도 지불하는 것 같다. 그리고 수시로 한국을 다녀오면서 중고 의류 등을 가져다 아이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2018년 1월 4일, 1월 5일, 1월 6일, 1월 7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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