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31)학생이름을 모두 외워 부른 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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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31)학생이름을 모두 외워 부른 대사님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12.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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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이름을 모두 외워 부른 대사님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베코라기술고등학교 발전 전략 제2부를 완성하여 교장, 두 교감에게 책자로 만들어서 제공했다. 그리고 3부 집필 세부 계획도 세웠다. 오후에 PAS 대학생들의 폐막식이 있다고 해서 거주하는 호텔로 향했다. 5시에 시작한다고 해서 4시 30분에 비다우 성당에서 이무현 선생님을 만나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성당에 도착해 보니 성당 주변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바깥문에서부터 모든 화단에 이르기까지 온갖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입구에는 현수막으로 Seja Vembino 라고 걸려 있었다. 아마 결혼식이 있나 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미사에 참례했을 때 제대 중앙에 주교좌 의자가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주교님이 주례하는 결혼식 행사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되었다. 길에는 5, 6명의 경찰관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교육부 장차관과 함께
교육부 장차관과 함께

12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버스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큰길가로 나가 보기로 했다. 15분 정도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택시로 가기로 했다. 이미 손님이 타고 있는 택시인데 자꾸 합승하라고 한다. 별로 멀지 않는 곳이어서 1달러면 될 것 같은데 3달러를 요구한다. Paradise Hotel 까지 2달러에 합의했다.

중간에 손님이 내렸다. 가면서 기사는 계속 3달러를 요구한다. 이미 2달러로 합의했는데도 막무가내다. 하도 귀찮게 하니 중간에 내려서 2달러를 주었다. 오늘 버스가 끊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곳의 거의 유일한 관광지인 크리스토 레이를 운행하는 버스인데 실제 손님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곳 버스 요금은 어디든지 25센트다. 그래서 요금 인상을 요구하며 Strike를 벌이고 있고 버스도 운행을 중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텔에 도착하니 UNTL(한국의 서울대학교에 해당) 부총장이 프로그램 진행 내용을 협의하고 있었다. 인사하고 함께 촬영도 했다. 잠시 후에 시간에 맞게 이친범 대사님이 도착했다. 엊그제 오래 대화한 사이여서 친근감을 느껴졌다. 나는 우리 단원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PAS 이기옥 단장님을 소개해 드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총장이 도착하지 않아 행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부총장의 설명에 의하면 오늘 5시에 오스트레일리아 대사의 이임식에 총장이 참석했는데 끝나면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옆에 앉은 이 대사님은 심경이 몹시 불편해 보인다. 대사님도 오늘 다른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을 포기하고 이 곳에 온 것이다. 예정된 공식 행사에 많이 늦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대사님은 목에 타이즈를 걸고 있다. 오늘이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출한 날이어서 대통령 궁에서 받은 것이다. 40여분 지나자 총장이 도착했다.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이다. 프란치스코라고 한다. 가서 인사를 드리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폐막식은 15분 정도의 부총장의 경과보고, 총장 환영사가 15분, 이어서 이기옥 단장의 인사말, 이친범 대사님의 축사 등이 있었다. 작년에 UNTL 총장 일행이 한국을 방문하여 PAS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었다. 그래서 오늘 폐막식은 UNTL에서 주최하고 있었다. 150인 분의 뷔페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대사관저에서 이친범 대사님과 함께
대사관저에서 이친범 대사님과 함께

오늘 폐막식에서 특히 인상적인 광경은 이친범 대사님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26명의 한국 대학생들 이름을 모두 외워서 불러주었다는 것이다. 가나다 순으로 암기하여 일일이 호명했고, 학생들은 차례로 일어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재외 국민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너무도 잘 표현한 장면이었다.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모든 학생의 이름을 외워 불러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도 참석자들도 모두 흐뭇해하는 장면이었다. 이제는 UNTL 총장도 학생 이름 외우기에 바빠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에는 K-Pop 공연, 태권도 시범, 부채춤, 동티모르 초청 가수 공연, 현지 학생들의 집단 체조와 카드 마술 등이 공연되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20여분의 시간에 급히 음식을 들고 코이카 차량으로 귀가했다. 차려진 음식은 밥, 돼지고기, 소고기, 쇠간, 사과 디저트 등이 나왔다. 한국 대학생들도 음식을 준비했는데 불고기, 잡채, 오징어무침 등이었다. 9시가 조금 지나 오랜만에 늦게 잠이 들었다.

딸의 결혼식

3주 만에 다시 동티모르를 밟는다. 그 사이에 3주간의 정기 휴가를 다녀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를 겪었다. 우리 딸 진솔이가 시집을 간 것이다. 신랑은 SK 재무팀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미국 공인회개사이다. 딸은 CJ 올리브영 과장이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이곳에 부임하기 전에 상견례를 했는데 아주 건실하고 믿음직한 청년이었다. 사돈 어르신은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시고 여자 사돈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교원 가족이나 우리 집과 사정이 비슷해서 서로 이해도 쉽고 여러 가지로 편했다. 결혼식은 대구의 Novota 호텔에서 있었다. 진솔이는 키가 좀 커서 175센티 정도이고 신랑도 비슷하다.

대사관 초대를 받고
대사관 초대를 받아 식사대접을 받았다.

결혼식 중에 신부에게 부치는 말이 있어서 나는 ‘사랑하는 딸 진솔에게’라는 글을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써서 읽었다. 낭독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주례석에서 내려오면서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음을 느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사랑하는 딸 이진솔 리따의 새 출발을 축하한다. 엄마와 나는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미리 ‘진솔’이라는 이름 지어 두었었다. 물론 아들인지 딸인지도 몰랐지만. 성장이 빨라서 첫 돌날 색동옷을 입고 혼자 걸어 다녀서 모두가 놀라워했었지.

프랑스와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고 오늘까지 쉬임 없이 달려왔구나. 앞가림과 홀로서기를 잘 했던 진솔이가 우리는 항상 대견스러웠다. 어려서부터 글씨도 예쁘고, 춤도 잘 추고, 글도 잘 만들고, 특히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어 언제나 흐뭇했었다. 기억하겠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손바닥이라도 때려본 적도, 심하게 꾸짖은 적도 없었다. 진솔이는 소중한 보석이었고 기쁨이었고, 우리의 기둥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세 가지 사건이 있다. 탄생과 죽음 그리고 결혼이다. 그러나 탄생과 죽음은 우리가 경험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이므로 결혼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제 진솔이는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너무도 훌륭한 배우자 인한 군을 맞게 되어 우리들은 너무도 기쁘다. 온순하고 차분하고 친절하고 배려심이 가득 찬 좋은 동반자를 만난다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요 행운이다.

인한군을 보면서 강호진 선생님, 박해경 선생님 사돈 내외분이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정성을 쏟으셨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두 분은 결혼이 결정되고 오늘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새신랑 신부를 위해 기도해 오신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수십만 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줄로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셨다. 남도 이러할진대, 이제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룬 부부는 더 극진하고 정성을 다하는 보살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학습시간
인근 초등학교 학습시간

사랑은 무엇일까 우리는 자주 생각해 본다. 고린도 전서 13장은 'Love is patient and kind.'로 시작된다. 사도 바오로는 사랑의 본질을 많이 얘기했다. 사랑의 첫째와 핵심이 인내하고 친절한 것이다. 어떤 경우도 참고 견디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사랑이고, 행복한 가정의 근간이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내가 항상 마음에 두고 생활해 왔던 구절로 이제 내 딸과 사위에게 전해 주게 되어 나도 기쁘구나.

예수님은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는 자녀의 기를 꺾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 단순한 내용을 실천하면 가정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행복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화촉을 밝혀주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쏟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평생 감사드리며, 그분들의 소망을 잘 실천하기 바란다. 언제나 오늘처럼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중에 내가 쓴 내용에 감동했다는 말과 눈시울이 뜨거웠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섭섭함이 크지만 적정한 시기에 보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31살이니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오빠인 동근이가 아직도 짝을 못 찾아 혼자 살고 있으니 또 하나의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구에서 결혼식을 하고 이튿날은 제주도 라마다 호텔에서 신부 측 피로연이 있었다. 온 가족이 전날 저녁에 제주로 내려와 다음 날 행사 준비를 했다. 폭설과 비행편이 걱정되었지만 무난히 입도할 수 있었다. 엄청난 폭설에 많은 분들이 피로연에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무사히 행복하게 대사를 잘 치를 수 있었다.

지금 신혼부부는 아프리카 모리셔스에 있다. 제주의 기온은 영하 10도인데 모리셔스는 영상 35도라고 한다. 일교차가 45도이다. 친구들도 냉탕 온탕 싸우나 하고 있다고 놀린다.

다시 동티모르 집에 오니 기르던 화초들이 이리저리 여기저기로 줄기를 뻗히고 엉망인지 자유로운지 무질서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카사바와 고구마 줄기 등을 정리했다. 대청소를 하고 티모르 플라자로 갔다. 인터넷 모뎀 두 개와 현지 휴대폰 풀사를 충전했다. 60달러가 들었다.

저녁은 한국에서 사온 블록 국거리를 끓는 물에 부어서 즉석 국을 만들고 밥과 함께 먹으니 아주 괜찮아 보인다. 오늘 국거리 블록은 미역국이다. TV에서 평창 올림픽 뉴스를 방영하고 있다. 10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금세 다시 고향에 돌아온 듯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도미니끄 여학생들을 위한 예쁜 교복 40벌

일요일이어서 9시 비다우 성당 영어 미사 참례를 했다. 미사 끝에 도미니꼬 니나(Nina) 수녀님께 한국에서 휴가 다녀오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교복 40벌을 가져왔는데 전달하고 싶다고 전했다. 수녀님은 오늘 12시에 고아원으로 오면 된다고 했다.

황남서 요한 형제의 협찬으로 도미니끄고아원에 교복 40벌을 기증했다.
황남서 요한 형제의 협찬으로 도미니끄고아원에 교복 40벌을 기증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간단히 아점을 먹고 교복 보따리를 들고 나섰다. 거의 20Kg 정도였다. 꽤 무거웠다. 버스를 탈거리도 아니고 또 그 곳까지는 버스 편도 없다. 택시 값은 너무 비싸다. 2Km 정도의 거리니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무더운 더위와 무거운 짐이 문제이기는 하다. 천천히 운동 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여러 차례 쉬면서 20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아이들이 미사에 참례하는 것을 보면 조금 초라한 유니폼에 가난함이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져온 스커트를 입으면 아주 귀해 보일 것 같다. 이 유니폼은 제주도에서 학생복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황남서 요한 형제의 협찬을 받은 것이다. 밤색 20벌 곤색 20벌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사이즈 별로 준비했고, 또 수녀님을 위해서 브라우스 20벌도 가져왔다.

이 옷들을 가져오다 보니 사실 내 수하물은 거의 가져오지 못 했다. 특히 발리에서는 위탁 수하물 허용 무게가 겨우 20Kg이어서 가방에서 짐들을 꺼내 기내 수하물로 들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가 면세점에서 구입한 것은 3만 원짜리 로션 스킨 세트, 20개 들이 라면 한 박스가 전부였다.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아원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아이들이 새 옷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떠 올리니 기쁘고 가벼웠다. 20여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멋진 스커트를 몸에 맞는 것으로 고르게 했다. 한 벌씩 들고 함께 촬영했다. 기증해준 황남서 요한 형제에게 보내기 위해서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길쭉한 쌀 Robster 10Kg을 구입했다. 이제 밥 지을 쌀이 있고 한국에서 국거리도 사왔으니 이만하면 풍족한 살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코이카에서 설 격려품이 도착해 있었다. 아주 귀한 믹스 커피, 참기름, 고춧가루, 초코파이, 라면 등이 들어 있었다.

이 곳에서의 생활 6개월이 벌써 지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잘 지낼 수 있도록 잘 지원해 주신 모든 분들 또 항상 나를 지켜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2018년 1월 19일, 2월 10일, 2월 11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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