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32)자식 잃은 땡칠이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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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32)자식 잃은 땡칠이의 미소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1.0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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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땡칠이의 미소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땡칠이 이야기를 좀 해보자. 스무 날의 국내 휴가를 마치고 마당을 들어섰는데 아무도 맞아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집 강아지 땡칠이가 꼬리를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역시 개는 배반하지 않는 동물인듯 하다. 또 아주 똑똑하기도 하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 먹을 것을 들고 땡칠이를 찾았으나 찾지 못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런데 계단 밑 나무를 쌓아둔 곳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그 어둠 속에 땡칠이가 있었다. 그리고 또 작게 움직이는 것이 있어 살펴보니 새끼 다섯 마리가 있었다. 나는 며칠 간 그 속에 먹이를 갖다 주었다.

다섯 자식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살던 계단 밑 둥지를 보니 청소가 되어 있었고 다른 건축물들이 쌓여있다. 주인은 아직도 땡칠이 집을 마련해 주지 않고 있다. 그냥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자나 보다. 자세히 보니 처마 밑에 새끼 한 마리가 있다. 흰색과 누런색이 혼합된 아주 귀여운 새끼다. 아마 나머지는 벌써 팔아버린 것 같다. 지금까지 네댓 번은 새끼를 낳았을 터인데 계속 이런 과정을 격고 있다.

오늘은 냉장고를 뒤져 쇠고기 간을 꺼냈다. 쇠간은 무척 싼 편으로 1Kg에 3달러 정도 한다. 간장으로 간을 해서 삶았다. 그 국물과 약간 탄 부분을 잘라서 넣고 따뜻한 밥에 말아 땡칠이에게 가져다 주었다. 차 밑에서 새끼와 놀고 있다. 개밥그릇에 먹이를 부으며 땡칠아 하고 부르니 재빨리 뛰어 나온다. 그릇은 바싹 말라 있고 먹거리 흔적도 없다. 새끼와 함께 게걸스럽게 먹는다. 전에는 함께 있던 새끼 강아지가 먹이를 함께 먹으러 오면 크게 위협하며 쫒아버리곤 했는데 오늘은 그 강아지도 함께 셋이서 다정하게 먹는다. 피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한다. 밥 한 톨 국물 한 숟갈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나는 이 집 주인이 개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세 든 사람들이 여러 명인데 그들이 가끔씩 갖다 주는 먹이로 살고 있다. 땡칠이는 오늘도 며칠 만에 밥을 먹는지 모르겠다. 아주 착하고 예의 바르고 충직한 땡칠이가 항상 건강하게 자라길 빌어본다.

대사님과의 교육 협의

대사관 인근 바닷가에서.
대사관 인근 바닷가에서.

휴가를 끝낸 첫 출근이다. 6시 10분경에 집을 나서서 미크롤렛으로 성당으로 갔다. 낮이 짧아져서인지 새벽이 어두워서인지 신자가 많이 줄었다. 미사 후에 한 수녀님이 인사를 하기에 나도 명함을 건네주면서 주변에 있는 수녀원에 거주하는지 물었다. 학교 가는 길에 아주 큰 정원에 아주 넓은 수녀원이 있었다. 그녀는 그 곳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수녀 숫자는 40명 정도 되고 3개의 Compound가 있는데 현재의 Compound에는 18명이 있다고 한다. 내가 수녀님 숫자를 물어본 것은 한국에서 가져온 여성 블라우스를 선물하려고 한 것이다. 15개를 가져왔으니 조금 모자란다.

수녀님과 헤어져서 가는데 뒤에서 오던 한 나이든 신자분이 말을 걸어온다. 아주 젊잖아 보이는 분이다. 등굣길에 가끔 길에서 뵈었던 분이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CCM 수도원 수사였다. 얼마 전 포르투갈에서 회의가 있었는데 그 곳에 한국 수사 신부가 세 분 참석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집 근처에 이르자 잠깐 들러보지 않겠느냐고 한다. 안으로 가보니 아주 잘 정돈된 정원과 또 2층으로 된 실내도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어있고 곳곳에 성상과 성화도 있었다. 회의실, 미사실, 식당 등이 보였다. 일곱 여덟 분의 수사들이 식사 중이었다. 모두가 젊은이들이다. 내게도 함께 식사하자고 권한다. 나는 학교 일과 때문에 가야한다고 사양했다. 이곳에는 12명의 수사가 있고 교육, 간호, 의료, 농업, 가구 제도 등의 일을 한다고 한다.

학교에 와서 사무실 문을 여니 쾌쾌한 냄새가 반긴다. 수경으로 키우다 갔더니 카사바, 적색 고구마 순들이 한참씩 뻗어 나오다가 거의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한 달 가까이 물을 주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구석에 기대어 심어둔 조화들은 여전히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조화들은 내가 등굣길에 쓰레기통에 누가 버린 것을 주어온 것인데 여러 종류의 꽃들이 아주 아름답게 배열된 멋진 꽃다발이었다. 주어다가 큰 화병에 꽂아 벽에 붙여 세워두니 사무실 분위기가 훨씬 온화하고 기품 있어 보였다. 이곳은 조화 수요가 워낙 많은 곳이다. 물론 모두 중국산인데 가게마다 조화 코너가 있어서 가보면 그 엄청난 종류와 아름다움에 눈이 까무러질 정도다. 물론 가격도 만만치 않다. 내가 주어온 조화는 아마 100달러 이상은 될 것 같았다.

시니어 봉사단원들과 함께
시니어 봉사단원들과 함께

대강 사무실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 다음에 컴퓨터를 켰다.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보니 이상이 없다. 엄청 느리기는 하지만. 역시 학교는 너무 조용하고 단 한 명의 학생이 벤치에 앉아있다. 8시가 조금 너머서 교장이 보인다. 교장에게 은도금된 귀후비개를 선물로 주면서 귀국인사를 했다. 교감은 아직이다. 20분 후에 교감도 보여서 내 방으로 안내했다. 몸이 쇠약해 보였다. 요즘 며칠간 독감에 고생하고 있었다. 감기약 화콜 1일분과 귀후비개를 선물했다. 또 다른 교감 마르코스는 보이지 않는다.

카톡을 확인해 보니 10시에 대사관에서 교육관련 협의회가 있다고 한다. 교장, 교감에게 오늘 일정을 알리고 우선 집으로 가서 카메라를 챙겨서 나왔다. 최자문관으로부터 10번 버스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 앞에서 내려서 9번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9번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택시를 타고 대사관으로 갔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대사님, 이영대 자문관, 최창원 UNTL 교수와 내가 함께 협의회를 시작했다. 이곳 학생들을 한국의 교육기관과 결연을 맺어 수탁 교육을 하는 방안이 주요 의제였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국제적인 결연과 또 많은 예산 지원이 요청되는 사업인데 한국 교육 기관들이 우호적으로 지원할 기관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최창원 교수와는 사전에 대사님과 얘기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가능한 대학들을 탐색해 보겠노라고 한다. 대사님은 한국폴리텍 대학과의 결연, 김신환 축구 감독을 통한 축구학교 개교와 한국 명문 축구 학교와 결연 지원 방법 등을 얘기했다. 내 생각에는 결코 쉽지가 않고 또 인내심 있게, 책임감 있게 추진해야 될 것 같았다. 나도 교육청 국제교류 담당 장학관으로 여러 해외 기관과 결연을 추진하고 성사시켰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해양과 수산 관련 기술대학이나 전문계 고등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증식, 기관, 어업, 기관, 운항, 해양스포츠 등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학교가 꼭 필요한 곳이 이곳인데 아직까지 해양과 수산 관련 고등교육기관이 이곳에는 하나도 없다. 미래를 내다보면 꼭 필요한 교육 분야다.

한인식당 나리스에서 대사님과 함께 점심을 하고 대사관 차량으로 귀가했다. 집에서 Naver Band에 등록하고 열어보니 잘 열린다. 핸드폰은 로밍해서 쓰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데 PC로 열어보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앞으로는 PC로 Band를 사용해야 하겠다. Band 이름이 ‘동티모르 한인 사랑’이다. 우리 대사님은 SNS에 능하고 아주 즐겨하신다. 그래서 나도 조그만 일도 카톡 등으로 자주 연락하게 되었다.

수녀님들도 옷이 필요하다

아침에 베코라 성당에서 미사를 보면서 지난번 뵈었던 수녀님을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미사 후에 학교로 가면서 앞서가는 한 수녀님을 보았다. 그 수녀님인가 하고 준비해간 블라우스를 건넸다. 그런데 수녀님은 그 수도회 수녀님이 아니란다. 수녀님과 함께 수녀원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니 한 수녀님이 나오고 내가 옷을 가져왔다고 하니 다시 원장 수녀임이 나오셨다. 자기 소개를 하고 블라우수 열 벌을 건넸다. 함께 갔던 수녀님이 같이 나오면서 수녀님이 머무는 수녀원도 한번 들리지 않겠느냐고 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등굣길에 있는 집이어서 그냥 들르면 될 것 같았다. 아주 허술한 일반 가정집이었다. 이 무더위 속에 그냥 모든 것이 노출된 허술한 집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수녀님이 안 되어 보였다. 이곳에도 여섯 분 정도 수녀님이 생활하고 계시다며 블라우스가 여유가 있으면 달라고 한다. 다음에 갖다 줄 생각이다. 커피 한 잔하고 가라고 했으나 아침에 폐가 될 것 같아 집을 나섰다.

학교는 여전히 조용하다. 어제도 쉬는 날이었는데 오늘은 열심히 해야 하겠다. 경은지 선생님이 아침 수업이 있는데 잊은 것 같다. 아이들이 한국어 교실 주변에서 서성이며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무현 선생님께 알아보도록 했더니 몸이 아프다고 한다. 내일 연장 수업을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내일은 음력설이고 또 중국어권에서 쉬는 날이어서 이곳도 공휴일이다.

이영대 자문관 댁에서 설날 맞이 음식대접을 받다.
이영대 자문관 댁에서 설날 맞이 음식대접을 받다.

앞으로 학교 현장의 문제와 필요한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학교 방문을 할 예정이다. 세네갈에서도 거의 전국의 학교들을 60여개 방문하여 설문조사하고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교육 정책을 마련했었다. 이곳에서도 가능한 많은 학교를 직접 가서 보고 현황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래서 설문지를 만들었다. 영어로 작성한 설문지를 교감에게 부탁하여 테툼어로 번역했다. 미숙한 부분을 다시 점검하고 수정 보완하기 위해서 교감선생님과 함께 다시 작업했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았는데 잘 도와준다. 물론 번역료를 지불해야겠다. 진통 해열을 위해서 타이레놀 한 박스를 주었다.

내일은 설이어서 수업이 없어도 학교에 온 이무현 선생님께 내일 우리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자기 집에 떡국이 조금 있으니 만둣국을 해서 먹자고 역제안을 한다. 내일은 이 선생님 신세를 져야 하겠다. 이 선생님이 Mei Mart에 떡국이 있다고 해서 퇴근길에 들러 보았다. 메이 마트는 처음 들러 본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것 같다. 모든 물건들이 중국산이다. 가전제품, 조화, 식품, 의류, 채소 등 없는 것이 없다. 그러나 떡국을 찾을 수 없었다. 방울 떡 같은 것이 있어서 두 봉지 구입했다. 떡국에 함께 끓이면 될 것 같다.

저녁은 된장찌개다. 감자, 양파, 돼지고기를 넣었고 된장으로 간을 했다. 먹을 만하다. 나는 된장을 좋아한다. 부드럽고 담백하고 깊은 맛이 언제나 나의 입맛을 유혹한다.

설날, 고마운 이영대 자문관과 사모님

오늘은 설날이다. 어제 이영대 자문관이 집에서 식사하자며 카톡을 보내왔다. 그런데 어제 오전에 이무현 선생님과 그의 집에서 간단히 밥 먹기로 했는데 그 후에 카톡을 받았다. 아침식사는 이무현 선생님 댁에서 하고 점심은 이영대 자문관 댁에서 하기로 했다.

새벽엔 성당에 가서 조상 추모 미사를 드렸다. 또 지난번 수녀님을 만나 블라우스 5벌을 드렸다. 수녀님 이름은 Ms Domingas Flor de Arangio이고 수녀원 이름은 Community Camossian Lecidere 이다. 무척 고마워했다. 만두와 고명(새알 떡) 두 상자를 갖고 갔다.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다. 그의 집 방문은 처음이다. 버스로 지나가면서 본 적이 있어서 찾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여섯 가구가 거주하는데 집 주인이 한국인이다. KBS, YTN이 나오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잘 해결해 주니 한국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아주 좋은 여건처럼 보인다. 단지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장보러 가거나 출퇴근할 때 버스 타러가는 것 등이 조금 어려워 보인다. 또 저녁때는 거리가 어두워서 여자 단원이 살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동티모르 국립 병원에 근무하는 김경미 단원도 이곳에 살고 있었다. 잠깐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친절하고 다정한 이 자문관 사모님이 정성으로 손님접대를 했다.
친절하고 다정한 이 자문관 사모님이 정성으로 손님접대를 했다.

이무현 선생님도 해외 생활을 많이 해서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오늘 떡국은 쇠고기 육수에 만두, 쌀 고명, 떡국 등을 넣고 끓였는데 아주 맛있었다. 믹스 커피도 일품이었다. 11시까지 머물며 남자의 고달픈 그러나 의미 깊은 해외 생활을 서로 나누었다. 이 선생님은 요즘 피부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이 곳 병원에서 약을 지어다 먹고 바르는데도 별 차도가 없다. 습기 많은 아열대 기후여서 피부병이 아주 심하다.

이제 이영대 자문관 집으로 가야 한다. 1시에 약속했으니 시간은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아직 이 선생님댁도 혼자 찾아가보지 않아서 일찍 서둘렀다. 4번 버스를 타고 다시 10번 버스로 갈아탔다. 공항 로터리에서 내렸다. 옛날 차로 갔었던 기억을 되살려 천천히 걸어간다. 예정 시간 보다 빨리 도착했다. 사모님이 나 때문에 더욱 분주해 보인다. 잡채, 물김치, 전(새우, 연, 오이) 등이 준비되어 있다. 맥주를 두어 잔 마셨다. 손님을 초대하고 접대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도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사모님은 인상이 아주 좋고 친절하며 상냥한 분이다. 이자문관과 함께 해외 생활을 많이 해서 손님 접대에 정성을 다한다. 나는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서 망고를 조금 사들고 갔다. 이 선생님 말씀은 최자문관도 초대했으나 사정이 있어서 못 온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날은 홀로 사는 늙은이들이 함께 모여 회포를 푸는 것도 좋으련만 모두 개인적인 성향이 있는 것이고 보니 또 이해해야 할 듯하다.

오늘 나눈 대화는 주로 경제 사정, 동계 올림픽, 부모님 모시기, 자녀 혼인 등이었다. 이 자문관도 연로한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다고 하고 나도 노병에 어려워하는 장모님이 계셔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었다.

동 보스코 기술학교 학생들과 함께
동 보스코 기술학교 학생들과 함께

버스로 오려고 했으나 마침 메이마트에 살 물건이 있다면서 부부가 함께 차로 태워다 주었다. 오는 길에 집 근처에 있는 Don Bosco 기술학교에 잠깐 들렀다. 몇몇 학생들이 실습을 하고 있어서 함께 사진도 찍고 내부 구경도 했다. 또 이 자문관이 와서 만들었다는 사무실도 보았다. 화이트 보드엔 업무 추진 내용과 사업 실적 등이 도표로 그려져 있었다. 아주 열심히 성실히 일하시는 분이시다.

이곳에서는 자동차과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에게 기술 교육을 가르치는데 3개월, 6개월, 1년 과정 등이 있고 자동차 정비도 하기 때문에 수익도 필요하다. 계속 적자였던 정비소가 이 자문관의 운영 자문으로 흑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덕분에 뜻 깊은 설도 보내고 즐거운 시간도 가졌고 행복한 경험도 하였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강하고, 친절한 분들이다. 너무도 부러운 노부부의 행복을 빌어본다.

(2018년 2월 12일, 2월 13일일, 2월 15일, 2월 16일 설날)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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