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38)맨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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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38)맨발의 꿈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3.2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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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맨발의 꿈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오늘은 김신환 유소년 축구 감독과의 뜻 깊은 시간을 가진 날이다. 지난 번 호텔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눈 이후 축구 신화인 김 감독과 진지한 시간을 늘 갖고 싶었다. 마침 이영대 자문관과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다리를 놓아주도록 부탁했었다. 이 자문관은 김 감독의 지위에 걸맞은 여러 식당을 수배하여 직접 환경도 살피고 가격도 알아보고서 나에게 적절한 곳을 알려왔었다. 미국대사관 근처에 있는 태국 식당이다. 물론 이번에는 내가 초청하는 자리다. 김 감독, 이자문관 내외, 최덕진 인쇄 자문관이 함께 했다. 최 선생님은 천주교 신자라 가끔씩 성당에서 뵈었다. 오래전부터 최 선생님과도 자리를 함께 하고 싶었는데 아주 잘 되었다.

6시가 약속 시간이다. 이 자문관이 5시에 우리 집까지 차를 갖고 와서 픽업해 주었다. 대문을 나서보니 벌써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님은 길가 하천에 무진장 피어있는 작은 보랏빛 꽃들을 꺾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꽃이었다. 나는 바로 옆에 살면서도 이렇게 앙증맞은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지 못 보고 살았었다.

김인환 감독과 유소년 축구팀
김인환 감독과 유소년 축구팀

장소에 도착해 보니 조금은 고전적인 바닷가의 2층 식당이었다. 사람은 아직 우리밖에 없었다. 가격은 스페셜 요리가 11에서 13달러다. 조금 있으니 모두 도착했다. 나는 닭고기 스프 Noodle에 밥이 나왔다. 나머지 분들은 연어 스테이크를 시켰다. 빙땅 맥주와 아쿠아 생수도 주문했다.

김 감독이 주로 얘기했다. 아들이 둘 있다. 큰 애는 결혼했고 작은 아들은 친구가 운영하는 스포츠 용품점에서 일한다. 월급이 150만원 정도여서 아직은 아버지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부인과는 헤어졌다가 작은 애가 형도 결혼했으니 이제는 함께 사는 게 좋다고 설득하여 재결합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인이 이곳에 와서 생활해 보니 김 감독은 생기는 돈은 이 곳 아이들의 축구 지도를 위해서 거의 다 써버리니 경제적으로 여전히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자연 환경은 아열대성이어서 쾌적하지 못하고 친구나 친척도 없으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부인은 귀국했고 지금은 혼자 생활하고 있다. 김 감독은 큰 아들보다 작은 아들이 더 사랑스럽고 애틋하다고 한다. 자기의 행복은 가끔씩 귀국하여 손자를 만나고 백화점에 데려가서 손자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일이라 한다. 예부터 할아버지 사랑은 손자 밖에 없다는 말이 맞아 보인다.

이곳에 뿌리 내린지 오래되고 또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하니 별 어려움이 없이 살고 있다. 알고 보니 거주하는 곳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정직하고 돈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축구 사랑과 축구 지도에 모든 것을 쏟는 것 같았다. 젊어서부터 스포츠는 무엇이나 좋아했다. 한때는 축구에 한때는 낚시에 한때는 골프에 빠졌었다.

동티모르 대통령으로부터 훈장 받는 김신환 감독
동티모르 대통령으로부터 훈장 받는 김신환 감독

최근 그의 관심사는 이곳에 뿌리내릴 영구적인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관계, 교육계, 스포츠계 아니 전 국민에게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영웅이며 전설이다. 그런데 재물에 무심하다 보니 말 한마디면 얻을 수 있는 땅 한 조각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은 아직 토지 등에 대한 정비가 안 이루어져 정부 관료가 원한다면 필요한 주거지를 마련해 줄 수도 있는데 한 번도 요청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요즘 집지을 터를 물색하러 다니고 있다. 가로 세로 40에서 50미터 정도 되는 터에 크게 집을 짓고 주변에 각종 과일 나무를 심고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망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감기 한번 안 걸렸다고 한다. 그의 희망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이 기회에 영화 `맨발의 꿈' 실제 주인공이자 `동티모르의 히딩크'로 불리는 김신환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 감독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 그는 장항읍 송림 출생으로 장항중학교를 졸업하고 축구를 위해 한양공고에 진학하면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그는 해군 축구단을 거쳐 1981년부터 실업팀 현대자동차에서 뛰다가 1988년 서른두 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축구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무명선수로 있다가 사업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했고 인도네시아 지배에서 독립한 신생독립국인 동티모르에 들어갔다가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축구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평생 축구만 해왔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그에게 축구는 인생 전부이자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한 원동력이다. 그는 맨발로 축구공을 차던 동티모르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국제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하는 기적을 일궈내 내전으로 절망에 빠진 동티모르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맨발의꿈 영화 발표회에서 김신환 감독
맨발의꿈 영화 발표회에서 김신환 감독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이 2004년 3월 제30회리베리노컵 국제소년 축구대회에 초청받았으나 일본행 비행기 값을 구하지 못하자 한국 언론사에 애절한 편지를 보냈고, 그 기사를 본 한국기업의 도움으로 축구팀을 이끌고 대회에 참석했다. 축구팀은 첫 출전이지만 예상을 깨고 32개팀 가운데 6전 전승으로 우승했고, 그는 일약 동티모르의 국민 영웅으로 부상했다. 유소년 축구팀은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또다시 우승하는 신화를 기록했다. 그리고 단 3년도 못돼 동티모르에게 세계대회 우승의 영광을 두 번이나 안겨줬다.

이 일로 구스마오 대통령이 공항까지 마중 나왔다. 김 감독은 2006년과 2011년 동티모르 대통령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고, 그의 스토리를 영화로 만든 것이 `맨발의 꿈'이다. 2010년 6월 개봉하면서 그의 이름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청초 고고한 난방초

아침 미사에 다녀오다가 지난번 이영대 사모님이 꺾고 있던 야생화 생각이 나서 길을 건너가 보았다. 바로 우리 집에서 길을 횡단하면 개울가다. 물론 아주 지저분하고 쓰레기와 오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래서 아애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곳이다. 작고 예쁜 그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희미한 향기도 넓게 퍼지고 있었다. 크고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 관심을 쓰지 않나 보다.

꽃 모양은 등나무 꽃과 찔레꽃을 섞어 놓은 것 같아 보인다. 줄기나무로 들포도 같은 잎을 하고 있다. 꽃은 한 종류가 아니고 두 종류다. 하나는 아이보리색, 하나는 연분홍색이다. 10센티 정도 크기로 10여개를 꺾어 왔다. 유리병에 얼기설기 꽂아 놓으니 아주 예쁘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 가는 줄기에 1, 2센티의 꽃망울을 수없이 달고 있다. 두 종류를 섞어서 배치하니 서로 어우러지면서 고고한 기품과 그윽한 향기가 거실 가득 퍼진다. 갑자기 방안이 품격 높은 사무실로 변했다. 역시 자연은 모방할 수 없어 보인다. 순수한 창조의 아름다움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집 근처 개울가의 난방초
집 근처 개울가의 난방초

 

대사님의 시범 수업

오늘은 대사관에서 취업반 한국어 강좌 개설을 앞두고 선생님들을 격려하는 만찬이 있었다. 우선 코이카 사무실에서 박한울 부소장님과 함께 오늘 회의 내용에 대한 사전 협의를 했다. 부소장 얘기로는 대사님이 수업 방법과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이어서 식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조희명, 경은지 선생님은 바빠서 대사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무현 선생님과 부소장 그리고 내가 서전 협의를 했다. 이무현 선생님은 필요한 교수 방법을 A4 용지 한 장에 간략히 적어서 왔다. 매일 50단어를 암기하게 하고 듣기 25문제, 읽기 25문제를 하루에 한 시간씩 강의한다는 내용이다. 4개 반을 편성하여 30명씩 120명을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적절한 내용 같았다.

코이카 차량으로 5시 20분경에 대사관에 도착했다. 두 여선생님도 마침 도착하여 회의가 시작되었다. 대사님이 생각한 강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모든 학생들을 대강당에 모두 모여 놓고 가르친다. 그러면 선생님의 수고해야 하는 시간을 1/3로 줄일 수 있다. 서울의 종로, 대성학원에서도 100명, 200명 학생들을 큰 강의실에 모이게 해놓고 마이크로 수업을 한다. 150명을 처음에 선발하여 매달 출석률 불량자와 성적 불량자를 10명씩 탈락시킨다. 매일 쪽지 시험을 쳐서 그 순위를 공개한다.

경은지 선생님과 나머지 분들도 너무도 황당한 수업 방법에 질겁한 표정이다. 그래서 경은지 선생님은 “그러면 그런 방법으로 대사님이 시범 수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얘기했다. 대사님은 시범 수업을 하겠다고 한다. 1000명이 들어가는 대강당에 150명을 앉혀놓고 강연이 아니라 일상적인 수업을 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처럼 보인다.

수업은 학생과 교사 상호간의 소통이 중요한데 일방적인 마이크 음성 전달은 1회성 강연은 가능하지만 매일 매일의 수업 방법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아니 불가능하다. 더욱이 언어도 다른 아이들을 통제하고 집중시키기에는 외국인으로서는 역부족이다. 더 이상의 토론은 감정싸움이 될 것 같아 토론을 마치고 식당으로 갔다.

주 메뉴는 닭갈비다. 호박죽도 나오고 이어서 떡갈비도 나왔다. 맥주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나는 내일 이주영 선생님, 그리고 조희영 선생님 일행과 함께 라멜라우 산으로 등정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술은 마시지 않았다. 라멜라우 산은 동티모르의 가장 높은 상징적인 산으로 높이가 3000미터에 이른다. 이곳에 오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다. 만년설을 보고 싶었다.

식사 중 항상 용기 많은 경은지 선생님이 대사 부부에게 두 분은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어보았다. 육사 4학년 때 후배가 무도회에 참석할 커플로 소개해 주었다. 군대 내에서 일처리와 점호 등으로 3시간 늦게 갔는데 그 때까지 사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감과 믿음이 갔었다.

사모님은 남자를 선택할 때 마음속에 항상 세 가지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가난할 것, 둘째 못 생길 것, 셋째 쥐띠가 아닐 것 이다. 그 이유는 주로 아버지에 대한 불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아버지가 부자여서 바람을 자주 피웠다. 또 잘 생긴 쥐띠였다. 사모님은 가뜩이나 처음 만남부터 엄청나게 지각하여 실망시켰는데, 함께 부르스를 추다 보니 어느덧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님은 그 당시에 사귀는 여자가 있었는데 어쨌든 그 녀를 물리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두 분을 끈끈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경은지 선생은 자기는 11월에 결혼한다고 했다. 다만 아직 신랑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케케묵은 농담이지만 나이 들어가는 여자와 남자의 절실함이 배어 있는 한 숨이다. 저녁은 먹고 있으나 맛이 없는 많은 부담감을 느끼는 식사였다.

대사관 차량으로 집으로 이동했다. 오는 길에 조희영 선생이 내일 등산이 갑자기 취소되었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어제까지도 확약했었는데 갑자기 오늘 아니 출발 몇 시간을 앞두고 가지 않겠다고 전화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둘러대는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두 선생님과 나는 기관에 휴가를 내고 간식과 여러 장비를 모두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나도 잔뜩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실망감이 너무 크다. 그러나 나는 요즘 건강도 안 좋고 3000미터나 되는 산을 오르려면 고산병 등을 이겨야 하는데 사실 조금 걱정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하느님의 배려로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좋은 상황에서 갈 수도 있으려니 자위했다.

한국어 취업반 개강식에서 이친범 대사와 함께
한국어 취업반 개강식에서 이친범 대사와 함께

한국어 강좌 개강식

오늘은 개인 휴가일이다. 그러나 ‘취업반 학국어 강좌 개강식’이 있어서 일찍 학교로 출근했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 우선 오늘 진행될 행사의 식순을 영어로 작성하여 교장과 두 교감에게 주었다. 현수막은 이무현 선생님이 지난 금요일 대사관에서 수령했었고 아침에 가져왔다. 비닐 천에 크게 쓰여 있어서 내년에도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아침에 오면서 인도네시아 빵가게에서 사온 빵과 얼마 전에 집에서 삶아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계란과 음료수로 이 선생님과 간단히 해결했다.

오후 2시가 시작 시간이고 참석할 내빈들이 계획 보다 많아졌다. 이친범 대사님, 교육부 직업교육국장, 노동청인력송출사무소장, 코이카 박한울 부소장, 경찰서장, 양주윤 한국어평가원장 등이다. 학생부장인 Faustino 선생님이 식장 준비를 많이 도와주셨다. Marcos 교감이 사회를 보고 교장, 교감도 많이 신경써 주었다.

1시 45분 경 밖으로 나가 보니 코이카 차량이 보인다.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으나 부소장님은 안 보인다. 대강당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니 부소장님이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예쁘게 차려입었고 원래 아주 순한 모습이어서 천사 같아 보였다. 교장실로 안내하여 교장과 교감에게 소개해 주었다. 부소장은 우리학교가 처음이다. 현재 소장님이 부재중이니 부소장이 소장 대행이다.

시간이 되자 대사님이 도착했다. 대사님은 다른 기관장들이 오지 않더라도 시간이 되면 시작하자고 하신다. 모든 기관장들이 거의 시간에 맞게 도착했다. 5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대사님은 3분 이내로 축사를 끝내겠다고 한다. 통역을 포함해서 3분밖에 안 걸렸다. 그런데 노동부인력송출사무소장이 20분 가까이 길게 축사를 한다. 양주윤 원장이 미리 짧게 하도록 얘기해 두었다는데 습관이 돼서인지 아주 길었다.

대사님이 모든 학생들이 강당 앞에 모여서 함께 촬영하지고 해서 120명의 학생들과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촬영했다. 오후에 사실은 대사님이 전 학생을 한 곳에 모여 놓고 시범 수업을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대사님인 한국어 강좌는 한국의 대형 학원처럼 마이크로 200명 정도를 한 곳에 앉히고 수업하면 된다는 말에 경은지 선생님이 조금 부아가 치밀어 올라 얼떨결에 ‘그러면 대사님이 시범 수업을 한 시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한 말이었다.

엉망으로 진행될 수업이 눈에 그려져서 내가 대사님께 카톡으로 말씀드렸다. 우리 선생님들이 한국어 교육 전문가이니 대사님 시범 수업은 하지 마시고, 우리가 수업을 하면서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지원만 잘 해주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사님이 축사만 하겠다고 해서 일단락되었었다. 만일 한국어 교사의 건의로 수업을 했더라면 그 넓은 대강당에서 많은 학생과 귀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수업을 한다면 실효성도 없고 마이크 시설도 잘 안되어 전달도 안 되고 엉망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무사히 개막식을 끝내고 부서장이 내 사무실로 와서 20여분 학교 현황과 한국어 교육 등에 대한 내용을 설명드렸다. 부소장은 새 소장이 부임한 후에 학교을 방문하여 시설 등을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한다.

지난 3, 4개월 동안 우리학교의 취업반 한국어 강좌 개설에 대한 지루하고 힘든 공방을 끝내고 오늘 개강식을 갖게 되어 다행이다. 그 사이에 수업 규모, 대상자 선발, 수업 방법, 수업 시간 확보, 교안 작성 등 참으로 많은 일들이 논의 협의 실행되었다.

세 번째 김장

휴가로 엿새를 받았는데 계속 일이 생겨 근무하다 보니 어제와 오늘 이틀 밖에 가질 수 없었다. 원래 내일까지인데 내일은 또 신규 봉사 단원들이 학교를 방문한다고 하니 안내 자료도 만들고 학교 안내도 해야 하니 내일은 일찍 출근하여 밀린 일도 좀하고 손님 맞을 준비도 해야 하겠다.

오늘은 김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메이마트로 갔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아주 큰 마트다. 2층으로 되어 있다. 오전이어서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다행히 배추가 있었다. 1Kg에 2달러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어쩔 수 없다. 3Kg을 사고 상추도 조금 샀다. 조금 무거웠지만 두 손에 들고 왔다.

뿌연 수돗물에 우선 씻고 정수한 물로 두 차례 더 씻었다. 소금에 절여 세 시간 정도 두었다가 버무렸다. 잘게 자른 배추여서 숟가락으로 대충 비볐다. 중간 다라에 넣고 도마로 엉성하게 덮고 쉬려는데 김장통에 무엇인가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마늘 다진 것이다. 냉동실에 오래 뒀던 것이라 도깨비 방망이로 부셔서 넣으려고 했었는데 깜빡했다. 그래도 금방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다시 마늘을 넣고 비볐다. 양념 재료는 간 마늘, 고추, 까나리 액젓, 분말 양념 ‘산들애’, 오이스터(굴) 액젓, 고춧가루, 설탕이다. 하루 정도 숙성시키면 될 것 같다. 전에 진솔 엄마에게서 받은 레시피대로 했다. 이번이 세 번째이니 조금 자신감이 생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때 귀국 항공편을 알아봤다.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8월 1일 12시 30분 이곳을 출발하여 저녁 11시 40분에 방콕에 도착한다. 방콕에서 3일 정도 현지 조인으로 패키지여행을 하고 8월 5일 새벽에 출발하여 인천에 아침 9시 도착하는 일정이다. 마지막은 인천에서 아시아나 항공으로 제주로 가는 것인데 조금 비쌌지만 그냥 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귀국을 준비해야 한다. 2년 정도 근무한다면 차분히 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추진해 나가겠지만 1년 계약이어서 물리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이제 거의 계획도 마무리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차분히 잘 준비해서 가능한 많은 도움과 실적을 남겨보도록 해야 하겠다.

(2018년 4월 12일, 4월 18일, 4월 19일, 4월 23일, 4월 26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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