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46) 김시종 시인 시비, 오사카 이쿠노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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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46) 김시종 시인 시비, 오사카 이쿠노 제막식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5.17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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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김시종 시인 시비, 오사카 이쿠노 제막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이곳에서 가까운 공원에 건립 할 계획이었습니다만 허가를 받을 수 없어서 이곳에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인 겸 저닐리스트인 카와세 슌지 씨의 개회사로 시작된 재일동포 김시종 시인(93)의시비 제막식이 5월 14일(토) 오후 4시30분 오사카 이쿠노 코리아타운에서 열렸다.

처음 설치 장소로 계획했던 곳은 지난 해 4월 공중변소 준공식을 가졌던 공원이었지만 그때도 여러 규제를 들어 난색을 표명했던 공원 당국이었다. 그래서 이쿠노 코리아타운(조선시장) 중심부에 개관할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에 건립하기 전에 지금 장소에 세우게 되었다.

오사카코리아타운에 재일 김시종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5월 14일 제막식을 했다.
오사카코리아타운에 재일 김시종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5월 14일 제막식을 했다.

지금의 장소라면 ‘미유키모리상점가’(속칭조선이치바: 조선시장) 홍성익 이사장이 소유하고 있는 아틀리에 앞이다.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 아담한 곳이어서 시비로서는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코리아타운 상점가(행정상 정식명칭은 미유키모리상점가)는 동쪽, 중앙, 서쪽 세 곳으로 분리돼서 운영되고 있었다.

이것을 중앙회장으로 취임한 화가인(덕산물산회장) 홍성익 회장이 중심이 되어서 지난 해 10월 하나로 통합하면서 일반사단법인 <오사카코리아타운>으로 바꾸었고 초대 회장이 홍성익 씨였다. 일본의 미디어들은 물론 필자도 지금까지 이쿠노 코리아타운의 명칭으로 사용해 왔지만 앞으로는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시비 '공생의 비' 앞에선 김시종 시인, 부인 강 순희 씨, 김길호 필자.
시비 '공생의 비' 앞에선 김시종 시인, 부인 강 순희 씨, 김길호 필자.

‘이쿠노 코리아타운’이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의 새로운 명칭 변경은 ‘축소 지향의 일본인’ 속에서 ‘확대 지향의 한국인’이라는 역설적 발상도 있어서 필자 혼자서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러한 연유 속에 김시종 시인의 시비가 코리아타운에 건립되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일반사단법인 <오사카코리아터운>은 공생, 공영의 사명감에서 홍성익 이사장이 <미래를 위한 심볼>로서 김시종 원로 시인에게 의뢰한 시이기 때문이다.

가로 165cm, 세로 90cm의 시비는 표면에 한일 양국어로 ‘공생의 비’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 ‘미래를 위한 심볼’로서 쓴 시 <헌시>가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필자가 번역한 그 시를 소개한다. 한국어로 번역한 필자의 시는 좀더 다듬어야 하지만 제막식 소식을 빨리 알리기 위해서 서둘렀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헌시

사람이 살았던 애초부터

이카이노(猪飼野)는 있었지만 미로였다

탁수( 濁水)의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대안(對岸)에 보이는 거리는 끊어져 있다

거기서는 그곳의 풍습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유습(遺習)에 쫓기어

일본어라고도 할 수 없는 일본어가 소리 높이 울려 퍼지고

길 거리까지 묘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먹거리가

당연한 것처럼 퍼져 나갔다

모래결도 없고 게도 기어다니지 않는

고인물 같은 운하는 하숫물을 모은 강이 되어

이향(異鄕)에서 둔탁(鈍濁)히 흘러간다

오래돼 낡아버린 고향의 실재였다

어디서 어떻게 하구(河口)가 만나는 바다인가를 아무도 모르고

끈덕지게 취락이 수로변에 엉켜붙어 있다

문화란 처음부터 독자적인 것이다

세끼의 밥도 소금에 절인 채소도

심지어는 제사 관습까지도

사는 곳에서 익숙한 풍속 그대로

먼 일본에서 흔들림 없는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방법의 의지처럼

재일의 선대(先代)들은 지키고 살아 왔다

그 완고한 집착이

말할 수 없는 생리의 언어가 되어 계승되고

대를 잇는 세대들의

마음 속 깊은 이야기로서 오늘에 이르렀다

옹고집 같은 재일(在日)의 계승이 있었으니

불고기도 김치도 모두가 좋아하는

일본 중의 풍부한 먹거리가 되기도 했다

주위는 너도 나도

무뚝뚝한 죠센징

오직 그 속에서 가게를 열고

더불어 견디며 삶을 도우며

마침내 코리아타운의 일본인이 되었다

사랑스런 <이웃사촌들>

역시 흐름은 넓은 바다로 이르는 것이다

일본의 끝 코리아타운 거리에

열을 짓고 찾아오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있다

작은 흐름을 모아서 가면 본류인 것

문화를 서로 갖고 모이는 사람들의 길이

지금 크게 열리고 있다

이상이 <헌시>의 전문이다.

마이니치 게재된 '공생의 비' 제막식 기사.
'마이니치신문'에 게재된 '공생의 비' 제막식 기사.

제막식 인사에 김시종 시인도 살았던 죠센징 차별의 상징적인 이곳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이곳에 같이 살아 준 일본인들에게도 감사 드린다는 인사가 퍽 인상적이었다. 그곳이 지금 이쿠노 코리아타운에서 비약하고,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서 일본 굴지의 집객력을 모으는 상점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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