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41)인도네시아 속의 동티모르, 오에쿠시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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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41)인도네시아 속의 동티모르, 오에쿠시 출장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5.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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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인도네시아 속의 동티모르, 오에쿠시 출장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지난 11일 출발했던 오에쿠시 출장을 마치고 오늘 돌아왔다. 출장을 가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워낙 작은 경비행기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 공항에 와서 비행기표를 예매했었다. 아침 6시 45분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해서 6시 30분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짐을 우선 검색하고 체크인을 하도록 절차가 되어 있어서 대기하고 있으나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보인다. 무게 계량이 걱정되었다. 지난번 황남서 요한 형제가 보내준 옷에서 40여 벌은 도미니꼬 고아원에 이미 기증했고 30벌은 오에쿠시 도미니꼬 고아원에 기증하기 위해서 갖고 온 것이다. 옷과 내 수하물도 꽤 무게가 있어 추가 요금을 내야하겠거니 했는데 다행히 옷은 화물로 부치고 백색은 수하물로 들고 가니 통과되었다.

프란치스코 교장과 업무협의
프란치스코 교장과 업무협의

내가 탈 비행기는 18인승 프로펠러 경비행기다. 타보니 조종석과 승객석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그냥 차례로 타면 되었다. 나는 조종석 바로 뒤여서 파일럿이 운전 조작하는 모든 기기와 동작과 계기판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자리는 부조종사 자리다. 조종사는 뒤를 돌아보며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안내한다. 1번 좌석이다 보니 프로펠러 바로 옆이고 그래서 소음이 워낙 심했다. 그러나 이륙은 가까운 거리를 주행한 후 아주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날씨가 쾌청하여 온 섬이 시야에 들어온다. 잔잔한 바다, 굴곡과 경사가 심한 산들과 자그만 집들이 무척 정겹다. 끊이지 않고 연결된 산맥이 바다로 이어지고 바닷가에는 작은 밭들과 야자수와 인가들이 모여 있다. 일단 비행이 시작되니 안심도 되고 경치에 심취하다 보니 어느덧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이륙했는가 했더니 35분이 지나고 바로 착륙했다. 하늘에서 보니 멋있는 활주로가 있어서 그 곳에 착륙하나 했는데 비포장 아주 작은 활주로에 덜컹대며 착륙한다. 새 활주로는 공사 중이어서 아직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소형 버스가 와서 짐과 12, 3명의 손님을 승객 승강장까지 실어 나른다. 수속하는 탑승장은 모래벌판에 10평 정도의 건물로 홀로 덩그렇게 서있다. 2, 3명의 사무원이 공항 업무를 처리하고 있고, 10여 명의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로 수도 딜리로 떠날 손님들이다.

▲도미니꼬 고아원학생에 교복 선물

도미니꼬 숙소에서
도미니꼬 숙소에서

방문할 학교 교장 선생님이 나와 계셨다. 첫 눈에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우리학교 교감 선생님이 그와 포르투갈어 심화 연수 동기라고 소개하면서 키가 아주 작아서 곧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게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도 우리학교 교장선생님과 같은 프란치스코다. 첫 눈에 보아도 아주 성실한 시골 선생님 타입이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갖고 와서 나의 큰 짐과 백색을 들고 함께 타고 가기가 곤란해 보인다.

그런데 탑승하려는 대기 승객 중에 도미니꼬 성당 주임 신부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이곳 도미니꼬 고아원에 왔다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도미니꼬 수도원 게스트 하우수에 예약을 했고 또 그 곳 학생들에게 줄 옷들을 갖고 왔다고 하니 이곳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이니 신부님이 수도원 차를 부르겠다고 하신다. 금새 수녀님이 차를 몰고 와서 편하게 숙소로 갈 수 있었다.

도미니꼬 수도원 겸 고아원은 바닷가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인 오에쿠시의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아름다운 궁전처럼 보였다. 흰색과 노란색 건물군이 있고 사이사이에 큰 나무들과 꽃이 주렁주렁 맺힌 수 많은 꽃들이 자라고 있는 정원 속의 작은 궁전들 같았다.

수녀님이 숙소를 안내한다. 아마도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여 그 수익으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어 보인다. 방은 깨끗하고 모든 것은 잘 정돈되어 있다. 그런데 너무 좁다. 1.5평 정도의 크기다. 작은 침대와 아주 작은 화장실 겸 욕실이 전부다. 1박에 25달러다. 아주 비싼 편이다. 샤워기가 벽에 붙어 있고 지름 15Cm 정도의 세면대가 전부다. 답답하고 열악하고 오래된 아주 낡은 시설이다. 그러나 수녀님들이 잘 관리하고 있어서 청소 등은 잘 되어 있어 보였다. 그나마 에어컨이 있으니 다행이다. 물론 인근에 한 두 개의 호텔이 있기는 하지만 전에 다녀온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깨끗하기는 이 수도원 게스트 하우스가 제일 낫다고 했다.

수녀님께 학생들에게 교복을 주고 싶다고 했다. 수녀님들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지 모두 일반 평상복을 입고 있어서 처음에는 수녀인지 일반인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4시에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30명이 모였다.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무대에 펼쳐 놓고 수녀님이 알맞은 치수에 따라 골라 준다. 아이들은 한 벌씩 골라 가졌다. 나는 아이들과 수녀님께 한국 친구가 보내준 것이고 가격도 꽤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이 옷을 들고 촬영을 하려는데 원장 수녀님이 들어오신다. 역시 평상복 차림이어서 첫 눈에 수녀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역시 아이들은 감사의 노래를 불러준다. 학생들은 선물 받는 것에 익숙한지 노래를 아주 능숙하게 잘 부른다.

저녁 때 Milan 수녀님께 커피포트와 칼과 접시를 빌렸다. 컵라면을 끓여 먹고 낮에 사 두었던 파파야를 디저트로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도미니꼬 여학생들에 교복 선물
도미니꼬 여학생들에 교복 선물

▲시설과 환경이 허술한 전문계 고등학교

다음 날 아침 약속대로 9시경에 프란치스코 교장 선생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그의 오토바이에 합승하여 학교로 갔다. 교정은 목초밭 비슷한 잡초 벌판이었고 교사동이 서너개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당이든, 건물이든 제대로 정비된 환경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전문계고등학교로 관광과, 회계과, 컴퓨터과 등이 있었다. 전문계 고등학교로서의 시설과 환경이 거의 전무했다. 교실만 몇 개 있고 아무것도 없다. 그냥 벌판에 작은 건물 몇 개 있는 것뿐이었다. 학생수는 500명 정도이고 아이들은 모두 순수해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장은 부임한지 1달 밖에 되지 않아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설계와 계획이 서 있지 않다고 죄송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교장실에 과주임 교사들이 함께 모여 얘기하면서 각 과에서 코이카에 요구할 사항이 있으면 적어 내도록 했다. 한국어 교사 파견과 베코라기술고등학교 처럼 시설과 지원을 해달라고 한다. 코이카에 요망 사항을 전달하고 지원 방법을 모색해 볼 생각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다시 방문했다. 교장은 교무실에 자리를 마련하고 모든 선생님을 교무실로 소집한 다음 학교 현황을 설명한다. 학생수가 천명이나 되는 큰 학교다. 그런데 학생들이 거의 안 보여서 물어보니 오전반 아이들은 하교하고 오후반 학생들은 이제 등교 중이라고 한다. 2부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교실엔 흑판이 전부인데 벽에 고정된 시멘트형 붙박이 칠판이다. 너무도 낡고 글씨도 잘 안 써지는 칠판이다. 일반 교실 외에 유일한 특별실은 컴퓨터 18대가 있는 전산실이다. 그런데 컴퓨터들이 고장이 나서 실습이 어렵다고 하고 그나마 천으로 만든 덮개로 모든 컴퓨터들을 덮고 있었다. 이 학교에는 한국어 교사나 음악, 미술, 컴퓨터 교사 등이 파견되면 좋을 듯 싶었다.

천으로 만든 덮개를 씌운 학교 컴퓨터
천으로 만든 덮개를 씌운 학교 컴퓨터

고맙게도 프란치스코 교장 선생님이 내내 함께 동행해 주어서 학교 방문이 쉬웠다. 아무래도 점심을 사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가 잘 안다는 식당으로 갔다. 뷔폐식 식당인데 생선, 닭고기, 야채 볶음에 쌀밥을 곁들여 점심을 대접했다. 그의 오토바이로 숙소로 돌아왔다.

▲주지사를 ‘프레지던트’라 불러

도미니꼬 게스트 하우스에서 좀 쉬다 고혜란 봉사단원 정종하 시니어 단원이 근무하는 오에쿠시 주립병원으로 갔다. 고 선생님은 어머니가 제주도 우도 출신이라고 한다. 어제 저녁 때 산책 겸 왔다가 잠깐 인사를 나누었었다.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정 선생님은 안 계셔서 뵙지 못했었다.

시계를 보니 4시가 조금 지났다. 오늘은 정종하 선생님을 뵐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어제 알아둔 사무실로 가서 노크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 선생님이 코이카 김식현 소장님, 강동현 과장을 비롯한 이 병원 스탭과 병원장, 진료 부장 등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정 선생님이 나왔다. 내일 3시에 다시 병원에서 보기로 하고 나왔다.

오에쿠시 시가지를 한두 시간 둘러보았다. 거리는 기획 도시처럼 잘 설계되어 있고 모든 길들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도로 정비 공사가 한창이기도 하다. 시내 곳곳에 수많은 Alkatiri 초상화가 붙어 있다. Alkatiri는 오에쿠시주 대통령이다. 오에쿠시가 인도네시아 영토인 서티모르 안에 섬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이곳은 특별한 지역으로 마치 독립국처럼 특별대우를 하고 주지사도 President 즉,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국가에서 예산 배정도 특별히 많이 해주고 여러 가지 행정재량도 특별히 배려한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가 아주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고 건물들도 단정하고 새 건물들도 많이 들어서고 있다. 그래선지 새로 들어서고 있는 공항도 수도 딜리 공항보다 몇 배는 더 좋아 보였다.

시내는 아주 조용하고 상가도 별로 없다. 몇 곳의 식당과 노점상이 전부이고 교회 건물들은 여러 개 보였다. 현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우리 숙소 인근에 상록수 부대 전사 추모비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대한민국 상록수 부대원 순국 추모비
대한민국 상록수 부대원 순국 추모비

▲상록수부대 추모비

바닷가 쪽으로 조금 가니 청년들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며 즐겁게 놀고 있다. 한국의 상록수 부대 기념비를 찾고 있다고 하니 안내해 준다. 바닷가 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 거의 노천에 자그마한 순교 기념비가 서 있다. 동판에 다섯 분의 얼굴과 계급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동티모르는 452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후 1975년 독립했지만, 열흘 만에 인도네시아가 강제 점령했다. 이후 1999년 8월 유엔 감독 하에 주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결정했으나, 친 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유혈사태를 벌였고 당시 김대중 정부가 유엔의 요청을 받아들여 상록수 부대를 파병했다.

1999년 10월부터 2003년 10월 철수할 때까지 4년간 우리 군인 총 3328명이 동티모르에 파병됐으며, 장병 5명이 임무 수행 중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기도 했다. 아직도 운전병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상록수부대는 동티모르 동부 라우템지역(로스팔로스) 에 파견되어 「유엔 동티모르 과도행정기구」의 치안유지활동 및 인도적 구호활동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책임지역인 오쿠시 지역에서 국경선 통제, 치안 유지, 민사작전 및 핵심 시설에 대한 경계 제공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로스팔로스에 상주한 1개 지역대로 하여금 1일 3회에 걸친 도로 및 인구밀집 주거지역을 포함하여 인근지역까지 순찰을 실시하였다. 로스팔로스에 위치한 통신 중계탑, 발전소, 유엔 구호품 창고 및 유엔 운영병원 등에 주․야 24시간 경계를 지원함으로써 관련 요원들이 지역 내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다국적 소속 헬기 및 주요인사의 라우템 지역 방문시 경계와 경호를 지원하였다.

동티모르 최초 선교사 상륙 기념관
동티모르 최초 선교사 상륙 기념관

서티모르내에 고립된 오쿠시에서 작전을 실시했던 상록수부대 5진에서 8진까지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라우템 지역에서는 실시하지 않았던 국경통제소 5개소를 설치하고, 양국간 영토분쟁으로 매우 민감한 국경지역 전술통제선(TCR)에 대한 순찰을 실시하였다. 또한 지역 곳곳을 마을 단위로 순회하면서 진료‧방역, 이발지원, 영화상영, 농기구 정비, 구호품 전달 등 주민 친화사업인'푸른천사(Blue Angel)'작전을 실시하였다.

상록수부대의 헌신적이고 성실한 임무수행으로 주민들은 상록수부대를 '다국적군의 왕(달라이 무띤)', 한국 최고(코레아 파구스)라 불렀고, 구스마웅 동티모르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주민을 진심으로 위하고 평화를 위해 앞장서는 한국군에게 띠모르레스떼를 대표해 감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현지 유엔 기구로부터는 PKO 참여국 중 가장 모범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군이 담당한 라우뗌 지역은 동티모르 전체에서 빠른 속도로 평화를 회복하여 2000년 2월 1일 다국적군 중에서 가장 먼저 유엔 평화유지군 체제로 전환하였고, 이는 한국이 자신의 국력과 역량을 통해 전투부대를 파병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이며 국제사회에서 인도적 책임을 다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이와 더불어 급격한 기상변화, 민병대와 독립파간의 충돌, 대규모 난민 발생 등 어렵고 다양한 환경에서의 임무수행능력을 배양하였다.

오쿠시의 우기에 상록수부대는 임무수행중 강을 건너다 차량이 순식간에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물에 휩쓸러 아까운 3명의 병사들과 2명의 장교가 목숨을 잃었다. 사고 원인은, 복병인 오쿠시 스콜(열대성집중호우)이었다. 오쿠시 기후는 곳곳에서 스콜이라 하여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린다. 당시에 이곳은 비가 안 왔으나 상류지역에서 내린 엄청난 비로 인하여 갑자기 급류가 넘쳤다. 손쓸 틈도 없이 강을 건너는 중에 고립 되어 차량과 같이 급류에 휩쓸렸다. 현지주민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도울 틈도 없이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후에 시신수색 작업 시 오쿠시 전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있었다. 그렇게 2달 정도 수색을 하였으나 끝내 1명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오쿠시 전 주민들이 눈물로 안타까워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잠시 기도를 드리고 자리를 떴다.

오에쿠시 전문계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오에쿠시 전문계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시내여행

게스트 하우스는 전혀 청소가 되지 않고 있었다. 수녀님께 가서 청소가 안돼 있다고 하니까 매일 청소를 하지 않고 손님이 떠나면 한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숙박료는 매일 같은 금액을 받는데 청소도 정돈도 하지 않으니 말이다. 타월도 교체해 주지 않아서 수녀님께 얘기해서 두 개를 가져왔다. 청소도 내가 대강하고 쓰레기는 큰길가의 큰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렸다.

다음 날 도미니꼬 수도원 운전기사 Joseph의 도움을 받아 2시간 동안 시내 여행을 했다. 건축 중인 거대한 댐을 우선 구경했다. 거의 완성된 것 같은데 홍수가 심해서 댐을 만들고 있어 보였다. 그리고 포르투갈 군인들이 처음 처들어 왔던 기념관으로 갔다. 거대한 동상들이 바닷가에 서 있다. 배와 수사 신부와 군인과 환호하는 원주민 등이 청동상으로 제작되어 있다. 입구에는 기념관 안내 간판이 있는데 바람으로 모두 뜯겨나가서 너덜거리고 있었다. 조형물들은 실물 크기로 아주 정교하고 아름답게 청동 부조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예쁜 성당이 있다고 해서 가봤다. 아주 작고 화려하게 도색된 성당이다. 입구에 대나무 잎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전에 결혼식이 있었던 것 같다. 잠겨 있었으나 집사를 찾아서 보고 싶다고 하니 와서 성당 문을 열어 주었다. 정말 조그만 성당이다. 10평 정도의 성당으로 바닥은 흰색 타일이 깔려있고 의자는 없다. 개인용 피정 공간 같았다. 오는 길에 파파야 4개를 샀다. 하나에 1달러 50센트다. 돌아와서 2개는 수녀님께 하나는 기사에게 하나는 내꺼다. 점심시간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피자를 시켰다. 8달러다. 그런데 나온 피자는 아주 작고 단단하고 맛이 전혀 없다. 돌아와 파파야를 먹으니 점심이 충분했다.

한 시간 정도 바닷가 산책을 했다. 바닷가에는 예쁜 성모상 등이 크고 높게 서 있고 인근에 다른 성당들도 많이 있다. 아침엔 이틀 동안 인근 성당을 찾아서 미사를 봤었다. 아주 아름답고 고전적인 성당들이었다. 역시 학생들이 많이 참례했고 성가는 성스러웠다.

▲황홀한 석양

산책을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정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X-ray 전문가로서 시니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처음 이곳에 부임했을 때는 모든 설비들이 오래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설비를 보강하고 여러 곳을 고쳐서 이제는 정상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전에는 X-ray를 찍은 후에 감광액에 담가서 다시 3, 40분을 노천에서 말려야 했는데 이제는 건조기를 수리하여 1, 2분 안에 모든 것이 끝난다.

이 곳 출장을 오기 전에 나는 정 선생님께 이곳에 있는 실업계와 인문계 고등학교 두 곳을 방문하려고 하니 사전 조사를 위해서 학교장과 학교 전화번호를 부탁했었다. 정 선생님은 공문이 없어서 학교장 이름이나 전화번호 등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거절했었다. 그러나 학교 사진과 위치 등은 알려주어서 출장에 도움이 되었다. 어쨌든 이곳에 근무하는 두 단원에게 식사라도 제공하기 위해서 만난 것이다. 그런데 정 선생님이 우선 내 숙소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 아주 조그만 방을 보더니만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권한다. 나는 이미 수녀원에 오늘까지 이곳에 머물기로 예약해 놓았으니 안 된다고 설명했으나 막무가내로 자기 집으로 가야 한다고 계속 청한다. 결국 너무 좁기도 하고 청소 등 서비스도 안 되고 있어서 수녀님을 찾아가 친구가 꼭 자기 집에서 자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한다고 설명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짐을 챙기고 집으로 가다가 바닷가에 우선 앉아서 맥주를 한 잔씩 했다. 정 선생이 오는 길에 삥땅 캔을 몇 병 사들고 왔었다.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살아온 얘기들을 조금 나누었다.

그는 원래 X-ray 기술자였다. 군대에서 X-ray 관련 사무관을 채용한다고 해서 응시 채용되어 X-ray 전문가로 근무했었다. 정년퇴직 후에 PM(Program Manager)로서 스리랑카,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 사이에 코이카에서 제공하는 혜택으로 ODA 대학원도 졸업했다. 두 딸은 이미 모두 출가했고 부인은 혼자 생활하는데 아주 익숙하여 정 선생님이 해외에서 지내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또 부인이 가끔 이곳에 와서 생활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 선생님은 자전거를 갖고 왔었다. 자전거를 끌고 오솔길로 함께 걸으며 갔는데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대문도 없는 집이다. 그리고 오른 편으로 아주 평범한 집이 한 채 있는데 바로 이 곳 대통령인 Alkatiri 저택이라고 한다. 역시 대문도 없고 경비도 없다. 친척들이 가끔씩 와서 집을 돌보고 대통령은 아주 가끔 들린다고 한다. 지금은 대통령 관저가 있으니까 올 일도 없어 보인다.

정 선생님 집은 방이 셋이나 되는 독채인데 에어컨이 4개나 있다. 얼마 전까지 오에쿠시의 모든 집에 공급되는 전기는 무료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이 헤프게 전기를 썼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집집마다 두꺼비 집이 설치되고 풀사(전기 사용 선불 카드)를 사서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정 선생님과 인근 아이들, 피부병 치료약을 발라줬다.
정 선생님과 인근 아이들, 피부병 치료약을 발라줬다.

지은 지 며칠 됐다는 밥에 직접 담근 김치, 미역국 등으로 저녁을 먹고 파파야를 들었다. 식후에 산책을 나섰다. 이곳은 석양이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역시 바닷가로 지는 석양이 황홀하게 예쁘다. 조금 걸어가니 호수가 있고 인근 잔디 들판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선생님은 산책을 나가면서 비상약을 챙긴 구급낭을 어깨에 메고 나섰다. 역시 젊은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가니 아이들이 다가온다. 선생님은 구급낭을 열고 아이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 준다. 어떤 아이는 사타구니에 많은 염증이 있다. 아마 심한 옴 같다고 얘기한다. 바닷가까지 다시 걸어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주변에는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호수와 잔디와 습지 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묵주기도를 바치고 샤워를 하고 있다가 옆집에서 항상 6시에 빵을 구워 판다고 해서 함께 건너갔다. 이 집 빵은 맛있기로 유명해서 일찍 가지 않으면 사지도 못한 다고 한다. 가보니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 아들 등이 함께 빵을 굽고 있었다. 빵을 굽는 과정은 우선 장작을 태워 숯불을 만들었다. 숯불을 옆에 있는 넓은 화덕에 골고루 펴서 불판을 만들고 그 위에 빵굽는 철판을 올려 놓았다. 철판 위에 100개의 빵을 올려놓았다. 빵 다섯 개를 1달러에 샀다. 1개에 10센트고 100개면 10달러밖에 안 된다. 장작도 사야 한다니 별로 남는 게 없어 보인다. 참 아쉽다. 그런데 주변에 망고 등 많은 나무들이 있는데 나무 위에서 닭들이 계속 울고 있다. 들어보니 이 곳 닭들은 나무 위에서 자고 생활한다고 한다. 아마 고양이나 개나 다른 짐승들이 해치기 때문 같다.

아침으로 빵과 아보카도를 8가지 채소가 든 소스에 발라 먹었다. 담백하고 고소하다. 파파야도 조금 먹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비행장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라고 한다. 가다가 바닷가에서 조금 쉬면서 파도를 구경했다. 다시 조금 걸으니 비행장이고 10시다. 비행기는 10시 45분에 이륙했다. 힘들었지만 많이 보고 느끼고 즐긴 인상적인 출장이었다.

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마을 가게에서 파파야, 아보카도, 바나나, 이야타를 조금씩 샀다.

(2018년 6월 14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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