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일본아리랑] (50) 『제주PEN 엔솔러지』 제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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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일본아리랑] (50) 『제주PEN 엔솔러지』 제8집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6.1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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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PEN 엔솔러지』 제8집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제주PEN문학엔솔러지’(회장강방영) 제8집이 어렵게 오사카필자에게 도착했다.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그 중에서 시 5편을 소개한다.

김순이 시인의 <돌 하나 올려 노멍>이다.

돌 하나 올려 노멍

 

돌 하나 올려 노멍

늴모리 동동

돌 하나 내려 노멍

늴모리 동동

설운님 언제 오나

늴모리 동동

 

밭담을 다와 가멍

늴모리 동동

원담을 다와 가멍

늴모리 동동

가신님 기다리네

늴모리 동동

 

느영나영 늴모리 동동

동동동동 늴모리 동동

 

한라산에 바람 소리

늴모리 동동

저 바당에 숨비소리

늴모리 동동

설운님 언제 오나

늴모리 동동

 

성산일출 해떠온다

늴모리 동동

남십자성 별 빛난다

늴모리 동동

가신님 보고지고

늴모리 동동

 

느영나영 늴모리 동동

동동동동 늴모리 동동

*늴모리 동동 : 내일이나 올까 모레나 올까 조바심치며 기다리는 마음(제주어)

슬픈 사연 속에서도 리듬이 경쾌하다. 제주의 새로운 민요로 곡을 붙여 부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돌 하나 올려놓고, 내려놓음은 그리운 님에 대한 기원의 대상이 당이 될 수도 있고, 장독대 뒤의 혼자만의 성지일지도 모른다. 아주 토속적이다. 밭담과 원담은 제주 농어촌의 혼합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다. 한라산의 바람 소리와 저 바당에 숨비소리는, 숨비소리가 연약한 해녀의 고달픈 한숨이 아니고 한라산의 강풍과 대비 시킨 것은 제주 여성의 강함을 의미하고 있다. 한라산과 성산일출은 제주 자연을 노래하고, 성산일출의 해맞이와 남십자성의 별 빛남은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이사 오늘이사 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제주 방언 “늴모리 동동”의 율동 속에 산자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고, 가신님 그리워하는 사자(死者)에 대한 진혼도 존재한다. 누군가가 곡을 붙였으면 한다. 새로운 제주 민요가 될 것이다.

다음은 나기철 시인의 <코로나 2월>이다.

 

코로나 2월

 

오른 쪽 귀 가끔 이명 좀 와

이비인후과 가서

공격적 약 처방받고

 

오후 네 시 도서관 벤치

소리 내어 읽는 시들

 

깃대 위 나란히

새마을기

태극기

제주도기

 

마지막 주자들처럼

달려가고 있다

 

열람실 뒤

대나무들도

오랜만에

몰래

설랜다

극성일 때, 코로나 감염이 아니고 귀의 이명으로 이비인후과를 찾아간다. 코로나 일상 중의 의외성이다. 코로나를 피해 찾아간 곳은 집도 아니고 한적한 도서관의 벤치였다. 누군가가 소리 내어 시를 읽고 있다. 새마을기, 태극기, 제주도기의 마지막 주자의 달리기 묘사는 절묘한 주변 풍경의 스케치이다. 대나무의 오랜만의 몰래 설레임은 어쩌면 응원의 설레임인지 모르겠다. 저물어가는 2월의 오후 4시는 포근한 날이라 하더라도 꽃샘 주위도 아니고 진짜 추운 겨울이다. 그 추위를 녹이면서 애틋하게 다가오고 있다.

다음은 문무병 시인의 <건입동 산지 녀 양 빌레>이다.

건입동 산지 좀녀 양 빌레

 

1. 빌레 어멍

 

설문대할망이 제주 사람의 어멍이라면

정말 큰 여자, 지레도 엉덩이도 크고

서답도 잘 하고, 구덕도 잘 졸고, 바농질도 잘 허고

물질도 잘 하는 상군 좀녀,

말도 골암직이 들엄직이 행

이 사름 저 사름 울리고 웃기는 웃헌 할망

산지 좀녀 빌레 어멍은 설문대할망 아이엔 해십주,

웃동네도 알동네도 빌레 어멍만 헌 예펜 찾을 수 없는

우리 동네는 몬딱 건입동 1300번지의

1,2,3,4...번지로 이어지는 지장깍물 동네

화력발전소, 지금은 변전소로 변해버린

‘지장깍물’ 사방에서 찰랑찰랑 흘러넘치는

건입동 1300-1번지는 우리집이었는데

지금은 길이다

 

 

1. 종택이 아방, 빌레 누나

 

거구이 종택이 아방은

한발짜리 갈치를 잡던

상군 보재기였다

빌레 어멍과 종택이 아방은 부부였는데

우리 동네에선

남편은 아들 이름을 따라 종택이 아방이엔 불렀고,

각시는 딸 이름을 따라 빌레 어멍이엔 불렀다

그림을 잘 그린다 나를 이뻐하던

상군 좀녀 빌레 누나

꽉 찬 여자, 어린 내 뺨에 뽀뽀해 주던

여고 2학년의 빌레 누나는 정말 고맙다.

바당에선 하울하울 춤추는 인어.

누나는 언제나 꿈처럼 나를 품어 주었다

 

(필자의 컴퓨터에는 아레아(・)글자가 없어서 쓰지 못했다. 그래서 좀녀, 졸고라고 썼다)

제주 사투리로 쓴 시를 사투리로 읽었을 때는 감칠나게 시맛이 있지만, 이 시를 표준어로 고쳐 섰을 때에는 그냥 설명문이 돼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위의 시는 다르다. 구태여 표준으로 쓰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내용이고, 시가 살아서 상군 보재기가 막 낚은 생선처럼 파닥거리고 있다. 그 부모에 그 딸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독자들을 훈훈하게 한다. 살짝 건드리기만 하드라도 금방 터질 것 같은 ‘꽉 찬 여자’가 나에게 뽀뽀를 해준다. 꿈처럼 언제나 나를 품어 준 빌레 누나는 나에게 첫사랑까지 안겨 주었다.

다음은 양전형 시인의 <그림자도 나이를 먹는다>이다.

 

그림자도 나이를 먹는다

 

내 그림자

등 점점 오그라들고

내딛는 발걸음 비치적거린다

흔들리는 팔이

태엽 풀린 시계추 같다

 

하늘을 쳐다보는 일보다

땅 바라보는 일 잦아져

내 그림자와 자주 만난다

 

내 그림자

밤도시 헤매는 일 줄어들고
방구석에서 누울 때 많아진다

그림자도 나이를 먹는다

차츰 눕는다

 

사람들의 걸어가는 뒷모습만 보아도 연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림자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 한낮에는 위축이 되어 더 작아지고 아침 저녁에는 생기를 잃고 길게 늘어진다. 그것은 그림자 자신의 모습이 아니고 철저하게 신변을 지키는 주인의 내면이었다. 좁은 인생의 골목길에서는 부러지고 꺾어지면서 전신주에도 붙고 담벼락에도 붙는다. 그림자가 혹사 속에 먼저 생을 마감할는지 모른다. 밤도시 해매는 허무함보다 방구석이 아니라, 아늑한 방안에서의 안식이야말로 최상일 것이다. 그것도 모든 실내등을 끄고서이다.

끝으로 강방영 시인의 <손을 잡아 봐>이다.

 

손을 잡아 봐

 

손을 잡아 봐

그 것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일이야

전해오는 따스함은 단지 체온만이 아니라

피부로 스며들어서 함께 오는 그 어떤 것이

두 손 사이에 새로운 영역을 만들면서 독립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 같잖아

없던 세상이 생겨나고 새로운 언어가 발생하고

도시들 사이에 벌어지는 활발한 교역

신제품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동식물이 번성해서

신기한 세상을 오고가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

손 내밀어 봐

진짜로 손을 잡아 보면 알아

 

생의 첫 만남과 마지막 이별도 손 인사로써 시작되고 끝난다. 처음으로 갓난아기를 대할 때도 은행잎 같은 귀여운 손을 잡고 어루만지면서 첫 대면을 한다. 임종의 순간에도 그렇다. 주름지고 앙상한 뼈만 남은 손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영원한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일상 속에서는 이렇게 극적인 상황은 아니더라도 서로 손을 잡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코로나가 이것을 간단히 무너뜨렸다. 비상식적이고 무례였던 팔꿈치치기와 주먹치기가 새로운 인사 스타일로 등장했다. ‘손을 잡아 봐’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를 일깨워주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악수 후, 해리스 부통령이 바지에 살짝 닦는 모습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서로 손을 잡지 않고 혼자 잡아도 가슴 뭉클할 때가 있다.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의 마지막 연에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며/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는 자신의 양손을 모으고 기도나 합장하는 경건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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