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43)양원장님 댁에서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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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43)양원장님 댁에서의 만찬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7.04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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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양원장님 댁에서의 만찬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엊그제 한국어평가원장인 양주윤 선생님이 집에서 식사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시간은 6시 30분이고 이영대 자문관 부부도 초대했다고 한다. 5시 40분경에 집을 나서 6시 20분에 도착했다. 아주 고급 전원주택인 JL Villa 99호다. 정원 조경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수영장, 연못, 열대수, 많은 꽃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전원주택이 20여채 들어서 있다. 주차장 마다 고급 차들이 가득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아 상류층이 거주하는 집단 주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 원장댁은 전에 한번 와서 차를 마신 적이 있어서 익숙하다. 거

실엔 각종 고급 가구와 주거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들어서니 사모님이 보인다. 제주도에서 한 달 전에 왔다고 한다. 벌써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돼지 갈비, 잡채, 샐러드 등이다. 포도주도 보인다.

아리따우로 가는 선상에서
아리따우로 가는 선상에서

잠시 후에 이영대 자문관 부부가 도착했다. 사모님이 배추 물김치와 양파 샐러드와 중국 백주도 한 병 갖고 왔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왔던 말린 오징어 4마리, 고추장 한 병을 갖고 왔다. 이제 고추장이 필요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 오늘 코이카 단체 공지에 내가 7월 30일 출국 예정이라는 내용이 떴었다. 딱 한 달 남았다. 막상 그 공지를 보니 서운하고 아쉬운 감정이 교차했다.

같은 연배끼리 모이니 대화도 격에 서로 맞고 공통의 관심사가 많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자문관은 내게 아마 농담으로 대사관에서 요즘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조리사를 구한다고 하는데 한 번 응시해 보란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한식, 양식, 그리고 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었다고 전에 자랑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기억하고 농담을 건넨 것이다. 그런데 실무 경험이 3년 이상이라니 나는 애초 결격이다.

이 자문관은 자기 집 얘기도 털어 놓았다. 경주에 20년째 소유하고 있는 기와집이 있는데 어떤 친구가 고쳐서 살겠다고 해서 3년 치 집세를 면제해 주고 살게 하였다. 그런데 1년쯤 살다가 그 집을 다른 사람에게 세주고 떠났다. 나중에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아무도 몰래 어떤 여자와 그 집에서 살림을 차렸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본부인과 어머니가 들이 닥치자 도망치듯 집을 떠난 것이다.

오랜만에 공감대가 형성된 대화방이 개설된 기분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분위기 많이 행복했다. 양 선생님이 집까지 차로 바래다 주었다. 너무 고맙다.

내가 키운 숙주나물
내가 키운 숙주나물

숙주나물 키우기

아침에 미사에 다녀와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숙주나물에 흰밥이 모두다. 대접에 숙주나물을 무치고 밥을 서너 숟갈 넣어서 비벼 먹었다. 혼자 살다보니 모든 것이 가능한 간단하고 또 절약하는 생활이 습관이 되었다.

이 숙주나물은 지난 한 주 동안 지극정성으로 내가 키운 것이다. 지난 번 오에쿠시에 출장가서 정종하 선생님 댁에 하루 신세를 졌었다. 도미니꼬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고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선생님 댁에 하루 묵지 않으면 안 된다며 극구 권하는 바람에 묵게 되었다. 20여분 숲길을 걸어서 선생님 댁에 이르렀다. 제주도처럼 집집마다 대문이 없었다. 선생님 댁은 독채에 파파야, 잭프룻, 망고 등 많은 과일나무와 꽃들이 심어진 좋은 집이었다. 방이 셋이고 에어컨이 넷이나 되니 하루 신세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바로 옆집에 잔카티르 오에쿠시 대통령 사저인데 역시 대문도 없고 사람 기척도 없었다. 지금은 수도 딜리에 살고 있고 가끔씩 들른다고 한다.

저녁을 먹으며 정 선생님이 아쿠아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낸 것을 들고 오셨다. 그 페트병에 숙주나물을 길러 먹는다는 것이다. 페트병을 반으로 자르고 밑 부분에 칼로 물이 빠지도록 몇 곳을 절개한다. 그 곳에 녹두를 놓고 매일 서너 차례 물을 부어준다. 햇빛을 차단해서 음지에 두면 된다. 대접 위에 페트병을 놓고 그 위에 수건을 덮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집에 와서 나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시장에 가서 녹두를 1달러어치 샀다. 두 컵을 준다. 아주 많은 양이다. 반쯤 페트병에 붓고 4일 정도 하루 세 번 물을 주었더니 페트병이 가득차고 넘쳤다. 다른 그릇에 옮겨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쏟아 부었더니 1/3은 이미 뿌리가 검게 변해 있었고 10센티 이상 자라서 많은 숙주나물이 병 밖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모두 쏟아서 다 자란 것을 골라내고 나머지는 다시 병속에 넣었다.

숙주나물 손질이 쉽지 않았다. 숙주나물이 모두 껍질을 머리에 쓰고 있어서 일일이 껍질을 벗겨내야 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참 귀찮은 작업이었다. 이제야 숙주나물을 만들어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들의 수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리따우로섬 초등학교 교실
아리따우로섬 초등학교 교실

요리 방법을 집사람에게 물으니 카톡으로 답장이 왔다. 살짝 데쳐서 소금과 참기름을 조금 넣어서 무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알려준 대로 해 봤더니 담백하고 감칠맛이 풍부한 숙주나물을 먹을 수 있었다. 키우는 정성과 쏟은 시간이 있어서인지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이 흘러넘친다.

그런데 저녁에 정전이 되었었다.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러나 정전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집에 자가 발전기가 있어서 정전이 되면 자동으로 자가 발전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발전기 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순간 전등이 나가버렸다. 나중에 보니 냉장고, TV, 밥통 등 모든 가전제품에 이상이 발생했다. 과전류로 모든 제품의 휴즈가 나간 것처럼 보였다. 중요한 것은 밥통과 냉장고 등이 모두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주인에게 얘기했는데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전기 밥통과 코펠

지난번에 과전류로 인하여 발생했던 가전제품들의 복구가 이루어졌다. TV, 냉장과, 밥통 등이 거의 정상으로 복구되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냉장고였다. 1층 창고에 있던 중고 냉장고를 두 번 교체하여 사용했으나 계속 문제가 생겼었다. 어느 방에서 쓰다가 이상이 있어서 신품과 교체해 두었던 중고 제품이어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 중 한 개는 하룻밤이 지나자 얼음과 서리가 가득 끼어서 얼음을 칼끝으로 제거하다가 갑자기 가스가 새어나왔다. 냉동실 밑에 냉매 가스가 흘러 다니는데 아마 칼끝으로 작은 구멍을 만든 모양이다. 냉매의 냉동 능력이 아주 강해서 손끝이 다 얼어 버렸다. 다시 한 개를 수리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전기밥통은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중요한 살림살이는 두 가지다. 밥통과 코펠이다. 이 둘은 아프리카 세네갈에 근무할 때 구입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가장 필수적인 생존 도구다. 밥통은 애정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다. 아예 못 쓰게 되었는가 생각했는데 주인 Lando가 친구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며 갖고 갔다. 고쳐서 가져왔다. 1주일 만에 밥을 해서 먹었다. 참 맛있는 흰밥이다. TV는 셋탑 박스를 교체했다. 채널이 많이 바뀌어서 나중에 다시 수리해 준다고 했다. 핸드폰 충전용 멀티탭 등도 모두 못 쓰게 되었다. 새로 구입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없으면 좋으련만 어찌될는지 심란하다. 냉장고에 있었던 음식들도 많이 버렸다. 통닭은 조금 먹고 대부분을 우리 집 강아지들 땡칠이 가족들에게 주었다.

이제 대부분 정상적으로 복구되었다. 마음도 안정된 기분이다.

아리따우로섬에서 개최된 현지 평가회
아리따우로섬에서 개최된 현지 평가회

아따우로(Atauro) 섬에서 현지 평가회

지난주 수요일인 7월 18일에는 티모르 플라자 호텔에서 안전 교육이 있었다. 그리고 19일부터 20일까지 아따우로(Atauro) 섬에서 현지 평가회가 있었다. 아따우로 섬은 전부터 꼭 가고 싶은 곳이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했었는데 평가회를 그 곳에서 하게 되어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평가회 장소에 대한 사전 투표가 있었는데 전 단원이 아따우로를 선택해서 가게 된 것이다.

목요일 아침 택시로 최규환, 경은지 단원과 함께 항구에 도착했다. 이영대 자문관은 부부가 함께 왔다. 2, 30분 기다리자 단원들이 모여들었다. 대형 페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밖의 의자는 벌써 모두 꽉 차서 선실 안쪽 좌석에 앉아 출발했다. 나는 멀미가 원래 심하여 약국에서 2달러를 주고 멀미약을 구입했다. 10개 정도의 작은 알약이다. 한 개 먹고 나머지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약 때문인지 상쾌한 기분으로 도착했다. 호텔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가는 길옆에 학교가 있는데 울타리 없는 학교다.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 잠깐 기웃거려 보았다. 낡은 칠판과 여선생님과 30여명의 어린 아이들이 선생님 지시에 따라 열공 중이다. 코코아 야자나무가 길 양쪽으로 조밀하게 심어져 있다. 다시 온 밭이 야자수인 넓은 숲을 지나가니 호텔이 보인다. 바나나 숲도 넓게 펼쳐져 있다. 엄청나게 많은 바나나가 열려 있어 어떤 나무는 바나나 열매 지지대가 있고 어떤 것은 거의 나무가 휘어질 만큼 열려 본 줄기가 땅에 닿아 있는 것도 있었다.

아리따우로섬 호텔에서
아리따우로섬 호텔에서

명칭은 호텔인데 아주 허술한 방갈로 비슷하다. 콘테이너를 갔다가 서로 두어 개씩 연결해 놓은 집들이다. 내 방은 1호실인데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방 하나는 이영대 자문관 부부가 또 하나는 나와 최 자문관이 쓰게 되었다. 방 하나에 작은 싱글 침대가 두 개다. 세면대와 샤워기가 붙어 있다. 세끼를 제공하고 1인당 80달러다. 엄청 비싼 편이다. 그러나 호텔이 이곳 밖에 없고 또 동티모르에서 이색적인 관광지가 여기뿐이다 보니 이해할만하기도 하다.

오후에는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의견 교환, 분과별 협의 등이 있었다. 우리 분과는 5명이었다. 이무현, 조희영, 경은지, 황영숙, 그리고 나다. 이곳의 교육 상황,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교사의 개선점 등을 토론하고 경은지 선생님이 대표 발표하였다. 계속 졸렸다. 아마 멀미약 때문 같다. 11시 30분까지 듣기만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따우로 섬은 딜리 바로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전혀 개발되지 않고 보존되어서 물이 아주 깨끗하고 어족도 잘 보존되어 있다. 스노글링, 수쿠어 다이빙 등의 장소로 유명하고 장비를 대여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다음 날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자유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일본에서 봉제 공장을 만들어서 원주민이 그 공장에서 손지갑 등 제품을 만들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공장을 찾아갔다. 가보니 공장에 부속된 전시장에서 물건을 아직 팔지는 않고 있고 어디선가 성가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왔다.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10여명의 여자들이 함께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 12시 삼종 기도에 따른 성가인가 싶었다.

전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물건들은 손가방, 지갑, 동전 지갑 등이었다. 아주 정교하고 예쁜 것들도 많았다. 일본에 수출하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나도 10여개 구입했다.

예술성이 뚜어난 부조

점심때가 되어 현지 식당에서 5달러짜리 뷔페식 식사를 간단히 하고 돌아왔다. 딜리오 가는 배는 3시에 있었다. 선착장에 가니 페리가 육지에 바로 대지 못하고 작은 배로 페리까지 가서 옮겨 타는 것이었다. 작은 배를 타는 곳까지는 또 발을 걷고 20여 미터 물속을 걸어가서 타야 했다. VIP 실을 끊었는데 35달러를 20달러로 할인해 주었다. 에어컨은 너무 잘 되어 오히려 추울 지역이었다. 파도가 커 보였다. 나는 또 멀미약을 복용했다. 한 숨 자니 바로 항구다. 미크롤렛으로 집에 도착하여 세탁하고 잠에 빠졌다.

(2018년 6월 29일, 7월 2일, 7월 8일, 7월 20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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