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52) 강창일 전 주일대사 ‘개막도 못하고 막내린 안녕극’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52) 강창일 전 주일대사 ‘개막도 못하고 막내린 안녕극’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7.06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2) 강창일 전 주일대사 ‘개막도 못하고 막 내린 안녕극’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최희준 가수가 불러서 힛트 친 노래 <하숙생>은 제목과 가사가 찰떡궁합처럼 딱 들어맞는다.

‘하숙생’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임시살이를 의미한다. 언젠가는 그 삶에 종지부를 찍고 영원한 새로운 보금자리를 지향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나그네’의 이미지도 그렇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어디서인가 정착을 지향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외교도 찰떡궁합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궁합은 맞아야 한다. 그래서 외교 관계에 있어서 당사국 간에 아그레망(주재국 부임 동의)이 필요하다. 혹시 상대국이 아그레망을 거절했을 때에도 그 이유를 파견국에 제시할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지난 6월 22일자 민단신문은 1면에 21일 도쿄도내 호텔에서 열린 <한일관계 개선 노력에 사의(謝意)>라는 제목으로 민단주최 강창일 대사 환송회 기사가 게재되었다. 여건이 민단중앙단장은 환송사에서 “재작년 1월 나리다공항에 마중 갔던 것이 어제와 같다 한일관계가 가장 차가워진 시기에 강 대사가 아니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한일연맹을 이끌고 한일 관계 개선에 노력했던 경험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항상 동포를 걱정하고 애정으로 보살펴 준 그 용기와 온정에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하다”고 최대급 찬사를 보냈다.

강 대사는 “전 위안부 판결 소송이나 전 징용공 대법원 판결 등에서 한일 관계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와중에도 정치를 제외한 문화교류는 점점 활발하였다. 코로나가 안정되면 상호 왕래하면서 한일 교류가 큰 힘이 될 것이다.”

“각지의 민단을 방문했는데 전국 어디에서도 따뜻하게 맞아주어서 아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정성을 다하여 응원해 준 것을 마음에 새기고 귀국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하고 나서 “귀임 후, 나와 아내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로 돌아가서 남아 있는 연구와 앞으로 한일 관계를 쌓아 갈 젊은 의원들을 지도하는데 힘을 쓰겠으며, 다시 일본을 방문하여 우호 개선에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읽고 필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강창일 대사에 대해서 여건이 민단 중앙단장이 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재일동포들에게도 애정으로 보살펴 주었다고 찬양 일색으로 일관했다는 사실이 너무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강 대사가 동포들에 대해서는 그랬을는지 모르지만 한일 양국 관계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실정(失政)의 대사였다는 것은 본인도 인정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의 송별회 자리라 해도 너무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민단은 문재인 정권 당시, 한일 관계에 대해서 이대로는 안된다고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은근히 한국 정부를 압박했었다. 이렇게 최악의 상태까지 추락한 한일 관계 속에 스스로도 일본통이라는 강창일 대사가 2021년 1월에 부임했으니 일본만이 아니라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문재인 정권만이 아니라 한국 국회에서도 반일의 선두 주자를 자처하던 그가 주일대사로 부임한다니 일본 정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분개했다. 일본 정부에서 아그레망을 발급하기 전부터 한국 정부가 강창일 주일대사로 발표했기 때문에 일본은 불쾌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만약 강 대사를 거절하면 무조건 일본 책임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측면도 있고 다시 한일 관계를 꼬이게 하기 싫어서였다. 어쩌면 한국 정부는 이 점을 노렸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차원에서 강 대사를 무시했다. ‘가이코로시’라는 일본말이 있다. 키우면서 죽인다는 의미이다. 일본 외무대신은 물론 수상까지도 처음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는 것을 회피했는데 사실상의 면담 거부였고, 그것은 이임 전까지 불변의 원칙으로 고수했다. 한국 정권이 바뀌고 강 대사 이임이 확실해지자 하야시 외상은 6월 16일 이임 인사차 외무성을 방문한 그와 처음으로 만났다. 기가 찰 첫 만남이 이임 인사였다.

일년 반 동안 일본 정부로부터 왕따를 당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같이 하는 이웃, 우리 한국 대사를 만나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그 빌미를 제공한 한국 정부 탓에 재일동포사회는 공관에 대한 불신감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왕따 당한 대사가 측은해서 동포사회는 따뜻하게 대했다.

그러나 민단신문은 이러한 측면과 대사로서의 자질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제대로 기사화해야 했다. 일본 당사국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전혀 상대를 안 한 대사에 대해서 무슨 업적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강창일 전 대사는 귀국해서 학생들과 의원들에게 한일 관계에 대한 강의를 한다고 한다. 그가 보는 일본에 대한 주관적 이념은 그의 자유이지만 그의 강의가 왜곡으로 빗나갈 것이 걱정이다.

하숙생 2절 첫 가사는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개막도 하기 전에 막 내린 주일대사 안녕극’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