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53) 아베 전 수상 사망과 재일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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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53) 아베 전 수상 사망과 재일동포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7.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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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아베 전 수상 사망과 재일동포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가슴 철렁했다. 7월 8일 오전 11시 30분 경 아베(67) 전 수상이 선거 유세 중에, 총격으로 심폐정지 상태라는 속보도 그렇지만 범인이 누구냐애 대한 불안감이 더욱 가슴 철렁하게 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바로 붙잡혀서 신분이 드러났다. 자위대 출신의 야마가미 데쓰야(41)였다. 신분이 뚜렷한 일본인이었다.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전 수상에 대한 애도에는 일본인과 변함이 없지만, 필자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의 가슴 한편에 솔직히 안도감이 젖어 들기도 했다. 돌발적으로 아니면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날 때마다 재일동포들은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마음 졸여야 했다.

가해자가 재일동포였을 때 받아야 하는 정신적 고통은 보편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주시하는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강박 관념으로 동포들 마음으로 파고든다. 동포들의 이러한 정신적 증세는 유전병처럼 대물림 속에 이어진다. 외국 그것도 구 식민지 종주국에서 살고 있는 더부살이인 재일동포의 숙명이다. 일반 외국인과는 다른 차원의 가슴앓이이다.

만행의 울분과 비애의 공유 속에서도 범인이 동포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그런대로 빠져 있었다. 그런데 사건의 요인이 특정 종교에 대한 원한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포들의 마음에는 또 다시 불안감에 휩싸였다. 처음에 조사 당국은 특정종교라고 종교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동포 대다수는 혹시나 하면서 예감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와 언론을 말살하기 위해 국가 권력 최고 지위에 있던 인물을, 선거 유세 중에 백주 당당히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의 만행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모두가 한 목소리가 되어 부르짖었다. 당연한 비난이다. 그러나 범인은 아베 전 수상의 정치 신조에는 관계없으며, 특정종교에 너무 몰두한 모친의 과잉 헌금으로 가정이 파산 당하고 붕괴돼버린 원한의 앙갚음에서 일으킨 단독 범행이라고 자백했다.

범인은 모친의 과잉 헌금으로 가정이 파산과 붕괴된 책임은 종교 단체 때문이며, 처음에는 그 종교 단체의 책임자를 노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없어서 아베 수상도 그 종교 단체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저격했다고 진술했다.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의 지도자로 알려진 아베 전 수상이 범인의 일방적인 착각과 아집으로 대리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조사 당국이 특정종교라고 발표했던 일본의 종교 책임자가 11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나카 도미히로 <세계 평화통일 가정연합> 일본지부장이었다.

일반 사회에 알려진 <통일교회>가 2015년에 개칭한 종교 단체였다. 아베 전 수상은 범인이 말하는 자신들의 종교와는 전혀 상관없으며, 우호 단체에서 세계대회를 열었을 때, 영상 메시지를 발표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수상은 지난 해 9월 한국에서 열린 <천주평화연합>과 <세계 평화통일 가정연합>이 공동 주최한 ‘신 통일한국 안착을 위한 싱크탱크 2022’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이 행사에는 트럼프 전 미국 내통령, 훈센 캄보디아 수상 등, 세계 정치가들도 영상 메시지로 참석했었다. 야마가미 데쓰야는 이 영상을 보고 아베 전 수상을 노렸다고 했다.

그후, 경찰 조사에서 야마가미 데쓰야 모친은 1억엔의 헌금을 낸 것을 알아냈고, 종교 담당자는 헌금 1억엔 중에 5000만엔은 돌려 주었다고 발표했다.

약 30년 전 일본 아이돌 가수 사쿠라다 쥰코 씨(64)가 한국에서 열린 당시 통일교 집단 결혼식에 참가해서 화제를 집중했고, 일본에서 영감 상법의 비합법성에 비난이 속출했던 과거가, 아베 전 수상의 저격 사건으로 다시 고개를 내밀고 연일 일본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다.

한편, 7월 6일 사이다마시 문화센터에서 개최된 구 통일교회 집회 '신(神)일본 제1지구 책임자 출발식'에서 교회 간부가, "이노우에 요시유키 선생님은 이미 신도가 되었습니다.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기면 선이고 지면 악입니다."라고 열변을 토한 후에, 당사자인 이노우에 씨가 연단에 올라가서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노우에 요시유키 씨는 누구인가. 그는 제1차 아베 내각 당시 아베 수상의 비서관으로 최측근이었다. 그후 정계에 진출하여 아베파로서 이번 참의원 선거에 비례구로 입후보해서 당선되었다. 구 통일교회 신도들의 적극적인 지원의 결과이기도 하다.

아베 전 수상의 저격 사건이 없었다면 아베 씨는 양손을 치켜들고 축복했을 것이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아이러니와 부조리 속에 재일동포의 가슴앓이와 주눅 속의 일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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