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버이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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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버이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7.1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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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서흥식씨
수필가 서흥식씨
수필가 서흥식씨

이제 팔순이 넘는 나이에 37년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버지께서 40세 되던 해에 장남인 내가 태어났다. 거의 손자에 가까운 장남을 낳았으니 정말 많이 기뻐하셨을 것이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이고 세상 살기가 어려운지라 중산 촌에서 살다가 해변으로 거주지를 옮겨서 살고 있었다. 광복 후 3년쯤 됐을 때는 6,25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제주4·3사건이 일어나고 흉년도 겹치면서 참으로 힘들고 어려움이 많았던 시대였다.

아버지는 남과 같이 학문을 배울 기회는 없었으나 머리가 매우 영특하시어 한번 듣거나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으셨던 것 같다. 특히 일상에서 쓰는 한자는 거의 읽을 수 있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무엇이든 알았고 이해하며 살았다. 그런데 자식들은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좋아서인지 배움에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독학을 하는 등 부지런히 앞날을 닦았다. 자식들에게 의지하면서 말년에는 비교적 어려움 없이 지내시었다. 84세 때에 몸이 편치 않아 앓아누워서 며느리의 병수발을 받으면서 지내시다가 4, 5개월 만에 85세로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62세 때에 돌아가셨지만 새어머니를 모셔오도록 권유하였으나 내가 얼마나 살겠느냐며 귀신만 하나 더 만들어 놓으면 자식들만 짐이 된다고 하시며 극구 거절하시었다. 어머니 없이 20년 이상을 홀로 살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곧은 성격의 소유자이셨다. 아버지의 성품은 매우 고집스러울 정도로 청렴결백하여 결코 남의 것을 욕심내지 않았으며 남에게 조그만 은혜라도 입게 되면 염두에 두었다가 반드시 보답하는 성격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여자이면서도 힘이 센 장사였는데 아버지는 할머니를 닮아서인지 옛날 동네 청년들과 씨름판을 벌이면 언제나 독판을 몰았으므로 모전자전의 力士라는 소리를 듣곤 하셨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7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어서 의료시설이 지금 같이 잘 되어있지 못했던 때였다. 한 번도 제대로 병원에 가서 편하게 진료를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가슴 아프다. 지난해 2월에만 해도 내가 정신을 잃어서 쓰러졌을 때 아내와 자식들이 병원으로 데려가서 응급진료를 받았기 망정이지 그냥 방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새 옷을 사드리고 새 신발을 챙겨드려도 입던 옷 낡아도 입고 신던 신발 낡아도 신겠다며 그냥 보관하신다. 아버지는 아마도 저승 갈 때 가져가시려고 아끼고 챙기셨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아끼고 검소하게 사셨다. 부모 마음은 저토록 애틋함인데 살아생전 부모 마음을 모르고 자식들은 엉뚱한 짓으로 부모 속을 애타게 하는지 모르겠다. “너도 커봐라. 자식 키워보면 알게 된다.” 우리 아버지는 이것이 인생의 삶이라고 생각하시고 사셨던 분이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의 은혜를 입는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도중에도 수많은 은혜를 받게 된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은혜를 잊고 살아가는데 이 때문에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으며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이를 명시하고 있다. 은혜는 남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혜택이다. 저버림이라 함은 잊고 배반함이니 은혜를 받거든 반드시 갚아야 한다. 출생과 양육은 부모의 은혜이니 효도를 다하고 교도 육성은 스승의 은혜이니 제도를 다해야 한다. 우리는 잘 사는 방법을 배워서 그 배운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 은혜에 대해서는 타 종교에서도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는 길을 가던 중 울고 있는 고어를 만났다. “나무는 멈추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돌보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네. 한번 흘러가면 좇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고 가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부모님이라네” 고어는 이 노래를 부른 뒤 음식도 먹지 않고 계속 슬퍼하다가 선채로 말라 죽었다고 한다. 원래 사람은 자기중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어도 자신만을 알고 자신의 일만 챙기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다음에 해야지”하며 시간이 지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친구도 다 떠났다.

무릇 사람이라면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것이다.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는 배은망덕이라는 말과 같이 결코 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오늘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다시 볼 수도 없으니 이래서 인생은 허무하다고 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내가 오르기 어려운 큰 산이면서 건너지 못할 깊은 바다 같으신 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길을 가는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지금 이 순간도 아버님이 보고 싶다. 조선 말엽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서 고단하고 피곤함을 다 무릅쓰고 한평생 곧게 사셨던 아버님! 여러 손자 손녀들도 착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사오니 이제 편히 쉬시고 고이 잠드소서. 아버님의 묵직한 사랑을 지금 이 순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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