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완) 모두가 페인트를 둘러 쓴 벽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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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완) 모두가 페인트를 둘러 쓴 벽화 작업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7.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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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모두가 페인트를 둘러 쓴 벽화 작업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토요일이지만 등교했다. 사실 오늘 출근해야 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어제 이무현 선생님에게 내일 뭘 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학교에서 벽화 그리기를 하니까 가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침 6시 30분 미사를 하고 바로 학교로 갔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금주에 내가 주최할 세미나 원고를 두세 차례 읽어보고 또 PPT를 제작하다 보니 금새 시간이 지나간다. 12시쯤 되자 코이카 봉사단원들이 모여든다. 경은지 선생님이 오늘 시간을 낼 수 있는 딜리 거주 모든 단원들에게 벽화 그리기 봉사 활동을 부탁했었다. 벽화 그릴 곳은 여러 학교의 공용 교문에서 우리학교

항상 맑고 열성적인 학생들
항상 맑고 열성적인 학생들

교문까지 500미터 정도의 왼쪽 벽면 전체다. 높이는 3미터 정도 된다. 벽면은 모두 이미 흰색으로 도색되어 있고 연필로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색칠만 하면 된다. 그림 내용은 우리학교 6개 학과를 상징하는 그림과 글, 그리고 4계절을 나타내는 그림과 명언들인데 한국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오가며 자연히 한국말도 익힐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와 그림들이다.

아주 길고 넓은 화폭이다 보니 작업량이 아주 많다. 20명 정도의 단원들이 모였다. 페인트 통과 붓, 장갑을 끼고 시작했다. 10여명의 학생들이 거들었다. 나는 전자과를 담당했다. 한글 슬로건은 ‘전자, 세상을 변화시킨다!’라는 글씨 쓰기다. 흰 벽에 검정 글씨로 쓰니 아주 희미했다. 결국 세 번 덧칠을 하니 선명해졌다. 그런데 글씨가 밋밋하다. 노란색으로 가장자리에 음영을 주었더니 아주 또렷하고 멋있게 변했다.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하다 보니 옷과 신발, 얼굴과 손들이 페인트 투성이다. 6시가 되어 거의 마무리되었다. 이 작업은 경은지 선생님이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 현장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사업을 할 때는 거의 재료 구입비 정도와 최소한의 경비만 지급하기 때문에 봉사단원들이 품앗이 하듯 함께 모여 인력과 지식과 재능을 기부한다. 오늘은 거의 모든 단원, 시니어 단원들이 나와 도왔다. 동네 어린이, 어르신들도 모두 나와 구경한다.

모두 짐을 챙기고 정리하고 교문을 나섰다. 2, 30분 비웠는데 그 사이에 어린 아이들이 우리가 정성껏 그린 그림 위에 20여개의 손바닥을 찍어 놓았다. 어쩔 수 없고 다음에 조금 다시 손보면 될 것이다. 벽화를 다시 살펴본다. 학교 이름, 여섯 학과 이름과 상징, 그림과 슬로건, 학교 상징 그림,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다양한 그림이 아름답고 화려하고 재치 있게 그려져 있다. 거의 200개 정도의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경은지 선생의 능력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벽화 작품이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일년동안의 업무를 종합적으로 보고하는 세미나를 마치고.

모든 단원들이 한국식당 나리스로 향한다. 나는 너무 피곤하여 양해를 구하고 그냥 집으로 갔다. 간편식 전복죽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잠에 빠져들었다.

자문활동 종합 보고 세미나와 송별식

오늘은 정신없이 헤맸던 날이다. 오늘 전 직원을 대상으로 나의 일 년 동안의 업무를 종합적으로 보고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우여곡절 끝에 400여 쪽의 ‘베코라기술고등학교 발전 추진 계획’을 50부 수령했다. 100부 인쇄에 필요한 예산을 미리 지급했는데 아직 반 분량 50부는 도착하지 않았다. 또 원래 발주처였던 코이카인쇄소가 아니라 최 전문가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설 인쇄소에 부탁하여 인쇄하여 가져온 것이다. 인쇄 품질이 많이 떨어졌다. 그나마 하루 전에 도착하여 다행이다.

어제부터 시내에 나가 세미나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음료수, 과자, 수첩, 볼펜 등 참석자 개인별로 지급할 물품을 충분히 준비했다. PPT 자료도 만들고 교장, 교감과 회의 순서 등도 협의했다. 학교에서는 회의실 청소와 자리 배치 등을 했는데 세미나 형태가 아니라 보고회 형태였다. 교장에게 이야기 해서 다시 자리 배치를 변경했다. 디귿자(ㄷ) 형으로 만들었다.

시험기간이고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들은 그냥 퇴근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아마 스텝 중심으로 2~30명의 선생님들이 모일 것 같다. 2시 30분에 시작됐다.

우선 ‘한국교육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내가 기조 강연을 했다. 7시에 등교하여 11시에 하교하고 다시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귀가하여 새벽 2시에 잠이 들고 6시에 깨서 일과를 시작하는 한국 고등학생들의 치열한 삶을 영상 위주로 보여주고 설명해 주었다. 또 나는 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학년 주임 등을 했었는데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저녁 11시에 돌아오는 그 많은 세월과 또 외국어고등학교 교장으로 또 제주도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은 일반계 고등학교인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겪었던 학습지도, 생활지도, 그리고 교직원 관리 경험 등을 설명했다.

송별식에서 전통가옥 선물을 증정했다
프란치스코 교장이 송별식에서 전통가옥 선물을 증정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세계 6위의 석유제품 수출국가가 되었고 세계 5대 정유회사 중에서 3개가 한국에 있다는 설명에 선생님들은 놀라워했다. 사실 동티모르는 바다에 석유 매장량이 조금 있어서 지금은 호주 등에 채굴권을 주고 아주 작은 지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나마 정부 고위 지도층이 독식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 석유 자원도 잘 활용하면 동티모르의 경제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어서 우리학교 운영 개선에 필요한 사항을 13가지로 분석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학생관리, 평가, 공문서 처리, 교사 역량 강화, 지역 사회와의 유대, 학교 기업 운영, 교육과정 운영, 교직원 근무 평가 등이다. 마지막으로 테툼어로 쓴 송별사를 10분 정도 낭독했다. 우리말로 쓴 것을 펠릭스 선생님이 테툼어로 번역해 주었다. 거의 열 번 연습을 하고 오늘 낭독했다. 이어서 교장의 답사가 있었다. 아주 길다. 그 동안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의 건강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학교에서는 동티모르 전통 가옥 모형 선물과 샴페인과 케익을 준비했다. 기념 촬영으로 마무리했다. 아주 인상 깊은 전별식이었다.

귀가하여 쉬고 있는데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채진규 자문관 환영식과 나의 송별식을 겸한 자리가 나리스 식당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전화를 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차례 찍혀 있었다. 6시가 예정 시간인데 지금 7시 40분이다. 급히 최규환 자문관에게 전화해보니 모임은 거의 끝났으나 와서 술이나 한 잔하라고 한다. 급히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지리를 잘 모른다. 한국대사관도 모르고 나리스 식당도 모른다. 결국 중간에 내려서 또 다른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늦은 것을 사과드리고 육개장을 시켜 먹었다. 이영대, 최규환, 채진규 자문관은 전에 이곳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이라 아주 즐거워 보였다. 이번에 새로 오게 된 채진규 자문관은 NIPA 자문관이다. 사실 전에 내가 처음으로 세네갈에 가게 되었을 때 함께 파견된 코이카 자문관이었다. 그는 3년간 이 곳에서 근무를 마치고 다시 NIPA 자문관으로 온 것이다.

오늘 일도 많고 정신없이 헤맨 하루였다.

출국 준비 짐 싸기

아침에 비다우 성당에 다녀오고 귀국을 위한 택배 준비를 했다. 어제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이것저것 정리하고 가방에 챙기고 하면서 겨우 마무리했다. 한 사람 살림살이가 이렇게 복잡하고 크게 번성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이상했다. 올 때는 가방 하나 갖고 왔는데 말이다. 코이카에서 지급하는 이민 가방이 두 개 있어서 그 나마 다행이었다. 가방 하나에는 커피 200g 짜리 100개를 넣고 하나에는 밥통, 코펠, 노트북, 책 몇 권을 넣으니 가득찼다. 코이카에서 택배를 50Kg까지 지원하는데 무게를 재보니 60Kg이다. 커피 가방에서 10Kg을 빼서 수하물 가방에 넣었다.

태권도를 익히는 베코라기술고 학생들

대강 정리하고 공항으로 나갔다. 추경숙 시니어 단원이 출국하는 날이다. 이제 칠순이 지났는데 해외에서 열심히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사실 5일 전에 출국해야 하는데 고향인 대구 지역의 과학교사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교육 봉사를 펼친다고 하여 그 분들을 돕기 위해 며칠 더 머물다 가는 것이다.

오다가 박형규 선생님과 티모르 플라자에서 간단히 점심을 했다. 박 선생님이 그 사이에 너무 많이 초대를 받아서 이번에는 자기가 쏜다고 한다. 나는 인도 카레를 시켰다. 6달러 정도 한다. 식사 후에 박 선생님을 집으로 안내했다. 이제 짐들을 나눠줄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혹시 박 선생님이 필요한 물건들이 있으면 제공하려는 것이다. 5개들이 라면 두 봉지, 조리 양념 한 박스, 찹쌀 2Kg 등을 드렸다. 그는 밥을 잘 안 해 먹기 때문에 라면을 아주 좋아했다. 그는 모든 단원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다. IT 전문가여서 컴퓨터 관련 도움이 해외에서는 많이 필요하고 또 다른 사람과는 달리 아주 친절하게 안내와 지도를 제공한다. 요즘은 테툼어, 영어, 인도네시아어가 함께 제공되는 사전 Application을 제작하고 있다. 나도 시제품을 써 보았는데 아주 유용했다. 저녁은 얼마 전에 사 놓았던 돼지 족발 한쪽을 1시간 정도 끓여서 된장을 풀어 찌개 비슷하게 만들어 흰밥에 먹었다. 족발 맛도 좋고 국물도 구수했다.

마지막 교리 시간 그리고 송별 미사

예비신자 교리 공부
예비신자 교리 공부

오늘은 한인 미사가 있는 날이다. 8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50분에 도미니꼬 고아원 성당에 도착했다. 9시부터 예비신자 교리가 있어서 준비해온 수업자료인 유인물을 꺼내고 책상도 새로 배치했다. 오늘이 마지막 교리 시간이다. 그 사이에 넉 달 동안 매주 교리를 했었고 그에 따른 교재를 매주 유인물로 만들어 배부하고 새 예비신자들에게 나름 정성껏 가르쳤다. 오늘 지나면 아마 신부님이 몇 차례 종합 교리를 하고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교리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코이카 봉사단원과 월드비전 봉사단원과 축구 코치 등이다.

오늘 교리 주제는 ‘하느님을 따른다는 것은?’과 ‘한국 천주교회 역사’이다. 가끔 한 두 분 못나오는 분도 계셨는데 오늘은 전원 출석이다. 특히 유소년 축구코치인 이민영 선생님도 일찍 왔다. 아주 큰 키에 건강한 근육질이어서 그냥 보면 남자인가 싶을 정도로 건장하다.

10시부터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는 산티야곱 신부님의 영명 축일이기도 해서 성대한 분위기였다. 또 나와 미 대사관에 근무하는 미국 영사도 다음 주에 출국하게 되어 함께 축하해 주었다. 출국 인사로 항상 누구에게나 그랬듯이 이름이 새겨진 타이즈를 목에 걸어 축하해 주었다. 미사 끝에 또 신부님이 특별히 안수해 주셨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파티마 수녀님이 부르신다. 가보니 한 여학생이 예쁜 포장지에 싼 작은 선물을 준다. 펴보니 ‘Timor-Leste'라고 수 놓은 손수건이다. 정성스레 만든 꽃 장식이 함께 새겨져 있다. 고마워서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데 정작 그 아이와 사진을 찍어 두어야 하는데 바쁘다 보니 깜빡했다. 가장 고마운 인상 깊은 선물이었다.

미사 끝에 라멜라우 호텔에서 모두 함께 점심을 했다. 신부님의 영명 축일과 또 우리의 송별도 기념하여 큰 케익, 포도주, 위스키 등이 뷔페식 음식과 더불어 준비되어 있었다. 거의 3시까지 먹고 마시고 즐겼다. 중간에 김신환 감독이 들어와서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이 호텔에서는 김 감독에게 언제나 무상으로 차를 대접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비단 그런 일이 아니라도 항상 제 집처럼 편히 와서 여가를 보내는 것 같다. 이곳 상임이사와 영업부장이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버스를 타려고 길을 건너는데 호텔 이사인 송이사님이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의 차로 집까지 편하게 돌아왔다. 이제 한인 성당과 한인 신자들과의 작별도 행복하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집에 와서 오후에는 영화를 보며 조용히 지냈다.

살림살이 나눠주기, 그리고 귀로여행

이 곳 생활 이제 이틀을 남겨두고 있다. 그래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선 코이카 차량으로 두 개의 이민 가방을 갖고 DHL에 짐을 부치러 갔다. 그런데 짐을 재보니 55Kg 정도가 된다. 집에서 정확한 저울이 없어서 몸무게 재는 저울로 쟀더니 역시 오버되었다. 책들을 몇 권 빼내어 간신히 무게를 맞췄다. 약간만 오버되어도 엄청난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

집으로 오다가 이제 새로 오신 김신일 시니어 단원이 임시 머무르는 호텔로 갔다. 아주 넓고 가구도 좋아 보였다. 그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자동차 부품 상을 해 왔었다. 앞으로 두 달간 테툼어 교육도 받고 집도 구하면서 적응 준비를 하게 된다. 이제 집을 정하면 살림살이가 필요한데 내가 사용하던 살림도구들이 필요하면 주겠다고 했다. 있는 대로 모두 달라고 한다. 또 이무현 선생님 댁에 사는 청년 단원이 있다. 그는 집도 정하고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었다. 우선 그 청년이 집으로 와서 필요한 것들을 가져갔다. 그리고 나머지 모두는 내가 큰 상자 두세 개에 정돈하여 꾸려 두었다. 저녁 때 김 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택시에 물건들을 모두 싣고 그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제 집안에 아무 것도 없다. 빈 방을 채우는 무거운 공기뿐이다.

전기시설도 없는 곳에서 사목했었던 한국 수녀님들

다음 날 간단한 백색을 들고 공항으로 갔다. 많은 단원들이 나와서 환송해 주었고 경은지 선생님은 역시 여러 선생님들이 쓴 송별사를 모아서 긴 종이 두루마리로 만들어서 기념으로 주었다. 그런데 발리 행 비행기가 갑자기 취소되어 버렸다. 발리에서 쿠알라룸프르를 거쳐 태국으로 연결해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결국 강 과장이 잠시 후에 출발하는 다른 비행기를 수배하여 조금 늦게 출국할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태국에서 3박 4일 귀로 여행을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다사다난하고 힘든 그러나 보람차고 행복한 추억이 많은 동티모르에서의 일 년이었다. 나의 해외 봉사 활동을 묵묵히 지원해준 가족, 친우, 한국국제협력단 관계자들 그리고 늘 함께 지켜주고 계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2018년 7월 21일, 7월 24일, 7월 26일, 7월 29일, 7월 30일, 7월31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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