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54) 『제주문학』2022, 여름호(9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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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54) 『제주문학』2022, 여름호(91집)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7.2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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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제주문학』2022, 여름호(91집)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제주와 일본 하늘 길이 꽉 막혀버려서 일반 항공 우편물은 40여일이 걸려서 어기적거리며 오는데, EMS(전자우편)은 5일만에 도착했다.

<제주문학>여름호(91집)는 그렇게 해서 빨리 받아 볼 수 있었다.

이번 여름호에는 필자가 쓴 단편소설 <제주를 품은 이지치교수>라는 졸품도 게재되었다. 지금까지는 재일동포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 전부였는데, 이 작품에는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썼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동포사회는 물론 한국, 특히 제주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나름대로 썼다. 작품 전면을 소개할 수 있으면 이 소설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쓰고 싶다. 그러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작품에 대해서 쓰면 필자 혼자의 주관적인 얘기가 되기 때문에 나의 작품이지만 논하는 것은 생략한다.

시의 경우에는 한 편 전문을 게재하고 소개해서 필자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감상을 쓰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읽은 감상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문학>여름호에는 ‘특집 1 제주와 해양 문학’과 ‘특집 Ⅱ 고양문인협회 회원 초대작’이 있었다.

다음은 해양 문학에 게재된 한승엽 시인의 <보목리 자리돔별>이다.

보목리 자리돔별

 

제지기오름에 오르자

저기, 어느 노인이 포구로 가고 있네

 

먼 하늘 바다로

가까웠던 바다마저 하늘 향해 오르내릴 즈음이면

수평선에 주파수를 맞춘 물결은

별빛들이 온다는 걸 다 안다

 

외따로 머물러 있는 섶섬지기가 마중 나와

한참을 바라보는 숨죽인 모습,

그물망 촘촘히 반짝거리던 것들의

부끄러움은 작은 외로움을 안고 떼로 떠다녔을

생(生)의 몸짓이다

 

마침내 바다가 은하로 출렁거리며

황갈색 몸으로 파닥거리며 빛나는 것들

파랑의 공간과 헤어지며 더 커져만 가는 눈동자들이

언제나 마지막 소원의 문구를 읊조리며

연신 떠오르고

 

산 사람에게는 희망을 건졌으니 참 다행이다, 라는마음

차마 건넬 수 없는 저 노인

서러웠던 얼굴의 진한 눈매가

바다의 깊은 숨을 뜬다,

어린 별들의 비늘이 뜨고 있네.

 

지금까지 자리하면 물회, 무침회, 초장에 찍어먹기, 구워먹기, 자리젓 등, 요리한 자리를 먹는 과정의 작품들은 자리떼만큼 무수히 많았지만 자리를 그물로 건져올리는 과정의 작품은 드물었다. 아니, 필자는 처음 읽고 있다. 다른 물고기를 낚거나 그믈로 건져올릴 때의 펼떡거리는 약동의 모습이 이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노인은 애잔한 연민의 정에서 그 작은 생명들을 그물망으로 들어올리고 있다. 그때마다 어린 별(자리)들의 비늘이 뜨고 있다. 나이 많은 어느 노인과 어린 자리의 대비 속에 생명을 건져 올린다는 달관은 독자 가슴에도 찡하게 와 닿는다. 그런데 왜 보목 자리일까.

다음은 ‘고양문인협회 초대작’ 속에서 이은협 시인의 <내 마음에 비어 있는 방>이다.

 

내마음에 비어 있는 방

 

내가 날마다

그대만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그대 오기만

기다리는 것을 보면

내 마음 속에는

그대만 들어와  살기 바라는

비어 있는 방 하나가 따로 있나보다

 

이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방

날마다 그대 없으면 허전해서 못 사는 방

오로지 그대 혼자만 드나들 수 있는

비밀의 방같은 것 하나가

내 가슴 속에 외딴섬으로 있나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이렇게 날마다

오랜 시간 생각하며 보낸 세월

마음 사이로 붉게 열매 맺혀

그대 하나만 그리워하고

그대 하나만 사랑하며 살 수 없으리라

 

우리는 일상적으로 마음이 허전하다, 공허하다, 쓸쓸하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마음이 비어 있어서 그 비운 곳을 채울 수 없는 안타까움에서 독백처럼 중얼거리고 자신을 고독 속으로 침전 시킨다. 그러다가도 그 허전함을 치유하고 메꿀 수 있는 때가 또 찾아온다. 환경의 변화, 아니면 스스로의 사고 의식의 전환으로 인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래도 그 허전함을 감싸지 못하는 애처로움이 있다. 겹겹이 쌓인 공동(空洞)으로 자신의 인생과 더불어 사는 빈 마음이다. 그 빈 방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고, 잊어버린 척하고 살아가야 하는 아픔이 있다. 그렇게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그대만 들어와 살기 바라는/ 비어있는 방 하나가 따로 있나보다’의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은 슬픈 이야기지만 부럽기도 하다.

다음은 김정수 시인의 <걸레는>이다.

 

걸레는

 

걸레는

자신이 걸레인 줄을

알고 있다

매일 빨고 짜면서

깨끗해지려고 늘 힘쓴다

걸레라도 되지 못하면

버려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깨끗해지지 않으면

더러운 데를 닦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걸레가 걸레 구실을 하려면 깨끗해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한 걸레가 되지 못하면 버려진다고 한다. 역설적인 시로서 걸레의 숙명은 언제나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항상 깨끗해도 걸레는 더러워져야 자기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걸레라는 선입감 속에서 걸레 대접 밖에 받지를 못한다. 이율배반적인 부조리이다.

다음은 부상호 시인의 <설거지>이다.

 

설거지

 

설거지 않는 이 남편아

설(舌)만 잘 쓰고 나서

입 다물고 물러나 앉는

 

부부를 띄어쓰기 떼어 쓰면

‘부 부’는 없다 사전 속에도

틀린 어법이라 붉은 밑줄이다

 

설거지를 따로 띄어 써서

舌거지로 세상 살아간다면

혓바닥만 들고 사는 꼴인 걸(乞)

 

사람(人)이 새(乙)처럼 조아리며

밥 한 술 줍쇼 상거지되는 걸(人+乙=乞)

숟가락같은 혀만 내는 걸음인 걸

 

거지도 설(舌) 설(舌)

꺼내며 긁어 먹고 나서

설거지해 둔다 깡통을.

 

일반적인 우리 말과 한자 해석이 아니라 완전히 주관적인 언어 해석이다. 읽는 독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언어 분석이다. ‘언어놀이’ 아니면 ‘말놀이’라면 가볍게 들릴런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 분석과 통찰력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누가 ‘설거지’를 이렇게 분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한자가 갖고 있는 뜻과 한글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이론적(?) 분석에 의해서 명쾌하게 파헤쳤는데 단점이 하나 있다. 시 낭송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시는 활자화 된 것을 직접 보면서 읽어야 그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양창식 시인의 <내리사랑>이다.

 

내리사랑

 

내리 숙여야 한다

산처럼 우뚝서려 말고

바다처럼 깊이 가라앉아야 한다

 

깊은 한숨은 있어도

높은 한숨은 없느니

 

바다로 스미어드는

붉은 노을 처럼

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끝이 없다고 서러워 마라

우리네 인생 진 다 빠질라

 

사랑에도 여러 사랑이 있다. 댓가 없이 주는 사랑이야말로 참 사랑이라고 한다. 참 사랑의 본질은 자기 희생에 가까운 겸손이다. 산과 바다는뚜렷한 존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존재성은 대조적이다. 산처럼 우뚝 솟아 존재를 과시하지 말고, 바다처럼 티 내지 말고 바다로 스며드는 붉은 노을처럼 깊이 가라 앉으라고 한다. 사랑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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