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 『떠오르는 태양 아름다운 동티모르』 펴내
상태바
이영운 선생님 『떠오르는 태양 아름다운 동티모르』 펴내
  • 김동훈 기자
  • 승인 2022.07.31 0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0년 가까운 교직생활보다 해외 저개발국의 교육발전을 위해 보낸 지난 4년이 교육자로서의 역량을 더 크게 발휘한 시기가 아니었나 평가해 본다. 나의 하찮은 지식과 경험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싶어 하는 곳에 소박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큰 행운이요 행복이었다”
체험활동 수필집 머리말 전문 소개

제주경제일보에 ‘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를 기2년여에 걸쳐 연재한 이영운 선생님께서 동티모르 베코라기술고등학교 교육행정 자문관으로 일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겪은 교육봉사활동 체험 수필집 『떠오르는 태양 아름다운 동티모르』를 펴냈다.

이영운 선생님은 중등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장학사, 연구관, 장학관,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장, 제주외국어고교장, 위미중 교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그는 퇴직후 세네갈 교육부 교육정책자문관과 동티모르 교육부 행정자문관으로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교육정책을 저개발국 교육에 접목시키는 일을 했다.

그가 본지 기획 연재물을 바탕으로 심층 보완한 동티모르에서의 체험활동 수필집 『떠오르는 태양 아름다운 동티모르』를 2021년 8월 펴낸 것은 세네갈에서의 봉사활동 수필집 『나무나 세네갈』을 펴낸데 이은 두 번째 봉사활동 체험록이다. 동티모르 베코라기술고등학교는 한국정부가 1000만달러(100억)를 지원하여 동티모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와 최대 최신 설비를 갖춘 유일한 기술고로 이 나라 정부는 이 기술고의 성공적인 운영에 엄청난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영운 선생님은 “40년 가까운 교직생활보다 해외 저개발국의 교육발전을 위해 보낸 지난 4년이 교육자로서의 역량을 더 크게 발휘한 시기가 아니었나 평가해 본다”면서 “나의 하찮은 지식과 경험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싶어 하는 곳에 소박한 도움을 줄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큰 행운이요 행복이었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그는 수필가·시인으로서 많은 작품과 수상 실적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제주일보 ‘해연풍’ 필진으로 오랜 기간 자신의 삶을 연재해오고 있다.

여기 실리는 글은 『떠오르는 태양 아름다운 동티모르』의 서문(머리말)이다. 서문을 통해 그의 교육가로서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진솔한 내용들이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원문 그대로 게재한다.

『떠오르는 태양 아름다운 동티모르』는 ▲제1부 태양의땅 동티모르 ▲제2부 ‘크리스토 레이’에서 만난 코리언 드림 ▲제3부 봉사단원들을 쓰러뜨린 뎅기열 ▲제4부 휘청거리는 공무원들, 회사원들 ▲제5부 한국어에 목마른 청년들 ▲제6부 슬프다 기쁜 날들 등 6부로 구성해 봉사활동 현지의 사회상까지도 교육자적인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봉사활동 현지 정부 관계자 및 베코라기술고 교사, 학생, 한국 봉사단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그의 일상을 글과 화보집을 통해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그는 봉사현장에서도 빠짐없이 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독실한 가톨릭신자다. 성당의 여러 주교, 신부, 수녀님들과의 교류 활동도 중요한 일상이다. 종교의 힘이 그를 이토록 철저한 교육가와 봉사자로서의 길을 걷게 했는지도 모른다.

 선우미디어, 1만3000원.

이하는 『떠오르는 태양 아름다운 동티모르』 서문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에밀리에, 안녕! 오늘은 얼굴이 더욱 빛나 보이는데요. 왜 학교에 일찍 나왔어요?" “학기말 시험에 프로젝트 준비도 해야 해서요.”

이곳은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입니다. 학교 안에선 마주치는 학생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이곳이 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교문을 나서면 인근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마저 우리 말로 인사를 건네니, 동티모르의 코리아타운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베코라기술고등학교에서 교육행정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동티모르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는 학교입니다. 저는 외교부 소속 한국 국제협력단의 해외 자문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저의 일과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약간의 운동과 세면을 하고 6시에 집을 나서 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버스를 타고 6시 30분 베코라 성당 아침 미사에 참례하고, 다시 20여 분 걸어서 7시 20분경에 학교에 도착합니다. 언제나 학교에 맨 처음 등교하는 사람은 저이고, 학생들도 보이지 않지만 나지막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노란색 교사들 너머로 아침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면, 가슴엔 우리 학생들에 대한 기대가 가득 차고, 나날이 성장해 가는 동티모르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 뜨거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에밀리아는 기계과 3학년 여학생으로 유독 부지런하고 한국어 강좌도 열심히 수강하면서 한국어 능력 시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동티모르 젊은이들의 꿈은 한국 산업연수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가서 선진 문명도 경험하고 돈도 많이 버는 것입니다. 얼마 전 수도 딜리에 있는 크리스토레이(대형 예수상이 있는 공원)에서 미크롤렛(소형 버스를 운행하는 줄리앙이라는 젊은 청년을 만났는데, 한국어가 유창했습니다. 알고 보니 5년간 한국에 연수생으로 근무하다 귀국했는데, 5년 만에 소위 '코리안 드림'을 실현한 젊은이였습니다. 현재 버스를 2천만 원에 매입하여 운수 사업을 하고 있고, 집을 사고 결혼도 했다고 합니다.

세 아들이 있는 그에게 남은 일은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나의 근무 계약 기간은 일 년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 학교에 가장 많은 공적자금을 투자했습니다. 일천만 달러(100억)를 지원하여 동티모르 최대 최신의 기술 전문학교를 재설립했습니다. 대학교까지 포함해도 동티모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와 최대 최신 설비가 총망라된 곳은 이 학교가 유일합니다.

당연히 이곳 정부에서는 이 기술학교의 성공적인 운영에 엄청난 관심과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6개 학과(전기, 기계, 건축, 자동차, IT, 전자)가 설립되어 있고, 모든 설비, 기구, 재료는 한국의 최신 생산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저의 책무는 몇 달 전에 완성된 이 학교의 경영 전반을 지도 자문해서 정상적으로 학교가 운영되어, 최대의 교육 효과를 산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습니다.

저는 수시로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계자들, 또 한국 대사님을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동티모르와 한국 외교부가 바라는 수준의 경영 자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생들은 UNTL(동티모르 국립대학교, 한국의 서울대학교에 해당)에 30여명이 진학하는 등 명문 공대 등에 80% 이상이 진학했습니다. 다른 학교의 대학 진학률은 대개 10% 이내입니다. 또 전국에서 몰려드는 학생들로 입시 경쟁률이 3대 1 정도가 되었는데, 이것은 동티모르에서 가장 높은 입시 경쟁률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에 아직은 대학 진학이 그들의 꿈입니다.

학교에는 천백여 명의 학생들과 100여 명의 교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교사의 생일에는 개인별로 축하 카드를 작성하고,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직접 찾아가서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또 가능한 모든 교사와 학기에 한 번씩 가족 동반으로 식사에 초대하였습니다. 이런 자리를 통하여 서로의 우정을 돈독하게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교직원, 시설, 예산, 학생 지도, 학교운영 등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었고, 가족 사항도 알게되어 효과적인 자문활동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문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400여 쪽의 '베코라 기술고등학교 발전 추진전략'을 발간하여 교육부, 한국 외교부 등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테툼어, 영어, 한국어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은 학교 발전 전략과 비전, 교원 역량 강화, 기술고등학교 학과별 교육과정, 진로 및 경력개발, 학교경영, 교수학습 방법, 학생생활지도, 시설 및 기자재 유지 관리, 학교기업 육성, 특성화 교육 등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학교 경영을 자문해 오면서

느끼고 개선해야 할 사항 열다섯 꼭지를 상세히 분석하여 효과적인 개선, 추진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동티모르는 연중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나라로 일 년 내내 모기와 해충들에 의한 말라리아, 뎅기열, 각종 피부병 등이 창궐합니다. 특히 거리를 배회하는 많은 개 때문에 광견병에 항상 노출됩니다.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한국인 교사들 중 뎅기열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뎅기열, 광견병, 간염, 파상풍 등 10여건의 예방 접종을 했습니다.

저는 2014년 2월 40년 가까운 중등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 퇴임했습니다. 영어 교사, 장학관, 제주 외국어고등학교장 등으로 봉직했습니다. 퇴직 후에는 제주의 풍광을 즐기며 오름 산행을 하기도 하고, 탁구 동호회에 가입하여 운동하기도 했습니다. 또 악기를 배우려고 클라리넷을 익히기도 하고, 문인화에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가슴 한가운데가 공허하고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교육 경험을 활용하여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외교부 한국 국제협력단 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장기 자문단이 되려고 지원서를 작성했고 서류 심사가 통과되어 영어 면접 신체검사 등을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아프리카 세네갈 교육부에 교육 자문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환경과 비슷한 조건의 열사 폭염이 연중 내리쬐는 세네갈에서 2년간을 보냈습니다.

학교는 점심시간도 없이 6교시 수업을 하고 교과서도 보관용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가로세로 15cm 정도의 조그만 휴대용 흑판에 몽땅 분필로 필기하거나, 노트 한 권에 볼펜 한 자루만 갖고 학교에 다닙니다.

저의 업무는 교육부 유아 교육국 소속으로 교육과정 개발, 교수학습 방법 보급, 평가지표 개발, 선진국의 교육 내용 보급, 종합 유아교육센터 개설 등이었습니다. 전국 100여개의 유치원, 관련 교육기관 등을 살펴보고, 교육부 장관, 관련 국장 등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업무를 마쳤습니다.

600여 쪽의 보고서를 프랑스어, 영어 등으로 작성하여 세네갈 교육부, 교육기관, 외교부 등에 보급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세네갈 최초의 유아교육 과정, 유치원 교수학습 방법, 유치원 평가 지표, 선진국의 교육 등 거의 새로운 내용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특히 내가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유아교육 종합 체험학습센터 구안이었습니다. 이 센터는 예산 200억 원이 소요되는 서아프리카 최초의 종합 체험형 유아교육 기관입니다.

업무 추진의 어려움, 열악한 생활환경, 생명의 위협 등은 일상사였습니다. 실제로 30대 젊은 태권도 지도교사는 말라리아로 사망하기도 하고, 시니어 단원은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절도, 폭행, 도난 사건들이 하루 멀다 하고 발생했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발생하는 정전,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끊기는 수돗물 등도 철저한 준비와 인내로 이겨내야 했습니다.

저의 아프리카 세네갈에서의 활동 기록은 외교부 한국 국제협력단에서 해외봉사단원 활동 경험 우수 사례로 선정되어 『나무나 세네갈』(2016, 시나리오 친구들, 300쪽)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년간 근무 후에 귀국하여 다시 새로운 준비를 했습니다. 해외 근무로 자취생활을 하기에 기본적인 음식 조리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전문 조리 교육을 받았습니다. 6개월 동안의 노력 끝에 한식조리기능사, 양식조리기능사, 중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준비되자 재차 한국국제협력단 자문단 모집에 응시했습니다. 교육 분야는 동티모르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경쟁이 치열했고, 시험 과목과 내용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영문이력서, 서류 전형 자료 제출, 영문 지필고사, 영어 인터뷰, 우리말 전공 면접시험 등이었습니다. 합격하여 직무 연수를 마치고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인 동티모르에 파견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의 섬나라이며, 21세기 첫 독립국인 동티모르는 세계

지인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최빈국에 속하며, 인구의 50% 정도가 빈곤선(1일 0.55달러) 이하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서 포르투갈어와 테툼어가 공용어이며 전 인구의 97.5%가 가톨릭 신자입니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의 생활 경험과 그사이에 익혔던 조리 기능이 큰 도움이 되어 연중 40도를 오르내리고, 한국전쟁 직후의 비슷한 생활 여건 속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육 자문활동을 하면서 저개발국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도 찾아보았습니다. 세네갈이나 동티모르에는 의류 상점들이 거의 없습니다. 길거리 가판에서 선진국의 중고 의류를 가져다 판매하고 구입하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저는 한국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미니코 고아원 등 복지 시설에 여러 차례 교복 지원 활동을 했습니다.

40년 가까운 교직 생활보다 해외 저개발국의 교육 발전을 위해 보낸 지난 4년이 교육자로서의 역량을 더 크게 발휘한 시기가 아니었나 평가해 봅니다. 나의 하찮은 지식과 경험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싶어 하는 곳에 소박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큰 행운이요 행복이었습니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제가 21세기 최 신생국 동티모르에 자문단으로 파견되어 의식주를 해결하며, 교육부와 베코라 기술고등학교에서 교육 정책과 학교 경영을 자문하며, 부딪치고 살아온 한 해 동안의 좌충우돌했던 기록입니다. 문화와 이해의 충돌을 소통하며 현명하게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미래는 선의를 갖고 준비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항상 따뜻하고 친절하게 손길을 열어 밝혀준다는 사실도 터득하였습니다. 지구의 험지에서 이러한 경험들은 내 삶의 후반부를 역동적이고 빛나게 하는 신나고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해외에서 편안하고 열심히 생활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들 동근, 딸 진솔, 사위 인한, 평생 동반자 현애자님 등 모든 친우,지인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1년 8월, 동티모르와 닮은 절기에

 학송(鶴松) 이영운(李永雲)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