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도민연대 등 제주4·3사건을 증언하는 비석 주변 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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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도민연대 등 제주4·3사건을 증언하는 비석 주변 벌초
  • 김동훈 기자
  • 승인 2022.08.28 21: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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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재정립연구유족회·경찰유가족회원·제주자유수호연대·제주4·3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
=고 박진경대령 추도비·경찰관 38명 전사 충혼비·제주도공비완멸기념 충혼비 주변 벌초
(왼쪽부터) 고 박진경대령 추도비, 제주4.3사건 경찰관 38명 전사 충혼비, 제주도 공비 완멸기념 충혼비.

음력 8월 초하루인 27일 제주지역 벌초일을 맞아 제주4·3재정립연구유족회와 4·3경찰유가족회원, 제주자유수호연대, 제주4·3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는 4·3사건 당시 남로당 프락치에 의해 암살당한 고 박진경 대령 추도비와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제주4·3사건 경찰관 38명 전사 충혼비’, 그리고 ‘제주도 공비 완멸 기념 충혼비’ 등의 주변 풀베기를 했다.

고 박진경 대령은 4·3사건당시제9연대장·제11연대장으로 제주에 도임 남로당 반란군 진압을 위한 토벌 작전중 남로당 프락치 군장교 문상길의 사주를 받은 사병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 추도비는 제주도민과 군경원호회가 1952년 11월 7일 처음 세웠다. 이 추도비는 원래 KBS 제주방송국 경내 제11연대본부 자리에 세워졌었다. 그후 제주시 사라봉 충혼묘지가 조성되면서 옮겨졌다가 일주도로 확장으로 또 어승생악 지경의 제주충혼묘지로 옮겨졌고, 2021년 12월 현재의 제주시 연동 산 132-1번지로 옮겨졌다.

당초 세운 비는 마모로 내용 식별이 어려워 서기 1985년 6월 다시 세워졌으며 원래 비는 새로 세운 추도비 앞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 ‘제주 4·3사건 경찰관 38명 전사 충혼비’는 제주 4·3사건 당시 전사한 38명의 경찰관 추모 충혼비로 당초는 제주시 삼도2동 소재 제주경찰국 청사 경내에 있었던 비다.

1950년 4월 3일, 제주도경찰국장 경무관 심여택 등의 명의로 세워졌다. 비석 뒷면에는 “숭고한 경찰정신, 순국의 일편단심, 빛나는 조국 광복, 청사에 영세 영멸‘이라 새겨져 있다.

▲또한 ‘제주도 공비 완멸 기념 충혼비’는 단기 4290년(서기 1957년) 11월 일 제주도공비완멸기념행사위원회 위원장 박치순 명의로 건립됐다.

이 충혼비는 1948년 제주4·3사건이 일어나 1957년 4월 2일 마지막 남로당 잔비 오원권이 생포되면서 남로당 공비 완멸을 기념하여 제주도공비완멸기념행사위원회(위원장 박치순)가 세운 비석이다.

이 비는 원래 삼도 2동 소재 제주경찰국 청사 내에 세워졌었다.

박치순은 우파(右派)의 원로이다. 그는 8·15 광복 후에 국민회 제주도본부 위원장에 선출됐고, 1955년 4월 20일 국민회제주도본부에서 연차대회를 열어 위원장에 박치순, 부위원장에 강삼정과 강필생(姜必生)을 선출했다.

1956년 오현고 강당에서 ‘제주도제폐지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에 뽑혀 동 8월 10일 궐기대회을 개최했다.

1957년 관덕정 광장에서 공비완멸(共匪完滅) 제주도민대회(대회장 박치순)를 개최하면서 1949년 6월 7일 선흘리 지경에서 소위 남로당 인민해방군사령관 이덕구(李德九, 신촌)를 사살하고 양생돌(梁生乭)을 생포하는 데 공헌한 경위 문창송(文昌松)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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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2022-08-29 08:34:47
감동입니다. 충혼비 등을 국가보훈처에서 국가예산으로 훌륭하게 조성해야겠습니다. 6.25전적비에 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