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62)모국에서 난무하는 추한 우리 말들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 (62)모국에서 난무하는 추한 우리 말들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9.26 07: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국에서 난무하는 추한 우리 말들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지난 24일, 재일동포 2세 김문성(金文成. 70) 씨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종종 이메일을 주고 받는 친구 사이인데 이 날은 드물게도 <사어(死語)가 된 우리 말>이라는 제목까지 달았었다.

그는 동포 최대 밀집지인 이쿠노구(生野區)에서 민단 이쿠노중앙지부 지단장을 역임하고 사법서사(법무사)로서 민단에서 생활상담역까지 맡고 있었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모국을 사랑하는 2세였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 말을 모르는데 웬일인지 일상생활 속에 어른들이 ‘쪽발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서 60여년 전부터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죠센징이라는 것만으로도 모든 일에 일본인한테 억울함을 당했었는데, 부모나 이웃 동포들은 일본인과 헤어진 후에는 ‘저 쪽발이 놈’이라고 큰 소리로 욕하면서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게다(下馱:나막신)를 신는 일본인의 발을 보고 돼지의 발과 비슷해서 비하(卑下)해서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말에서 비하하는 말로서 ‘이 년석’과 ‘이놈’이 있었다. 나 자신의 경험상, 부모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울 때마다 이 말을 듣고 매를 맏기도 했었다. 심한 욕은 아니지만 자식 잘되기 위한 부모의 마음이어서 지금은 그 마음을 알고 반성하고 있다.

‘개새끼’라는 말은 어른들이 싸움을 할 때에 상대방보다 상위의 입장을 확보하기 위한 의식 속에서 사용했었다.

또한 술에 취한 자신의 언동을 이해 못하는 주위에 대해서 혼잣말처럼 내뱉을 때도 있었고, 인간 이하의 행동을 했을 때 경고적인 의미에서 사용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재일동포들은 이러한 말들을 단순히 표면적인 비속어로서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재일동포 1세들의 세대는 이국의 일본에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끈질기게 살기 위한 바람과 정신적인 위안을 얻기 위한 하나의 청량제처럼 사용해 왔다. 모두 이러한 경험은 있을 것이다.

너무 억울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미운 상대를 머리에 그리면서 큰 소리로 이러한 말들을 외쳐 보면 가슴이 후련해질 때가 있었다. 이러한 비속어가 더 있었을는지 모르지만 현재 재일동포는 4세까지 태어나서 상기의 비속어들은 동포들 사이에서는 사어가 되었다. 나의 주변에서는 말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일본에서 인기 절정인 한국 드라마에서는 일본에서 사어가 돼버린 이러한 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 영향으로 좀비처럼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되살아나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된다.

(좀비처럼 되살아난 비속어들의 부활은 필자도 걱정하고 놀라고 있다. 최근의 한국 드라마에는 여성들도 태연히 ‘씨발’이라는 언어를 비롯해서 다른 비속어들도 일상생활 속에서 가볍게 사용하고 있다.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지만 비속어가 자연 소멸하고 경어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동포사회와 일본에서 면역이 안 된 비속어가 드라마로 인하여 안방까지 침입하고 있다. 우리 말 보급에서 우려되는 과제 중의 하나이다)

김문성 씨는 왜 이러한 비속어가 떠올랐는가 하면 해외 역방 중,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뉴욕에서 국제회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에 수행원들과 나눈 사어(私語)가 한국 MBC TV 카메라가 포착해서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 보도는 인터넷에서도 확산되고 한국을 비롯해서 미국에서도 큰 소동을 일으켰다는 뉴스를 조선일보 온라인(일본 어판)에서 읽어서 알았다고 했다.

회의장에서의 공식적인 발언이 아닌 윤 대통령의 사어를 한국 야당은 국격을 실추 시켰다고 비난하면서 한국 국내에서 커다란 뉴스로 부각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윤 대통령이 이러한 사적인 발언을 했는가. 저개발 국가 질병 퇴치를 위한 재정기여금을 한국은 1억달러, 미국 60억달러, 일본, 프랑스, 독일은 각각 10억 달러를 약속했다.

야당이 강한 한국 국회에서 1억 달러 승인을 해줄 것인지 걱정이 된 윤 대통령이 한국 야당에 대해 이 xx라는 표현과 함께 비속어가 나왔다고 김문성 씨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이러한 비속어도 어떤 의미에서 청량제로서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이상이 김문성 씨가 필자에게 보내온 이메일 내용이었는데 발췌해서 소개하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 뉴스는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김문성 씨는 우리 말을 모르면서도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우리 말의 비속어들을 회상하면서 연민의 정을 갖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본말이 전도된 사어의 비속어가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연일 모국에서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는 데는 필자도 심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어라고는 하지만 한국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들을 이 xx라는 표현은 지나쳤다. 이 점만 들더라도 먼저 사과해야 할 발언이다.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혼네와 다데마에(속말과 겉말)’가 많은 사회라고 말하고 있지만 속말과 겉말은 어느 국가나 사회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속말 표현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비속어는 표현력이 풍부한 우리 말과 글에서 낯 뜨거운 말들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부풀려서 소모적인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지 말고, 하루 빨리 무모한 이 정쟁에서 벗어나기를 해외동포들은 바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