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69) 제주에서 온 강방영, 김승범 두권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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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69) 제주에서 온 강방영, 김승범 두권의 시집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11.2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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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제주에서 온 강방영, 김승범 두권의 시집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가뭄에 콩 나듯 어려운 항공편 속에 며칠 사이를 두고 제주에서 두권의 시집이 왔다.

강방영, 응우엔딘떰 시인의 공동 시집 <기억의 꽃다발, 짙고 푸른 동경>, 부제로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 공동시집”과 현암 김승범 시전집 <살당보민…>이었다.

<기억의 꽃다발, 짙고 푸른 동경>의 시집은 각각 20편이 한국어, 베트남어, 영어 3개 언어로 게재되었다. 강방영 시인 작품 3편과 응우엔딘떰 시인 작품 2편을 소개한다. 강방영 시인의 <이승도 모르고>이다.

 

이승도 모르고

 

이승도 잘 모르고

저승은 더욱 모르나

한 가지 내가 아는 것

어디에서나

당신 기다리며 있으리라는 것

걸음 디딘 나를

나무라는 일도 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설레임이다. 만남의 과거형으로 현실을 아름다운 꿈처럼 승화시킨다. 그것은 내세까지도 감싸고 있다.

다음은 ‘기억의 꽃다발’이다.

 

기억의 꽃다발

 

나무들 둘러싸

호수는 한 송이 꽃처럼

노을 하늘 받아 빛나고

여름 오는 대기에

감미로운 유월 밤의 향기

 

아 그대 떠오른 달처럼

걸어 온 당신

우뚝 선 산처럼 내게

마주 온 당신

호수 속에 비친 노을과 숲들은 자연이 만들어 준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아니고 꽃다발이다. 그 속에 떠오르는 달은 눈부시다. 그렇게 떠올라서 다가온 당신은 유월의 밤, 실루엣처럼 우뚝 선 산처럼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럽다.

다음은 <이 캄캄한 하루>이다.

 

이 캄캄한 하루

 

누구에게 말할까

아무도 없다

 

그 누가 나의 짐

덜어 줄 것인가

 

어디에서도 솟아 나올 힘

보이지 않고

 

앞에 소개한 두 편의 사랑의 시가 없으면 ‘이 캄캄한 하루’의 시의 의미는 희석되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연작시는 아니지만 사랑으로 만난 당신의 부재는 나의 모든 삶을 블랙홀의 주변을 맴돌게 하고 있다.

다음은 베트남 응우엔딘떰 시인의 <조약돌>이다.

 

조약돌

 

바다 앞 순순하게 몸을 드러낸 조약돌

보라색 나팔꽃에 둘러싸여 있다.

나는 그저 미소 지으며

조약돌 한 개 집어와 문진으로 놓으니

조용히 누워 있는 글자들 파도 소리 실컷 듣는구나.

파도에 밀리면서 모났던 돌들이 예쁘장한 조약돌로 변모했다. 그 긴긴 세월 속에 파도가 밀려나면 주위에 핀 나팔꽃들이 같이 놀고 있다. 그 조약들을 책갈피처럼 사용하노라면 조약돌은 글자와 다정해져서 바다 이야기를 실컷 들려주고 있다. 시의 내면에 흐르는 따뜻한 속삭임이 시인의 마음처럼 다가온다.

다음은 <노란 낙엽 앞에서>이다.

 

노란 낙엽 앞에서

 

노란 낙엽 앞에서 불현듯 치솟는 슬픔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잎의 계절에

(생명의 작별문화)

나뭇가지 앙상함에도 사람은 여전히 북적인다.

만추의 단풍놀이는 계절 중에 최고이며,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단풍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생명의 마지막 이별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깊은 가을 날의 까닭 모를 슬픔은 비록 이 자연 현상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의 이별을 반추하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서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한다.

이 부조리를 독백처럼 관조하고 있다.

강방영 시인은 1956년출생, 8권의 시집을 냈으며, 제주문인협회회원, 현재 국제 PEN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회장이며 제주문학상을 수상했다.

응우엔딘떰 시인은 1944년출생. 베트남문인협회회원, 8권의 시집을 냈고, 한국의’나눔뭄학상’을 비롯하여 4개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상이 시집 <기억의꽃다발, 짙고 푸른 동경>의 작품이다.

다음은 현암 김승범 시전집 <살당보민…>이다. 시집을 받고 깜짝 놀랐다. 512쪽의 시 전집에 410편의 시가 게재되었다. 그 정열과 자신의 작품을 아끼는 그 정성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아무리 주옥 은 시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작품이 한 권의 시집 속에 콩나물처럼 나열되면, 읽는 독자들도 비슷비슷한 작품 구성으로 인하여 매너리즘의 식상 기미에 빠지고 만다. 이것은 시인 자신에게도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언어의 절제 속에 한 편 한편 피나게 쓴 작품들을 스스로가 ‘바겐세일’처럼 독자들에게 내놓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시인들이 작품 몇 편씩 게재한 시선집과도 다르다. 그럴 경우에는 시인들이 제각기 지니고 있는 기법으로서 작품을 쓰기 때문에 그런대로 새로운 신선미도 있다. <살당보민…>의 시집을 받고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작품 4편을 소개한다. 첫 소개는 <비바리>이다.

 

비바리

 

저기 푸른 바다 제주역사의 숨결

저승에서 참은 숨 내뿜는 숨비소리

물질 배우는 소녀의 봉긋한 가슴

야윈 어깨 너머로 스치는 바람소리

팔십 평생 물질로 파충류 몰골이건만

주름진 얼굴에 서려 있는 제주의 기상

평생 서방보다 더 좋은 바다 밭

어차피 홀로 걷는 인생길 쓸쓸한 길

그래도 함께 땀 흘리는 해녀들이 있다

바닷가 바위 불턱을 보라

해녀 소망이 불턱에서 왁자하게 익어

수평선 황혼이 붉은 치마를 접는 동안

마중 나온 아들이 태왁을 받아 걷는다.

땅거미가 질 때에 일을 마치고 오늘도 무사히 마쳤다고 기원하는 부부가 있었다. 밀레의 ‘만종’이었다.

수평선 황혼 속에 아들은 어머니의 태왁을 받아 들고 나란히 귀가하는 모자의 모습은 그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음은 <퐁낭>이다.

 

퐁낭

 

신 내림이다

잃어버린 기억 더듬어

탐라 천년의 바람 신을 안고 분다

마을 어귀 가장 높은 곳

그 위에 우뚝 선 나무

어머님의 염원

아버지의 그 절개

온 몸으로 품어 나무가 된다

신들린 퐁낭이 된다

신바람 나무 속에 들고

한 세월 풀어낸 어머니

그 나무를 안는다

어머니는 빌고 빌어

바람신을 불러낸다

비나리에 응답하는 퐁낭

천년 세월을 가른다

응~ 응~ 바람이 포효로

탐라신목 대를 잇는다

퐁낭(팽나무)에 얽힌 제주인의 삶들은 만 팔천의 신 중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한다. 삶은 생명이다. 생명에 대한 존엄은 모든 삶의 질서를 평안케 한다. 인간에 국한된 생명의 존엄이 아니다. 모든 생명이 그렇다. 그래서 신목이 되어 대를 잇고 있다.

다음은 <해녀방생>이다.

 

해녀방생

 

자비방생종이 울리면

물속으로 휘적휘적

늙은 해녀 들어간다

잠시 솟구쳐 풍덩,

그 짧은 순간

하늘엔 무지개 일고

노을은 황금을 뿌린다

아침엔 서른세 번

저녁에 스물여덟 번의

자비방생 소리

물고기처럼 날렵한 몸놀림

접혔다 펴지는 몸짓에선

옛 사연이 배어난다

움켜진 것 없이 헛헛하고

숨비소리 아릿하여도

모든 세파의 잔해처럼

위태로운 날들을 건너면

심장 멎는 날까진

저 바다의 인어가 되리라

해녀의 시를 읽어 보면 언제나 비하와 열등의 내용들이 많다. 그러한 작품을 대할 때는 언제나 씁쓸하고 때로는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해녀는 제주 여성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이고 사상이다. 봉건적이고 보수시대에도 맨 몸이나 다를바 없는 펄렁이는 속옷만 입고 위험을 무릅쓰고 망망한 바다로 뛰어 들어 갔다. 가난의 차원을 뛰어넘은 제주 여성의 숭고한 사상이다.

김승범 시인의 작품 속의 해녀상은 비하가 없다. 해녀 찬가이다. 그래서 발췌한 작품 속에 4편 중에 3편도 해녀 시이다. 다음은 <숨비소리>이다.

 

숨비소리

 

저기 저 역사의 숨결

불턱을 보라

호익하고 내뿜는 숨비소리

어느 어린 처자의 몽싯한 가슴앓이

애기 어멍 갈비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소리

주름진 시에미 얼굴에 서려있는 감소로움

다 몰려든 해녀의 소망이 불턱에서 익는다

탁탁 튀는 불 소리와 깜짝 놀란 저녁놀

동진 애비 마중 발에 해녀 함께 웃는다

‘비바리’와 ‘숨비소리’는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같이 소개했다. 이러한 점이 410편의방 대한 시를 전집으로 묶어서 낸 결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김승범 시인은 1965년제주 해안동 출생. 2005년 <해동문학>으로등단. 4권의 시집과 수필집 1권이 있다. 영미문학상 외 다수 수상. 제주문인협회, 혜향문학회, 제주국보문학 회원, 현재 ‘제주한림문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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