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사건 당시 제주지역 계엄령 선포 배경 정확히 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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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사건 당시 제주지역 계엄령 선포 배경 정확히 알려야"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11.25 12: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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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학교 4·3교육현장, 나라의 앞날이 암울하다”(4)
이승학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교육홍보위원장
"D중학교 주제학습 ‘4·3과 초토화’ 주제 편향되게 발표"
도내 D중학교 4.3주제 학습시 소집단이 발표한 '4.3과 초토화 작전' 학생 발표문.
도내 D중학교 4.3주제 학습시 소집단이 발표한 '4.3과 초토화 작전' 학생 발표문.

도내 D중학교 4·3주제학습 시 한 소집단이 발표한 ‘4·3과 초토화 작전’이란 게시문이다. 이 발표문 역시 편향되거나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대한 설명을 감추고 결과만 발표해, 그 결과를 초래한 남로당 세력들을 두둔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4·3사건이 반란이므로 이를 급히 진압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는데 그 이유를 ‘제주지역 4.3사건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라고 단순히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배경에는 남로당인민유격대 제2대 사령관 이덕구가 이 날짜보다 앞선 1948년 10월 24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 선전포고문 내용을 본다.

선전 포고문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경찰관들이여 !

미제국주의와 리승만의 개들이여 !

너희들은 무고한 도민·남녀노유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고 있다.

천인도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을 일편의 주저함도 없이 범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너희들의 극악비도한 악사를 동족으로서

부끄럽지만 참고 견디어 왔지만,

은인자중도 이제는 한도에 달하였다.

인민의 원한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너희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가까운 시일 내에 권토중래하기로 결정하였다.

인민군 사령관 이덕구

이 선전포고문 내용을 보면

一 . 선전포고는 국가(단체)에게 전쟁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一 . 전쟁 목적(인민들의 원한과 복수를 위해서), 대상(경찰, 미국, 대한민국 정부),

一 . 시기(머지않은 장래) 등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주체(인민군 사령관 이덕구)도 명시되어 있다.

대낮에 한림 주둔 제9연대 2대대 6중대를 공격한 일과 중문지서 공격·서귀포읍내를 공격한 이 사건들도 제주도에 계엄령 선포(1948년 11월 17일)의 배경이 되는 중요한 사건들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설명하지 않고 엄청나게 좌편향된 내용을 학생들에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승학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교육홍보위원장은 4·3주제학습을 한다면서 미래세대들에게 좌편향된 시각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학습시킨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우리의 미래가 암울해질 것이라 내다봤다. 다시말해서 배경없는 사건,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다음은 제주도내 D중학교의 4·3주제학습 발표의 학습결과로 교내전시되었던 작품중의 하나이다.

                                        4·3과 초토화 작전

제주지역 4·3사건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정부는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제주도의 해안선으로 부터 5km 이상 들어간 지역을 적성 지역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이 범위에 포함된 중산간 마을을 모두 불태우고 주민들을 해안 마을로 소개(疏開)시키는 초토화 작전을 감행했다.

1948년 11월부터 제9연대에 의해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강경 진압 작전은 4·3사건 전개 과정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했다.

이 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지고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4·3사건으로 소각되었던 가옥 3만 9,285동 중 대부분이 이때 방화된 것이었다. 결국 이 강경 진압 작전은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린 중산간 마을 주민 2만명 가량 산으로 내모는 결과를 빚었다. 한편 이 무렵 무장대의 습격으로 민가가 불타고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사건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피해 마을은 세화리, 성읍리, 남원리 등으로 30∼50명씩 희생되었다.

위와 같은 주제 발표문에 대해 이승학 위원장은 제주지역 4·3사건과 관련해 1948년 11월 17일 제주지역 계엄령 선포에 대해 역사적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

이승학 위원장은 이 작품을 교내에 전시할 때 담당 교사는 사전에 계엄령 선포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강조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승학 위원장은 당시 계엄령 선포와 소개작전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이승만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4·3사건을 반란으로 의결하고 이를 급히 진압하기 위해서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둘째, 순수한 제주도민과 남로당인민유격대의 격리를 위해 이들이 주로 보급기지로 활용한 중산간 마을에 대한 소개 작전이 이루어졌다.

셋째, 남로당인민해방군 제2대 인민군 사령관 이덕구가 계엄령 선포이전인 1948년 10월 24일 대한민국 정부와 경찰, 미국에 대해 인민들의 원한과 복수를 위해서 선전포고를 했다고 밝혔다.  또 대낮에 한림 주둔 제9연대 2대대 6중대를 공격하고, 중문지서와 서귀포읍내를 공격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이승학 위원장은 이같은 여러 사건 등이 정부가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한 주요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이승학 위원장은 세화리, 성읍리, 남원리 등이 무장대의 습격으로 민가가 불타고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남로당 인민유격대들이 경찰과 우익인사의 가족들을 개인적으로 지목 살해한데 이어 경찰 등에 협조한 우익마을에 대한 집중공격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승학 위원장은 특히 남원·위미리는 30명이, 구좌 세화리는 50명이, 표선 성읍리는 38명, 도합 118명이 남로당 인민유격대측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살인만이 아니라 집집마다 들이닥쳐 식량을 빼앗고, 가옥을 불태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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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22-11-26 10:51:59
4.3에 대해 학생글씨로 쓴거보니...남로당 관점에서 바라보는 교사가 학생들 시켜서 쓴거네요...

녹하악전투 2022-11-25 23:39:31
제주4.3사건은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고 반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