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78)제주 삼양초등학교 제18회 동창회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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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78)제주 삼양초등학교 제18회 동창회 모임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02.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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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제주 삼양초등학교 제18회 동창회 모임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고, 파도가 꽃피는 해변가 제주 삼양이다. 맑은 용천수가 솟아나고 여름철 뜸질로 유명한 검은 모래, 삼양선사유적지와 원당봉에 있는 원당사 5층 석탑이 있는 곳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삼양초등학교라고 입력해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보니 한국에 세 군데나 있어서 놀랐다. 제주, 서울 강북구와 충청북도 옥천군이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모교의 교화가 국화이고, 교목이 소나무라는 것과 교가가 있는 것(우리 때는 없었음)을 처음 알았다. 또 연혁에는 2010년 11월 9일에는 ‘4·3 순직 교원 한글 추모비 건립’도 써 있었다.

제주 삼양에 자리 잡은 삼양초등학교를 필자는 약 60년 전인 1962년도에 제18회로 졸업했다. 그 당시 6학년까지 모두 한 반이 60명 편성으로 2반까지 있었지만 우리 학년만은 50명을 약간 넘은 1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음력 1949년 12월생(양력으로는 1950년 2월)인데 4.3사건으로 우리 반은 출생률이 적어서 1반의 평균 인원수도 채우지 못했었다.

삼양초등학교의 상징
삼양초등학교의 상징

이렇게 인원이 적은 초등학교 동창들이지만 지금도 2개월에 한 번씩 삼양과 그 주위 음식점에서 동창회(회장 김경림) 모임 식사회를 갖고 있었다. 언제나 남녀 동창생 10여명 가깝게 모여서 짝수 달인 18일 날 모이고 있었다. 18일은 제18회 졸업생이니까 그 날로 정했다고 한다. 물론 여행도 다니고 있다.

1996년 3월 1일을 기해 국민학교 명칭이 정부 문교정책으로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귀에 익어서, 일제의 잔재 운운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우리 반 동창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추억으로는 4학년 이상이 되면 늦가을 오후에는 수업 대신 솔똥 따러 원당봉에 가는 것이 연중행사의 하나였다. 솔똥은 솔방울의 제주어지만 그 당시는 그렇게 사용했었다.

소나무로 우거진 원당봉에서 솔방울 줍거나 나뭇가지에서 따서 자루 가득히 넣고 학교에 갖고 와서 운동장 한 구석에 있는 탱크에 저장했다. 솔방울은 겨울철이 되면 직원실의 난로용으로 사용했다. 지금 이렇게 했다면 교직원들의 월권행사로 문책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우리들은 수업 대신 원당봉에 가는 그 행사가 소풍처럼 즐거웠는데 시골 학교의 원풍경들이었다.

소풍 역시 가끔 봉개오름도 갔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원당봉이 최적지였다. 원당봉에 가면 당시 원당사로 불렀지만 4·3사건에 소실되어 다시 지은 불탑사에 있는 5층 석탑도 언제나 둘러보았다. 고려시대에 현무암으로 건립한 석탑은 현재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었다.

그 당시는 그냥 5층 석탑이라는 실체만 확인했지만, 이 석탑은 고려 말기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가 순제의 제2 황비가 된 고려 여성 기황후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순제와 기황후 사이에 태자가 없어 고민하던 중 “북두의 명맥이 비친 삼첩칠봉에 탑을 세워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승려의 계시를 듣고 이곳에 원당사와 불탑을 세워 사자를 보내어 불공을 드린 결과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기황후는 한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일본에서도 방영되었다. 필자는 일본인 모녀가 제주 여행 갈 적에 5층 석탑을 꼭 보고 오라고 해서 권유했더니 들렀다면서 좋아했다. 그리고 필자도 4년 전에 민단에서 제주 연수차 인솔하고 갔을 적에 5층 석탑을 안내했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에 찾아간 고즈넉한 산사의 석탑은 역사와 전설의 어우러짐 속에서 피로감을 씻어 주었다.

삼양선사 유적지를 비롯해서 이러한 역사와 삶이 공존하는 고향 삼양에서 졸업 후, 60년이 지

나는 사이 세상을 떠나거나 제주를 떠나서 사는 동창들도 많은데, 동창회 모임에 20% 이상의 출석률은 대단한 숫자이다. 70대인 우리 동창들은 70년 이상을 고향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반은 도중에 전학해 온 동창들도 거의 없었으니까 부모 세대들부터 삼양에 계속 살았다.

꼭 삼양지역이 아니더라도 한 시간 생활권에 들어있는 제주에서 1대만이 아니고 2대 3대로 이어지는 대물림 고향 지키기이다. 지진, 태풍 등으로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는 예고 없는 피해를 당하는 일이 많다. 피해 입은 그들의 이구동성은 ‘하루 빨리 보통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보편적인 그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그들이 바라는 최대의 꿈과 희망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피해가 적은 제주에서는 고향까지 떠나야 하는 비극적인 상실감을 겪어야 하는 예는 없다.

아침 저녁 종합 뉴스와 함께 방영하는 일본 TV의 전국 일기예보는 일본 열도만이 아니고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과 극동의 러시아까지 나온다. 그 가운데 망망한 바다 위에 잘 여문 콩알처럼 제주가 외롭게 떠 있다.

그 사랑스런 제주에서 우리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70년 이상을 살면서 만남의 장을 만들고 저녁 식사하는 모습을 스마폰에 올려놓는다. 필자는 스마폰을 통해서 그 여운만을 부럽게 음미하고 있지만 보편적인 그 일상들이야말로 살며시 스며드는 행복의 나날들이다.

오늘도 나는 일기예보의 제주도를 바라보면서 연민의 정으로 두 손을 모을 것이다. 우리 동창들은 약도가 새겨져 있는 ‘제주정’이라는 명함 한 장과, <18회 모임. 정기총회. 2월 18일. 오후 6시 30분. 제주정. 회장 김경림>이라고 스마트폰에 올려놓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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