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86) 일본 간사이(關西)국제대학 이용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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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86) 일본 간사이(關西)국제대학 이용숙 교수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05.1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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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일본 간사이(關西)국제대학 이용숙 교수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약 32년 전에 어린 3남매를 데리고 네 식구가 일본살이를 시작한 이용숙 교수는 2011년 9월 서울에 있는 <출판시대>에서 한·일 비교문화론 ‘사쿠라와 김치’를 발행했다. 

이용숙 저자는 영산대학 항공여행과 졸업, 오사카경제대학 객원교원교수, 일본관광 홍보대사, 해외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등, 역직이 너무 많아서 열거를 생략하는데, 술 한잔 못 마시면서 ‘일본사케시’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데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키키사케라시’라면 ‘일본술 소무리에’란 의미인데 관광 전문가로서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각 지방의 명주를 알게 되면서 흥미를 갖고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꽃 향기는 냄새로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명주도 마시지 않아도 그 명주만이 갖고 있는 향기로도 알 수 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해설이었다. 

간사이국제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학부 관광학과 학과장(學科長)으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일본의 관료, 공무원, 관광 전문가들과 만나서 자문역을 맡고 있다. 이것은 일본 관광만이 아니고 한국 관광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용숙 교수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오사카산을 '오사카몬'이라 한다.

「오사카에도 신토불이가 ! 아칸야네!」

오사카에서 가장 중심 도로인 미도스지(御堂筋) 거리는 우리집을 나서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이다. 교통과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나는 15년전 도심 번화가에 둥지를 틀었다. 교통과 생활의 편리함의 뒤편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거리의 늦가을、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노란 눈물이 뚝 뚝 떨어질 때면 나를 낭만의 소녀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곳을 걸으면 서울의 광화문 거리와 덕수궁 돌담길을 합쳐 놓은 듯한 분위기라 할까? 화가들의 붓놀림도 보며 나른한 주말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거리이다. 

더욱이 이 거리에 새롭게 단장한 우리의 친정인 주 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관 건물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이 거리에 나만이 숨겨놓은 소라(空)라는 단골 이자카야(居酒屋) 이야기이다. 

나는 국제관광 전공 교수이지만 사케 소무리에(利き酒師)이기기도 하다. 관광산업은 국가적 이미지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 분야 중 하나다. 국가 이미지 제고에서 술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술은 그 나라의 문화, 역사이자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원래 술을 못 마시는 ‘술맹’인 내가 오랜 시간 고군 분투해 사케 소무리에 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분야의 성취감도 있어 사케 전문가나 사케 도가의 장인(杜氏)들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사케와의 인연을 쌓아왔다. 

나아가 사케 연구를 지속하며 국제 경영학회에 사케 관련 논문도 기고하기도 한다. 내가 사케 전문가라는 소문이 주위에 퍼져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들에게 어떤 사케를 대접해야 좋을 지, 사케를 어떻게 마시고 어떻게 고르는 것이 좋을 것인지 주재원들에게 가끔 조언을 하기도 한다. 

나는 국제관광 전문가로서 킨키운수국 정부 관료나 지자체 공무원 들과의 관광 정보 교환 목적으로 가끔씩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그 장소가 바로 미도스지의 소라(空)라는 선술집이다.  소라의 사 십대 주인장은 항상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나의 어려운 요청을 받아주는 사람이다. 

나는 지인들과의 저녁 모임 때 자주 사케를 들고 나타난다.  하지만 내가 사케를 들고 나타나면 웃는 얼굴로 내가 가져온 사케 병부터 받아준다. 항상 친근하게 받아 주는 주인장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나에게 이 주인장은 인적 관광 자원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실감나게 경험하게 해준다. 

사케 향과 맛을 높이기 위해 고급 사케는 도쿠리보다 와인잔에 마시는 것을 나는 권한다.  내가 오래 전부터 와인 잔도 구입해 주인장에게 맡겨 놓고 있어 내가 갈 때면 이미 예약 테이블에는 와인잔이 준비되어 있다. 

그 선술집이 유명한 것은 생선, 쇠고기, 야채, 맥주, 양파 등 모든 식재료가 오사카 산 大阪産(もん)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産을 さん(산)으로 읽지 않고 もん(몬)으로 읽는다는 것이다.

오사카 사람들이 자주 쓰는 오사카 몬이라는 말을 物(もの)물건이나 者(사람)이라는 뜻으로 알았는데 여기서 もん은 産을 뜻한다. 이것 또한 오사카에서만의 메니아들을 위한 새로운 관광정보이다. 

이곳은 나만이 숨겨 놓은 선술집(穴場)이라 고급 가게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가게의 외관이나 실내는 이미지를 위해 꾸민 흔적이 없이 역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끌벅적 싸구려 선술집 같은 분위기이기에 가격도 아주 싸다. 그래서 관료 공무원들은 부담 없이 이 가게를 이용한다. 

지인들과 오사카 산의 음식과 사케를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분위기가 고조될 즈음, 한 관료가 “この酒はあかんヤツやね!”라고 외쳤다. 이 뜻은 이 사케는 안 좋은 사케야! 라는 뜻이다. 

나는 사케 전문가로서 관료들과의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술 도가까지 가서 엄선해서 준비한 사케인데 아니! 안 좋은 사케라니?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그 관료가 놀라는 내 얼굴을 보고 설명을 해주었다. 

오사카의 언어, 즉 오사카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あかん!이란 단어는 `나쁘다 혹은 안된다` 라고 부정적으로 쓰지만 반대로 최고의 뜻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오늘의 사케는 “あかんやつやねん!” 라는 만족과 극찬을 표시하며 붉으시 레 한 얼굴로 웃는다. 

‘부정의 뜻을 가지고 긍정을 강조하다` 역시 일본 답다. 그리고 일본어가 참 어렵다. 내가 오사카에 사는지 33년이 되지만 처음 10년정도 되었을 때는 일본에 대해 나의 경험을 바탕 삼아 이렇다 저렇다 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점점 침묵해진다. 점점 일본의 무게가 느껴진다. 

오늘도 저녁에 관서 국제 공항 대표와 관련 지인 몇 분과 오사카 もん에서 뵙기로 했다. 언제나 처럼 무거운 사케를 들고 우리 동네 미도스지(御堂筋) 혼마치(本町) 소라(空)로 향한다. 

내가 ‘소라(오사카몽)’에서 만나서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은 직위,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즐거운 시간을 공유한다. 그들은 점점 줄어 가는 술병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홍조 띈 얼굴로 아쉬워하는 눈빛을 침묵 속에 주고 받는다. 

그 사람들은 나와의 만남보다 아칸사케(あかんさけ)와의 만남을 더 기대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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