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88) 윤 석열 대통령과 히로시마 원폭희생자 위령비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 (88) 윤 석열 대통령과 히로시마 원폭희생자 위령비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05.30 0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8) 윤 석열 대통령과 히로시마 원폭희생자 위령비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2010년 8월 6일 오전, 일본 NHK방송국에는 100건을 넘는 항의성 불만 전화가 걸려왔다. 이 날 오전 8시부터 <원폭(원자폭탄)의 날> 평화기념 식전을 NHK TV로 생중계했는데 간 나오토 수상의 인사가 끝난 8시 38분 이후 중계를 끝내버렸다.

기념식전에는 처음으로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 대사가 참석해서 획기적인 기념행사라고 미디어들은 사설까지 쓰면서 높게 평가했었다. 간 나오토 수상의 인사 다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인사 차례에서 일본 국민들은 어떠한 메시지가 들어있는지 듣고 싶었는데, 방송을 중지했기 때문에 빚어진 불만의 전화였다.

전국 중계는 하지 못했지만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중국지방(한국의 영.호남 지방처럼 지역성 명칭)에서는 마지막까지 중계를 했었다. 한국 출신의 반기문 사무총장의 기념식전 결단력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인한 전쟁 종결론에 민감하고 미묘한 견해 차이가 있는데 일본에서는 양손을 들고 그의 리더십을 환영했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자격이 아니고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대표해서 원폭 위령비를 참배했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최고위층의 원폭 위령비 참배였다. 물론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도 참배했다.

그 후, 13년이 지난 2023년 5월 21일 윤석열 한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수상 부부가 공식적으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후, 다른 국가 정상들과 일본인 희생자 위령비도 참배했다.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방문 요청은 그사이 민단과 재일동포 원폭 희생자 단체에서 이명박 대통령 방일 때 위령비 참배를 요청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었다.

일정상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대의명분의 부족성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2만여 명이라는 막대한 재일동포가 희생당한 현장에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방문하여 참배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그러나 히로시마까지 일부러 와서 참배한다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만이 아니고 일본인 희생자 위령비도 당연히 참배해야 한다.

그 참배가 갖는 대의명분의 부족성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방치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필자는 지금까지 한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활발한 교류가 전개될 때에는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참배 문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한일 우호 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7개국 정상회담의 히로시마 개최와 기시다 수상의 한국 방문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이 회의에 초청을 받은 윤 대통령은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자연스럽게 한국인과 일본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자연스럽게 참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출신이면서 한 번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하지 않았던 기시다 수상이, 윤 대통령과 같이 참배하고 싶다고 스스로 제안한 기지는 모두 놀라게 한 기발한 발상이었다.

NHK TV는 5월 21일 오전 7시 뉴스에서 약 한 시간 동안 양국 정상 부부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참배를 생중계로 보도했다. 약 1년 전, 최악이라던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과거형으로 퇴색하고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