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큰별 세네갈](36) 끊이지 않는 도난·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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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큰별 세네갈](36) 끊이지 않는 도난·절도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3.3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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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운 선생님의 KOICA해외교육 봉사활동 체험기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36)끊이지 않는 도난·절도

샤베트 식당에서 코이카 사무소 직원, 자문단이 한국개발연구원 연구팀 2명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곳의 교육 현황을 설명해 주고 의견 개진을 했다.

여러 분야의 세네갈 교육지원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서 현장 답사를 왔다고 한다. 연구원 중에 뜻밖에 김민주라는 젊은 여성 연구관이 있었는데, 제주도 출신이라고 한다. 직접 들어 보니 내가 너무도 잘 아는 효돈이 고향이다. 아버지가 김원봉씨이고 신효 월라산 밑에 집이 있다고 한다. 내가 잘 아는 곳이다. 아마 그녀의 언니가 나의 제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료 선생님과 함께 그 집을 가정방문해서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회상되었다.

교육시찰 방문단과 함께
교육시찰 방문단과 함께

효돈은 신효 하효 상효로 나누는데 바로 내가 초임 중학교 교사로 출발했던 곳이요, 우리 집 사람을 만나 신혼을 보낸 곳이었다. 특히 처가가 있는 신효가 고향이라고 한다. 혹시 내가 가르치던 효돈중학교 출신인가 해서 물어보니 중학교는 다니지 않았으며, Home Schooling을 했다고 한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아주 착하고 차분하고 성실해 보였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세네갈에 3개월 있었다고 했다. 연구실장은 식사 중인데도 우리들의 하는 일, 필요한 일, 교육 현황과 실태 등을 날카롭게 질문하고 기록했다.

모임이 끝나고 나오면서 배윤정 코디님이 비닐봉지에 남은 음식을 싸 준다.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부소장이 시켰다고 한다.

유종화 부소장님은 부임한 지 8개월 정도 되었다. 20대 후반으로 아직 싱글이다.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판단력이 뛰어나고 일 추진에 강단이 있다. 부드러운 미소를 항상 머금고 있고 아름다움과 온화함을 잘 갖추고 있다. 열심한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며칠 전 그녀는 이곳에서 혹독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는 데, 그날도 야근을 마치고 밤 9시경 자신의 차로 집으로 오고 있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누군가 심하게 백미러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차를 멈추고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살피는데 어떤 남자가 와서 다쳤다고 소리쳤다. 그 남자는 오른쪽 창문에 와서 창문을 내려서 얘기를 하는데 그 남자가 이번에는 왼쪽 창으로 와서 또 옥신각신했다. 결국 별 일 없는 것으로 합의하여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해서 보니 조수석에 있었던 핸드백이 사라진 것이다. 핸드폰, 컴퓨터, 카드 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도난당했다.

배 선생에게 부소장이 전화를 해서 가보니 집 앞 계단에서 그녀는 울고 있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세네갈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며. 부소장은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했다. 젊음을 바쳐 봉사하는 외국인, 특히 힘없는 여자에게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함께 경찰에 가서 신고를 하고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곳에서는 분실 사건이 너무나 많다. 정종량 선생도 며칠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정 선생의 최근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엊그제 사무실에서 프린트를 하려고 명령을 내렸는데 실행이 안 되었다. 전원이 안 들어왔다. 프린터를 살펴보니 칼러 잉크가 모두 사라지고 핵심 부품인 드럼과 모든 내부 설비들이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평소에 잠그는 일도 잘했는 데 이런 일을 당해서 황당했다. 이 프린터는 구입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었다. 정 선생 말은 요즘 사무실 공사를 많이 하고 있는데, 아마 공사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이런 일을 저지른 게 아닌가 예측한다고 했다. 이제 근무할 날도 많지 않으니 프린터를 다시 구입하지는 않고, 그냥 지내겠다고 한다.

사실 정 선생은 이곳에 처음 부임했을 때도 황당한 도난을 당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노트북 컴퓨터를 사무실에서 도난당한 것이다. 얼마나 난처했을까? 특히 모든 자료들이 다 사라졌으니 어려움이 컷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중요 파일들을 외장하드에 저장해 두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다카시내 초등학교에서
다카시내 초등학교에서

그러나 다시 컴퓨터를 구입하는 데 50만 세파(100만원)를 지불해야 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시장을 다니면서 적절한 컴퓨터를 구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곳에서는 도난, 소매치기 사건이 워낙 많이 생기니까 자신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한 번 잃어버린 것을 경찰에 신고해도 다시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도 잘 챙기고 조심해야 하겠다. 나는 한국에서 처럼 항상 문도 열어두고 별 신경을 쓰지 않고 근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로부터 자주 핀잔을 듣는다. 문 꼭꼭 잠그고 다니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도덕적으로 어긋나려 하지 않는데, 이곳은 그런 점이 어렵다’고.

이곳에서 들은 도난 사건들을 몇 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용접 봉사 단원인 이상규 단원이 내게 자신의 경험을 직접 들려주었다. 친구와 함께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다. 친구가 앉아 있어서 친구 옆에 가방을 놔두고 물건을 구입하려고 잠깐 갔다 왔더니 가방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노트북 가방에는 컴퓨터와 몇십만 세파의 돈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한꺼번에 세상을 잃은 것 같았고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어렵게 중고 컴퓨터를 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또 다른 얘기도 들었다. 용접 봉사 단원인 이득규 선생님이 전해준 이야기다. 지방에 한 시니어 단원이 있었다. 그는 거의 60대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네갈에서 봉사활동을 성실히 펴겠다는 결심으로 지원을 하고 정말로 열심히 모범적으로 활동했다.

시골에 살면서 열악한 주거환경, 병충해, 무더운 날씨, 음식, 외로움 등을 이기면서 열심히 교육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모두 절약해서 모았다. 2년 동안 먹지도 쓰지도 않았다. 이제 귀국할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카에 출장을 왔다. 그리고 업무를 끝내고 저녁 때 집에 가보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집안이 엉망이고, 또 지금까지 모아 두었던 돈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문들이 잘 잠겨 있어서 들어올 틈이 없는데 이상했다. 살펴보니 밖에서 굴을 파서 집안으로 들어와서 전부 훔쳐간 것이었다. 거의 1000만 세파(2000만 원 정도)의 돈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절망감과 배신감이 얼마나 컷을까? 결국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조기 귀국했다고 한다.

(2015년 3월 13일)

무리한 요구

청장이 새로운 코디네이터인 Chelk Fall과 나와 유나 선생 그리고 영어 통역을 데리고 와서 회의를 했다. 통역은 알고 보니 ALASCO(한국연수단 동창회) 회장인 파파였다.

나는 우리 유아교육국의 정책이나 방침 등을 설명해 줄줄 알았는데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수학, 과학 등 교과서 교재가 필요하고 또 컴퓨터 등도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나는 정책 자문관이므로 정책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지 물자를 통해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유치원에서 직접 가르치는 교사보다 교수법을 가르칠 교사가 필요하다는 말도 한다. 또 지난번에 내가 제시한 유치원 평가 척도에 대해서도 자세한 자료를 요구했다. 나는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물자, 인력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8월부터 새로운 임기가 시작되므로 요구하는 내용도 가능한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9월 중에 세네갈 유아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새 프로젝트를 작성하여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청장은 다음 주에 내가 코이카 경비로 Kaolack으로 출장을 가는데 직원을 동행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나는 1인실 숙소를 예약했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내가 지원해 줄 수는 없고, 함께 가는 것은 각각 경비를 부담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경비를 지원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실망한 분위기다.

이어서 유나 선생과의 협의가 시작되었다. 내가 영어로 유나 선생을 위해 통역을 해주었다. 국장의 말은 유나 선생이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참가자들에게 음식과 자료와 출장비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3, 40명 참석하면 경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 것이다. 연수자의 출장비를 주최 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참석 기관에서 출장비를 지불해야 하고 오히려 좋은 연수 등은 연수비를 참석자가 지불하면서 참석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도저히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코이카 본부에 전달 협의해 보겠다고 전했다. 유나 선생도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얘기한다.

유아교육청장 유나 선생님과 함께
유아교육청장 유나 선생님과 함께

그런데 통역자도 문제다. 자기네 ALASCO 경비도 코이카에서 모두 부담한다고 하면서 유아교육국 세미나 경비도 코이카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 사실 이런 시스템이 문제이기도 하다. 코이카에서는 엄청난 경비를 들여 단기 연수, 석사 과정 등을 개설하여 무상으로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많은 혜택을 받고 왔으면, 동창회 운영 경비는 회원들이 갹출하여 운영해야 하는데, 동창회원들은 전혀 돈을 내지 않고 코이카에서 모든 경비를 제공하고 있다. 받는 것에 익숙해진 그들은 왜 이런 경우는 지원이 안 되느냐며 오히려 공격한다. 적반하장이다. 앞으론 코이카에서 동창회 운영비 지원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생력과 고마움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또 청장은 갑자기 유나 선생에게 지난해 구입한 교구, 자료들을 확인해 보겠다고 한다. 문을 열고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해 주었다. 유나 선생은 거의 화가 나서 울 정도의 분위기다. 작년에 구입했을 때 이미 다 자세히 확인하고 코이카에 수령 확인증도 공문으로 보냈는데, 왜 갑자기 다시 확인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했다. 속고만 살았는지 의심이 많은 것 같다. 유나 선생의 표정이 몹시 속상해 보인다.

그녀는 나중에 얘기하기를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 너무 괴로워 혼자 술을 마셨다고 한다.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을까? 그녀는 인간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청장의 모든 가족 생일을 일일이 기억하여 아무리 바쁘고 날이 어두워도 반드시 집으로 생일 선물을 전달하곤 했다. 또 이곳에서 귀한 생필품도 여유가 있는 대로 가져다 주곤 했는데 의심하여 재확인하는데 너무 불쾌한 모습이었다.

사실 협력 물품은 봉사단원과 코이카와의 관계로 기관과는 특별한 관련이 없다. 확인 감독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어쨌든 접근 방식이 유쾌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학교장으로 근무할 때 100여 명의 직원. 1500명의 학생들이 있어도 항상 믿음과 돈독한 신뢰로 시작하고 끝도 맺었는데, 이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드는 것을 무슨 일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사랑이다.

개발 원조의 목적은 개발 도상국에게 개발 원조가 필요 없도록 하는 데 있다. 즉, 개발 원조의 목적은 개발도상에 있는 국가를 하루빨리 개발시켜 더 이상 다른 나라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개발 원조의 목적은 단순히 경제성장에 국한되지 만은 않다. 개발은 삶의 질의 전반적인 향상을 가져와야 한다. 따라서 OECD/DAC를 비롯한 국제 개발 협력 기관들은 개발이 궁극적으로 타파하고자 하는 빈곤을 다음의 5가지 능력이 결여된 상태로, 다차원적인 정의로 내리고 있다.

① 경제적 능력(Economic capabilities) : 필요한 소비를 할 수 있고 자본을 보유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 보장

② 인간적 능력(Human capabilities) : 보건의료서비스, 영양, 안전한 식수, 교육, 위생적인 환경 보장

③ 정치적 능력(Political capabilities) : 개인의 인권이 인정되는 가운데 정치·정책 과정에 참가하고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건 보장

④ 보호능력(Protective capabilities) : 식품 부족, 질병, 재해, 범죄, 전쟁, 분쟁 등에 의한 취약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여건 보장

⑤ 사회적 능력(Socio-cultural capabilities) :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지위가 인정되는 여건 보장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추진해 온 공여국으로서의 노력과 역사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1963년 미국 국제개발청(USAID) 원조자금에 의한 개도국 연수생의 위탁훈련을 시초로, 1965년부터는 우리 정부 자금으로 개도국 훈련생 초청 사업을 시작한다. 1967년에 전문가 파견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유엔기구 등의 자금을 지원받아 개발 원조를 실시하였으나, 우리의 경제성장으로 개도국으로부터 원조수요가 매년 증가되자 점차 우리 정부 자금에 의한 원조 규모를 확대하였다. 1977년 110만 불 규모의 우리나라 기자재를 개도국에 공여함으로써 물자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으며, 1982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도국 주요 인사를 초청하여 우리의 개발경험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국제 개발 연찬 사업(IDEP)을 시작했다.

1984년에는 건설부에서 현재의 개발 조사 사업에 해당하는 무상 건설기술 용역사업을, 노동부에서는 직업훈련원 설립 지원 사업을 하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즈음하여 외채 감축과 국제수지 흑자의 실현으로 우리나라의 개발 원조가 본격화 되었다.

우리의 경제규모 증가와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제고로 그에 상응하는 국제적 책임 수행이 요청되었다.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개도국에 대한 수출증진 및 우리 기업 진출 기반 마련을 위해서도 ODA 증대를 통한 개도국과의 협력 강화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1987년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하여 개도국에 대한 양허성차관을 지원코자 300억 원을 출연,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조성, 우리의 개발 원조 유상협력의 본격적인 계기를 마련하고,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설립으로 그동안 건설부, 과학기술처 등 각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실시해 오던 기술 협력, 인적교류사업 등을 통합하여 관리했다.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ODA는 본격적으로 확대되어 우리나라 ODA는 연평균 22.6%(원화 기준)의 빠른 성장을 보였다. 1996년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가입으로 원조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져 91년에 5700만달러였던 원조 규모가 1997년 3배가 넘는 1억8500만 달러까지 증대되었다.

또한 사업 수단도 다양해져 1991년 인프라 건설 위주의 프로젝트형 사업에서 시작하다가 1995년 국제협력 요원 파견, NGO 지원 사업 시작 등 기술 협력사업까지 점차 사업형태를 확대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라크 전쟁, 아프간 내전 등으로 인해 동 지역에 대한 재건복구, 긴급 구호 사업이 증가하면서 원조 규모는 더욱 급격히 확대되어 2억 불을 초과했고, 2000년대는 원조 규모의 급격한 확대뿐만 아니라 원조정책면에서도 큰 변화와 발전이 있던 시기였다.

2006년 1월에는 우리나라 ODA정책 및 집행 조정 및 일관성 제고를 위해 국무총리실 아래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출범했다. 특히, 2009년 11월 25일 우리나라가 OECD 공여국 모임인 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가입이 결정되고 2010년 1월 1일부터 정식회원으로서 활동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원조 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DAC 가입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역사상 유일하게 최빈국에서 공여국으로 도약한 국가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국제 원조 사회의 규범과 기준에 부합하도록 원조정책 및 사업집행체계를 정비하고 타 공여국과의 원조 정책 협의 과정에도 적극 참여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와 같은 DAC 가입으로 인해 2010년부터 우리나라의 원조정책과 체계 개선에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2010년 1월 25일 ODA정책의 법적 안정성 확보를 위해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이 제정되어 7월에 발효가 되었으며, 같은 해에 우리나라의 범정부적인 ODA 선진화 계획인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이 작성되었다.

DAC 가입 및 원조 규모의 확대에 따라 국제개발사회에서의 우리의 리더십 발휘 및 역할을 강화할 필요성이 많이 제기되어 2000년대 후반에는 G20 회의, OECD/DAC 원조효과성제고를 위한 4차 고위급회의(High Level Forum on Aid Effectiveness : HLF-4)인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등 동 분야의 주요 국제회의를 개최하였다.

정종량 선생님과 함께
정종량 선생님과 함께

우리나라가 이렇듯 선진 원조공여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제고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 ODA 규모를 2015년까지 GNI 대비 0.25%까지 확대할 것을 약속하였다. 최근 국제사회 차원에서 공적개발원조(ODA) 규모 확대와 원조효과성 제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원조 성과 창출에 기여하려는 목적으로 원조 규모의 확대와 효과적인 개발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현재 UN이 권고하는 ODA/GNI 비율은 0.7%이며,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0.13%의 ODA/GNI 비율을 2015년까지 0.25%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지속적으로 증액하고 있다. (2011년 OECD/DAC 국가 ODA/GNI 평균 0.31%)

원조효과성 제고를 위한 2002 로마 선언, 2005 파리 선언, 2008 아크라 행동 강령, 2011 부산 글로벌 파트너십 등 세계개발원조총회에서 도출된 국제사회의 합의 결과를 고려하여, 한국은 효과적인 개발 협력 수행을 위한 국내 정책 및 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준한 개발 협력을 수행하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인해 한국경제는 자주 성장의 가능성을 잃었으며, 미국 주도 아래 이뤄진 UN의 경제원조를 바탕으로 전후 경제를 복구했다. 1945년부터 1961년까지 긴급 구호 중심으로 무상원조를 받았으며, 1962년부터 경제성장을 위한 유상원조를 받았고, 2000년에 수원국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렇게 경제성장을 위해 도움을 받던 한국은 1963년부터 연수생 초청 등을 통해 작게나마 공여국 역할을 꾸준히 했으며, 1987년부터 원조 기관 설립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여를 시작했다. 2010년에는 OECD 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가입을 통해 선진공여국으로 도약하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세계 최초 유일국가가 되었다. 정부는 2024년 해외 공적 원조(ODA) 예산으로 6조 5316억 원을 편성했다. 참으로 대단한 변화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지원과 도움도 상호 이해 협력의 관점에서 요청되고 또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청장이 코이카 담당 직원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배 관리 선생이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런데 유나 선생 담당이 하 선생인 데 바빠서 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다.

JIKA(일본봉사단) 담당자는 연락받는 즉시 우리 사무실로 직원이 왔고, 벌써 두 번이나 왔다. 그리고 꼭 같은 세미나를 개최하려니 자이카가 경비를 담당하라고 했다고 한다. 일본은 일부를 담당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두 봉사기관을 한 사무실에 거주하게 하면서 지원을 경쟁시키는 분위기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한 곳은 철수함이 옳을 것 같다. 이 문제로 아끼꼬도 나에게 와서 하소연하며 어떻게 해야 될는지 모르겠다고 곤혹스러워한다.

(2015년 3월 20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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