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25) 일본 70대 여성 다카마쓰 사치코 씨, 한국 홀로 탐방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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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25) 일본 70대 여성 다카마쓰 사치코 씨, 한국 홀로 탐방기(2)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5.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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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125)일본 70대여성 다카마쓰사치코 씨, 한국 홀로 탐방기(2)

4월 8일(월). Y씨가 알려준 두 번째 추천 장소 <석촌호수>를 찾아갔다. 어제 Y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모레 시간이 있으니까 ‘양수리’를 안내하겠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드라마 촬영지였던 그곳에는 공공 교통기관을 이용해서 혼자서 갈 예정이었는데 고마웠다. 전화상의 얘기 소통이 걱정되었는지 “내일은 혼자서 잠실 석촌호수에 가고 모레는 오전 9시에 호텔에 가겠으니 차로 양수리까지”라는 확인 메일이었다.

그래서 8일 월요일 날은 혼자서 석촌호수에 갔다. 빌딩 사이에 있는 커다란 호수는 전혀 몰랐던 곳인데, 여기도 만개한 벚나무 가로수가 호수 주변에 있어서 아름다운 곳이었다. 서호수와 동호수가 연결되어 많은 사람들이 거의 같은 방향으로 물 흐르듯 걸어가면서 꽃을 보며 돌고 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회사원 모습과 같은 많은 남녀들이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얘기를 나누면서 끊일 새 없이 걷고 있었다. 많은 벤치에 앉아서 여유롭게 꽃을 보면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동기구의 광장에서 운동하는 사람, 호수에 있는 롯데월드의 절규머신을 바라보는 사람 등 모두 다른 모습들이었다.

도중에 인파가 끊긴 호수 구석에 있는 카페에 냉커피를 사러 갔다. 점심시간의 휴게에 맞물려 회사원들과 같이 기다리게 되어서 냉커피를 받는데 20분을 기다렸다. 이 모습이 이 사람들의 일상이라고 새롭게 느껴졌다. 제각기 처지에서 섞어진 나도 서울시민이 된 기분을 실감했다. 좀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보은사를 방문했다. 외국인도 많이 찾아가는 유명한 사원이다.

잠시 얘기를 바꾸겠다. 어제(7일) 등산 중에 만난 H씨로부터 “수요일(10일)은 선거로 휴일이기 때문에 동창생 몇 명과 놀러 가는데 같이 가겠습니까?”라는 권유를 받았었다. 그 자리에서는 잘 몰라서 우물거리면서 지났지만, 그날 저녁, 혹시 갈 수 있다면 만날 장소와 시간 등을 알리는 연락이 왔다. 갈 곳은 호수의 도시 춘천인데 열차로 간다고 했다. H씨가 신뢰할 수 있어서 “잘 부탁하겠습니다.”라고 회답을 했더니, 자세하고 알기 쉽게 만날 장소 연락을 받았다. 이로써 2일 후의 일정은 정해졌다.

4월 9일(화). Y씨가 호텔에 찾아와서 양수리에 갔다.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를 가진 ‘두물머리’는 몇 편의 한국 드라마 촬영지로서 기대한 것처럼 경치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일기도 좋아서, 파란 하늘과 신록이 절경을 만들어 상쾌한 바람이 스친다. 혼자였으면 아마도 하루종일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호반에 커다란 액자가 있어서 그 속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지만, 젊은 세대와 같은 사진이 아니어서 안타까웠다. 배려심이 많은 Y씨가 명물인 ‘연핫도그’를 사왔다. 맛 있게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산책길로서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번 오고 싶은 장소였다.

돌아가는 길에 남양주의 다산 유적지 정약용 생가를 보았다. Y씨가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실학 등 어려운 것이 많아서, 나중에 검색해서 알 수 있었다. 부대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다니까 그 가게와 깨끗한 카페에도 들렀다. Y씨는 카페 주인이나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데, 그 말들을 옆에서 듣는 것도 공부가 되어서 즐거웠다. 저녁에 호텔까지 바래다준 Y씨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귀국하실 때까지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성의껏 안내해 주시고 선물까지 주셨다. 나보다 8세 밑인 친절한 그는 말했다. “친구이니까”였다.

4월 10일(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창생 3명과 3일 전에 만난 선배, 거기에 내가 끼었으니 5명이 인사를 나누고 지하철과 열차를 타고 가평에서 내렸다. 거기서 춘천 명물인 닭갈비 전문점에서 식사를 했다. 모두들 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맥주, 막걸리를 마시면서 고교시절처럼 마찬가지로 농담을 하고 웃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나에게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지 않고 여느 때의 모습처럼 말을 나눈다… 호감이 가고 흐뭇한 자리였다.

식사 후에 다시 열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차도를 따라 계속 가기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데, 커브를 도는 순간 호반이 나왔다. 거기는 음식점과 토산물 가게도 있어서 휴일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막국수와 막걸리를 주문하고 여러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면서 먹고 마셨다. 음식값은 암묵 속에 서로 교대로 가게마다 다른 사람이 지불했지만 나에게는 절대 지불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식사 후에는 얼른 자리를 뜨고 호반의 벚꽃 가로수길 따라 춘천역까지 걸었다. 최종 목적지는 여기였다.

기울고 있는 해가 호수에 반짝이고 흩날리는 벚꽃 속의 호반 길을 일행 5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춘천역까지 걸었다. "벚꽃 정말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일본인이 심어 주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주었으니까"라는 표현이 기뻤다.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라고 말했더니 "일본 사람들은 더 친절해요. 어디나 깨끗하고..." 라면서 일본에 왔을 때의 일을 칭찬해 준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의 하루를 이렇게 귀하게 같이 지낼 수 있고, 아주 좋은 곳까지 함께 올 수 있는 일본인이 또 있을 것인가. 마음에 행복이 넘치고 있었다. 교통 카드를 갖고 있다고 해도, 왕복 열차표를 사서 준다. "꼭 여러분들께서 일본에 놀러 오십시오. 제가 안내하고 대접하겠습니다."라는 말 이외에 고마움을 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내리고 헤어질 때 마음이 섭섭했다. H씨에게는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다. (후일담이지만 귀가할 때에 너무 섭섭해서 춘천역에서 먼저 가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서, 카페에서 파는 도나쓰를 날림으로 사서 개찰구 안에서 기다리는 네 사람에게 나눠 주었는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4월 11일(목). 어제의 여운이 아쉽게 남았지만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3일을 보내기 위해 대학로를 찾아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기 위해 갔다가 본래 연극 관람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주변 걷기를 했다. 마로니에공원에서 꽃이 아름다운 낙산공원까지 천천히 올라가면서 성벽을 따라 동대문까지 걸었다. 오후 2시 좀 지났다. 시간이 있기에 서울대학교를 보러 갔다. 서울대학을 빠져서 뒤에 있는 관악산 등산을 단념했지만 한 번은 예정표에 넣었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리고 주변이 엄청 큼에 놀라면서 관악구청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학생들이 줄서서 타는 버스에 동승해서 캠퍼스 끝쪽까지 가서 내렸다. 걸어서 내려오면서 근대적이며, 상상을 초월한 크기의 서울대학을 눈에 새겼다. 여기에서도 벚꽃이 흩날리면서 환영해 주었다.

4월 12일(금). 3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데려다준 창덕궁을 천천히 돌아보기 위해서 오늘 하루를 일정에 넣었다. 후원(비원)은 어제 오후 한 시에, 일본어 가이드 부탁을 호텔에서 예약을 해줬기 때문에 그전까지 다른 궁전을 천천히 보고 나서 순조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꽃과 신록이 건물과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갔다 왔다 하면서 보았다. 30여 전의 인상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장녀, 세 사람이 왔을 때는 비가 그친 후여서 정원이 아름다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4월 13일(토). 마지막 날은 Y씨가 추천해 준 또 한 군데, 서울대공원에 갔다. 토요일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할 정도로 사람, 사람, 또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설였다. 상상을 초월한 넓음과 토지 감각과 지식도 없어서 꼼짝 못했다. 북적이는 인파를 피하고 가다 보니 리프트가 있어서 2인용을 타고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서울동물원에 들어가고, 그것도 제일 위에서이다. 그 뒤에는 여러 곳을 보면서 천천히 내려오면 된다. 스스로가 잘 생각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흐름에 맡긴 하루를 보냈다.

이날만은 혼자 다니는 사람 같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즐겁게 가족들이나 커플 등이었다. 생각하면 지난 4일간은 한국어만 사용하고 지냈기 때문에 서툰 한국말을 더듬거리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끝으로 좀 남은 길을 유모차를 밀고 있는 젊은 엄마에게 물었더니, "혹시, 일본 분이세요?" 라고 묻는다. "웬지 그럴 것 같아서."라고 덧붙였다. 얘기를 해보니 최근까지 도쿄 도요스(豊洲)에서 13년간 살았다고 했다. "한글 안내도가 없어서... 괜찮다면 이것이라도." 하면서 갖고 있는 일본어 팸플릿을 나에게 주었다. 마지막 만남이 일본에 관계가 있는 사람이어서 웬일인지 기뻤다. "아기 열심히 키우세요."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서울은 대도회, 사람이 많고 싫다는 생각만 하고 지방 탐방만을 해왔었다. 그러나 서울은 무척 즐겁고 재미있었다. 서울이면 앞으로도 올 수 있을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인천공항을 떠났다.

지난 회와 이 글이 다카마쓰 사치코 씨의 <한국 홀로 탐방기> 전문이다.

"한국에 가서 드라마틱한 실패담을 많이 경험하고 오세요. 그 실패담의 에피소드가 재미있습니다."라고 필자는 다카마쓰 씨에게 격려 아닌 격려(?)를 했었다. 2주일 동안 에피소드로 얘기할 그러한 실패담은 없었다. 보편적 일상처럼 평온하게 보낸 2주일이었다.

마치 이웃 동네 친구 찾아가서 그 친구 집에 머물면서, 낯선 그 동네 친구들과 첫 인사 나누고 다정하게 지내다 온 이야기 같다. 읽고 나서 은은한 감동이 일어나는 것은 웬일일까. 다카마쓰 사치코 씨는 이 글에서 한일간의 관계 운운하면서 한 마디도 없었다. 다카마쓰 씨는 그 명제를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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