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26)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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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26)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6.0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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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126)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

한국을 대표하는 고(故) 오승철 시조시인의 새로운 작품을 이제는 읽을 수 없다고 아쉬운 마음 속에 있었는데, 타계 일 년만에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2024.4.30. 도서출판 다층)가 발행되었다. 오승철 특유의 있는 둥 마는 둥한 '시인의 말'도 있었는데 한 편의 시였다.

나의 시는/ 어머니 무덤가에/ 설핏,/ 다녀가는/ 봄눈 아닐까. 이것이 '시인의 말' 전문이다.

내리는 동시에 녹아버리는 봄눈, 어떤 때는 의외로 쌓이는 봄눈의 여운들처럼 우리들에게 주는 애틋한 삶의 희로애락은 많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오승철 시인은 다른 세계에서 그러한 우리들의 삶을 내려다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봄날만 잘도 간다' 유고시집에는 제1부 유고시조에는 37편, 제3부에는 유고 동시조 22편, 제2부 유고시에는 44편이 수록되었다. 제3부와 제2부 순위가 바뀐 것은 시조를 강조하기 위한 편집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유고시집 중에서, 유고시조에서 4편, 유고 동시조에서 3편, 유고시에서 2편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제1부 유고시조에서 <어머니 벗네님네는>이다.

어머니 벗님네는

 

아무 때 봬도 반갑네 어머니 벗님네는

작살 차고 수경 쓰면 아직도 상군해녀

이제는 불러도 좋겠네 어머니라 해도 좋겠네

 

일 년 절반 고향 바당 절반은 육지 바당

어느새 물밑마저 서늘해진 추석 무렵

오징어 두어 타래에 멸치까지 챙겨든다

 

거문도와 일출봉 송악산 오가는 뱃길

어느 포구엔들 순비기꽃 안 피랴

어느 서방 옷섶엔들 술값이야 없으랴

 

한반도 해안선 따라 돌아와야 할 이름아

누이야 이제는 오라 수평선도 끌고 오라

한가락 오둘또기로 신명 나게 끌고 오라

그렇게 정겹게 아주 흔하게 쓰는 (동네) '삼춘'이 아니고 '이제는 불러도 좋겠네 어머니라 해도 좋겠네'라고 한다. 젊었을 적에 한반도 해안을 누비고 다니던 제주 해녀들의 도전과 진취성은 숭고하다. 어떤 사람들은 계급사회에서 해녀를 하층으로 분류하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제주 문인들의 작품 속에도 그러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한겨울의 추운 바다 속에도 맨손으로 잠수하는 제주 해녀는 존재하고 있는 인어 모습 그 자체이다. 그녀들은 삼춘보다 격상 높은 어머니였다. 삶의 개척을 위해 원정 물질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녀들의 귀향은, 수평선까지 함께 오라는 개선장군과 같은 응원가였다.

다음은 <딱지치기>이다.

딱지치기

 

그 형과의 대결은 번번이 내가 졌다

점방하던 아버지 어떻게 알았을까

슬며시 알사탕 주고 되찾아 주던 아버지

 

한때 아버지는 뭍 나들이 장사하셨다

간혹 선물상자에 보내오던 명절빔

알사탕 두 개와 바꾼 그때 그 딱지 같다

오승철 시인의 작품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섯다 도박판'이다. 구수하게 작품 속에 스며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들의 도박이라면 과장된 표현이지만, 귀엽게도 <딱지치기>였다. 가장 아끼던 딱지를 동네 선배와 맞붙어서 잃고 말았다. 그 딱지는 아버지가 한때 뭍 나들이 장사 때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이 유서 깊은(?) 딱지를 되찾기 위한 부성애의 일화가 아련하다.

다음은 <지냉이 잡으러 가게>이다.

지냉이 잡으러 가게

 

책보는 마룻바닥에 휙 하니 던져놓고

점심도 뜨는 둥 마는 둥 지네 잡으러 간다

손에는 물병도 없이 호미 하나 빈 병 하나

 

지네에게 물리면 소변을 발라주고

배고프면 산밭에서 무를 훔쳐 먹는다

산마장 소를 내쫓고 우리가 물을 마신다

 

일 년에 두어 차례 지네 장수 없었다면

용돈은 누가 줄까 과자도 사 먹는다

저녁 초승달 더불어 어깨동무하고 온다

'지네 잡기'는 아이들의 아르바이트의 하나였다. 지네 장수만이 아니라 엿 장수도 지네를 구입할 때도 있었다. 도구라고는 호미와 빈 병 하나. 오전 수업 마치고 땅거미 지는 저녁까지 지냉이(지네의 제주어) 찾아 헤매는 동네 아이들의 작은 모험담 역시 아련하다. 배고프면 무우를 슬쩍하고, 목 마르면 목장의 소떼들을 내쫓고 그 물을 같이 마셨다는 옛 이야기들이 제 각기의 유년시절을 반추하게 한다.

다음은 <허수아비>이다.

허수아비

 

건들건들 건들바람

빨간 고추 반 토막

 

올 농사 어디 갔나

밭두렁 허수아비

 

그리운

보름달 따라

서울로 다 갔나 봐요

건들건들 건들바람 부는 가을 수확은 빨간 고추가 반 토막이 날 정도로 미미했다.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안심하고 맡겼던 허수아비가 자기 책임을 포기하고 나도 나도 하면서 서울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재일 동포 2,3세가 한국 본적지 부근에 있는 선산의 관리를, 그곳에 사는 친척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척 자손들도 고향을 떠나 서울과 도회지로 떠나버렸다. 대를 이을 산지기가 없어서 선산은 조금씩 황페해 지기 시작했다. 그 사연과 오버랩된다.

다음은 제3부 유고 동시조 <그리운 할머니>이다.

그리운 할머니

 

오늘은 온 가족이 제사 준비 하는데

온종일 태풍 소식

한라산이 들썩들썩

바다도 와장창 깨진 할머니 거울 같아요

오승철 시인의 입심의 표현이 동 시조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다. 아기자기한 시어들이 번쩍일 동시에서도 그러한 시어들은 존재하지 않고 투박한 시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라산이 들썩들썩, 바다가 와장창 깨진다는 것은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리고 오래 사용하여 금이 간 할머니 거울과 대비된 바다의 존재도 말이 아닐 정도로 추락했다. 그러나 오 시인의 글심은 4행 속에서 퍼즐처럼 꼭 맞추면서, 시퍼렇게 날뛰며 퍼득이고 있다. 조용히 살다가 일생을 마친 할머니의 생애가 아닌 파란만장의 일생을 내비추면서 애정의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달덩이만 하다고요?>이다.

달덩이만 하다고요?

 

누가 지난 밤에 갓난쟁이 놓고 갔나

강보에 싸인 채로 엄마 곁에 잠든 아기

쪼그만 얼굴인데도

--- 달덩이만 하다고요?

 

--- 달덩이만 하다고요?

난 정말 모르겠네

이젠 엄만 동생 편 아빠는 누구 편일까

얄미운 저 보름달을 누가 데려왔을까

나 앞에 어느 날 밤 갑자기 달덩이만 한 동생이 태어났다. 아니, 누가 놓고 갔단다. 심상지 않은 첫 행의 시작인데,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는 달덩이가 얄미운 보름달이 되어서 엄마, 아빠를 비추고 있다. 어린 나의 고민은 말이 아니다.

다음은 <나의 소원>이다.

나의 소원

 

꽃들도 울긋불긋 연등도 울긋불긋

오늘은 사월 초파일 와글바글 절마당

저렇게 앉아 있어도 부처님 키가 제일 커요

 

솜사탕도 슬러시도 안 사주던 엄마가

빳빳한 5만 원짜리 그냥 척! 내놓아요

부처님 꼼짝 안 해도 불전함은 바빠요

 

소원을 빌라 해서 뭔 말 할까 생각하다

"하루라도 컴퓨터 게임 실컷 하고 싶어요."

내 머리 콕 치는 엄마, 그건 나도 들어 줄 수 있어!

군것질 하나 제대로 사 주지 않던 엄마가, 빳빳한 5만원짜리 아낌없이 불전함에 척 내놓는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소원을 빌라 했다. '하루라도 컴퓨터 게임 실컷 하고 싶어요."라는 망설임 속에서도 간절한 소원에, '그건 나도 들어 줄 수 있어!' 하고 엄마가 머리를 콕 친다. '아이야, 그런 소원은 마음 속으로 빌어야 한다'고 슬쩍 일러주고 싶다.

다음은 유고시 <한 방에 자면서도>이다.

한 방에 자면서도

 

한 방에 자면서도

우리 가족은

따로따로

밤의 바다를 건너는 네 개의 섬

지독한 불면으로

유독

나 혼자만 표류합니다

서로 손짓도 못하고

바다가 맞닿은

아득한 별나라로

놓쳐버린 아내와 아들과 딸

익숙지 못한 뱃놈 생활이

이루지 못한 꿈보다 성가시고

포구의 가족들에게

만선의 기쁨으로

고동이나 실컷 불어 보는 게 소망인

시인

 

물살에 섬이 흐르듯

밤새 맑게 씻긴

우리들의 베갯머리

새벽녘

하나씩

깨어나는 가족들이

서로 긴 여행 끝의 안부를 묻습니다

유고시라면 생의 마지막을 임박해서 썼다는 의미도 포함되지만 이 시집에 게재된 시에는 오래 전의 시들도 많았다. 그 시들 속에는 오승철 시인의 새로운 특성을 엿볼 수 있었다. 오 시인이 시조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입심과 투박한 제주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이다. 한글 정서법에 위반이라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공손한 단어들이 전부였고 내용도 그러했다.

<한 방에 자면서도>는 마치 자신의 삶의 종착점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이 과거, 현재, 미래가 전개되고 있다. '한 방에 자면서도 우리 가족은 따로따로 밤의 바다를 건너는 네 개의 섬'이라고 했다. 동상이몽 속에 모두 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혼자 지독한 불면의 고독 속에 표류하고 있다, 인생 항로 속에 익숙지 못한 뱃놈 같은 생활이더라도 포구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만선의 기쁨을 안기고 싶은 현실이 있다. '물살에 섬이 흐르듯 밤새 맑게 씻긴 우리들의 베갯머리, 그것은 어쩌면 서로 남 몰래 흐른 눈물이었는지 모른다. 그 새벽 속에 깨어나서 가족들이 서로 떠날 긴 여행의 끝을 묻고 싶은 미래가 있다..

끝으로 <밤비 속에서 Ⅱ>이다.

밤비 속에서 Ⅱ

 

어디로 갈까

가등(街燈) 빛 젖어 내리는 거리

 

수천만 개의 낯선 얼굴들이

나의 옆을 스쳐 지나는가

 

어디로 갈까

바다 기슭을 돌아와

발밑에 밀리는

나목(裸木)의 그림자

 

바람은 네 머리카락을 흔들고

내 머리카락도 흔든다

 

하늘 한 자락 살아있는 번개

어둠을 쪼개듯

내 넋을 쪼개고

 

빗물이 고여 들어

아아, 이리도 허전한 목마름

<밤비 속에서 Ⅱ> 이 시도 <한 방에 자면서도>처럼 자신을 깊게 성찰하고 있다. 어디로 갈까. 다시 또 되뇌인다. 어디로 갈까. 찾아가면 양손을 펴면서 아주 따뜻하게 맞아 주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충족 시켜 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늘 한 자락 살아있는 번개/ 어둠을 쪼개듯/ 내 넋을 쪼개고' 새로운 삶의 이미지를 부여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내 마음의 방황은 변함이 없다. '빗물이 고여 들어/ 아아, 이리도 허전한 목마름' 물이 넘쳐흘러도 그 목마름은 추길 수 없다.

오승철 시인은 1957년 (2023년 작고)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출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겨울 귤밭> 당선으로 등단. 시조집 <개닦이> <누구라 종일 홀리나> <터무니있다> <오키나와의 화살표>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봄날만 잘도 간다> <사고 싶은 노을> <길 하나 돌려 세우고>가 있다.

한국시조작품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유심작품상, 중앙시조대상, 한국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오늘의 시조문학상, 서귀포문학상, 한국예술상, 제주문학상 등 수상. 옥관문화훈장 추서, 서귀포문인협회회장,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의장,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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