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27) 일본 '가족장'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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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27) 일본 '가족장'의 확대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6.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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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장례문화가 간소화의 축소 지향으로 전환하고 있을 때, 코로나 사태로 급속도로 바뀌었다.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가 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동일 지역에서 많은 사망자가 희생되었다. 좋은 날을 선택해서 떠나는 사람과의 마지막 이별을 엄숙히 치르고 싶었지만 그러할 환경의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돌연변이 사태 속에서 100%에 가깝게 화장을 하는 일본에서 피해지역 내에서는 화장장은 물론 장례식장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 좋은 날 선택은 있을 수 없고 화장할 수 있는 날을 중심으로 장례 날짜를 정해야 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간소화 지향으로 가족장이 여기저기서 행해지고 있을 때 코로나가 덮쳤다. 가족은커녕 장례식을 전문으로 담당하

일본에서 가족장을 광고하는 전단지.

는 사람들까지 제한했다.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완전무장의 방역 상태 속에서 서둘러서 화장을 끝내야 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이러한 장례 모습은 세계적인 현상이었지만 그 충격은 대단했다.

장례문화에 대한 개념은 코로나를 계기로 간소화와 맞물려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조직적으로 치러지던 큰 장례식이 가족 중심으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치르는 방식이 늘어났다. 일본의 장례식은 크게 나눠서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로 가족장은 말 그대로 고인의 가족, 친지들과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만 모여서 치르는 장례를 말한다.

둘째로 일반장(一般葬)인데 가족장을 좀 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 않던 사람, 또 그 지역을 대표하는 반장, 통장 등도 참석한다. 일본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치르던 장례식이었다. 재일 포 장례식도 이러한 장례식이 일반적이었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잠정적인 정의(定義)에서 가족장은 50명 미만, 일반장은 50명 이상을 말하고 있다.

셋째로 일일장(一日葬)인데 가족과 가까운 사람, 관계자들만 참석해서 오쓰야(お通夜:장례식 전날 밤 스님, 목사 등이 불공과 기도를 드리면서 고인을 기리는 것, 제주 '일포' 풍습과 비슷함)는 하지 않고 고별식을 마치고 화장하는 것을 말한다.

넷째로 직장(ちょくそう:죠크소:直葬)인데 오쓰야와 고별식을 하지 않고 바로 화장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로 사장(社葬)인데, 고인의 사회적 참여에 따라 중심이 되는 단체, 아니면 기업 등이 장례 후에 따로 날짜를 정해서 '이별의 날'(別れ会:와카레카이) 혹은 '추도회(偲ぶ会:시노부카이)를 개최한다. 실질적인 장례식은 밀장(みっそう: 密葬)이라고 해서 가족들만 치르고 나중에 '이별의 날'이나 '추도회'를 갖는다고 사전에 통보한다.

이렇게 고인과 가족 중심으로 고인과의 이별을 더욱 밀도 있게 보내려는 가족장의 확대로, 가족장 시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조간지와 함께 들어있는 찌라시(전단지)에는 같은 날에 몇 군데 가족장 시설 선전 찌라시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찌라시라면 한국에서는 흥미성 위주의 삼류 기사를 실은 미디어나 전단지를 뜻하는 속어이지만 일본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이다. 이 찌라시가 건전한 정보 안내 전단지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슈퍼의 세일, 부동산 안내 등 토요일일 경우, 30페이지를 넘는 조간지보다 더 많은 찌라시가 들어있어서 무겁기 때문에 신문 배달원들이 안쓰러울 때가 허다하다.

이러한 전단지 속에 들어있는 가족장 안내 시설은 필자가 사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들이다. 새로 생긴 곳이나 아니면 정기적으로 새로운 기획을 내면서 선전하고 있다. 장례식장이라면 혐오 시설로서 민가의 중심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또 그러한 시설을 지은다면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소송 문제로 비화해서 몇 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인식이 희박해서 보통 가정집 단독 주택을 개량하여 지은 가족장 시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사자(死者)와 생자(生者)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혐오적인 금기의 단절이 아니고 일상생활의 하나처럼 변화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현상이다. 백 년 시대라는 고령화 사회에서 장례식장이 일반 가정과 떨어진 곳에 있으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참여가 더욱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장례식에 참가할 사람들은 고인과 정을 나눴던 그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참가해야 할 자리다.

고령화 시대의 사활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클로즈업 되었다. 죽음이 바로 일상생활과 직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족장 시설이 가뭄에 콩 나듯이가 아니고, 우후준순처럼 여기저기 생겨나는 것도 하나의 편의시설로서 우리들 저변에 정착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과 특이하게 다른 장례문화로서 유해의 안치 문제이다. 한국에서는 발인 당일까지 영안실에 안치하고 있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유해를 제단 앞이나 밑에 안치한다. 유해의 관을 봉인 않고 조그만 유리 창문을 내서 언제나 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발인 때에는 보내온 조화들을 꺾어서 관을 열고 참석자들에게 그 속에 마지막 이별과 함께 꽃을 넣으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 많은 조화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보내온 조화를 유용하게 마지막까지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더욱 좋은 것은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을 희망하는 참석자들이 직접 대면할 수 있어서 좋다. 서로 다른 전통 장례문화에서 이런 점에서 우열을 가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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