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큰 별 세네갈](41)파김치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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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큰 별 세네갈](41)파김치 담그기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6.2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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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운 선생님의 KOICA 해외 교육 봉사 활동 체험기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41)파김치 담그기

이득규 선생이 집에 들러 파김치를 담가 주셨다. 이 선생은 쥬르벨에 거주하고 있는데 주택에 사정이 생겨서 지금 임시로 다카에 와 있다. 선생님은 1층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전기를 2층과 함께 사용해 왔는데, 갑자기 2층에서 전기를 끊어버려 다카로 내려와 유숙소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교육 봉사 활동도 모두 끝나고 금방 귀국하게 되니까 우선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쥬르벨 주택 2층 임대자가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와서 조사해 보니, 1층에서 연결해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선생님이 한 번도 전기세를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전기 문제로 집주인과 여러 차례 얘기했으나 집주인이 이를 잘 해결해 주지 않아, 지금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카 유치원 선생님들과
다카 유치원 선생님들과

이 선생도 항상 논리적이고 모범적인 단원이어서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할 분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안다. 그런데 수도세는 지금까지 1, 2층 것을 전부 이 선생님이 부담해 왔다고 한다. 그러니 어쩌면 상쇄될는지 모르겠다. 결국 2개월 동안 다카의 유숙소에서 지내기 위해서 왔는데 사무소에서는 안 된다며, 여의치 않으면 2개월 조기 귀국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조기 귀국은 업무를 다 종료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사고 귀국에 해당된다. 그러면 추후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러니 조기 귀국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선생은 깰멜 시장에서 파 김장 재료를 사 왔다. 파를 다듬고 3등분해서 잘랐다. 원래는 그대로 담아야 하지만 먹기 좋게 잘라 담는단다. 소금물에 담가서 숨을 죽이고, 10리터 들이 생수통으로 눌러두었다. 한 시간 정도 절인 후에 씻어서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오징어 젓갈, 녹말풀을 넣고 양념을 만든 후에 비볐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하루 동안 밖에서 익혀야 한단다. 유나 선생과 반반씩 나누었다. 이 선생은 우리를 위해서 직접 장도 보고 준비도 하고 담그기도 하였다. 그런데 재료 비용을 받지 않는다. 다음에 밥이나 한 번 사라고 하면서. 크게 사야겠다. 참 좋은 친구요, 시니어 봉사단원이다.

(2015년 7월 1일)

폴리가미(Polygamy)

날씨가 나날이 무더워지고 있다. 5층 아파트여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우울한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불어온 먼지가 쉬지 않고 쌓이니 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제는 우리 집에서 정종량, 최동선, 김유나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맥주도 한 잔씩 했다. 지난주에 정 자문관이 전화를 해서 주말에 한번 보자고 했다. 그래서 다카의 가까운 지인들이 모인 것이다.

시장에 가서 상추, 양송이, 큰 콩, 땅콩 등을 사 왔다. 주요 요리는 스팸 김치찌개로 했다. 쥐포와 오징어포가 있고 또 파김치도 있어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저녁 한 끼 때우고 맥주 한잔 마시는 데 별 불만이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손바닥 칠판으로 수업 중인 아이들
손바닥 칠판으로 수업 중인 아이들

최동선 선생은 문어를 삶아 가지고 왔고, 정 자문관은 맥주를 사 왔다. 유나 선생은 쥐포를 몇 장 가지고 왔다. 이외로 푸짐한 상차림이 되었고, 맥주도 시원했다. 나도 한 캔을 마셨다. 워낙 주량이 시원치 않아 이것만 마셔도 아침이면 머리가 아프다. 대화는 주로 이곳에서의 생활의 팍팍함, 이슬람 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토로하며, 그 개선 방안들을 개진해 보였다. 특히 폴리가미(일부다처제 등), 쉬운 이혼, 탈리베와 마라부의 현황에 모두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자문관님은 폴리가미가 나쁘지 않다며, 1부1처제와 폴리가미 중에서 어는 것이 옳은지는 역사가 더 흘러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 탈리베의 교육에는 그들의 부모가 학비를 지원한다고 해서 좀 의아했다. 폴리가미 즉, 일부다처제 또는 다부 일처제의 모계 사회에서 많은 혼란 과정을 겪고 지금의 1부1처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후진성을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 일부다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탈리베에게 구걸을 시키기 위해서 부모가 돈을 댄다는 논리도 이상했다. 일부러 그런 논리를 펴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화를 즐기기 위해서. 왜냐 하면 그는 바로 그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자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민한 문제인 폴리가미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았다. 지금의 문명사회에서는 대부분 모노가미(일부일처제)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 관습이 제도화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본능을 중시하는 생물학적 인간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폴리가미(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가 모노가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류 문명이 탄생할 무렵에는 세계적으로 폴리가미가 훨씬 더 많았으며, 현재까지도 폴리가미를 관습으로 취하고 있는 사회가 상당수 존재한다.

유치원 선생님들과
유치원 선생님들과

폴리가미의 한 형태인, 형제가 공동의 아내를 취하는 경우도 그다지 드물지 않다. 인도의 어느 부족에는 형제가 동시에 한 아내를 공유하는 일처다부제의 관습이 있으며, 이슬람 율법은 한 남자가 아내를 네 명까지 맞을 수 있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 역사 속에서는 그런 경우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중국의 흉노와 우리의 부여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는 변형된 일처다부제인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가 있었다. 동양의 역사에서는 근세까지도 모노가미보다 폴리가미가 더 흔했다. 조선시대에 서얼 차별로 자주 사회 문제화되었고 1960년대까지도 우리 사회에 존속했던 축첩 제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럽의 역사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지배한 중세부터 폴리가미를 법으로 금지했다.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재혼을 허용했지만 여기에도 제한은 있었다. 두 번째까지는 괜찮지만, 삼혼은 ‘점잖은 간통’이라고 해서 4년 동안 성찬식을 받지 못하는 벌을 받아야 했다. 만약 누가 분별없이 사혼까지 하려 한다면 간통보다 더 나쁜 일부다처의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해 ‘인간이 아닌 금수와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고 8년 동안 성찬식을 받지 못하는 벌이 부과되었다.

모노가미가 제도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모노가미의 관습은 그리스도교가 성립하기 전에도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로마 제국 초기의 황실이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Gaius Octavius, BC 63~AD 14)는 아들을 낳지 못한 탓에 부하들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양자로 삼고 제위를 상속시켰다. 만약 로마가 중국식 제국(한반도의 왕조들도 포함된다)이었다면 제위 계승의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자의 혈통을 중시하는 중국의 경우에는 황제가 많은 후궁들을 거느렸으므로 설사 황후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 해도 황실의 대가 끊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 후궁들 중 한 명이 아들을 낳으면 얼마든지 제위 계승자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의 아들들이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인 적도 많았으나 그것은 부작용에 불과하다.

유치원 수업 장면
유치원 수업 장면

묘하게도 로마 황제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제국의 초기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들을 거의 낳지 못했다. 그러자 로마의 황실에서는 아예 양자 상속제를 관습으로 삼았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고 불리는 기원후 2세기의 번영기 – 이 시기는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가 연이어 등장해 ‘5현제 시대’라고도 한다 - 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아무래도 제위 세습보다는 권력의 정통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5현제 시대가 끝나면서 로마 제국은 권력의 불안정이 노골화되었고, 이는 극심한 사회불안과 혼란으로 이어졌다. 워낙 황제가 암살되는 사건이 잦다 보니 기원후 235년부터 284년까지 약 50년 동안에는 황제의 수가 무려 26명에 달했다. 군인 출신의 황제가 많은 탓에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군인 황제 시대라고 부르지만, 명칭이 그럴싸할 뿐 실은 그만큼 반란이 많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권력 구조의 불안을 초래한 인물이 하필 로마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황제로 꼽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였다는 사실이 공교롭다. 『명상록(Meditations)』을 지은 스토아 철학자이기도 한 그는 5현제 중 유일하게 아들을 낳아 제위를 상속시켰는데, 그 아들이 바로 유명한 폭군인 콤모두스(Commodus, 161~192)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로서는 이처럼 민감한 문제를 들고 나와서 개선을 제안하는 것도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도 이곳에서는 종교와 결탁된 이런 문제는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최고위층도 정권 연장을 위해 그냥 덮어두는 것이다. 어쨌든 저녁 늦게까지 서로 대화도 즐기고 여담 속에 모임도 즐겼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2015년 7월 5일)

초복과 백숙

초복이다. 이곳은 항상 무덥기 때문에, 초복은 특별한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의미를 부여해 보려고 노력해 본다. 쥬르벨 이득규 선생이 지난주부터 초복 때 백숙을 해 먹자고 제안했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최동선 선생 댁에서 유나 선생이랑 함께 넷이 회동했다. 이 선생이 미리 닭을 사 왔고, 이미 큰 냄비에서는 닭이 끓고 있었다. 그 사이에 유나 선생이 집에서 반죽해 가져온 김치 전을 붙여서 먹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삼계탕은 이번이 두 번째 먹는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먹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삼계탕 재료는 코이카에서 1회 용 포장을 격려품으로 보내준다. 닭만 사서 함께 넣어 끓이면 된다. 나도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드디어 백숙이 나왔다. 정말로 맛있다. 쫄깃쫄깃하고 담백하다. 두 마리다. 이 선생의 마음과 씀씀이가 항상 우리를 감동시킨다. 이 선생은 호탕하고 소위 기분파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번 틀어지면 회복하기가 힘든 분이기도 하다. 수학 교사이셨던 최동선 선생은 한국에선 교회 장로로 신앙심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최 선생이 거주하고 있는 집은 생활 여건이 별로 안 좋다. 모기가 많고 환풍도 잘 안 되고, 소음도 심하다. 그러나 집주인이 임대료가 꼭 필요하니, 살아 달라고 부탁해서 좀 어렵지만 그냥 살고 있다. 벽에 붙어 있는 달력에는 수많은 가위표가 날짜 위에 그려져 있다. 이제 50개가 남았다고 한다. 출국 100일 전부터 기록해 왔다고 한다. 우리가 군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날짜를 기록하는 것과 같다. 언젠가 D-0을 기록할 날이 올 것이다. 이곳 생활이 녹록지 않음은 누구에게나 다 같은 것 같다. 전역할 때까지 무사하길 빌듯이 귀국할 때까지 무고하길 빌어 본다.

친절한 이득규 선생님, 정 자문관님
친절한 이득규 선생님, 정 자문관님

업무의 어려움과 인간관계의 난맥상을 이야기한다. 이곳 코이카 회원들은 얼마 안 되는 생활비에서 자체적으로 회비를 갹출하여 단체 봉사 활동에 쓰고 있는데, 그사이에 적립한 회비가 3, 40만 세파나 되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7, 80만원이나 되는 돈이다. 그런데 지난번 유숙소 청소를 몇몇 회원들이 하고 그날 식사비로 모두 써버렸다고 한다.

원래는 단원들의 협력 활동을 하는 단원에게 지원비로 주기로 했는데, 일부 집행 부서에서 결의한 내용을 바꿔서 별 의미 없이 집행해 버렸으니, 어르신 격인 최 선생은 심기가 몹시 불편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서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생활도 반성하고 좋은 방향을 탐색하게 되니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선생님은 왼쪽 다리에 부종이 생겨서 고생하고 있다. 이런 좋은 분들이 8월에 모두 떠나게 되면 나의 외로움이 더욱 깊어지리라는 생각에 갑자기 큰 불안감이 몰려온다.                                                                                 

(2015년 7월 10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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