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큰 별](42)원시 생명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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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큰 별](42)원시 생명의 노래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7.0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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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운 선생님의 KOICA 해외교육 봉사활동 체험기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원시 생명의 노래

지난 목요일 다카에는 첫 비가 내렸다. 2015년 들어서 처음으로 하늘이 열리고 빗방울이 쏟아진 것이다. 집에 있는데 어디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벼락이 떨어졌다. 너무 큰 소리에 집에 벼락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방마다 살펴보았으나 별 이상이 없었다. 밖을 보니 빗방울이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도 반가운 빗 소리여서 창문을 열고 빗줄기를 바라본다. 빗방울이 유리창, 베란다, 꽃잎에 부딪쳐 부서지는 모습과 소리를 숨죽여 들었다. 얼마나 반갑고, 즐겁고, 유쾌한, 희망의 원시 생명의 노래인가? 대지가 목을 축이는 소리가 들렸고, 흙과 나무의 호흡도 박동도 들을 수 있었다. 하늘을 향해 내뱉는 포효도 볼 수 있었다.

이미 시간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금주에는 계속 성당에 나갔지마는 오늘은 비를 핑계로 쉬고 싶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반가운 빗소리를 들으며 걷고 싶다. 작년에 사두었던 우산을 찾아내고 성당으로 향했다.

이미 집 앞은 작은 골짜기가 생겨나 빗물이 개울물이 되어, 급박히 흐르고 있었다. 택시와 자동차의 질주 때문에 멀리 돌아서 걷지 않으면 흙탕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하수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카성당의 성모상
다카성당의 성모상

사람들은 거리에 꽤나 있었지만 이 상당한 빗속에도 우산을 쓴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일 년에 한 두 번 오는 비오는 날에 대비하여 우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우둔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너무도 기다리던 반가운 비를 흠뻑 맞고 싶다는 욕망을 사람마다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두 배는 되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겨우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당문은 기둥을 제외하고 모두 열려 있었다. 미사 중에도 계속 비가 내려서, 비도 우리와 함께 미사에 참례했다. 미사가 끝나고 집에 오면서 택시가 초고속으로 달리면서, 물을 크게 튕긴다. 결국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집에 온 후에도 계속 비가 내렸다. 아마 서너 시간은 더 내린 것 같다. 이곳에선 비가 올 조짐을 누구나 안다. 우선 바람이 계속 불어야 한다. 그리고 하늘이 어두워야 한다. 이런 모습이 보이면 금방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세네갈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2015년 7월 11일)

절대 지배에 의한 세계 평화

어제까지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완독했다. 한국에서라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작업이었다. 사실 한국 우리 집에는 이 책 전집이 오래전부터 비치되어 있었다. 집사람이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들이 많지만, 나는 읽어 볼 엄두도 못 냈었다. 이곳에서는 시간을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 짬이 날 때 마다 조금씩 읽어왔는 데 드디어 다 읽게 되었다.

다카의 내가 살던 아파트
다카의 내가 살던 아파트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김석희씨다. 사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다. 고등학교 때 문학 써클 ‘향원’에서 함께 활동했었다. 그는 서울대 프랑스어학과를 졸업했고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여 번역가로 유명하다. 제1회 한국번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에 제주도로 귀향하여 신엄리 바닷가에 살고 있다. 내가 제주외고 교장 시절에 그를 초대하여 학생들을 위한 교양 강연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씨다. 이 책의 서문에 저자는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한 얘기를 싣고 있다. 장소는 산조바니 인 라테라노라는 교회다. 이 교회는 1700년 전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주교에게 기증한 교회다. 그 후 이곳은 양치기의 관저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 신도인 양들을 이끄는 지도자 교회가 된 것이다.

당시 로마 교황은 314년 이곳으로 이주했고, 1309년 프랑스 국왕이 로마교황을 억류한 ‘아비뇽 유수’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1000년 동안 라테라노 교회는 로마 교황의 처소였다. 그래서 지금도 로마의 주교좌 성당으로서 새로 교황이 선출되면 맨 먼저 찾는 곳이 이 성당이다. 저자는 제단 오른쪽 벽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어 눈길이 멎었다고 한다.

망중한
망중한

Christus Vincut(그리스도가 승리하고) Christus Regnat(그리스도가 군림하고) Christus Imperat(그리스도가 통치하다). 그런데 그녀는 Christus 대신에 Romanus 를 넣어서 ‘로마인이 승리하고, 로마인이 군림하고, 로마인이 통치하다’라고 하면 로마인의 역사가 된다고 했다.

로마사 하면 쇠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의 영향인 것 같다. 쇠망은 융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융성이라는 관점에서 표현했다. 융성의 원인을 다룬 것이 1권에서 5권까지다. 로마사의 고도성장기로서 왕정에서 공화정 체제로 일관했다. 그 이후 제정 로마 시대로 이어진다. 이 시기는 융성기와 쇠퇴기의 중간 시기로 오랜 안정 성장기를 갖게 된다. 이때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인에 의한 평화’가 탄생했다. 로마가 주도하는 이 평화는 오랫동안 넓은 제국에 걸쳐 이루어졌고 유럽, 아프리카, 중동에서 200년 간 전쟁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6권부터 10권까지는 ‘로마인에 의한 국제 질서’이고, 그 아이디어는 율리어서 카이사르이다. 카이사르는 로마시대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즉 ‘고도 성장기’에서 ‘안정 성장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엮어낸 연출이었다. 로마인 자신도 사실상 최초의 로마 황제는 카이사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도 카이사르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실제는 카이사르가 지명한 옥타비아누스가 초대 황제이다.

자연과 어울리게 꾸며진 호텔
자연과 어울리게 꾸며진 호텔

11권에서 15권은 쇠망의 시기다. ‘왜’ 보다 ‘어떻게’ 쇠망했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탄생할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는 통사로 기록했다. 로마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저자는 ‘로마인 이야기’를 썼다고 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565년 11월 14일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38년의 치세 중 마지막 15년은 고민이 많았다. 뒤를 이를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내 앞에 열린 국고에는 채무증서 밖에 없었다. 제국의 재정상태는 절망적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영토를 최대로 확장하고 최고의 권세를 자랑하고 가장 번영했다는 말을 들은 유스티니아누스 세대의 동로마제국, 또는 비잔틴 제국의 모습이었다. 586년 랑고바르디족이 이탈리아를 침략했고 깊은 상처를 준다. 45년후 613년 아라비아 반도에서 예언자 무하마드가 포교활동을 시작했고 이슬람 세력은 놀랄 만큼 강해져서 비잔티움 영토를 차례로 빼앗았다. 8세기에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이르게 된다.

성한 자는 반드시 쇠하고 제행(res gestae)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라면 후세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그것을 배웅하는 것이 인간 노력의 집적이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한국문화의 날 개막식, 가운데가 코이카 소장님
한국문화의 날 개막식, 가운데가 코이카 소장님

최고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업적을 간단히 보면, 하기야 소피아 성당 건립, ‘로마법 대전’ 편찬에 의한 400년 간의 법률 집대성, 옛 로마 영토 수복 등이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법전 서문에서 ‘로마 황제는 전쟁의 승자일 뿐만 아니라 평상시의 통치자일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바르고 좋은 통치는 법률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

로마제국은 476년에 멸망했다.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Romulus Augustus)였다.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 로마를 건국한 왕과 같은 이름이라는 것은 묘하다. 475년 10월 31일 취임하여 오도아케르에게 퇴위 당한 그는 6000 솔리우스의 연금을 보장받고, 나폴리 근처 빌라로 퇴위하여 일생을 마쳤다. 로마제국은 이렇게 멸망했다. 야만족의 침입도 내부 반란도 없이 조용히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소년 황제가 퇴위한 후에 오도아케르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도 않고 누구도 왕위에 앉히지도 않아서 로마제국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건국한 기원전 753년부터 헤아리면 1229년 뒤에 멸망해 버렸다. 622년 전인 기원전 146년 카르다고의 멸망에 비해 정말 어이없고 허무한 멸망이었다. 로마의 총사령관 스키피오 아이미리우수를 서술한 역사가 폴리비오스의 글을 보면 “스키피아 아이밀리아누스는 눈 아래 펼쳐진 카르다고시에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건국한지 700년 그 오랜 세월 동안 번영을 누린 도시가 잿더미로 변해가는 것을 그는 물끄러미 처다 보고 있었다. 그는 적국의 운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친구인 폴리비우스의 손을 잡고 말한다.

한국문화의 날 행사 참여중
한국문화의 날 행사 참여중

“폴리비우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 같은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비애감이 드네.”

로마는 카르다고 보다 두 배나 긴 세월 동안 카르다고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광범위하게 그리고 거기에 살았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고 큰 영향을 주었지만 ‘위대한 순간’을 갖지 못 했다. 불에 탔으나 화염으로 불탄 것이 아니고, 멸망했으나 아비규환도 없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스러져 갔다.

그러나 로마제국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고, 그 위대함은 네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1, 타 민족에 대한 포용 2, 민주정 원로원 3, 법률에 의한 지배 4, 기독교의 지배(콘스탄티누스 대제)로 줄여 표현할 수 있다.

세네갈의 평화와 번영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고민하면서 대장정의 책을 접었다.

(2015년 2015년 7월 18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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